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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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너의 꿈을 춤추련다 ...7
순회 법정 ...49
스타바트 마터 ...91
사제와 나그네 ...139
꽁치는 빨간 눈으로 죽는다 ...177
평실이 익을 무렵 ...225
말하는 벽 ...271
패관 임 아무개 ...307
출판사 서평
『청동거울을 보여주마』에 이은 이번의 두번째 소설집에서도 민경현 특유의 장인적 세공의 문체와 집요한 예술혼의 탐구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문학평론가 양진오씨는 민경현의 글쓰기를 예술가의 그것에 비견하고 있다. "민경현의 열의는 시시때때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예술가의 순정적 열의를 연상시킨다. 오랜 기간의 연마와 훈련, 세상에 선보일 작품을 갈고 다듬는 조탁의 태도, 마땅치 않은 작품을 과감하게 깨버리거나 불살라버리는 예술가의 순정적 열의를 민경현은 독자에게 연상시키고 있다."
언어 미학주의자로 불릴 만한 우리말 구사력, 인간의 혼이 엮어내는 인생의 비밀스러운 분위기, 불교의 종교적 상징체계로부터 형성된 탁월한 예술관, 그 내면에 깔린 삶의 진리. 현미와 망원을 접붙이려는 장인정신을 소유한 작가(임규찬), 전통의 미학적 복원(백지연)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이러한 민경현의 문학세계에 기인한 것일 터이다. 자신을 "서서히 엄습해오는 희망 속의 절망이 크고 깊어 보여도 자기 문학세계의 성채를 쌓아올리려는 열의를 보여주"고, 그것이 "신기루 같은 허망한 결론으로 마감된다 하더라도 운명을 걸고 자기의 소우주를 설계하고 건축하는 모험과 정진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작가'의 모습이라면(양진오)라면 민경현은 이미 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과 현실의 경계에서 찾아 나서는 삶의 진리
『붉은 소묘』를 이루는 여덟 편의 중단편들은 모든 문장과 단락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으로 엮어진 어떤 심상치 않은 기운, 가시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인간의 혼을 그 내면에 담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인생살이의 파국과 파멸의 분위기를, 때로는 도취와 열정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너의 꿈을 춤추련다」 「사제와 나그네」는 예술가 소설의 전형으로, 작가의 이전 소설집에 수록된 「내영」 「꽃으로 짖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너의 꿈을 춤추련다」에서 석이는 어린 나이에 당대 최고의 금어로 평가받는 노사에게 맡겨져 오랜 시간 동안 가칠장이로 화공일을 배운다. 가칠장이가 아닌, 불화를 그리는 금어로 인정받고 활동하기를 원하는 석이는 "모든 인력으로부터 벗어나 너울너울 환희용약으로 빨려들고 있는 비구니의 승무"를 그려 한국화 부문 우수작으로 선정된다. 그러나 노사는 석이를 인정하기는커녕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격노한 석이는 자신의 작품을 노사의 면전에서 불태워 없애버리고는 노사의 곁을 떠난다. 승무도의 모델이었던 희명마저도 파킨슨증후군으로 석이의 곁을 떠난다. 희명의 뼈를 강물에 뿌려주며 석이는 노사가 말한 예술의 최고 경지를 떠올린다. 「사제와 나그네」는 종교적 경지로 끌어올려진 예술혼의 탐구다. 예술이란 마침내 구도적 투신이어야 함을 두 세대에 걸친 인물들의 방황을 통해 보여준다.
「스타바트 마터(Stabat Mater)」는 '성모 애상'의 이미지에 기대 인연의 깊은 숙명을 그린다. 두 차례의 호란 끝에 아내와 딸을 청국에 인질로 보내게 된 무인(武人) 별하, 도적으로 몰려 참사당하지만 자신이 그린 극락구품변상도 안으로 입적해버린 신기의 노화승, 성병에 걸린 어미의 배에서 나와 날 때부터 머리카락이 없는 소년중(별하 아내의 아들), 노화승의 폐사지에서 접신의 춤을 추며 무녀로 입문하는 별하의 딸 은례의 이야기는 순환하는 인연이 만들어주는 번뇌와 이 번뇌로부터 초월하려는 해탈, 그리고 신성한 예술의 탄생과 소멸을 조명한다.
