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틀비와 바틀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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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엔리께 빌라 마따스
저자 엔리께 빌라 마따스 Enrique Vila-Matas는 1948년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그 후 영화 잡지의 편집장, 단편영화 감독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영화 평론, 문학평론, 단편소설, 장편소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필력을 과시한다. 2000년에 출간된 『바틀비와 바틀비들(원제: 바틀비와 동지들)』로 에스파냐에서 ‘올해의 소설’상을 수상하고, 연이어 『몬타노의 악El mal de Montano』(2002), 『파리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Par?s no se acaba nunca』(2003), 『파사벤토 박사Doctor Pasavento』(2005) 같은 화제작을 출간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그동안의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프랑스 ‘레종 드뇌르’ 기사장 등을 비롯한 각종 작위를 받았고, 세계 유수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에는 중남미 최고의 문학상인 ‘로물로 가예고스’상을 받았고, 그 외에도 에스파냐, 프랑스, 멕시코, 이탈리아, 칠레, 베네수엘라 등 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휩쓸었다. 현재까지 스무 권이 넘는 장편소설·단편집과 일곱 권의 수필집을 출간한 빌라―마따스는 에스파냐 현대문학에서 가장 지적이고, 재치 있고, 독창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다수의 작품이 3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역자 조구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콜롬비아의 ‘까로 이 꾸에르보’에서 문학석사, ‘폰티피시아 우니베르시다드 하베리아나’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비교문학연구소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에서 Post Doc.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HK 세미오시스연구사업단의 연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백년의 고독』,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책 파괴의 세계사』, 『재건』,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 『소금 기둥』, 『말린체』 등 스페인·중남미 작품을 다수 번역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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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나는 문학계에 존재하는 바틀비증후군의 다양한 예를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있다. 일부 작가들이 대단한 문학 의식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정확히 말해 그런 문학 의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글쓰기를 하지 못하거나, 책 한두 권을 쓰게 된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글쓰기를 포기하거나, 작품 한 편을 아무 문제 없이 쓰기 시작해 어느 정도 진척시킨 뒤, 어느 날, 느닷없이, 문학적으로 영원히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되는 부정적否定的인 충동 또는 무舞에 대한 이끌림에 관해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_p.11
플라톤이 관념을 잊어버리는 문제에 평생 동안 골몰했다면, 클레망 카두는 자신이 어느 날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데 평생을 소비했다.
단지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기 위해 스스로를 하나의 가구로 간주하면서 평생을 보낸 그의 태도는 그만큼 특이한 인생을 산 펠리시엥 마보에우프의 태도와 공통점이 있다.
(중략) 하지만 클레망 카두의 경우는 광적인 예술 활동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펠리시엥 마보에우프의 경우와 다른데, 결코 글을 쓰지 않겠다는 자신의 결정이 남겨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열일곱 살 때부터는 분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클레망 카두는 마보에우프와 달리 짧은 생애(그는 요절했다) 내내 자신을 하나의 가구로 본 것이 아니었고, 적어도 그림은 그렸다. 물론 그가 그린 그림은 가구였다. 그것은 과거의 어느 날 글을 쓰고 싶어 했다는 생각 자체를 차근차근 잊기 위한 자기만의 방식이었다.
그가 그린 모든 그림은 유독 가구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모든 그림은 수수께끼 같은, 동일한 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자화상〉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을 하나의 가구라고 느꼈는데, 내가 아는 한 가구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클레망 카두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자 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상기시켜줄 때면 늘 이렇게 말했다. _pp.53-6
오스카 와일드가 죽자 파리의 어느 신문은 그의 말 몇 마디를 아주 시의적절하게 기억해냈다. “나는 삶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 글을 썼다. 삶의 의미를 알고 있는 지금은 더 이상 쓸 게 없다.”
그 문장은 오스카 와일드의 최후와 아주 잘 들어맞는다. 그는 글을 써야겠다는, 이미 써놓은 글에 뭔가를 첨가해야겠다는 최소한의 필요도 느끼지 못한 채 생애 마지막 2년을 아주 행복하게 보낸 후에 죽었다. 그가 죽을 때, 그동안 몰랐던 것을 충분히 알았을 가능성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진정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_p.193
세르반테스는 독자에게 바치는 서문에서 ‘안녕, 아름다움이여. 안녕, 재미있는 글들이여. 안녕, 기분 좋은 친구들이여. 만족스러워하는 그대들을 다른 세상에서 곧 만나기를 바라면서 나는 죽어가고 있다오!’라고 씀으로써, 냉소적이거나 회의적이거나 실의에 빠진 사람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담담한 문체로 자신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안녕’이라는 이 말은 문학과 결별하면서 쓸 수 있는 그 어떤 글보다 더 감동적이고 잊을 수 없는 것이다. _p.221
톨스토이는 생애 마지막 며칠 동안 문학이 저주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문학을 가장 증오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고서 문학이 도덕적인 타락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말하면서 글쓰기를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일기에 생애 마지막 문장을 쓰기 시작했는데, 문장을 끝내지는 못했다. 그가 쓰고자 했던 문장은 ‘무슨 일이 일어나건 네 할 일을 하라Fais ce que dois, advienne que pourra’였다. 톨스토이가 가장 좋아하던 프랑스 속담이다. 그런데 다음 말밖에는 쓸 수가 없었다. Fais ce que dois, adv…… _pp.297-8
출판사 서평
바틀비증후군: 결코 글을 쓰지 못하거나, 절대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부정적否定的인 충동 또는 무無에 대한 이끌림
그 누구도 결코 쓰지 못한 책 한 권을 써보겠다.
