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코츠키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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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대대로 의사로 종사한 가문의 피를 이어받아 의학에 매진해 산부인과 의사가 된 파벨. 그는 환자의 질병 부위를 눈으로 파악할 수 있는 ‘내면투시’라는 재능까지 갖게 된다. 볼셰비키혁명, 2차 세계대전 등 급박한 변화 속에서 묵묵히 의료에 전념하던 그는 전쟁과부 엘레나를 치료하다가 아내로 맞아들이고 그녀의 딸 역시 양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렇게 맺어진 가정은 파벨의 내면투시로 뜻밖의 사태에 직면하는데….
- 러시아 부커상 수상
- 이탈리아 펜네 문학상 수상
작가정보
저자(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저자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1943년 러시아 중부의 바슈키리에서 태어났다. 1966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생물학부를 졸업하고 유전자공학 연구소에서 일했으나 금지된 서적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1970년 해고당했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유럽실내음악극장에서 문예감독으로 일하며 어린이를 위한 희곡, 인형극이나 라디오 방송대본, 희곡 평론 등을 쓰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 첫 단편소설 「100개의 단추」를 쓰며 소설 창작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연극ㆍ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다가 1992년 중편 『소네치카』를 발표하면서 일약 러시아 문단은 물론, 세계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메데이아와 그녀의 아이들』(1996) 『쿠코츠키의 경우』(2001) 『당신의 슈릭 올림』(2003) 『번역가 다니엘 슈타인』(2007) 『녹색의 천막』(2011) 등을 발표했다. 울리츠카야는 러시아 부커상, ‘위대한 책’ 상, 메디치 상(프랑스), 주세페 아체르비 상(이탈리아) 등 세계의 권위적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재 32개국에서 그녀의 작품이 번역, 출간되었다. 러시아 부커상 수상작인 『쿠코츠키의 경우』는 울리츠카야 작품세계의 영원한 테마인 ‘가족과 여성성’을 풍부한 에피소드와 다양한 세대의 풍경을 통해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 소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담아낸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울리츠카야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거대담론의 소멸과 문학의 상업화 위기 속에서도 두드러진 창작활동을 보이며 러시아문학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2년 제2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했다.
번역 이수연
역자 이수연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와 동 대학원 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과학 아카데미 문학연구소 ‘뿌쉬낀 돔’에서 러시아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대 러시아 작가에 대한 다수의 논문과, 옮긴 책으로 『튜체프 시선집』 『타티야나 톨스타야 단편집』, 공저로 『나는 현대 러시아 작가다』 등이 있다.
목차
- 1부
2부
3부
4부
작가ㆍ작품 소개|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여정
작가와의 대화|우리 모두는 신들의 사는 세계의 '특별한 경우' 입니다
책 속으로
