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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경향신문 > 2012년 9월 2주 선정
작가정보
저자 김용언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동대학원 비교문학협동과정을 졸업했다. 영화 전문지 『키노』, 『필름2.0』, 『씨네21』과 장르문학 전문지 『판타스틱』에서 10년간 기자 겸 에디터로 일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셜록 홈즈의 추리소설을 빌려 읽었으며, 그다음 단계로는 동네 책방에서 선 채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한 권씩 읽어나갔던 전력이 있다. 이를 걱정한 부모님의 만류는 추리소설에 더욱 탐닉하게 되는 반작용을 낳았고 결국 『범죄소설, 그 기원과 매혹』을 쓰게 되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영화와 장르문학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노라 에프런의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2012)가 있다.
목차
- 프롤로그
1부 영국의 추리소설
01 19세기 영국의 모더니티
대도시 속 들끓는 부르주아
길티 플레저, 범죄에의 열광
보론 1 탐정이 된 범죄자, 비독
보론 2 너무 일찍 도착했던 에드거 앨런 포
책 읽는 사람들의 세대교체
직업 경찰과 ‘증거’의 출현
범죄와 과학의 상호작용
02 19세기의 탐정, 셜록 홈즈
수집가와 산책자
생각하는 기계이자 과학자
셜록 홈즈, 19세기의 신화
보론 3 1920~30년대 추리소설의 황금기
2부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
01 20세기 미국의 모더니티
이상한 변증법의 출발
프런티어에서 사막 위의 도시까지
미국식 자본주의의 극대화: 끝없는 전쟁의 역사
범죄와 거짓말, 기식자들
다임 노블의 ‘남자다운’ 계보도
보론 4 1930년대 펄프 잡지의 ‘영광의 길’
02 20세기의 하드보일드 탐정들
나, 20세기 미국 백인 남성 노동자
여성(적인 것)에 반대한다
비열한 거리를 걸어가는 남자
눈에는 눈, 악에는 악
도시의 악몽
3부 범죄의 엔트로피
열역학 법칙의 우여곡절
범죄소설과 엔트로피
에필로그
후주
부록 1 범죄소설의 연대기
부록 2 대실 해밋ㆍ레이먼드 챈들러의 주요 작품
발문 순례의 책-최원호
책 속으로
19세기 말에 이르러 영국 사회의 지배적 정신으로 등극한 부르주아 특유의 자신감과 개인주의는, 셜록 홈즈라는 사립탐정에 이르러 수집가 겸 산책자, 과학자이자 영매, 생각하는 기계 등의 구체적 형상으로 체현된다. 런던 한복판에 거주하지만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전체를 조망하고, 무능한 공권력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독자적인 지성과 이성, 개성의 힘으로 각종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이 탐정 아이콘은 19세기 영국 부르주아의 신화 그 자체가 되어갔다. -p. 26
도서 시장의 변화는 의사소통의 수단뿐 아니라 내용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태도와 감수성까지 변화시켰다. 영문학자 데이비드 M. 스튜어트는 19세기 영국의 다양한 범죄 이야기, 즉 도시 폭로담, 범죄 리포트, 도시 미스터리 등 저렴하고 신속하게 유통되었던 대중적 읽을거리들이 독자로 하여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 환경을 탐험할 수 있게 하는 해석적 기능을 수행했음을 지적한다. 독자들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각종 도시의 문젯거리들이 ‘상징적으로 치환’되는 과정, 즉 일상적이고 해결 가능하며 동시에 은밀한 충격과 기분전환거리를 담보하는 소재로 변모하는 과정에 열광했다. 이것은 그들의 도시 경험을 ‘에로틱하게’ 만들어주었다. -p. 45
실질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 의학과 과학 기술의 진보는 개인들의 인간적 특성과 정체성까지 전부 알아내고 분류하고 해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19세기 전반에 유포시켰다. 낭만주의 이래로 강조된 주관성의 측면이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이제는 타인의 육체와 정신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능력으로 극대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 특성과 가치관을 문학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구현하는 존재는 19세기의 대표적인 탐정 셜록 홈즈이다. 강렬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채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왜?’라고 외치는 주체의 탄생이다. -p. 61
노예제 폐지 이후 미국 자본주의는 “반봉건적인 잔재나 전자본주의적인 위계질서가 없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였기 때문에, 당시 지배적이었던 사회적 가치들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으며, 대중들이게 철저히 내면화되지도 못했다.” 공무원과 경찰, 정치인이 부르주아 사회를 지탱해주는 안정된 조직이라는 믿음이 받아들여졌던 영국의 강고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추리소설이라는 형태를 통해 대중들에게 즐거움의 합의를 이끌어냈던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부패와 폭력과 범죄가 그 중심부에서부터 만연해 있음이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에 대중들은 하나의 질서 체계 안에 쉽게 통합되지 못했다. -pp. 134~135
