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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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김원우는 소설가. 등단 이래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읽는 한결같은 걸음을 걸어왔다. 그의 소설 문장은 이제 그 자체로 한국어의 개별 장르이자 계보가 되면서 우리 삶의 세부를 켜고 전망의 허실을 가늠하는 각별한 상징의 자리에 이르고 있다. 소설집 『무기질 청년』 『장애물 경주』 『세 자매 이야기』 『아득한 나날』 『벌거벗은 마음』 『안팎에서 길들이기』 『객수산록』 등과, 장편소설 『짐승의 시간』 『가슴 없는 세상』 『일인극 가족』 『모노가미의 새 얼굴』(전2권)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등이 있다. 한국창작문학상,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 돌풍전후
중편 나그네 세상
중편 재중동포 석물장사
작품해설ㆍ김경수
가짜들의 사회, 그리고 해프닝의 진실
작가의 말
책 속으로
“‘빚쟁이’(대학총장--인용자)가 언제 연구실을 빼달라고 할지 모르는 터이라 하루가 여삼추인데도 내 본마음의 한쪽은 유들유들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배포가 유해지고 있었다. (……) 정권을 탈취하려는 작자들은 시방 제정신이 아니어서 대학 쪽의 비상사태쯤이야 개학 후 닥치는 대로 적당한 선에서 땜질해버리기로 미뤄놓고 있다고 점쳐지기 때문이었다. (……) 게다가 이때껏 홑바지로 끼니도 더러 거르고 살던 허수아비가 뻘때추니 같은 참한 여자를 여벌 집처럼 거느리게 돼서 그런지도 모른다. 가외의 그런 여자가 생김으로써 공연히 들떠 돌아가는 사내의 심정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텐데, 그런 우쭐거림도 한창 나이가 저지르는 짓거리임은 곧장 알아지는 돈오라 할 수 있다. // 내일 당장 연구실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매일 저녁마다 다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기는 좀체로 어려웠다.”(188~189쪽)
기혼자인 임교수로서는 이러한 성적 일탈이 문제될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닐 터이고, 임교수 스스로도 이 문제가 백일하에 드러날 경우 모종의 책임을 질 각오를 피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실로 사태의 핵심을 들여다본다면 어떠할까.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엄연한 사생활의 핵심으로 누구로부터도, (……) 심지어는 부모형제나 아내로부터의 간섭, 제재, 처벌 일체까지와 맞붙어 싸우며 물리칠 권리가 내게는 있었다. 심선생을 좋아한다든지 사랑한다든지를 떠나서, 나로서는 미처 그것까지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제3자들이 알 것도 없을뿐더러 물어볼 이유나 권리도 없을 텐데, 내 사생활은 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자위권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어떤 횡액이 망신살을 불러올지. 세상이 한참 어수룩해 보여도 실은 얼마나 비정하고, 지 딴에는 오죽 조빼고 엄숙하니 거드름을 피우는가. 광주를 보라, 맨주먹밖에 없는 서민 대중을, 기껏 고함이나 목청껏 질러대는 학생을 저처럼 무참하게 난도질해놓고도 얼마나 뻔뻔스럽게 지랄을 떨어쌓는가. 나도 무슨 대비책을 가져야 했다.”(185~186쪽)
출판사 서평
가짜들의 사회, 그리고 해프닝의 진실
동인문학상 . 대산문학상 수상작가, 김원우의 3년 만의 신작 장편!
