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떠메고간 새들의 푸른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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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자서
1부
날
만종
깨꽃
마음의 등불
금은 방
붉은 시장
탱자꽃
길 안의 둥지
감각적이지 않기
북디자이너
샘치기
단장
2부
꽃복숭아
대조동 아라리
코스모스 뿌리께에 꽃 피던 날
자기소개서
야간열차
불광동 대장장이
김장하는 김씨
못 박힌 풍경
은행나무가 있는 우물
카론의 봄
겨울 오는 첫번째 골목
화엄산에서
3부
늘 그렇듯
금지된 노래
날아라 황금팔
서울의 봄 99
허밍
장마, 떠도는, 지워지지 않는
날개 없는 날갯짓
빈 들
시위
겨울 속 여름 풍경
거울을 보다
서리꽃
4부
섬
조각공원
토말
잔설
봄봄
자갈
먼 길
건조주의보
134번 종점
길 위의 거울
맹아
소인 없는 편지
해설. 아, 아름다운 생명아 / 김주연
책 속으로
[한 발을 내디디면 한 발자국 디딘 만큼 먼지가 피어오르고 한 방울의 비도 없이 계절은 바뀌었다 조간 신문 구석구석엔 때 이른 된서리가 찍혀나왔다 넓게 피워낸 견고하던 플라타너스 이파리 자신을 지켜주던 계절에 의해 힘없이 져내린다 뚝, 뚝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흘러 흘러 사구를 만드는 강을 보고 싶었다 시외로 빠져나가는 열차는 줄곧 앞만 보며 미끄러졌다 가슴이 뻥 뚫렸지만 어떤 새도 그곳을 통과하지는 못했다 먹은 것도 없는 속이 내내 울렁거렸다 뭔가 보여줄 게 있다는 듯 흐르지 못하고 붙박여 흔들리는 산을 들여다보았다 덜컹거리는 가슴에 노을이 와서 안긴다 붉은 갈대밭 깃을 치는 철새를 따라 날아오르지 못했던 날들이 일제히 파닥거린다 (그 날들에) 갈잎을 띄운다 (그 손으로) 강심을 향해 물수제비를 띄운다 (그 때마다) 가라앉는 깃털 같은 육신 날아오르지 못하면 가라앉는다] 시 <날개 없는 날갯짓> 전문.
출판사 서평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래 꾸준히 시작 활동을 해온 고찬규 시인이 첫 시집 『숲을 떠메고 간 새들의 푸른 어깨』를 펴냈다. 작은 사물이나 자연현상, 사람들의 살림살이 속에서 생명과 생활의 진지함을 포착해낸 이 시집에서는 인간에 대한 성찰과 연민이 가득한 시인의 시선을 통해 유한한 삶의 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되는 어떤 경건함을 느낄 수 있다. 시인은 땅 위에 존재하는 무수한 존재들의 연관성과 시간 앞에 무력한 존재들의 유한성, 각박한 도시의 삶과 그로부터 밀려난 주변부의 사람과 사물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반짝이는 눈”으로 “별을 노래”하듯 그려내고 있다. 스스로를 밝히는 별빛도 스스로를 노래하던 풀벌레 소리도 이미 하나의 생을 위한 홀로의 몸짓이 아니었다 -「마음의 등불」 중에서 세상의 굽은 길과 굽은 등을 오래 바라보는 시인의 눈 고찬규의 시들은 주변부로 밀려나 “깨지지 않기 위해 좀더 작아져야만”(「금지된 노래」) 하는 사람들의 삶을 노래한다. 홀로 “고춧가루를 버무리며 뚝, 뚝 눈물을 흘”리며 김장하는 김씨(「김장하는 김씨」), “엉덩이를 땜질한” 듯, “쇳덩이보다 무거운” 입을 다물고 묵묵히 일하는 불광동 대장장이(「불광동 대장장이」), 쓸쓸해 보이는 보퉁이를 든 야간열차에서 만난 할머니(「야간열차」), “도심 복판 거대한 바퀴 밑으로” 길 건너다 차에 치인 개(「示威」) 등 잊혀진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인생과 사물과 현상을 담담히 노래한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물인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만 끝없이 하염없이” 흘리는 그들이나 목소리 높은 의기양양한 사람이나 “돌아서면 이긴 것도 얻은 것도 없는 결국 바겐세일의 생”(「붉은 시장」)인 것을. 