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창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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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1941년 중국 제남시에서 출생. 전남 구례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연세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였다. 1969년 조선일보사에서 모집하는 신춘문예소설 공모에 단편소설 ""경찰관"" 당선.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았다.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200만원 현상 장편소설 공모에 ""최후의 증인(2권)"" 이 당선 작가로 성공한다. 일간스포츠신문에 장편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 (전10권)를 연재하여 대하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일간스포츠신문에 추리소설 ""제5열""을 연재하여 한국 최초로 추리문학의 장르을 열었다. 이후 부산으로 이주하여 달맞이언덕에 세계 최초의 추리문학관을 개관, 계속 장편 추리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 <부랑의강 > < 일곱개의 장미송이> <백색인간(2권)> <제5의 사나이(3권)> <반역의 벽(2권)> <아름다운 밀회(2권)> <라인 X(3권)> <어느 창녀의 죽음> <죽음의 도시> <한국 국민에게 고함(3권)> <피아노 살인> <최후의 밀서> <국제열차 살인사건(3권)> <형사 오병호> <슬픈살인(4권)> <불타는 여인(2권)> <홍콩에서 온 여인(2권)> <버림받은 여자(2권)> <제3의 사나이(2권)> <코리언 X파일(2권)> <얼어붙은 시간> <나는 살고 싶다> <죽음을 부르는 소녀> <서울의 황혼> <미로의 저쪽(2권)> <안개 속에 지다(2권)> <고독과 굴욕> <회색의 벼랑> <제3의 정사> <비련의 화인> <붉은대지(4권)> <서울의 만가(2권)> <가을의 유서(4권)> <세 얼굴을 가진 사나이(2권)> <비밀의 연인(2권)>등 총 40여 종의 작품에 무려 80여 권의 책을 발표했다.
목차
- 경찰관(警察官) (1969)
17年 (1971)
슬픔 (1972)
어느 창녀의 죽음 (1974)
낫 (1974)
사형집행(死刑執行) (1974)
습지식물(濕地植物) (1975)
金 교수님의 죽음 (1976)
소년(少年)의 꿈 (1977)
책 속으로
밤새 야근을 한 탓인지 그의 몸은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요즈음 들어서 그는 갑자기 자신의 육체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앉아 있을 때나 서 있을 때나 피로는 항상 그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는 경찰서 뒤뜰로 천천히 걸어갔다. 뒤뜰에는 적어도 매일 한 구(一具) 정도의 변사체가 운반되어 오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그는 거기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버릇이 있었다. 시체가 들어와 간단한 조사와 검시가 끝나면 이윽고 그것은 시(市) 관리의 시체실로 옮겨져 며칠 동안 주인을 기다리다가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곧장 화장터로 가든지 아니면 대학병원에 염가로 팔려 실험대 위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시체를 다루는 사람들의 솜씨는 언제나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그 표정들은 메마를 대로 메말라 감정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 대개 이러한 일들은 아침 일찍 일어났고, 일이 끝나면 그들은 흡사 먼지를 털듯이 요란스럽게 해장국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시체는 가마니에 덮인 채 뒤뜰의 담 밑에 버려져 있었다. 가마니 끝으로 빠져나온 여자의 두 발을 보자 그는 그것들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두 발은 누가 양말이며 신발을 벗겨 가 버렸는지 모두 맨발이었다. 여기 들어오는 시체들은 언제 보아도 이렇게 하나같이 맨발이었다. 아마 시체를 나르는 인부들의 장난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눈이 아직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마니 위에는 벌써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신문팔이 소년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 온 것은 두 시간쯤 전이었다. 그동안 검시의(檢屍醫)가 다녀갔고, 몇몇 동료가 화장실에 들렀다가 한 번씩 뒤뜰을 거쳐 나오면서 시체 주위에 침을 뱉고, 아침부터 기분을 잡쳤다는 투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기름 바른 머리에 금빛 로이드안경을 끼고 바쁜 듯이 나타나는 검시의라는 작자는 종로 사창가에 산부인과 성병(性病) 전문의 병원을 차리고 있는데 어떤 연유로 그자가 시체 한 구당 5천 원의 검시료를 받는 전문 검시의로 추천되었는지는 몰라도 벌써 오래전부터 이 K 경찰서에 출입하고 있었다. 창녀를 상대로 해서 막대한 돈을 벌고 경찰서 간부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는 그 검시의를 오 형사는 매우 싫어했다.
결국, 그런 의식을 가진 자들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증오감마저 일곤 했다.