어려서부터 파벨 알렉세예비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구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별다른 할 일이 없는 저녁식사 전 시간을 이용해 가끔 아버지 알렉세이 가브릴로비치의 서재에 몰래 숨어들곤 했다. 잠입에 성공하면 서재 한 쪽에 서 있는 스위스제 책장의 무거운 유리문을 열고, 당시 유명했던 의학백과사전 중 세 권을 조심조심 꺼냈다. 파벨은 아버지가 특히 귀하게 여기는 그 책들을 네덜란드제 벽난로와 책장 사이의, 좁지만 쾌적한 공간에 들어가 바닥에 펼쳐놓았다. 백과사전의 각 권 마지막에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그림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림은 검고 짧은 콧수염에 뺨이 장밋빛으로 불그스레한 남자와, 태아를 보여주기위해 자궁이 드러난 만삭의 여자를 묘사한 것이었다. 아마도 이 나체의 여자 그림 때문에 파벨은 의학백과사전에 대한 자신의 깊은 관심을 가족들에게 숨기고 싶었는지 모른다. 음탕한 아이로 오해받을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어린 소녀들이 지칠 줄 모르고 인형 옷을 입혔다 벗겼다 하듯, 파벨도 몇 시간이고 앉아서 그림의 인체를 보며 모든 장기(臟器)들과 놀았다. 마분지의 사람들을 통해 피부조직과 붉고 건장한 근육조직, 간장과 허파, 뼈의 구조와 위치 등을 세세하게 살폈다. 뼈는 탁한 누런빛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마치 죽은 것 같았다. 죽음은 겉으로 살아 있는 육신에 덮여 언제나 인간 몸 안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이것은 먼 훗날 파벨이 깊이 생각하게 될 문제였다._6~7쪽
조상 대대로 의학에 몸을 바친 외에 쿠코츠키 집안 남자들은 아주 독특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에서 전리품을 취하듯 배우자를 얻었다. 증조할아버지는 포로로 잡힌 터키 여자와 결혼했고, 할아버지는 카프카스의 체르케스 여자와, 아버지는 폴란드 여자와 결혼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여자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의 혼을 빼앗을 만큼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처럼 이방인의 피가 섞이는 바람에, 대대로 턱뼈가 높고 완강하며, 일찍부터 대머리가 되었던 남자들의 외모가 조금씩 변해갔다. 파벨의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있는 아브데이 페도로비치의 초상화는 유명하지 않은 독일인 판화가가 만든 것인데, 그 초상화는 혼혈로 인한 쿠코츠키 혈통의 변화를 또렷하
게 보여주고 있다.
파벨 알렉세예비치 쿠코츠키도 전쟁 중에 결혼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가운데 몹시 서둘러 치러진 결혼이었다. 그의 아내가 된 엘레나 게오르기예브나는 포로도, 인질도 아니었다. 파벨이 근무하던 병원은 전쟁을 피해 시베리아의작은 도시 B로 피난을 갔다. 1942년 11월, 그 병원의 수술대 위에서 파벨은 엘레나를 처음 만났다. 호출을 받은 파벨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엘레나의 수술은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모두가 상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수술준비에 돌입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버린 듯했다. 회생의 가능성은 너무도 희박했다……._15~16쪽
“아빠, 난 몰랐어요. 도대체 내가 2년 동안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쥐들을 죽였죠. 쥐들을 산더미처럼 죽였어요. 아무 거리낌 없이 간단하게요. 그러면서 난 조금씩 부서져가고 있었던 거예요. 아주 조금씩……. 그러다가…….이제 눈에 씌워진 콩깍지가 벗겨져서 알게 된 거라구요…….”
“아니야, 아니야! 타냐, 그건 아냐! 세상의 가치엔 위계가 있어. 물론 인간의 생명이 가장 상위에 있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의 질병을 고치기 위한 것이라면, 실험실에서 수만 마리, 그래, 필요한 만큼 동물들을 죽일 수도 있어. 거기에 문제는 없어.”
“아빠, 내가 말하는 게 그게 아니란 걸 아시잖아요? 난 쥐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나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거예요. 내게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구요!”
타냐는 놀라울 만큼 마른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려 내저으며 소리쳤다.
“무슨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단지 일의 특성상 일시적인 갈등이 생겼을 뿐이지. 일시적인 침체기는 있는 거야. 그런 일은 언제나 있을 수 있어.”