중심부에서 밀려난 별들이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 그만큼 빛을 더한 채 -「대조동 아라리」 중에서 시인은 “네모 반듯한 질서”가 있던 시절에서 떠나와 어느새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잊은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길 위에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본다. “길을 걷다가/길인 줄도 모르다가/걷고 있는 줄도 모르다가/헐떡이며 쉬다가/쉬다가 나는 저만치 있는/나를 보아버렸다/나는 어디에도 없었다”(「길 위의 거울」). 그의 삶은 근대적 도시의 삶에 맞추어 “단 몇 줄의 약력”으로 소개될 뿐, 하지만 “그간의 요약될 수 없는 삶은 나 아닌 누구의 것인가”(「자기소개서」). 그리하여 자신을 “적당히 포장”하지만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낙엽이 된다”(「거울을 보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속도를 마냥 쫓아가지는 않을 셈이다. “치열했던 만큼 적어도 느낌이 아름답기 위하여 이 시대에 걸맞는 감각으로 보다 감각적이지 않기 위하여 눈을 감고 초록을” 보려 한다(「감각적이지 않기」). 또한 그는 자신의, 그리고 저마다의 가슴에 있었던 선명한 불꽃을, 세상의 잣대로 재어지지 않는 그것들을 보려 한다. 하여 세월이 지남에 따라 구부러진 길도 길임을, 아니 “길은 구부러질 줄 알아 길”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제 그는 꽃보다 꽃을 피우는 세상을 탐구하기 위해 “시궁창”으로 들어간다. 꽃을 노래하기보다는 하루라도 꽃 피우는 시궁창에 머리를 처박는 것 비로소 세상의 시궁창에 온몸을 담그는 것 -「코스모스 뿌리께에 꽃 피던 날」 삶을 생명이라는 가장 높은 단계에서 응시하는 시쓰기 고찬규의 시는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나 아름답게 핀 꽃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오히려 별을 드러내는 그 밤하늘에 몸을 푹 빠뜨리고, 꽃을 피워내는 “세상의 시궁창”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사람의 탄식이요 신음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래된 젓갈처럼 곰삭아 있다. 그리고 그 곰삭음 속에는 우리들의 꿈이 있고, 눈물이 있다. 신경림(시인) 밀레의 [만종]이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처럼, 고찬규의 시에는 정직한 손과 굽은 등을 지닌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어디선가 희미한 종소리나 수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저마다 화려하게 절망을 수식하는 시대에 “감각적이지 않기 위하여 눈을 감고 초록을 보는” 그는 간결하고 담백한 터치로 지나간 시대의 음화를 그려낸다. 이 따뜻한 소묘에서는 어떤 종교성마저 느껴지는데, 그것은 아마도 시선에 깃들어 있는 인간에 대한 성찰과 연민 때문일 것이다. “길은 구부러질 줄 알아 길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첫 시집은 세상의 구부러진 길들과 굽은 등을 오래 바라보는 시인의 믿음직스러운 등을 보여준다. 나희덕(시인) 삶을 생명이라는 가장 높은 단계에서 응시하고 인식하는 시쓰기란 상당한 달관과 훈련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든 작업인데, 고찬규는 이미 거기에 도달한 느낌이다. 작은 사물들이나 자연현상, 혹은 사람들의 살림살이 속에서 생명을 포착해내는 시인의 눈과 마음은 과연 타고난 재주를 실감케 한다. 김주연(문학평론가)
기본정보
ISBN | 9788982818967 |
---|---|
발행(출시)일자 | 2004년 11월 10일 |
쪽수 | 118쪽 |
크기 |
128 * 188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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