그는 가마니 끝을 들어 올리고 죽은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얼굴을 반쯤 덮은 숱이 많은 그녀의 머리칼은 죽은 사람 같지 않게 그 결이 곱고 부드러워 보였다.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가라앉은 얼굴은 머리칼에 덮인 탓인지 인형처럼 단순하고 작은 모습이었다. 콧등과 뺨 위에 뿌려져 있는 몇 개의 주근깨가 불현듯 그에게 서글픈 친근감을 안겨 주었다. 온 얼굴에 흡사 해진 피부처럼 눌어붙은 값싼 화장기만 없었더라도 이러한 감정은 좀 덜했을 것이다. 화장은 눈 주위, 특히 눈두덩 위에 가장 많이 몰려 있어서 얼른 보기엔 진보랏빛의 부스럼 딱지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잘못된 눈 수술을 가리기 위하여 거기에 유난히 정성을 들인 것이었다. 그 두터운 화장기 밑에는 양쪽 모두 성형수술의 부작용이 가져온 상처가 그대로 굳어 있었다. 아마 소녀는 쌍꺼풀 수술을 했던 것 같았다. 그는 가마니를 더 젖혀 보았다. 소녀는 빨간 털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소녀의 몸은 얼굴보다 전체적으로 큰 편이었으나 몹시 말라 있었다. 늙은이처럼 앙상한 손이 각을 이루면서 눈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다른 한쪽 손은 배 위에 놓여 있었는데 흰 눈 때문인지 다섯 개의 긴 손톱에 칠해진 매니큐어 빛이 유난히 빨갛게 돋아 보였다. 그것은 죽은 후에 칠해진 것처럼 매우 생경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죽은 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최후의 감정, 끝없이 굴러 떨어져 버린 고독과 주검의 찌꺼기 같기도 했다.
출판사 서평
안개처럼 스며드는 아픔과 비애!
한국 최고의 단편문학의 정수!
한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한없이 깊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전편을 통해 안개처럼 스며든다.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까지 파고드는 작가의 심오한 세계에서 가슴 저미는 비애와 따뜻한 휴머니즘을 동시에 느끼게된다.
김성종의 초기 순수 단편들은 한국 최고의 단편문학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놀랍고 섬뜩할 정도의 비극미를 추구하는 작가 김성종,
민중들의 처절한 삶을 그린 고독과 허무의 극치!
이 작품집에는 김성종 등단 초기의 주옥 같은 중 단편소설 9편이 수록되었다.
모든 작품에는 작가가 겪은 어둡고 고통스러운 삶의 괴적이 고독과 허무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전후 한국 사회의 이면을 예리한 시각으로 가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집은 비극문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김성종 문학의 걸작들이 분명하다.
<책속으로 추가>
거센 바닷바람에 판잣집은 통째로 들썩거리고 있었다. 실내에는 손님으로 그들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주모는 구석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는 바람 소리에 놀라 눈을 뜨곤 했다.
“타살입니까?”
하고 백인탄은 물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상당히 겁먹은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범인은 잡혔습니까? 도대체 누가 죽였습니까?”
그는 확실히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그 자신이 범인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공포인 것 같았다.
“모두가 범인이오. 당신도 춘이를 죽였고 나도 춘이를 죽였소.”
“네? 뭐라구요? 제가 춘이를 죽였다고요? 하하하, 생사람 잡지 마십시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허허허.”
청년은 기묘하게 웃음을 흘리면서 안주도 없이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쌍놈의 계집애, 어쩐지 그날도 질질 우는 게 이상하더라니, 난 나한테 반해서 그러는 줄 알았지. 처녀 귀신은…….”
“개 같은 자식!”
오 형사는 벌떡 일어서면서 청년의 얼굴을 후려쳤다. 탁자와 함께 뒤로 쿵 하고 떨어진 청년은 코피를 쏟으면서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 형사는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주모에게 술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밖은 한 걸음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어둠은 대지와 하늘을 온통 집어 삼킨 채 끝없이 퍼져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눈보라 속을 그는 바다 쪽으로 주춤거리며 걸어갔다. 그리고 개펄을 막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둑 위에 웅크리고 앉았다.
지난 일요일 밤, 백인탄이 일을 치르고 떠나가 버린 뒤 춘이는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으리라.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로 고무신을 끌면서…… 그렇지 약방으로 갔겠지. 그녀는 이 약방, 저 약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수면제를 사 모은 다음 아마 그것을 하나하나 삼키면서 눈 오는 밤거리를 헤매었으리라. 밤이 깊어 감에 따라 정신이 흐려지고 몸이 얼어 버린 그녀는 마침내 길 위에 쓰러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비밀을 자기의 몸과 함께 눈 속에 묻어 버렸으리라. 그것이 그녀가 취할 수 있었던 마지막 예의(禮儀)였겠지. 오 형사는 춘이의 주검이 하얗게, 아주 하얗게 변해 가고 있는 것을 보는 듯했다. 이제 남은 것은 종 3의 진이 엄마나 포주로부터 춘이의 성이 백가(白哥)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는 방파제를 두드리는 성난 바다의 물결이 썩어 가는 이 대지를 깨끗이 쓸어 가 버리기를 실로 간절히 기원하면서, 그녀를 죽인 조국을 증오했다.
기본정보
ISBN | 9788972655725 | ||
---|---|---|---|
발행(출시)일자 | 2012년 09월 25일 | ||
쪽수 | 360쪽 | ||
크기 |
153 * 224
* 30
mm
/ 490 g
|
||
총권수 | 1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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