「꽁치는 빨간 눈으로 죽는다」는 한 척의 원양어선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배에 김인영이라는 선원이 어렵사리 동승하게 되고 얼마 안 있어 일등갑판원인 강형달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배는 태풍에 휘말려 침몰 직전의 위기에 다다르고 김인영마저 실종된다. 갑판장의 회상을 통해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충격적이다. 느닷없이 불어닥친 바람이 서른다섯 명의 선원들 대부분을 집어삼키고 선장, 갑판장, 강형달, 김인영, 김인영의 동생 김인태 그리고 두 명의 선원이 구명정에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두 명의 선원이 죽어 바다에 버려지고 곧이어 김인태도 죽음에 이른다. 남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김인태의 인육을 먹는다. 결국 이 업보의 순환이 칠 년 만에 다시 나타난 김인영에 의해 또하나의 비극적 사건으로 재현된 것이다.
「말하는 벽」에는 어떤 이유로 언제 독방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기억할 수 없는 한 수인(囚人)과 그와 통방하는 희대의 탈옥범 최갑수 노인이 등장한다. '기억하는' 노인 최갑수는 인간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기는 기억의 감옥에 갇힌 사람이라고 말하는 반면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인 '나'는 노인에게 탈옥의 방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망설이던 최갑수 노인은 '나'에게 탈옥의 방법을 제공할 테니 과거를 망각하며 살아가라는 제안을 한다.
이 밖에 「패관(稗官) 林 아무개」는 소설의 본질 혹은 소설가의 존재 방식에 대한 고찰을 담은 소설로 작가의 예술/예술가에 대한 고뇌와 욕망이 표출된 작품이며, 「평실이 익을 무렵」은 이어지지 않는 한 여자와의 인연 때문에 평생 쓸쓸히 살아가는 한 노인, 그 노인의 고향 친구로 월남한 엄동술, 노인이 낚시터에서 만난 탈북 동포 등을 통해 인과 연의 갈림길에서 괴로워하는 존재들을 분단의 아픔과 연결지어 그리고 있다. 「순회 법정」은 법정 서기인 K가 새로운 근무지 림보(林堡)에서 겪는 일군의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Limbo'처럼 이곳은 정상과 비정상의 모호한 경계, "천국과 지옥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무죄하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 영혼의 거처"로서, K를 영원한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삶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저주받은 자리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한땀 한땀 자신의 소설세계를 빚어내는 민경현의 우보(牛步)는 그 자체 보기 드문 예술적 도정이면서 부박한 작단의 항체로 손색이 없다.
이 소설집에서 민경현은 거의 배타적일 정도로 철저히 남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언어세계를 구축하려는 집념을 보여준다. 꿈은, 그것이 악몽이건 선몽이건 간에, 우리 의식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고, 그래서 카프카가 우리 자신의 일부이듯이, 민경현 또한 특유의 주술적 언어로 그러한 세계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현기영(소설가)
민경현의 소설은 우리를 줄곧 꼭 저만치 떨어져 있는 세계로 이끌고 간다.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지대. 민경현의 소설은 그렇게 죽음에 직면한 존재들의 절박한 회오(悔悟)를 통하여 우리 삶의 단위를 지금의 생뿐만 아니라 지금의 생 이전과 이후의 시간대까지로 확장시켜놓고는 이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보다 높은 질서와 영원한 가치를 찾아나선다. 하여, 민경현의 소설은, 한편으로는 생성과 소멸, 중심과 주변, 합리성과 마성에 대한 대단히 제한된 근대적 규율이 순식간에 해체되는 두려운 자기 소멸을 경험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마주하는 경이를 맛보게 한다. 흔히들 죽음이 인간의 현재적 삶을 근원적으로 성찰케 하는 가장 선명한 거울이라고 말하지만, 민경현의 소설만큼 이러한 사실을 밀도 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표현한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류보선(문학평론가·군산대 교수)
저자 소개
지은이 민경현
1966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홍익대 독문과와 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97년 『현대문학』에 시 「혼돈 이전의 잠언」 외 5편을, 같은 해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오버 더 레인보우」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창작집 『청동거울을 보여주마』가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82814778 |
---|---|
발행(출시)일자 | 2002년 03월 20일 |
쪽수 | 374쪽 |
크기 |
153 * 224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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