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주의 문학 선언!!
우리 문학도 이제 심미주의 문학을 보유한다.
우리 신문학사 100년의 기록을 보면 심미주의 문학란은 아직 공란으로 남아 있다. 이 말은 다소 과장이 섞이기는 했어도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심미주의 작가를 보유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신문학 100년이 그 외피에 비해 매우 빈약하고 누추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서양문학의 빛나는 세목들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는 서양문학이 길어올린 찬란한 고전들이 심미주의적 세계관에 크게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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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주의 문학 선언!!
우리 문학도 이제 심미주의 문학을 보유한다.
우리 신문학사 100년의 기록을 보면 심미주의 문학란은 아직 공란으로 남아 있다. 이 말은 다소 과장이 섞이기는 했어도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심미주의 작가를 보유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신문학 100년이 그 외피에 비해 매우 빈약하고 누추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서양문학의 빛나는 세목들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는 서양문학이 길어올린 찬란한 고전들이 심미주의적 세계관에 크게 빚지고 있음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멀리 괴테와 사드 백작이 저작들이 그랬고, 오스카 와일드와 조르주 바타이유의 문학이 그러했다. 휠더린과 헨리 밀러의 개성적인 작품들도 당당히 심미주의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서양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웃 일본의 예를 들어도 우리는 미시마 유키오(탐미주의)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유미주의적 노인문학) 이시하라 신타로(충격과 전율의 미학) 등의 이름을 심미주의란 말과 더불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너무나도 대상을 탐미한 나머지 금각사에 불을 지르는 미조구치(금각사)의 심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얼마나 전율했던가!!
그리고 분출하는 내면의 욕망을 어쩌지 못해 자신의 발기한 성기로 방문의 창호지를 뚫던 이시하라 신타로(태양의 계절)의 심미적 상상력은 또 어떠했는가.
하지만 이제 우리 문학도 이들에게 맞설 수 있는 오연한 심미주의자를 내놓는다. 마르시아스 심, 제우스의 아들 아폴론에 맞서 예술을 겨루고자 했던 한 예술가의 이름을 빌린 심상대는 이 작품집 출간과 동시에 심미주의 문학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이는 한국문학의 초라한 개관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분명 문학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일이다.
과연 우리문학이 김동인 이후로 심미주의 소설미학을 보유한 적이 있었는가. 심미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 있었는가. 이 땅은 신문학사 100년이 지나도록 진정한 의미의 심미주의 작가를 길러내지 못했다. 김영랑, 이효석, 현진건, 황순원 등의 몇몇 작품들이 심미주의의 어떤 부분을 조악하게 모사했을 뿐이다.
물론 그것을, 심미주의에 대한 작가의 이해의 부족이거나 미학적 판단의 시비, 미에 대한 자의식의 결여 때문으로 파악하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다. 본질적으로 모든 예술가, 모든 작가는 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작가들이 스스로 심미주의 문학에 대한 경사를 금기시했던 것은 이 땅의 정치적인 상황이, 역사적인 정황이 심미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조장하고 배태했기 때문이다.
이 땅의 현실이 역사주의나 사회학적 상상력이 창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을 전제했기 때문이다. 이 땅의 불우한 작가들은 그 편견의 강박으로부터 한 순간도 자유로울수 없었다.
하지만 마르시아스 심은 이제 그 특유의 기개와 요설로 그간 억눌려 있던 심미적 욕망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그 휘장의 너비는 곧 우리문학이 초유로 보유하는 심미주의 문학의 지평이 된다.
이 작품집에 길러진 열 편의 소설들은 육체적인 희열과 정신적인 고양의 일치가 보여줄 수 있는 미의식의 절정을 첨예하게 보여준다. 그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미의 본질에 대한 놀라운 직관들을 보여준다. 병들어 죽어가는 친구의 어머니의 눈동자에 반해서 바다를 바라보며 자위하는 소년, 꽃잎 같은 여자의 성기가 너무 아름다워서 혀를 밀어넣는 사내, 폭풍이 오는 날 포구의 정박해 있는 어선 사이로 몸을 던져 파도에 찢어져 죽은 여자, 하얀 보름달이 뜬 날 자식의 묘를 찾아가는 늙은 아낙의 독백, 봄날 정부와 벚꽃나무 아래서 하얀 꽃비를 맞으며 몸을 섞는 가정주부, 사랑을 찾아 이국의 섬과 본향을 방황하는 늙은 화가. 이들은 아름다움의 형식을 적나라할 정도의 직관으로 투시하고 있다.
