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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사라 드라이(Sarah Dry)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으며, 그것도 1903년과 1911년 두 번을 수상했던 마리 퀴리.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흔히 알려진 대로 고독한 천재가 아닌, 좀더 활력이 넘치고 정치적 활동도 마다하지 않았던 마리 퀴리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편집장으로 활동했던 저자는 생명공학 회사에서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근무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창조적 논픽션 부문에서 로나 제퍼 상을 수상했으며 런던센터에서 테크놀러지·의학·과학 등의 역사에 관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자비네 자이페르트(Sabine Seifert)
마리 퀴리의 딸로 어머니의 연구 동료였고 193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이렌 졸리오-퀴리의 이야기를 쓴 저자는 함부르크의 신문 『타게스차이퉁(Tageszeitung)』의 편집장이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문화 저널리스트다.
최세민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 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SBS 번역 대상 최종 심사기관으로 위촉된 (주)엔터스코리아의 전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옥스포드 영화 연구』, 『SF 걸작선』, 『더 이상 말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유쾌한 스트레스』, 『인생은 짧으니 파티복을 입어라』, 『긍정적인 말의 힘』, 『잡담의 기술』, 『다빈치 풀어보기』 등이 있다.
번역 최세민
목차
-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몰두한, 성공한 과학자의 삶
고난을 뚫고 첫발을 내딛다 1867~1891
파리에 둥지를 틀다 1891~1897
결혼생활과 연구, 두 마리 토끼를 잡다 1897~1902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다 1902~1906
마리 퀴리, 홀로 서다 1906~1911
‘폴란드 여자’로 전락하다 1911~1914
전쟁의 선봉에 서다 1914~1918
과학의 획을 긋고 사라지다 1919~1934
성공의 비결 한 가지는, 어떤 직업에서든지 자신의 재능을 즐기는 것이다
이렌 졸리오-퀴리 1897~1956
책 속으로
마냐는 당시의 제도에서 볼 때 특출한 존재였다. 폴란드 소녀들은 15세가 되면 더 이상 상급 학교에 가지 않았고, 대개 결혼을 했다. 마냐는 아직 어렸지만,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에게서 당장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도 부당한 제도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여자라는 것, 또 폴란드인이라는 제약이 있었지만, 마냐는 평범한 삶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자신의 삶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지만, 일찍 결혼하거나 15세에 공식 교육을 끝내는 것은 그녀의 목표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다만 아직은 구체적인 야망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성장과 공부 때문에 쌓인 피로에서' 회복하는 시간을 일 년간 갖기로 했다. 그동안 그녀는 시골에 사는 친척집을 여러 곳 방문했으며, 젊은 여성으로서 관심을 가질 만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나중에 그녀의 삶에서 기본이 되어버린, 일할 때는 격렬하게 일하고 충분히 휴식을 갖는 습관이 이때에도 나타났다.
p18~19
마리는 파리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면 폴란드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조국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나이든 아버지를 돌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1894년 봄, 그녀는 물리학자이자 같은 폴란드인인 요제프 조발스키의 집에서 '적갈색 머리칼에 눈이 맑고 키가 큰 젊은 남자'인 피에르 퀴리를 만나게 된다. 처음 만난 지 30년이 흐른 후에도, 마리는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내가 그 방에 들어섰을 때, 피에르 퀴리는 발코니 쪽으로 열린 프랑스식 창의 으슥한 쪽에 서 있었다. 그때 그는 서른다섯 살이었지만, 내 눈에는 아주 젊어 보였다. 나는 그의 얼굴에 어린 너그러운 표정과 은근히 드러나는 초연한 태도에 마음이 끌렸다. 그의 느릿하고 사려 깊은 말투, 소박함, 진지하면서도 청년다운 미소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마리는 피에르의 초연함이 '자신의 생각에 깊이 빠져든 꿈꾸는 자'의 초연함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p36~37
마리와 피에르 퀴리는 첫 발견을 공표한 순간부터 유명인사가 되었다. 신문기자들은 그럴듯한 그림이 되는 헛간 실험실, 부부의 차분한 사랑, 진지한 과학자들이 서로의 이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즐겨 다루었다. 마리는 흔히 일종의 성녀로 묘사되었다. 빛나는 머리칼이 마치 후광처럼 보이는 그녀가 조금 작은 듯한 시험관에 든 귀중한 물질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은 그런 이미지 가운데서도 가장 뚜렷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리는 그 수많은 사진이나 그림에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프랑스 밖의 과학자들은 퀴리 부부의 잇단 성공에 주목하고 빛을 내는 라듐의 비밀을 벗겨내기 위해 연구에 몰두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열성적인 사람은 물리학자 어네스트 러더퍼드로, 당시 영국 캠브리지에 살면서 유명한 캐번디시 연구소의 J. J. 톰슨 밑에서 연구 중이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와 경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지금 연구하는 것을 가능한 한 빨리 발표해야 하지요. 이 경주에서 가장 뛰어난 주자는 파리에 있는 베크렐과 퀴리 부부로, 지난 몇 년 간 방사성 물질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p81~82
우리는 토요일 아침 당신을 관 속에 넣었어요. 그 동안 나는 당신의 머리를 받치고 있었죠. 우리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차가운 얼굴에 키스를 했어요. 그리고 정원에서 빙카(유럽 원산의 협죽도과 식물) 몇 줄기를 꺾어다가 관에 넣고 당신이 '귀엽고 착실한 학생' 같이 찍혔다며 좋아했던 내 사진도 넣었어요. 이 사진은 당신과 함께 무덤 속으로 가는 게 맞겠지요. 당신을 그토록 기쁘게 해 주어서 몇 번 본 적도 없는데 당신이 앞으로 평생을 같이 하자고 주저 없이 말했던, 그래서 더없이 행복했던 여자의 사진이니까요. 살아오면서 그렇게 전혀 주저하지 않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행동했던 적은 그때가 유일했다고 당신은 말했지요. 나의 피에르, 당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나는 생각해요. 우리는 같이 살 운명이었고, 우리의 결합은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이었어요.
