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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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진실로 삶에 미침으로써 그렇게 하라.
그러한 자만이 춤출 수 있는 정신이 될지니.
피로 쓴 글을 아직 차마 읽지 못하는 이들이 진실한 기쁨으로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만이 이 책의 유일한 존재 이유다. 니체의 철학은 삶이 안겨 주는 무한대의 고통과 고독에도 불구하고, 삶을 기꺼워하며 춤추는 자를 위한 것이다. 춤추며 처절한 슬픔마저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자를 위한 것이다.
니체의 글은 피로 쓰였다. 그의 글을 이해하는 데 좋은 머리 따위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피로 쓴 글은 피로 쓴 글을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사상을 생생하게 밝힐 목적으로 여러 유명한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이 그저 철학적 설명을 위한 보조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그림 중 상당수는 피로 그려진 탓이다.
※ 한상연 교수가 들려주는 ‘그림’과 ‘철학자’의 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철학자는 근현대의 철학자들의 철학과 예술가들의 그림을 함께 보여 줌으로써, 대중들이 철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그림으로 보는 니체』를 시작으로 아래의 철학자들과 그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작가정보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를 함께 전공한 철학자.
철학과 예술, 문학은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관점을 지니고 있다.
현재 가천대학교에서 예술철학, 문화철학, 종교철학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희망철학연구소에서 여러 철학자들과 함께 인문학 살리기, 민주주의교육 등과 관련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철학을 삼킨 예술』,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기쁨과 긍정의 종교』, 『공감의 존재론』, 『문학과 살/몸 존재론』 등이 있으며, 희망철학연구소의 철학자들과 함께 일반 시민을 위한 여러 철학교양도서를 공저했다.
인문학이란 삶을 보다 강하고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니체, 베르그송, 하이데거, 슐라이어마허, 사르트르, 푸코, 들뢰즈 등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 왔다. 이 철학자들의 공통점은 삶을 이론과 체계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전통 철학적 경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다.
괴테의 유명한 경구에 따르면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오직 저 푸른 생명의 나무뿐이다.” 삶과 존재란 본래 이론과 체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임을 잘 드러내는 경구이다.
독일 보쿰대학교에서 철학, 역사학, 독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교에서 철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논문에서는 니체와 바흐친의 철학을, 박사논문에서는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의 철학을 함께 다루었다.
목차
- 글쓴이의 말
제1장 차라투스트라의 몰락
제2장 삶을 위한 투쟁
제3장 위대한 정오
제4장 재앙을 부르는 천민 도덕
제5장 타란툴라의 간계
제6장 영원회귀
제7장 기쁨과 긍정의 정신
제8장 천민과 노예의 폭동
책 속으로
홀로 고독을 즐기던 10년 동안의 생활을 청산하고 인간 세상으로 되돌아갈 결심을 한 후 차라투스트라는 “나는 몰락해야만 한다”라고 다짐한다.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인간의 퇴락과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 짐승으로 퇴락할 위기에 처한 까닭은 바로 인간이 몰락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즉 퇴락의 징후는 바로 자신의 몰락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다. 제1장 차라투스트라의 몰락
차라투스트라의 말대로 과연 이러한 곳에서는 결국 자살하도록 모든 사람이 서서히 내몰리는 과정을 삶이라고 부른다. 삶이 전쟁을 위한 수단으로 끝없이 전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니체의 해답은 전통적인 성현들의 그것처럼 간단하고 명료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탐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제2장 삶을 위한 투쟁
정오는 밤으로부터 가장 먼 때이다. 오전은 지나간 밤과 가깝고, 오후는 다가올 밤과 가깝다. 그러나 정오가 밤으로부터 가장 먼 때인 까닭은 그것이 지나간 밤의 때와 다가올 밤의 때 사이의 산술적 중간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태양이 정오에 가장 높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드높이 떠오른 정오의 태양이 정오가 아닌 다른 모든 때를 정오보다 밤에 더 가깝게 하는 것이다. 제3장 위대한 정오
그들은 모두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자들이었다. 2000년 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군중처럼 19세기와 20세기의 전환기를 살던 유럽의 군중 역시 환전상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엄격한 양심을 추구해야 하는 자가당착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2000년 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군중과 달리 유럽의 군중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국가에 속한 자들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구세주 한 명만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제4장 재앙을 부르는 천민 도덕