1923년 『블랙 마스크』 5월 15일자와 6월 1일자에 각각 실린 캐롤 존 달리의 터프한 단편 「세 개의 총을 가진 테리」와 「펼쳐진 손바닥 위의 기사들」이 심상치 않은 인기를 모았을 때, 편집장 조셉 T. 쇼는 새로운 범죄소설의 미래를 처음으로 직감했다. 그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독자들이 매일 맞닥뜨릴 만한 잔혹한 현실과 폭력의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소설, 통칭 ‘하드보일 소설’로 불리게 된 새로운 종류의 소설을 기대했다. -p. 176
하드보일드 탐정은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자기가 목격하고 조사하는 악을 혐오하고 제거해버리고 싶지만, 어느 순간 그 자신이 악의 한복판에 존재해 있음을, 원치 않았지만 거기 물들어버렸음을 깨닫게 되는 비극적 존재이다. -p. 216
하드보일드 소설은 무제한적인 폭력과 ‘적들의 전략’을 구사하면서까지 범죄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어떤 추리소설보다 진중하고 박진감 있게 묘사하지만, 결론은 그 노력이 무용할 수도 있다는 의혹과 패배감으로 이끌린다. 존 톰슨은 이같은 하드보일드 소설이 “대공황과 도시 자본주의의 투쟁으로 정의되는 20세기 모더니티의 어떤 순간에 대한 문학적 대답”이라고 설명한다. -p. 217
출판사 서평
우리는 왜 인간의 등뒤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이야기에 열광하는가
19세기 영국의 추리소설에서 20세기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까지
범죄소설의 기원을 추적하는 매혹적인 여정
범죄소설이라는 매혹적인 장르는 어떻게 태어나고 발전되었을까. 19세기 영국에서 탄생한 셜록 홈즈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우리는 왜 하드보일드 소설의 암울한 세계 속으로 기꺼이 빠져드는가. 범죄소설 팬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질문들. 저자는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19세기 영국에서 20세기 미국으로 긴 여정을 이어간다. 추리소설과 하드보일드 소설을 포괄한 ‘범죄소설’의 기원을 추적하고 있는 이 책은 영미권과 일본의 경우와 달리 범죄소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내 저자가 쓴 범죄소설에 관한 첫 이론서이다. 범죄소설의 오랜 독자인 저자는 19세기와 20세기 대도시와 모더니티의 상관관계를 시작으로 한 세기에 걸친 범죄소설의 역사를 탐색해간다.
1부에서는 ‘셜록 홈즈’라는 세기의 탐정을 탄생시킨 19세기 영국에서 추리소설이 발생하고 거대한 신화를 이루기까지의 경로를 따라간다. 홈즈 시리즈로 대표되는 영국 추리소설은 산업혁명 이후 형성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과학 기술의 발달 등과 맞물리면서 당시 독자들의 엄청난 열광을 불러왔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추리소설의 신화는 1차 세계대전을 분기점으로 하강의 길로 접어들며 새롭게 등장한 하드보일드 소설에 그 자리를 내어준다. 2부에서는 이 하드보일드 소설을 잉태한 20세기 미국으로 이동한다. 영국이 1차 세계대전에 따른 정신적ㆍ물적 피해 복구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미국은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게 되고 이후 세계는 미국에 의해 재편된다. 20세기 초 미국 사회는 영국과는 현격하게 다르게 급속도로 이루어진 도시화와 독점자본주의에서 생겨난 폐해들로 가득했고, 이러한 토대 위에서 생겨난 하드보일드 소설은 영국의 추리소설과는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3부에 이르면 저자는 범죄소설의 전반적인 구조에 ‘엔트로피 법칙’을 적용해 이 장르가 현대 사회와 가장 밀접한 텍스트임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범죄소설에 대한 매혹의 정체를 밝혀보고자 시작된 이 책은 결국 범죄소설을 읽는 독자 자신에게로 돌아와 완성된다. 저자가 추적한 범죄소설의 시작점에 서 있는 건 범죄소설에 열광했던 당대의 독자들, 탐정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했던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대도시의 삶에 만연한 범죄는 그 삶의 주체들이 서로의 욕망을 충돌시킨 결과 생겨났다. 이러한 범죄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의 문학 장르로 수렴된 것이 바로 범죄소설이고 이는 당대의 요구, 그 구성원들의 욕망을 가장 선명하게 반영함으로써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세기 추리소설의 신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저자는 먼저 도서 시장의 변화와 사법 및 형법 제도의 변화, 과학 기술의 발전 등 19세기 영국 추리소설의 ‘신화’를 가능하게 한 배경들에 대해 살핀다. 영국의 도서 시장은 1770년에서 1820년 사이에 비약적으로 증가했는데, 책의 장르가 세분화되면서 자연히 독자들의 선택의 기회 또한 다양해졌다. 이 시기에 유행했던 ‘페니 드레드풀스’라고 불리던 값싼 주간지들과 ‘기찻길 소설’은 주로 로맨스와 범죄 등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연재물을 실어 인기를 끌었다. 