p113
이렌 졸리오-퀴리는 1938년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과학자의 소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진정한 과학 연구는 지식에 대한 사심 없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과학 연구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실용적인 결과를 창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세기 동안 인간의 삶을 바꾸어놓은 발명과 발견은 대부분 처음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이던 과학자의 실험에서 비롯되었다.'
이렌 졸리오-퀴리는 또한 자신의 연구를 사명감과
출판사 서평
마리 퀴리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으며, 그것도 1903년과 1911년 두 번을 수상했다. 그녀는 비록 프랑스 파리의 과학계에서 무시를 당했지만, 방사능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성취했으며 라듐과 폴로늄이라는 원소를 발견했다. 마리 퀴리가 살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은 엑스선이 발견되었고 원자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으며 원소 주기율표에는 새로운 원소가 잇달아 추가되는 시기로(이 가운데 뒤의 두 가지가 퀴리 부인 또는 퀴리 부부가 초석을 놓거나 주도한 것이다), 뢴트겐, 에디슨, 러더퍼드, 아인슈타인이 연구하고 또 그 성과를 발표하던 때였다. 한편 퀴리 부부가 라듐을 발견하자 라듐 열풍이 불어, 사람들은 라듐이 들어간 화장품과 약을 발랐으며 라듐 뜨개실로 옷을 만들어 아기에게 입혔고 의사들은 라돈 가스(라듐에서 방출되는 기체로, 폐암을 일으킨다고 한다)로 환자를 치료했다. 이미 이때도 정보를 부풀리고 심지어 조작해서라도 ‘한 건’ 터트리려 안달하는 황색 언론이 존재했고, 프랑스 대중은 이에 휩쓸려 마리 퀴리를 ‘그 폴란드 여자’라고 매도했다가 ‘위대한 프랑스 과학자’로 떠받들었다가 갈팡질팡했다. 이 책에서 사라 드라이는 흔히 알려진 대로 고독한 천재가 아닌, 좀더 활력이 넘치고 정치적 활동도 마다하지 않았던 마리 퀴리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조국을 사랑한 과학자
마리 퀴리의 고향은 폴란드이다. 폴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어린 시절 러시아 감독관 앞에서 왜곡된 폴란드 역사를 외우고 나서 눈물을 흘렸던 소녀의 일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다. 비록 폴란드의 독립이라는 꿈과 폴란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을 괴로워하면서도 피에르 퀴리와의 결혼을 선택했지만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조국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잃지 않았다. 그들이 발견한 원소를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 서‘폴로늄’이라 명명했고, 폴란드가 독립을 이루었다는 소식에 ‘이제 태어날 때부터 예속의 굴레에 얽힌 우리가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조국의 부활을 보게 되었어. 우리의 눈으로도, 심지어 우리 아이들의 눈으로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이 순간을 목격하게 되다니!’라며 기뻐했다.
국제적 명성과 영향력을 지닌 마리 퀴리는 남은 생애를 자신이 그토록 공들여 연구한 라듐 제국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데 바쳤다. 그 가운데 조국 폴란드에 기부할 라듐을 구입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려 미국 여행을 하기도 했다. 퀴리는 오랫동안 연구 생활의 주된 목적지였던 연구실과 공장, 병원과 광산과 거리가 먼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하는 한편, 현실 문제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그녀는 이전에는 과학과 관련이 없는 일은 피했지만, 1922년 새로 성립된 국제연맹의 '지적협력위원회'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런 국제적 활동이 힘든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일은 많은 노력과 실질적인 희생을 거쳐서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설령 아무리 불완전해 보이더라도, 제네바에서의 일은 지원을 아끼지 않을 만큼 위대한 것이다.' 퀴리는 위원회에서 12년 동안 봉사하면서 개인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문헌, 장학금, 규정 등을 비롯하여 국제 과학 발전에 필요한 자원을 공유하는 일에 전념했다.