“그냥 단순한 침체가 아니라구요. 아빠!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난 연구라는 핑계로 쥐들을 광주리에 한 가득 넣고 자르고 또 잘랐어요. 사람들을 위해, 거기에서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치료하기 위해 말이죠. 그러면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 개념을 상실하고 있었던 거예요. 쥐와 사람이 다르다는 가장 단순한 사실조차 아예 잊고 있었어요. 그러니 인간의 태아에 필요한 먹물을 달라고 하는데, ‘산 거, 죽은 거’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물었던 거예요. 정말이지 있을 수도 없는…… 난 더 이상 쥐들을 죽이면서 좋은 딸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타냐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파벨은 벗겨진 이마 위로 주름살이 모일 정도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앞으로 뭘 하
출판사 서평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작가의 대표작 『쿠코츠키의 경우』 러시아어판 완역
토지문화재단은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작가로 러시아의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선정했다. 재단은 선정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울리츠카야는 35개 언어로 작품이 번역돼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는 작가로, 그의 섬세한 펜 아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 등 러시아 대문호들이 이끈 ‘구원의 미학’이 장엄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이 점은 울리츠카야가 21세기 세계 문학 발전에 기여하게 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건강한 주제의식과 그에 걸맞은 문체, 삶의 정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미학적 구성능력 등의 문학성뿐만이 아니라 후보 작가의 역사의식과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최종 후보자를 결정했다.”
『쿠코츠키의 경우』는 러시아 부커상 수장작으로, 이는 여성 작가로는 최초의 수상이다. 또한 이 작품은 이탈리아 펜네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일의 <슈피겔>은 『쿠코츠키의 경우』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얽히고설킨 미로 같은 인간의 삶을 경외와 연민 그리고 유머로 풀어내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경쾌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풀어내는 필치가 환상적이다.”
가족의 의미와 인간의 내면을 종교, 심리, 사회적 상황 등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장엄하게 그려낸 『쿠코츠키의 경우』가 마침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한국어판 『쿠코츠키의 경우』는 2003년 엑스모 출판사(모스크바)에서 간행한 것을 원본으로 하여, 약 3년의 기간에 걸쳐 경희대 국제캠퍼스 연구교수 이수연과 대구가톨릭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이득재가 교차 번역한, 번역의 엄밀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한 책이다.
‘가족’은 작품 창작을 위한 핵심 모티브
『쿠코츠키의 경우』는 작가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의미와 그 구원 및 회복을 핵심 주제로 하고 있다. 작가의 이런 경향은 다음의 언급에서도 잘 드러난다.
“인간의 성장은 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사는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족이 인간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소비에트 시대에 그와 같은 가족 개념은 붕괴되었고, 가정의 일상은 국가적 이념에 종속되어야 했다. 나의 소설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가족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 가족과 가정에 대한 나의 진혼곡이라 할 수 있다.”
주요 작품들 모두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이러한 특성으로 울리츠카야의 소설은 ‘가족 소설’, ‘가족 연대기’, ‘가족사가’ 등으로 규정된다. 울리츠카야에게 가족은 ‘불확실한 것만이 확실하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현대 사회가 양산하는 소외와 고독, 존재론적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피난처다. 울리츠카야에게 가족은 ‘신성한 조직’, ‘사랑과 보호의 요람’, ‘삶의 터전’이며, 국가의 일방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야기하는 파행을 막고 인간의 ‘참된 가치’를 회복하고 보전할 수 있는 통로이자 매개이다. 그러므로 가족의 상실은 존재의 기원이나 뿌리를 상실한 것과 같으며, 삶의 비극성으로 연결된다. 울리츠카야는 가족만이 개인에게 참된 인간성을 함양시켜줄 수 있는 자연적 집단이며, 그 가족의 회복만이 도덕 불감증이 만연한 현대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것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그러므로 울리츠카야는 가족을 타도해야 할 부르주아적 산물로 여기고, 개인과 가족보다 이념을 우선시하며, 이데올로기를 위해 친부를 고발하는 인물을 영웅으로 추앙했던 소비에트 시대를 가족의 가치를 붕괴시킨 ‘배반’의 시대로 규정한다. 