“문장 하나하나를 중얼중얼 읽는 것만으로도 눈과 입이 호사를 누린다”―김연수(소설가)
작가 김원우의 소설 문장은 흔히 만연체로 이야기되곤 하지만, 그 풍성한 어휘와 맛깔 나는 말의 리듬감은 세상살이의 입체를 한껏 부각하면서 소설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인간 진실의 조망을 실답게 성취한다. 후배 소설가 김연수는 이를 두고 “문장 하나하나를 중얼중얼 읽는 것만으로도 눈과 입이 호사를 누린다”고 하기도 했거니와, 씹으면 씹을수록 진미가 우러나오는 특유의 문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김원우 문학의 인장으로 손색이 없다. 김원우 소설은 그 맛있고 핍진한 문체를 정교한 플롯 속에 배열하고 쌓아가면서 은연중 이야기의 윤곽과 형태를 도드라지게 하는데, 흔한 속도감으로 상쇄할 수 없는 이야기의 무게와 진진함은 참으로 각별하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흐름에 진입하기까지 상대적으로 독자의 수고를 더 많이 요구하는 김원우 소설의 특징 때문인지 이야기꾼으로서 작가 김원우의 면모는 혹간 가려지기도 했던 것 같다. 아마 여기에는 신랄한 독설이나 자기희화를 수반하는 김원우 소설 특유의 세태 비판이 강렬한 인상을 남겨온 저간의 사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탁월하고 능란한 이야기꾼의 면모야말로 김원우 소설의 우뚝한 미덕임은 거듭 환기할 만하다. 물론 관습적인 이야기의 틀을 요모조모 반성하면서 그때그때 창의적인 내러티브의 길을 찾아내지 않았다면 그 능란함은 지금 김원우 소설이 갖고 있는 세련된 성찰의 형식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시절에 대한 회고담을 액자소설 형식으로 품고 있는 신작 장편 『돌풍전후』(2008년 장편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이후 3년 만이다)는 김원우 소설의 개성적 면모가 여러 차원에서 뚜렷하면서도 근자 보기 드문 풍성한 소설적 재미를 선사한다. 지방 사립대학에 근무하는 소설화자 한교수의 인터넷 메일 주소로 날아든 퇴직한 선배 교수 임모의 자전적 회고담(이 회고담의 제목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돌풍전후’이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의 일차적 즐거움은 그 ‘돌풍’의 시절 지방 사립대 강단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임교수의 “여난(女難)과 국난(國難)과 교난(校難)”(125쪽)의 ‘진솔한’ 자기 회고를 청취하는 데서 비롯된다. 지식인의 자기모멸을 곱씹으면서도 가능한 자기 눈으로 세상을 톺아보기를 마다 않는 깐깐한 임교수는 기실 작가 김원우의 페르소나라고 할 만한 인물로, 이번 소설에서는 액자 밖 한교수를 그 반성적 분신으로 거느리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런 만큼 과장과 자기미화를 경계하면서 자전적 회고의 어떤 전범에 값하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바(물론 이는 그렇게 가정된 소설 속의 또 다른 허구로서 우리가 체감하는 것일 수밖에 없겠지만), 신군부의 야만적 집권과 광주 참극으로 그 허망한 결말을 내보이게 될 ‘서울의 봄’(이 명명의 부정확함과 무책임함은 임교수 회고담의 화두이기도 하다--“도대체 이 허망한 말을 최초로 구사한 인간이 누구란 말인가?”(49~50쪽 참고) 시절 지방 대학 캠퍼스에서 바라본 세정(世情)의 진실이 우왕좌왕하는 그 자신의 이야기 속에 곡진하게 펼쳐진다.
눈치놀음의 부화뇌동에 살풍경과 몰풍경이 수시로 교차하던 그 시절, 임교수에게 미혼의 동료 여교수와의 짧은 춘사(春思)의 시간이 끼어든 대목은 회고담 ‘돌풍전후’(혹은 소설 『돌풍전후』)의 백미라 할 만하다.
‘사생활’이라는 ‘최소한의 자위권’에 대한 임교수의 문제제기는 어떤 거창한 담론이나 명분 이전에 부실하기 짝이 없는 근대적 환경 일체의 뿌리를 건드린다. 개인의 자기 결정과 자기 보존의 권리가 언제라도 위협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그밖의 다른 이야기는 공론(空論)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원우 소설 득의의 비판의식과 균형감각을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임교수의 회고담에서 춘사(春思)의 자리는 겹의 울림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해 봄 무슨 일이든 터졌으면 하는 수상한 기대감을 갖고 대학 도서관 정기간행물 열람실을 규칙적으로 오가며 보도관제 하의 신문 읽기에 탐닉하던 임교수의 행태가 그 자신 비판하던 신군부와 언론, 일반 대중의 눈치놀음과 너무나 닮아 있었듯, 야금야금 심선생에 대한 성적 기대감을 부풀려가던 임교수의 춘사 역시 그러했다는 통렬한 자기희화의 맥락을 스스로 까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원우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 이러한 자기희화의 이면에는, 그럼에도, 그렇게라도 살아가야 했던(혹은 살아남아야 했던) 그 시간들에 대한 착잡한 긍정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보면, 지방 도시 한복판의 마당 넓은 참한 이층집에서 시작된 해프닝 같은 심선생과의 춘사의 시간야말로--소설 속에서 이 춘사의 묘사는 너무나 흥감지고 감칠맛 난다. 그러면서도 어떤 절제의 격조로 환하다--그 ‘짐승의 시간’에 대한 유일한 대안처럼 보일 정도다. 대학사회의 비속을 질타할 때 쓰던 임교수의 절묘한 말버릇 “천우신조”(25쪽, 214쪽)가 그의 젊은 날 차마 일 년을 못 넘긴 짧은 연애의 여주인공 심선생의 말버릇(199쪽)에서 전이되었음을 확인하는 대목은 그러므로 망각될 수 없는 개인적 진실의 도도한 승리를 은밀히 웅변한다.