이들은 말 그대로 미를 탐하는 자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서 미란, 삶의 정수이며 본질에 속하는 것이며 이것을 탐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가장 성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르시아스 심의 소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성과 육체에 대한 치밀한 선험적 사유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육체에 인공의 구속이 모두 사라진 상태 자유의 상태에서 구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제도가 만들어낸 도덕의 미는 박제된 것이며 그러므로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마르시아스 심은 껍질이 벗겨져 죽으면서도 신의 예술을 조롱한 신화 속 인물 마르시아스처럼 자신의 예술에 대해서 오연한 자부심을 갖는다. 물론 그 오연한 자부심의 핵심에는 예술에 대한 지극한 신앙이 깔려 있다. 그러니까 마르시아스 심의 경우 심미주의는 예술에 대한 도저한 신앙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마르시아스
지상의 신이자 미천한 사티로스의 목신인 마르시아스는 어느날 지혜의 신 아테나가 버린 풀루트를 길에서 줍게 된다. 자신의 예술적 열정을 사랑한 그는 매일 열심히 플루트 부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 결과 플루트 연주실력이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하는데, 그의 음악을 듣는 농부들은 마르시아스의 연주 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르시아스의 소문을 들은 아폴론은 마르시아스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끼고 연주 실력을 겨루자는 제의를 하게 되는데, 아폴론의 매우 불평등한 연주 대결 룰에 따라 마르시아스는 실력 발휘를 하지도 못하고 대결에서 패배하게 된다. 마르시아스는 패배의 댓가로 껍질이 벗겨져 죽어가면서도 신에 맞서 예술을 겨뤘던 예술가의 오연한 자존심을 잃지 않고 미소를 짓는다.
미
동네 범부들과 화냥질을 잘하는 어머니를 두고 있는 나는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읽으며 동화의 꿈을 꾼다. 어느날 동네 미장원에서 기이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동네의 모든 청년들이 연모할 만큼 아름다운 읍장의 딸이 머리를 하기 위해 이른 아침 미장원에 찾아온다. 서울에 갈 열차표를 미리 끊어놓은 뒤이다. 아름다움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미용사는 자신이 만족하는 모양이 나올 때까지 읍장의 딸을 치장한다.
열차시간을 놓치게 된 읍장의 딸이 미용가위를 빼앗아 던지자 미용사는 첨예한 은빛 미용가위로 읍장딸의 목을 찌른다. 미용사는 죽어가는 읍장의 딸을 계속 치장한다. 사건이 알려지고 나중에 그 미용실에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아무도 그 안에 들어가볼 수는 없다. 그런데 나는 미용실 안에서 엄마와 외눈박이 동생이 걸어나오는 것을 본다.
슬픈 사랑의 전설
이보는 정치적 내전에 연루되어, 주거제한을 받는 청년이다. 그는 그곳의 유명한 화가로부터 미술을 배우게 되는데, 그만 화가의 젊은 아내 밀리짜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이보는 그녀를 몹시 흠모하지만 그 여자는 남편이 아닌 또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 실연에 절망한 이보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머나먼 남태평양의 섬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이보는 원주민의 딸 데후라를 만나 열정적인 성애에 탐닉하면서 예술을 완성시킨다.
세월이 흐르고 다시 돌아온 이보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화가의 딸과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죽자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의 무덤 옆에 묻어주고 자신도 죽으면 그 옆에 묻히기를 희망한다. 일생을 예술과 사랑을 위해 헌신했던 그는 어느날 벽난로 곁에서 마지막 노래를 부르듯이 평온하게 생을 마친다.
맹춘
사십줄에 접어든 주부인 수경은 봄날 오전, 친구인 혜선을 불러내려다가 여의치 않자, 대학동창이며 정부인 신문사 사회부 기자 상호를 불러낸다. 그들은 매주 수요일에 만나, 정을 통하는 사이이다. 서로의 가정을 존중하자는 룰을 지키면서. 상호와 수경은 승용차를 타고 교외의 벚꽃을 구경하러 간다. 그들은 그 벚꽃나무 아래에서 차를 정차시키고 정사를 나눈다. 상호를 다시 그의 근무지에 내려놓은 수경은 봄날 오후의 나른함을 꽃비가 내리는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완상한다.