도서 시장의 변화는 독자들에게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범죄 이야기를 읽을거리로 제공했고, 범죄 스캔들은 당시 출간되는 정기간행물과 문고본의 가장 인기 있는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출판물들은 단순한 범죄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해결 방식까지 포함하고 있었는데, 독자들은 이를 통해 객관화된 스릴을 맛보는 데 익숙해졌고 점차 그 고양된 감정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한편 18세기를 지나면서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사법 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증거에 의한 재판이 요구됨에 따라 이제는 명백한 논거와 증거를 통해 범행을 밝혀야 했다. 이렇게 변화된 사법 제도 안에서는 무엇보다 ‘과학적 검증’의 역할이 증대되었다. 이 시기에는 골상학과 더불어 범죄인류학자 체사레 롬브로소의 인체측정학이 널리 받아들여졌는데, 그는 범죄자의 육체적 특징을 분류하고 기호화함으로써 ‘타고난 범죄자’를 미리 발견하고자 했다. 롬브로소의 이론은 범죄가 사회적 조건과의 관계망 안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맹점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가 원하던 범죄 예방을 위한 ‘과학적 믿음’에는 분명히 기여한 바가 있다. 이외에도 거짓말 탐지기와 현미경의 도입, 사진의 발명과 지문의 발견이 범죄 수사에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맞물리며 조성된 당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영국의 추리소설은 거대한 신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신화의 중심에는 19세기의 탐정 셜록 홈즈가 있었다.
“남들은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놓쳐버린 단서에 사건 내 인과관계에 맞춰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구조를 완성해가는 수집가, 거리에서 관찰한 사람들의 이전 역사를 파악할 수 있고 특정 캐릭터에 완전히 이입할 수 있는 산책자, 그리고 이 모든 행위에 통달한 전문가. 19세기의 탐정 셜록 홈즈는 벤야민이 관찰했던 19세기 부르주아의 주요 타입에 정확하게 부합하며 거기서부터 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퍼즐을 완성했다.” -p. 85
‘수집가이자 산책자, 생각하는 기계이자, 과학자’인 셜록 홈즈는 19세기 영국의 분위기를 가장 잘 체현하고 있는 탐정이었다. 그는 런던 한복판에 거주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도시 전체를 조망하고, 무능한 공권력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독자적인 지성과 이성, 개성의 힘으로 각종 수수께끼를 해결한다. 저자는 19세기 부르주아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으로 산책자와 수집가를 꼽았던 발터 벤야민의 논으로부터 출발해 셜록 홈즈의 특징적 면모를 살펴나간다.
스스로를 범죄 수사계의 “대법원이자 최종심”이라고 자부하는 셜록 홈즈는 ‘모든 종류의 감정’이 배제된 ‘기계’처럼 이성과 논리, 과학적 지식만을 총동원해 사건을 말끔히 해결한다. 이 전지전능한 탐정 아이콘은 산업화, 대도시의 탄생,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형성, 과학의 발달 등 19세기 영국의 복잡한 일련의 상황들이 하나로 축약된 결과물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등장
“188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절정기를 누렸던 영국의 고전적 추리소설은 대부분 계급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시선에 갇혀 우아한 매너리즘을 고수했고, 1920년대 이후부터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갔다. 범죄가 대량화되고 잔혹해지며 복잡해질수록 그것을 담아낼 전혀 새로운 스타일과 서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다가왔다.” -p. 131
영국의 추리소설에서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로 범죄소설의 기류가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잠재되어 있던 변화의 기폭제 역할을 한 건 ‘전 지구적 규모의 세계 전쟁’이었던 1차 세계대전이었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추악한 폐해를 입증한 이 전쟁은 19세기 영국의 진화와 진보에 대한 자신감을 깨트렸다. 기존의 가치관들이 붕괴되면서 영국은 정신적 충격과 혼돈에 휩싸였으며 전쟁의 피해를 재건하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전쟁에 부분적으로만 참여했던 미국이 20세기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제 19세기의 가치들은 도래한 20세기의 새로운 가치들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이러한 변화는 범죄소설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었고, 20세기라는 격동기 속에서 범죄소설은 꽉 짜인 퍼즐의 체계로부터 탈출해야 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범죄를 단일한 문제로 환원시킬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하드보일드 소설이 등장했다.