그 결과 울리츠카야의 작품에는 소비에트 시대의 가족 풍경과는 확연하게 다른 이상적인 가족의 형상과 반소비에트적 성향을 지닌 인물이 창조되고 있다. 여기에 울리츠카야의 작품을 과거에 대한 향수, 개인적 삶의 드라마로 집약된 네오감상주의적 소설로 해석하는 근거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울리츠카야는 신성하고도 이상적인 가족을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의 창조에 심혈을 기울인 작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쿠코츠키의 경우』의 파벨, 『메데이아와 그녀의 아이들』의 메데이아, 그리고 『소네치카』의 소네치카다. 이 주인공들은 이상적인 가족을 만들고 지키기 위한 자애와 용서, 인내의 화신이며, 고귀한 정신세계의 소유자이다. 그들은 내면의 자유와 엄격한 자신만의 도덕률과 세계관을 지니고, 불의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삶을 영위한다. 이때 울리츠카야는 그들이 거부했던 불의한 세상을 소비에트 시대로 환치시키기도 한다. 소비에트 시대의 법과 제도를 초월한 삶을 영위하는 주인공들의 반소비에트적 형상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울리츠카야는 사회적, 집단적 제도에 따라 억압되는 개인의 일상적 삶의 회복, 이를 통한 개인의 감정적, 도덕적 자유를 꿈꾼다. 그런가 하면 『쿠코츠키의 경우』에서와 같이 임신과 출산, 양육과 관련한 자연주의적 색채가 뛰어난 묘사들은 몸과 정신에 대한 위계적이고도 이분법적인 사고를 깨고자 하는 여성주의적 세계관을 대변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울리츠카야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가족상은 논란의 가치조차 퇴색해버린 ‘절대적 가치’를 찾으려는 작가의 문학적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와의 대화>
'우리 모두는 신의 세계에 사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다음은 2006년 5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설과 그녀의 남편 안드레이 쿠라술린의 조각품이 함께 어우러진 작품 전시회에서 행해진 인터뷰의 일부다. 인터뷰는 타치야나 마르튜세바(저널리스트)가 진행했다.
Q. 다른 어떤 작품보다 『쿠코츠키의 경우』에서 받은 인상이 강렬하더군요. 읽은 지 오래됐지만, 지금도 그 인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소설의 내용과 작가의 실제 삶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가요? 아니면 모델로 삼은 실제 인물이 있는가 궁금합니다.
A. 그 질문에 대답은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 모두 맞습니다. 하나의 작품은 완전히 무(無)에서 탄생하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살아오는 동안 저는 소설 속 인물들과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주인공 쿠코츠키의 직접적인 모델은 없지만 그와 유사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이미 고인이 된 분들도 있지요. 예를 들어 제 친구의 아버지도 산부인과 의사였어요. 쿠코츠키가 의사로서 살아온 삶은 그 친구의 아버지와 많이 비슷합니다. 그의 이름도 파벨 알렉세예비치였어요. 제 작품의 주인공처럼요. 그리고 저 역시 의사 가족 출신이라 많은 의사들을 알고 있었어요. 특별한 집안의 사람들도요. 그러한 사람들과의 교제가 많은 영향을 주었지요.
Q. 소설에서 의학이나 유전학, 철학에 대한 폭 넓고 깊은 지식에 놀라워하는 독자들이 많더군요.
A. 전공이 생물학인 덕을 좀 봤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유전학입니다. 물론 도중에 중단하기는 했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공부하면서 많은 지식을 얻었어요. 지금까지 창작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지요. 작품에서 타냐가 실험쥐들을 두고 고민하고 갈등을 하는데, 실제로 제가 오랫동안 겪었던 경험이기도 해요. 이 소설에는 제 주변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도 있어요. 만들어진 이야기 중에는 성공적인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죠.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인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거야!”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건 주로 처음부터 끝가지 제가 만들어낸 인물들에 대한 평가입니다. 일반적으로 상상의 인물이나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저 자신이 더 자유롭다는 것을 느낍니다. 실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는 많은 제약이 따르니까요. 상상력이 더 많은 자유를 주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더 큰 인상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재미있는 일을 겪게 됩니다. 실제 이야기를 재료로 삼았다가 그 이야기의 결말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경우엔 결말을 지어내는데, 오히려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끝을 맺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상상력으로 과거를 바꾸어놓는 겁니다.
