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봄, 왜 싱크탱크를 이야기해야 하는가

2006년 봄, 광역지자체 단체장을 포함한 소위 선거의 계절을 앞두고 있는 한국 사회는 그동안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효율적인 정책 개발 기능의 활성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늘 곁에서 함께 공존해왔지만 서로 각자의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유권자’와 ‘정책 결정자’들은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 사이에 효율적인 의사소통 구조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향후 과제는 결국 수요자 중심의 정치 질서를 안착시킴으로써 여론 분열과 불필요한 사회적 지출을 바로잡는 일일 것이다. 최근 들어 국내의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사회의 선진화 전략에 대해서 다양한 고민과 대안들을 내놓고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의 세계 경영을 대표하는 네오콘의 등장으로 미국의 선진 싱크탱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됨과 동시에 벤치마킹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싱크탱크 관련 도서들이 주로 번역물이거나 한국의 싱크탱크 현황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좀더 포괄적으로 싱크탱크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들은 싱크탱크와 같은 정책 개발 기능의 상시화를 통해 선진국형 사회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수요자 중심의 정책 개발로 세계를 경영하는 미국의 싱크탱크를 배우다

미국 사회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싱크탱크는 행정부와 일반 국민 사이에서 정책 조율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정책 결정자들의 책임성을 높여주고 소위 수요자 중심의 정책 개발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싱크탱크는 지식과 권력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한 20세기 미국인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열린 의회와 대통령직의 정책 과부하로 인해서 워싱턴은 새로운 구조를 갖게 되었고, 이 새 도시의 정치권력을 향해서 지식을 제공하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 기업가들과 정책형 지식인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싱크탱크라는 구조물을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싱크탱크의 활성화가 미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정치 안정을 주도한 사례로 실제 행정부와 싱크탱크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케네디-브루킹스연구소’, ‘레이건-헤리티지재단’, ‘부시-미국기업연구소(AEI)’의 예를 들어 각 시대 상황에서 어떤 정책 개발에 주력하고 행정부와 어떤 협력 체제를 구축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상비 전문가’를 거느린 케네디의 당선 뒤에는 브루킹스연구소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대통령선거 직후 정권 인수팀을 위한 정부 지원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지 않았던 때라 브루킹스연구소는 케네디 대통령의 정권 이양을 위한 인적?공간적?정책적 진원지로서 활약했다. 이들은 케네디 재임 중에 100개에 가까운 연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시킨 그야말로 국가정책 개발의 보고였던 셈이다.
레이건의 집권이 가지는 가장 상징적인 특징은 싱크탱크가 ‘국가 경영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제공하는 주체로 등장하였다는 점이다. 헤리티지재단은 레이건의 집권과 함께 영향력을 증대시킨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미국 내 보수파 전문가 집단의 홍보 전략을 극대화시킨 성공 사례이다. 이들은 정치인과 행정부가 필요로 하는 자료와 보고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예측해냈다.
부시 행정부와 미국기업연구소(AEI)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부시 행정부는 싱크탱크를 미국 ‘패권전략의 이념적 발판’으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이다. 전 세계 미국식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서 군사력을 포함한 국력의 사용, 선제공격, 새로운 국가건설, 지속적인 미국식 이념의 투사 등을 구체화할 정책 개발의 심장으로 AEI라는 싱크탱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에 포진한 수백 개의 싱크탱크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은 그 안에서 보고서를 쓰고, 세미나와 토론에 참여하고, 방송에 출연해서 현안을 설명하는 정책 전문가 그룹 덕택이다. 수만 명에 이르는 정부관료, 로비스트, 세계 각국의 기자들과 더불어 정치도시 워싱턴을 꾸려가는 이들 전문가 그룹의 등장이 없었다면 미국 사회에서 싱크탱크라는 지식산업 역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에서 싱크탱크가 전통적으로 보여온 ‘시장-존중적’ 가치관은 결과적으로 미국식 자본주의와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는 다시 말해 시장의 안정과 효율적 기능이 결과적으로 정치적 안정과 성숙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저자들은 미국의 싱크탱크를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특징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형 싱크탱크의 가능성 모색

한국 정치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행정부, 의회, 정당으로 대표되는 주요 정책 결정자들과 정책을 실제로 소비하는 시민들을 효과적으로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이 중요한데,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행위 주체가 없는 셈이다.
이에 저자들은 전문가적인 자질은 물론 상당한 수준의 정보를 바탕으로 유권자들의 정치적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러한 잠재 정책들을 현실화시켜서 개발하는 작업을 전담할 수 있는 상비정책 개발 전문가 집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곧 특정 정치 영향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음은 물론 정치적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철저한 기초조사와 실행 이후의 평가까지 전담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을 가진 전문가 집단의 출현이 시급하다는 얘기이다.
이 책은 성공적인 싱크탱크의 출현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켜줄 것이라는 전제로 한국적 싱크탱크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세 가지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첫 번째 전략은 ‘대중 속으로’이다. 특정 정치 지도자나 일부 특권 세력만을 위한 정책 개발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대중을 위한 정책 개발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두 번째, ‘기업가 정신’이다. 최적화된 정책을 공급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은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의 오늘을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한 걸음 성큼 다가가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정책 결정자들에게는 적재적소에 실행 가능한 정책들을 제공할 수 있는 프로 근성이 바로 기업가 정신이다.
세 번째 전략은 ‘한국적 전문가 정신’의 함양이다. 우선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선진화를 위한 핵심 과제들을 선별하여 전문가 정신으로 무장한 상비 정책 개발자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정책들을 생산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설픈 홍보대행사 수준을 싱크탱크로 인식하는 관련 종사자들의 안이한 인식과 무턱대고 미국의 성공담을 답습하고자 하는 국적 없는 전문가 정신, 이 두 가지 모두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전문가 집단이라는 가교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과 정책결정자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싱크탱크의 본질과 선진 싱크탱크를 살펴보고 한국적 싱크탱크의 성공적인 토착화 방안을 찾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동해 저자들은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의 진정한 선진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