대실 해밋과 레이먼드 챈들러가 주축을 이룬 하드보일드 소설은 20세기 미국의 각종 불안한 사회적 체험을 반영했다. 전국적 규모의 노사분규, 막강한 갱스터 조직의 출현, 부의 축적을 위해 벌어지는 범죄 등이 하드보일드 소설의 단골 소재였다.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영국 추리소설의 작위성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고, 새로운 형태의 리얼리즘을 주창하면서 하드보일드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하드보일드 소설이 대중들 속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추리소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행되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문맹자의 감소, 대도시의 등장, 신문과 잡지 혁명 및 전국적 배급망의 확충, 도시 노동자 계층의 출현 등이다. 모험가, 보안관, 탐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스토리 페이퍼’에서 ‘다임 노블’로 다시 ‘펄프 잡지’로 이동하며 재생산되는 동안 기존의 독자층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중적 인기를 견양한 건 펄프 잡지 『블랙 마스크』였다(대실 해밋과 레이먼드 챈들러 모두 이 잡지를 통해 데뷔했다). 웨스턴, 추리소설, 모험물을 함께 싣던 『블랙 마스크』는 1927년부터 서서히 하드보일드만을 다루기 시작했고, 이후 남성 독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하드보일드 소설은 그 존재를 확고히 하게 된다.
1930년대 하드보일드 소설의 엄청난 인기는 작가와 독자, 그리고 소설 속 탐정 간의 유대감에서 기인했다. 하드보일드의 주요 독자는 육체노동자들이었고, 소설을 써내는 작가들 또한 단어당 5센트씩 받고 하루 평균 300~5000단어를 써내는 고된 글쓰기 ‘노동자’였으며, 범죄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하드보일드 탐정들 역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독자들은 폭력과 부당한 대우에 굴하지 않는 하드보일드 탐정에 감정 이입하며 자신들과 동일시하려 했고, 작가들 또한 독자들에게 서로 같은 입장에 처해 있다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독자들이 열렬한 반응과 우정을 표현하는 것을 즐겼다.
하드보일드 소설은 당시 중산층 이하 남성들의 처지와 감정을 대변해주었다. 이 남성 독자들은 여성에 대한 압박감,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 잃어버린 꿈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었다.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은 온전한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하드보일드 탐정에게서 자신들의 이상형을 보았다. 콘티넨털 옵, 샘 스페이드, 필립 말로. 이들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19세기 영국의 셜록 홈즈와는 다른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더욱 거대해지고 보다 고립된 도시에서 이제 사회적 현상이 되어버린 범죄에 맞서야 했다. 하드보일드 탐정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대신 차갑게 들끓는 악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그 일부가 되었다.
범죄소설과 엔트로피
이 책의 3부에서 저자는 ‘엔트로피 법칙’을 끌어와 범죄소설이 현대적 삶과 많은 부분에서 접점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엔트로피 법칙과 범죄소설의 변천사가 갖는 유사성에 주목한 저자는 ‘닫힌 계’와 ‘열린 계’를 각각 추리소설과 하드보일드 소설에 적용한다. 외부 자극이나 변화의 계기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원인과 결과를 세심하게 고려해 창안된 ‘닫힌 계’는 19세기 추리소설의 원형이 된다. ‘단일한 수수께끼 풀이’인 추리소설은 살인범이 폭로되는 순간, 그 자체의 생명력을 잃고 일종의 ‘열 죽음’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엔트로피 법칙은 어떻게 작용할까. 물리학자 일리야 프리고진에 따르면 평형과는 거리가 먼 ‘열린 계’로서의 현실에서 작은 외부 조건의 변화나 자극의 결과로 새롭게 흡수한 에너지를 통해 엔트로피를 무산시키면 새롭게 안정된 구조가 출현할 수 있다. 이는 하드보일드 탐정들이 현대 사회의 무질서 속에서 평형의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면서 이 세계가 ‘열 죽음’의 종말에 이르지 않도록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는 모습과 닮아 있다. 그렇게 범죄소설은 세상의 혼돈 속에서 패배하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기를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책의 말미에 1794년부터 1999년까지 서구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범죄소설의 연대기’와 ‘대실 해밋ㆍ레이먼드 챈들러의 주요 작품 소개’를 부록으로 실었다.
기본정보
ISBN | 9788982181757 |
---|---|
발행(출시)일자 | 2012년 08월 31일 |
쪽수 | 324쪽 |
크기 |
140 * 205
* 30
mm
/ 398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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