Q.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주로 2차 대전 전후와 소비에트 시대였던 1960년대인데, 특별히 그 시대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생물학에 ‘각인’이란 용어가 있어요. 첫 인상의 중요성을 말하는 거지요. 예를 들어 갓 태어난 병아리에게 펠트 장화를 보여주면 그 병아리는 그 장화가 자기 부모라고 생각하는 거죠. 사람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어요. 특히 유년 시절의 기억은 깊고 강하게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억에 많은 것들이 덧칠해지기도 하지요, 마치 새로운 색과 소리를 만들어내듯 말입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에 받은 많은 인상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바로 제 유년 시절과 맞물리거든요. 1970년대와 80년대가 지금과 더 가깝기는 하지만 그때 기억은 오히려 희미합니다. 전쟁 후 1960년대에 겪은 제 유년 시절의 기억이 더욱 입체적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Q. 특히 이 작품의 2부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건가요? 단순히 환상이라고 해야 하나요?
A. 사실 2부 때문에 비난을 많이 받았어요. 소위 요즘 유행하는 문학기법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는 악평도 있었고요. 하지만 2부가 없다면 이 작품은 의미가 없습니다. 2부 때문에 처음 제가 구상했던 소설의 제목이 ‘세상의 일곱 번째 면으로 여행’이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제목이 2부의 의미를 설명하기보다 더 많은 의문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목을 수정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는 현실과 또 다른 세계의 실제성이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세계의 실제성이란 직감이나 예감으로 느끼는 거지요. 혹은 꿈을 통해 알게 된 것들입니다. 즉 합리성이 배제된 본성이 마음껏 발현된 결과로 인식되는 겁니다. 저는 경이로운 꿈을 많이 꾸었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 거의 꿈속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렇게 본성으로 알게 된 것들을 저는 작품에서 초현실적인 어떤 것으로 표현하지만, 때로는 전혀 표현이 불가능한 것들도 있습니다. 어려운 작업입니다. 날카로운 면도날에 베이는 듯한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요. 몇몇 사람들은 그런 고통의 대가로 나온 것이 별 볼일 없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요.
Q. 초현실적인 어떤 것을 느낄 때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A. 가끔은 두려웠어요. 끝도 없는 심연을 헤매는 것 같은……. 하지만 두려움은 일종의 죄일 수 있어요. 그것은 삶을 좀먹게 하지요. 우리 누구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당면한, 피할 수 없는 상황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나이 들어 병들고 기억은 쇠퇴하고, 점점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들어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노년의 삶도 당당히……. 저는 독자들이 『쿠코츠키의 경우』를 읽고 난 다음 자신들의 고유하고도 소중한 삶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그래. 바로 이거야!” 하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삶이란 난해한 문제들에 대해 제가 답을 줄 수는 없어요. 다만 제가 보고 느끼는 그 삶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독자들이 그 답을 각자 찾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Q. 류드밀라 예브게이예브나! 『쿠코츠키의 경우』라는 작품의 핵심을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요?
A. ‘경우’란 복잡한 사건이나 일, 놀라움, 예외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합니다. 저는 쿠코츠키에게 일어난 많은 복잡한 사건들을 이야기했어요. 그의 사건은 우리 각자의 사건이이기도 합니다. 『쿠코츠키의 경우』는 우리 모두가 헤엄치고 있는 신의 세계에서 각각의 인간이 ‘특별한 경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 쿠코츠키는 당당하고 정직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사려 깊게 삶을 성찰하는 사람들의 사건 자체라 할 수 있죠.
기본정보
ISBN | 9788975276255 | ||
---|---|---|---|
발행(출시)일자 | 2012년 10월 31일 | ||
쪽수 | 756쪽 | ||
크기 |
128 * 188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일루저니스트
|
||
원서명/저자명 | Казус Кукоцкого/Улицкая, Людмила Евгеньев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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