내 生에 없는 두 시간
음대 교수의 부인은 수경은 남편과의 약속 장소인 오페라 하우스에 두 시간이나 빨리 나왔다. 두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의 옛제자이며 지금은 성공한 성악가인 남자를 우연히 만난다. 남자는 수경에게 두 시간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차에 태운다. 남자는 수경의 남편에게 음악을 배우던 청년 시절, 수경을 은근히 연모했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는 차를 교외의 모텔로 향하게 한다. 수경은 남편의 제자였던 남자와 모텔로 들어서면서 두 시간이 내 생에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망월
열엿새 달이 뜨는 어느 환한 밤, 노파는 큰아들 경주가 묻혀 있는 망월동 묘지로 허위허위 향한다. 달은 아주 밝아서 노파의 걸음을 다 비춘다. 물론 가끔 달은 구름 뒤에 숨기도 한다. 큰아들 경주의 무덤으로 향하는 동안 노파는 고등학교 3학년짜리 학생과 우연히 동행하게 되어, 경주의 무덤 앞에 놓으려고 가지고 간 복숭아를 건네준다. 드디어 외아들의 무덤 앞에 이른 노파는 지난 여름에 묻어주었던 여름내의를 땅에서 파내고 겨울내의를 묻어준다. 그리고 가지고 간 음식을 정성스레 무덤 앞에 차린다. 그리고는 “잘 자그라, 잉. 잘 자, 잉. 다씨는 안 올 것잉개. 잘 자, 잉”이라고 오열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팔꽃
이혼을 하고 바닷가 도시를 전전하는 소설가인 나는 자신의 애독자인 예림과 여관에 함께 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그들은 술을 마신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 지난 세월의 삽화들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술집의 호스테스들과 동거를 하던 시절, 제대 후 소설쓰기에 좌절해서 오징어배를 타고 포구를 떠돌던 시절들. 나는 예림과 함께 몇 번의 몸을 섞는다. 몸을 섞으면서 나는 평화를 느끼며 무료를 달래듯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종적없이 사라지고 난 다음, 그 다음에도 나라는 그 누군가는 애림이라는 애칭을 가진 여자의 꽃 앞에 무릎을 꿇고서 그 꽃잎이 버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리라.”
샌드위치
성적인 열망이 가득한 사춘기 시절 나는 사창가를 드나든다. 그곳에는 친구의 어머니도 포주생활을 하고 있다. 친구 어머니는 나중에 ‘홍콩매독’으로 죽어가는데, 그때 문병을 갔던 나는 친구 어머니의 눈빛으로부터 강렬한 성욕을 느낀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하숙을 시작한다. 하숙의 여주인은 남편이 일관계로 타지에 가 있다. 어느날 자위행위를 하던 나는 그것을 여주인에게 들키고 만다. 성적 열망에 사로잡힌 여주인은 나를 한 호텔로 불러내어 격정적인 정사를 치른다. 그녀는 다비드상을 보면서 처음으로 자위를 했다고 고백한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는 그 여주인이 방으로 들여놓던 샌드위치의 기막혔던 맛을 추억한다.
묘사총
깊은 산중에 오막이 두 채 있다. 재너머에는 늙은 중이 산다. 한 오막에는 임신한 딸과 사내가 함께 살고 다른 오막에는 늙은 노인 부부가 어린 딸 곶뫼를 데리고 산다. 워낙 깊은 산중이라 뱀이 출몰한다. 늙은이 내외와 사내가 살구를 따러 숲으로 들어갔을 때 늙은이 내외의 어린 딸 곶뫼가 있는 방으로 뱀이 들어온다.
뱀은 이미 고양이와의 싸움으로 잔뜩 독이 올라 있다. 뱀은 곶뫼를 문다. 살구를 따러갔던 늙은이는 돌아와서 어린 딸이 숨져 있는 것을 보고는 뱀과 고양이를 낫으로 친다. 그 와중에 다시 뱀에게 물린다. 지나가던 스님이 늙은이와 어린딸 그리고 뱀과 고양이의 시체를 거두어 함께 묻고는 장사를 지낸다.
저자 소개
마르시아스 심
본명이 심상대인 마르시아스 심은 1960년 강릉시 옥계면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중퇴했다. 1990년 《세계의 문학》에 「묘사총」 「묵호를 아는가」 「수채화 감상」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묵호를 아는가』 『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덟 편의 소설』 『늑대와의 인터뷰』 『명옥헌』이 있으며 연작소설 『떨림』을 펴냈다. 2001년 제46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 문학에서는 보기 드문 심미주의적인 문체로 누항의 삶이 처한 절명의 위기와 그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탐문하는 마르시아스 심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미주의자로서의 숙명을 고통스럽게 자각하면서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세상에 격렬한 애증의 요설을 퍼붓는다. 이를 통해 그는 몽매한 피갑에 둘러싸인 삶의 본질을 해명하고 지상과 인간의 예술을 완성시킨다. 예술가의 자존심을 걸고 신과 오연하게 맞섰던 신화 속의 목신 마르시아스처럼 그는 외롭고 불우하지만 자신의 예술 앞에서 언제나 자유롭고 도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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