이 물질이 새로운 금속으로 인정받게 되면
폴로늄이라고 이름 붙일 겁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의 고국의 이름을 따서 말이죠.
-퀴리 부부
결혼생활과 연구를 병행,‘성공한’여성 과학자
퀴리가 여성이 과학계에 진출할 길을 뚫었다고 할 수 있을까? 라듐 연구소의 직원 다수는 퀴리와 마찬가지로 과학계에서 일할 기회를 찾아 조국을 떠난 여성들로, 스웨덴, 루마니아, 러시아, 미국, 폴란드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연구 자금을 모으고 대인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으며(상당수가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조국으로 돌아가서는 과학계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당시 퀴리가 쌓아놓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여성 과학자들은 연구소의 자리를 얻기 위해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나가며 싸워야만 했다. 몹시 힘든 연구소 생활과 여성에게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결혼 생활을 조화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결혼 초기, 마리는 수입을 관리하고, 요리를 하고, 집을 꾸미고, 옷을 수선하고, 한편으로는 강철의 자기적 특성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남편 피에르는 연구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기꺼이 마리와 협력했지만, 살림을 분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리 열성적이지 않았던 듯하다. 마리는 아침에 스튜를 만들어 약한 불에 올려놓고, 연구에 열중하고, 점심때가 되면 그 스튜를 식탁에 올렸다. 그리고 아파트에 들여놓을 단촐한 가구들도 걱정거리를 안겨주지 않고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을 골랐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그런 힘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마리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대학과 연구소에 자신도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의심해 본 적이 없으며, 마찬가지로 한 남자의 아내에게 주어진 전통적인 가정의 일을 떠맡는 책임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퀴리는 여성 과학자를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졌고 지금도 그렇지만 과학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양면 가치를 지녔던 듯하다. 그녀의 글 중에는 자신의 삶은 예외적인 것이며,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권하거나 또 여성들이 실현할 수 있는 삶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발견된다. '나처럼 자연스러움에 반(反)하는 삶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내가 원했기 때문에, 연구를 사랑했기 때문에 과학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은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이 흥미 있어 하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다.'
나는 언론과 대중이 어떤 경우에라도
나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나는 나를 비난하는 모든 간행물에
강경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또한 내게는 피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여 과학 연구에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마리 퀴리
과학자를 길러낸 어머니, 마리 퀴리
마리와 피에르 퀴리는 1903년 자연 방사능을 발견한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는 1911년에는 화학 분야에서 두 번째 노벨상을 받았다. 수상식의 청중 가운데는 위대한 과학자 마리 퀴리의 딸인 열네 살의 이렌도 있었지만, 약 사반세기 후 자신이 같은 장소에서 역시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리 퀴리는 딸들이 자라는 모습을 일기에 꼼꼼히 기록할 만큼 헌신적인 어머니였지만, 한편으로는 성공한 과학자로서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몹시 엄격했다. 자녀교육에 있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렌이 초등교육을 마칠 나이가 되자, 마리 퀴리는 동료들과 협력하여 서로의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가정교육 체계를 만들었다. 그녀는 당시의 학교교육은 부적당하며 쓸데없이 아이들의 시간을 많이 뺏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리는 어린 이렌이 실용적인 가치가 있는 것을 배우기를 바랐다. 마리가 주도한 가정교육 실험은 2년 정도 계속되었고, 이 기간 동안 이렌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과학자들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혜택을 누렸다. 후에 이브 퀴리는 어떤 공식적인 학교교육보다도 그 2년간의 가정교육이 언니 이렌이 과학자의 길을 택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렌은 ‘선택받은’ 환경에서 자란 때문이고 마리 퀴리는 피에르 퀴리를 만나 운이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고 어두컴컴한 지하 실험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가정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아이들의 육아일기를 꼼꼼히 쓰면서 가족들에게 먹일 요리를 자신이 직접 준비했던 마리 퀴리. 이런 모습은 그녀의 일상이 얼마나 바쁘게 돌아갔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성실함과 열정이 작은 폴란드 여성을 위대한 과학자로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여성'이고 '과학자'며 '노벨상 수상자'라는 딱지는 떼어버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몰두하여 성공한' 인간으로서 마리 퀴리의 모습을 만나보자.
성공의 비결 한 가지는, 어떤 직업에서든지
자신의 재능을 즐기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특히 과학계에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과학은 예술과 닮아 있다. 지식과 지성은 있으나
연구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학자가 될 수 없으며,
선천적인 재능이 있고 노력도 하지만 예술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탁월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이렌 졸리오-퀴리
기본정보
ISBN | 9788981441678 |
---|---|
발행(출시)일자 | 2005년 08월 18일 |
쪽수 | 248쪽 |
크기 |
153 * 224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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