소설 같지 않은 소설, 그러나 소설 중의 소설!
무에서 유를, 부정에서 긍정을 찾아내는 포스트모던적 패러독스
바틀비, 바틀비증후군, 그리고 바틀비들
일찍이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는 ‘하지 않으려고 하I would prefer not to’며 사회의 부조리,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의 관계, 예술가의 창조성과 자율성 등을 거부했다. 그리고 150년이 지난 지금, ‘바틀비’를 따라 ‘바틀비증후군’에 걸려 ‘쓰지 않으려고 하’게 된 작가들이 있다. 바로 여기에 있는 ‘바틀비들’이다.
바틀비 여러분, 도대체 왜 글쓰기를 거부하는 겁니까?
한 명의 바틀비인 이 소설의 화자는 바틀비증후군에 걸려 절필한 수많은 작가들이 어떤 이유로 절필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천착하여 주석을 다는 형식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사실 화자가 탐사하고자 하는 바틀비증후군이라는 테마는 중심이 없는 미로와도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을 그만둔 이유나 형태는 작가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모든 경우가 단일한 특성을 띠고 있지도 않으며, 바틀비증후군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의 깊은 곳에 도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자는 스스로를 가리켜 그저 바틀비들을 추적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하고, 그래서 결국 화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수많은 바틀비들의 이야기를 단지 그대로 옮기는(멜빌의 바틀비처럼 단지 베껴 쓰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실과 허구가 장난스럽게 버무려져 제2의 현실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문체와 분위기가 복잡다단하게 얽혀 웃음을 유발하게 된다. 재기 넘치고 독창적이며 뛰어난 ‘주석 노트’ 한 권이 탄생한 것이다.
‘바틀비 여러분, 도대체 왜 글쓰기를 거부하는 겁니까?’라는 물음에, 바틀비들은 대답한다.
후안 룰포 “내 책에 쓰인 이야기를 해준 셀레리노 삼촌이 돌아가셨기 때문이죠.”
보비 바즐렌 “나는 이제 책이 쓰일 수 없다고 믿는다.
거의 모든 책은 주석이 부풀려져서 결국 책으로 변한 것에 불과하다.”
클레망 카두 “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을 하나의 가구라고 느꼈는데,
내가 아는 한 가구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하트 크레인 “쓰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글쓰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뿐이다.”
마르셀 뒤샹 “단어는 어떤 것을 표현할 가능성을 전혀 갖지 못한다.”
오스카 와일드 “나는 삶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 글을 썼다.
삶의 의미를 알고 있는 지금은 더 이상 쓸 게 없다.”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사뮈엘 베케트 “모든 것은 허위고, 아무도 없으며, 아무것도 없다.”
쥘리앵 그라크 “소설 쓰기가 내게는 부족한 엄청난 에너지와 힘,
신념을 요구하기 때문에.”
톨스토이 “문학은 저주다.”
문학이 불가능한 시대에 문학을 하다
지금 시대를 일컬어 문학의 위기, 문학이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라고 한다. 실제로 작가들이 독창적인 것, 새로운 것을 향한 집요한 열망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심리적·육체적 고통을 안겨주고, 그로 인해 정신적 해체를 겪거나 절필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창작의 고통 속에서 번민하던 작가들이 결국 ‘언어로는 삶과 생각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허무주의적 결론에 도달해 결국 글쓰기를 부정하고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의 죽음’을 말하는 이 시대에 문학을 선택한다는 것은 아웃사이더가 되기를 자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문학의 위기는 문학의 생존에 기여할 수도 있다. 지배적 관습에 대항하는 전복적 사유와 실천이야말로 문학의 가장 중요한 소임 중의 하나고, 이는 지금처럼 혼탁한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문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남을 것이고, 전통 소설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 있는 이 책은 이에 대한 전망을 독특하게 제시한다. 문학의 불가능성에 대한 문학을 함으로써 문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글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글로 쓰는 것’ 역시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엔리께 빌라-마따스는 『바틀비와 바틀비들』을 통해, 소설을 쓰지 않는 이유와 소설을 쓰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결과가, 소설 자체만큼 풍요롭고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 줄거리
마르셀로는 애인도, 친구도, 가족이나 친척도 없이 홀로 외롭게 사는 중년 남성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꼽추인 그는 극심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조그만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지만, 한때는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을 낸 작가였다. 25년 전 젊은 시절, 그는 사랑의 불가능성에 관한 첫 소설을 냈으나, 그의 아버지는 책에 자신의 첫 번째 부인을 모욕하는 내용이 있다고 오해했다. 아버지의 강요에 끝내 굴복하고 첫 번째 부인에 대한 헌사를 쓰게 된 그는 작가로서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글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그 후로는 글을 전혀 쓰지 않는 ‘바틀비(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가 된다.
그로부터 25년 후, 마르셀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그러나 존재할 수는 있는) 텍스트에 관한 각주, 즉 자신처럼 ‘바틀비증후군’을 앓는 바틀비들의 문학적 침묵에 관한 각주를 쓰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톨스토이, 랭보, 샐린저, 모파상,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 괴테, 스탕달 등 수많은 바틀비들이 숨어 있는 ‘아니오’의 미로가 펼쳐지는데…….
기본정보
ISBN | 9788973812585 | ||
---|---|---|---|
발행(출시)일자 | 2011년 11월 15일 | ||
쪽수 | 320쪽 | ||
크기 |
131 * 187
* 30
mm
/ 352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Bartleby y compania/Matas, Enrique Vila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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