누가 평등을 설교하는 타란툴라인가? 이러한 자가 원하는 복수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평등을 설교하는 자가 원하는 복수의 대상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은 자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타란툴라의 정신을 지닌 자는 적당한 행복과 사익만을 추구하는 끝물 인간으로서 자신과 다른 모든 인간을 향한 원한 감정에 시달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제5장 타란툴라의 간계
자신이 행복한 자가 아니라 뭉크처럼 가난하고 비통한 마음을 지닌 자라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 영원회귀 사상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이 모든 고통을 또다시 겪어야만 한다는 것인가? 그것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 차라투스트라의 영원회귀 사상은 단호히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 기꺼이 이 모든 고통을 또다시 겪어야만 한다. 제6장 영원회귀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몰락은 고통과 굴욕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순수한 기쁨을 위한 것이다. 자신의 몰락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자신의 몰락을 선택할 수 있는 자만이- 현실의 모순이 자신에게 안겨 주는 굴욕과 고통을 이겨 내고 순수한 기쁨과 긍정의 정신으로 부활할 수 있다. 초인이란 오직 이러한 과정의 산물일 뿐이다. 제7장 기쁨과 긍정의 정신
산상수훈자의 이야기는 무엇을 뜻하는가? 폭동을 일으키는 천민과 노예는 더 이상 사회의 하층민이 아니다. 실은 그 반대이다. 폭동을 일으키는 현대사회의 천민과 노예는 도리어 지위가 높은 자, 부유한 자, 학식이 높은 자, 시인인 양, 예술가인 양, 제법 교양 있는 체 거드름을 떠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인류가 지금까지 이루어 온 모든 소중한 삶의 의미들에 맞서 폭동을 일으키면서 돈과 권력을 차지하는 것 외에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공공연하게 외친다. 제8장 천민과 노예의 폭동
출판사 서평
[편집자의 말]
피로써 철학한 철학자, 그림을 만나다
예술은 고통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예술가의 고통이 그들 작품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 고통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 것이 있다. 분명, 잠시간 머릿속에 스치고 지난 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삶은 곧 고통”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불교도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삶이 곧 고통이라는 사실을 직시한 것은, 인도의 한 성인뿐만이 아니었다. 쇼펜하우어가 그러했고, 우리의 철학자 니체가 그러했다. 나아가 니체는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순연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고통으로 인해 새어 나오는 피로써 철학을 했다. 그의 철학은 이른바 피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피로 쓰였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오직 피로 쓴 글을 사랑함으로써, 그리고 진실로 삶의 아름다움에 미쳐 버림으로써만 그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거인이 될 수 있다. 거인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펼쳐 보는 것은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이 책에는 피로 쓴 니체의 글들이 그 글을 사랑하는 또 한 명의 철학자에 의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의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그 예술가의 고통을 참으로 공감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볼 수 없다. 뭉크의 그림을 보고, 그저 그림 속 표정을 즐겁게 바라보는 자는 그 그림의 참된 의미를 읽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로 쓴 글과 피로 그린 그림을 한데 묶어 같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림으로 보는 니체』는 피로 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피로 그린 여러 그림을 함께 묶어 해설하는 책이다. 그렇기에 피로 쓴 글과 피로 그린 그림 모두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피로 쓴 글을 사랑할 준비가 된 이들을 위해 그들을 피로 쓴 글과 그림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인도를 따라 피로 쓴 글을 사랑할 수 있게 된 자만이 정신적 거인이 되는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이 고통으로 얼룩진 삶의 아름다움에 미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우선 우리는 깊게 경멸해야만 한다. 무엇을?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그것은 현재의 우리를 경멸함으로써만 우리는 진정으로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사랑한다면 진실로 경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드라마 중에, 《트로츠키》라는 드라마가 있다. 거기서 트로츠키는 “민중을 위한 혁명”을 부르짖지만, 그 스스로는 민중을 경멸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러면 안 되느냐고 되묻는다. 이게 과연 무슨 말일까? 민중을 경멸하는 자가 어떻게 민중을 위할 수 있단 말인가!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니체는, 한상연 교수는 아마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민중을 경멸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민중을 위하는 것인 탓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현재의 민중은 끝물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들 자신의 사익에 눈이 멀어 있기 마련이며, 적당한 행복에 안주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오직, 경멸받아 마땅한 그 현재의 인간을 멸시하고 그들이 될 수 있는 먼 미래의 인간을 사랑하며, 그들이 극복될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이다. 