성서조선(영인본CD개인용)
없습니다
도서+교보Only(교보배송)을 함께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해외주문/바로드림/제휴사주문/업체배송건의 경우 1+1 증정상품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패키지
북카드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작가정보
저자(글) 부키 편집부
원저자 루이스 프로이스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로 30년 남짓의 오랜 기간을 일본에 체제하면서 자신이 직접 체험하거나 전해 들었던 갖가지 사실을 방대한 기록으로 남겨 놓았는데, 이것이 훗날 『일본사(Historia de Japam)』라는 형태로 전해지게 되었다. 엮은이 국립진주박물관 당초 가야문화를 소개하고 경남 지역의 고고학적 연구·조사를 담당하기 위해 1984년 11월 개관하였으나, 진주성에 위치한 입지여건과 임진왜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1998년 1월 임진왜란전문역사박물관으로 재개관했다. 그 이래 임진왜란이 일어난 원인과 과정, 결과 및 후대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시를 마련해 왔으며, 동시에 『만화로 보는 임진왜란』 『사료로 보는 임진왜란』 『역사특집 임진왜란』을 비롯해 임진왜란과 관련된 사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한『사료총서(문학, 역사, 대명외교편)』 등의 발간을 통해 임진왜란에 관한 보다 깊고 폭넓은 역사적 이해를 꾀하고 또 알리고 있는 전문 역사박물관이다. 옮긴이 오만(吳滿) 1944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일본 천리(天理) 대학과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 언어학을 공부했고, 현재 일본 오사카경제법과대학 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문학박사로 한일간의 문화 역사 교류에 관한 연구와 저술에 힘쓰고 있으며, 최근에 옮긴 책으로는『조선의 쟌다르크, 논개』등이 있다. 장원철(張源哲) 1959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와 한국학대학원에서 한문학을 공부했고, 일본 동경대학 외국인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있다. 동아시아 문화교류사의 연구에 힘쓰고 있으며 최근에 옮긴 책으로는 『한자에 도전한 중국』 『공자전』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CD롬 형태로 제작된 『성서조선 영인본 CD』
일제 시대 민족주의적 기독교 신앙을 부르짖다 폐간 처분된 『성서조선(聖書朝鮮)』 전권(全卷)이 담긴 『성서조선 영인본 CD』(이하 『성서조선 CD』로 약칭)가 발간됐다. 창간호(1927년 7월호)부터 폐간호(1942년 3월호)까지 158권 전권이 한 장의 CD에 수록된 『성서조선 CD』는 제목 및 필자 이름으로 검색이 가능하여 책자 형태의 영인본보다 이용에 편리하다. 또 책자가 아닌 CD롬 형태의 제작 방식을 취함으로써 제작비를 대폭 낮추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90,000원)에 공급할 수 있어 일반 독자들도 조금이라도 덜 부담이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이번에 발간된 『성서조선 CD』는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한 1927년부터 더욱 노골화된 1940년대 초반까지 15년 동안에 발간된 『성서조선』 전권이 발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수록된 만큼 일제 시대 기독교 관계 연구자는 물론이고 국어 관계 연구자, 한국사 관계 연구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의 초고라 할 수 있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 역사」와 같은 함석헌의 글(117편)을 비롯해 남강 이승훈의 종증손으로서 풀무학교를 세우는 등 기독교적 이상사회 건설을 지향했던 이찬갑의 글(22편), 다석 류영모의 글(10편) 등을 당시의 원문 그대로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독자들에게도 상당한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일제 시대 민족 기독교의 증언록 『성서조선』
성서조선』은 그간 기존 교회의 제도와 교리적 모순을 비판한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 주창자들이 발간하던 동인지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에게 사사(師事)한 김교신(金敎臣),함석헌(咸錫憲),송두용(宋斗用),정상훈(鄭相勳),류석동(柳錫東),양인성(楊仁性) 등 6명이 창간한 관계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다만 우리 염두(念頭)의 전폭(全幅)을 차지하는 것은 조선(朝鮮) 이자(二字)이고 애인(愛人)에게 보낼 최진(最珍)의 선물은 『성서(聖書)』 1권뿐이니, 양자(兩者)의 일(一)을 버리지 못하여”에서 택한 제호가 『성서조선』이고,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골근(骨筋)을 세우며 그 혈액(血液)을 만들고자” 하는 동시에 “넓게 깊게 조선을 연구하여 영원한 새로운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이상 『성서조선』 1927년 7월호 「창간사」에서)고자 발간하기 시작한 만큼 『성서조선』에서는 민족적 색채가 두드러졌다.
민족 기업가이자 오산학교 설립자로서 나중에 고당 조만식이 “조선이 낳고, 조선을 위하여 울고 웃고, 조선을 위해 죽었으며, 시신(屍身)까지 민족교육을 위해 바쳤다”고 추도한 남강 이승훈이나, 복음병원을 세워 행려병자의 치료에 나섰으며,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라는 한국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는 등 성공한 의사이면서도 만년에 집 한 채 없이 병원 옥상에서 지낼 정도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장기려 등 고정 독자들 가운데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많았던 것도 그래서이다.