김원우의 신작 장편 『돌풍전후』는 이밖에도 많은 맥락을 내장한 소설이다. 작품해설에서 문학평론가 김경수가 지적했듯, 임교수의 회고담은 (그 스스로 경계해 마지않는) 상투성의 경계에서 씌어지면서 우리 시대 소설 쓰기에 대한 자의식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사실 그 만만찮은 질문은 『돌풍전후』라는 소설의 형식에 대한 또 다른 사색으로 우리를 이끈다. 임교수의 집안 내력 이야기에서 쏟아지는 경북 방언의 향연도 놓치기 아깝다. 함께 수록된 두 중편 「나그네 세상」과 「재중동포 석물장사」에도 맛깔스럽게 복원된 그 사투리 입말들은 작가가 ‘작가의 말’에 밝혔듯 “작정하고 덤빈 작업”의 결과이기도 하다.
추천의 글
통신사 근무 경력을 거쳐 뒤늦게 지방 대학의 교수가 된 그가 풀어내는 1980년대 초의 삶의 풍경은, 그가 상정하고 있는 문제의식, 곧 개인적 여난(女難)과 국난(國難)과 교난(校難)의 구조적인 상동성(相同性)이라는, 우리 사회만의 특유한 현상에 대한 조심스러운 진단이라는 점만으로도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족하다. 우연한 기회에 동료 여교수와 정분이 났던 임교수 자신의 개인사와, 뻔한 권력놀음을 두고 이런저런 제도적ㆍ수사적 절차를 착실히 밟아갔던 당시 신군부의 통치 행태, 그리고 그런 개인사와 공적 역사(비록 왜곡된 것이긴 하지만)가 교차하는 어느 지점에 위치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여러 그릇된 관계를 더러는 축약하거나 확대 재생산하면서 유기체로서의 제 존재를 주장했던 우리네 사학(私學)의 일정한 야합 내지는 기능적 동질성에 대한 임교수의 진단은, 이 땅에서 삶을 영위했던 민초들의 근본적인 운명 혹은 덜떨어진 근대적 환경의 원죄와 같은 것에 대한 독특한 전망으로서 값지며, 오직 소설만이 감당할 수 있는 설명력이라 할 수 있다.
--김경수(문학평론가·서강대 교수)
언제부턴지, 아마도 내게도 어른의 삶이 시작됐다는 걸 안 뒤부터일 텐데, 세상 돌아가는 이치의 근본적인 동기는 드러내놓고 말하기 민망해졌다. 가장 큰 이유는 나와 타인 사이의 심연을 인정하면서 어른의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리라. 말할 수 없으니 소설이 이 심연의 진실 앞에서 입을 다무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소설에서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데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는 법. 소설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이렇게 떠들어대는 것도 두말할 나위없이 그만큼 민망한 일이니 직접 읽어보시길 권할 수밖에. 그러니까 먼저 정밀한 문장과 고집센 관찰과 빛나는 어휘로 『돌풍전후』를 읽어보시길. 어쩌면 한 시대의 거대한 심리가 드러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김연수(소설가)
기본정보
ISBN | 9788982181597 |
---|---|
발행(출시)일자 | 2011년 02월 11일 |
쪽수 | 435쪽 |
크기 |
128 * 188
* 30
mm
/ 532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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