생각해 보라! 더 나아질 수 있음에도 나아지려 하지 않는 친구를 보며,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위한 일이 아니다. 버릇없는 아이를 보며,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 또한 아이를 위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하는가? 그렇다면 아낌없이 경멸함으로써 그렇게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만 그는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진실로 사랑하려면, 사랑하는 이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한없이 경멸해야만 한다. 왜냐면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우리에 맞춰 길들이려고 하거나, 그의 처지를 동정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신을 한없이 경멸하도록 하라!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를 자신에 맞추려고 하는 자는 상대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자이다. 그러나 상대를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그가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자이다. 또 상대를 동정하는 자는 실은 그를 무너져 내리도록 조장하는 자이다. 우리는 동정이 아니라 그저 그의 아픔을 같이하고, 그의 쉼터가 되어 주어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너무나도 편안한 쉼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우리로부터 벗어나 극복될 수 있도록 다소간의 불편함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실로 사랑하고자 한다면 자신조차 진실로 경멸해야만 한다. 상대를 길들이려 하고 상대를 동정하려고 하는 자신을 마땅히 경멸하도록 하라. 우리는 이처럼 스스로 극복되기 위함 뿐만이 아니라, 상대를 진실로 사랑하기 위해서도 자신을 경멸함으로써 스스로 극복되어야 한다. 현대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 춤출 줄 아는 정신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와 사랑하는 이들을 경멸함으로써 극복된 우리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우리 모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사이비 시인이 아닌 진짜 시인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이는 바쁜 세상살이 속에서 어떻게 시를 쓰며 살아가겠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꼭 시를 써야만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만 일상생활 속에서 삶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한 삶이 지닌 아름다움에 미쳐 버리며, 그 삶을 순연히 긍정하는 정신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춤출 줄 아는 정신,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그렇게 되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춤출 줄 아는 정신이 되기 위해서는 몰락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 끝물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몰락의 시작일지 모른다. 우리는 여태껏 안주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몰락해야만 한다. 아니,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몰락해야만 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삶의 아름다움에 미쳐 버릴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정신이 비로소 춤출 줄 아는 정신이 되는가?
바로 어린아이의 정신이 됨으로써이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정신이 순연한 긍정의 정신임을 안다. 그저 떼를 쓰는 어리광쟁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정신을 생각해 보라. 그들의 세상은 감탄스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것이 감탄할 만한 것이기에 그들의 삶엔 부정이 없다. 모조리 긍정할 것이며, 그래서 긍정할 뿐이다. 또 어린아이가 예술을 본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어린아이가 예술을 보며 그 예술의 값어치를 따지고 볼까? 어린아이라면 그저 예술이 가진 아름다움에 감탄할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되어 아름다움에 경탄해 마지않아야 한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그림의 피를 사랑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비추어 우리가 얼마나 경멸해 마땅한 자인지 깨달을 것이고, 몰락을 선택함으로써 춤출 수 있는 정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끝물 인간이었던 우리가 누군가의 지도도 없이 이러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조금 도움을 받아 보자, 이 책 『그림으로 보는 니체』는 피로 쓴 글과 피로 그린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잘 알려 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84119864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11월 20일 |
쪽수 | 304쪽 |
크기 |
140 * 221
* 25
mm
/ 502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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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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