‘성서조선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압수.소각.폐간 그러나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국판 36쪽 안팎에 발행 부수가 300부를 넘지 못하는 수준의 잡지였음에도 『성서조선』은 발간 초기부터 일제의 집요한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했다. 급기야는 1942년 3월호의 권두언 「조와(弔蛙)」가 개구리의 소생을 통해 조선 민족의 소생을 노래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관계자가 전원 검속되고, 관련 간행물이 일체 압수?소각 처분을 받는가 하면 최종적으로는 김교신?함석헌을 비롯한 관련자 18명은 1년 동안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고, 잡지에 대해서는 폐간 처분이 내려지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
『성서조선』 동인들은 발간 초기부터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1927년 7월 창간 당시 초대 발행인과 편집인을 일본에 있는 류석동과 정상훈으로 하고, 발행소를 도쿄의 성서조선사로 한 것도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또 1930년대 후반 이후로는 발행인이자 주필인 김교신이 자신의 일본 벗들 중에서 발행인을 내세우고, 비용은 더 들망정 제작 자체를 일본에서 하는 것을 여러 차례 고민한 것도 모두가 조선총독부의 검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기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성서조선』에 대한 일제의 감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기만 했다. 1940년대에 들어서는 7월호가 8월이 되어서야 발간되는가 하면, 글의 중간 부분이 빈 상태로 발간된다든가 혹은 전연 엉뚱한 글이 채워져 나오는 일이 거의 매달 거듭되는 식이었다.
기독교에서 한글 표기법, 생활 풍속까지 - 당시 삶의 모습 보여 줘
『성서조선』은 또 이름 그대로 철저하게 성서적이었다. 무교회주의적 관점에서 성서 각 권을 철저히 해석하고, 성서 연구에 필요한 희랍어?성서 동물학 등의 기초 분야를 고정적으로 다룬 것은 물론이고, 독자들의 생활 에세이도 성서와 기독교를 찬양하는 간증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였다.오늘날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의 초고라 할 수 있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 역사」와 같은 함석헌의 글(117편)이 그렇고, 남강 이승훈의 종증손으로서 풀무학교를 세우는 등 기독교적 이상사회 건설을 지향했던 이찬갑의 글(22편), 다석 류영모의 글(10편) 등이 그렇다. 그 점에서는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병환자로 『성서조선』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된 문신활(11편), 문둥이에 장님이라는 이중고를 겪던 윤일심(6편) 등 『성서조선』의 필자들은 한결같이 예수와 기독교를 이야기했다.
『성서조선 영인본 CD』발간 후기
도서출판 부키에서 『김교신 전집』을 완간한 것은 지난 2002년 2월이었다. 하지만 『김교신 전집』을 최종적으로 완간한 것 같은 기분을 제대로 느낀 것은 『성서조선 영인본 CD』의 발간과 함께이다. 그렇다고 『성서조선 영인본 CD』의 발간 과정에서 무슨 특별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일제의 압수?소각으로 세상에서 사라지다시피 한 『성서조선』을 부활시킨 것은 김교신 선생의 후배와 제자들이다. 그들은 20여 년의 세월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에 『성서조선』이 있을 만한 곳을 모두 찾아다녔다. 심지어는 검찰청 창고까지 뒤졌을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성서조선』 전권 2질 중 1질은 지금 독립기념관에 가 있고, 나머지 1질은 20여 년 전 영인본으로 소량 제작되어 사전 주문자들에게만 배포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CD 영인본의 편집에 참여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데이터베이스를 다룰 줄도 모르는 우리가 『성서조선 영인본 CD』의 제작과 관련 한 일이라고는 『김교신 전집』의 편집 당시 원문 복구를 위해 기증 받은 2질의 『성서조선 영인본』을 CD개발업체에 갖다 주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성서조선 영인본 CD』가 발간된 지금에야 『김교신 전집』을 완간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마 김의경이라는 사람이 『향린』 30호(출처 : (http://hyanglin.org/moksun/hyanglinji/31/106.htm)에 다음과 같이 쓴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애국자 김교신 … 선생님은 그렇게 뜨겁게 예수를 믿었으나 일본인들이 아닌 우리나라 기독교들로부터 악마처럼 위험시되었고 미움을 받았습니다. 『한국 문화사 대계』안에 김선량(金善亮)이 쓴 한국 기독교사에는 선생님의 이름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을 만큼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그러나 1986년에 제가 천안 옥천에 자리 잡고 있는 독립기념관에 기독교 사적을 전시한 기간에 들렀을 때 주기철 목사님의 항일 ‘순교 사적’과 나란히 김교신 선생님의 『성서조선』원본 한 권과 사적을 전시한 것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금할 수 없었던 일이 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서조선』 안에는 기독교나 성서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황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가령 『성서조선』 자체는 일제 시대 한글 표기의 변천 과정을 그대로 보여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교신 자신이 조선어강좌를 수강하며 ‘우리말 바로 쓰기’에 열의를 보인 결과이다. 또 글 중간 중간에는 당시의 생활 풍속이 세밀하게 드러난다. 일례로 『성서조선』 발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일지(日誌) 형식으로 전하는 ‘성조통신(聖朝通信)’은 필자인 김교신의 신앙생활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학교생활은 물론 세상인심의 변천과 자전거 수리비, 목욕비의 추이 등 일상의 여러 풍경을 전해 주는 만화경이기도 하다.
기본정보
ISBN | 9788985989541 |
---|---|
발행(출시)일자 | 2003년 07월 04일 |
쪽수 | 1쪽 |
크기 |
135 * 190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리뷰 종류별로 구매한 아이디당 한 상품에 최초 1회 작성 건들에 대해서만 제공됩니다.
판매가 1,000원 미만 도서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일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해당하는 Klover 리뷰는 별도의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리뷰는 1인이 중복으로 작성하실 수는 있지만, 평점계산은 가장 최근에 남긴 1건의 리뷰만 반영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문장수집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