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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 조희룡

테마한국문화사 12
이선옥 저자(글)
돌베개 · 2017년 0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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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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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 조희룡』은 뛰어난 문장가이자 전문 예술가의 삶을 살다간 우봉 조희룡(1789~1866)의 독특한 생애와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19세기라는 변화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문인 예술가의 모델을 창시한 선구적 개인으로서 조희룡을 재조명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선옥

저자 이선옥은 전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로 석사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회화사에 관심을 갖고 사군자화를 비롯한 문인들의 그림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대우재단 연구원을 지냈으며, 아주대, 명지대 등 여러 대학 강사를 거쳐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HK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 호남 서화 연구에 매진하면서, 전남 국제수묵 프레비엔날레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호남의 감성으로 그리다』(전남대학교출판부, 2014), 『사군자, 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돌베개, 2011), ?선비의 벗 사군자?(보림출판사, 2005), 『한국의 미술가』(공저, 사회평론, 2006) 등이 있다.

목차

  • 새 시대를 개척한 예술혼|저자의 말
    The Artistic Soul Pioneers a New Generation|Preface

    1부 조희룡의 삶

    1 조희룡의 시대, 19세기
    변화와 역동의 시대를 살다|동요하는 신분제, 떠오르는 중인계급|청나라 학문과 문물의 수용|서화계에 분 새로운 바람
    2 여항문인이자 전문 예술가
    명문가의 후손, 그러나 여항인|물가에 살며 뱃놀이를 즐기다|자호字號에 담긴 삶과 철학|당호堂號와 인장印章에 새긴 서화예술의 지향점|장수의 비결은 매화와 난|붉은 난이 뜰에 가득한 꿈|서화와 골동을 수집하는 취미|명산대천에서 문필의 기氣를 구하다|헌종 임금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다
    3 유배, 일생의 가장 큰 시련
    김정희의 복심腹心으로 임자도에 유배되다|고뇌와 적막함의 나날들|임자도의 삼절을 즐기다|제자들과 나눈 각별한 정|운하雲霞와 같이 찬란한 괴석에 빠지다|자화상으로 나를 대신하오
    4 문文과 예藝로써 사귄 이들
    청년 시절의 벗들|평생의 지기, 벽오사 동인들|소치 허련과 밤새 그림을 논하다|고람 전기, 나이를 뛰어넘은 망년지교忘年之交|당대 문인사대부들과의 사귐
    5 먹을 다루는 세계의 우두머리
    추사의 제자로 수련하다|우봉, 추사와 쌍벽으로 나아가다

    2부 조희룡의 예술

    1 화단畵壇을 물들인 매화
    매화벽梅花癖, 매화를 향한 지극한 사랑|조희룡만의 매화가 탄생하기까지|미친 듯이 칠하고 어지럽게 긋다|단 두 번의 붓질로 살아 움직이다|신선의 단약을 삼키고 피어난 꽃, 홍매|여러 폭 병풍에 펼쳐진 기굴한 홍매화
    2 먹을 흩뿌려 풀처럼 자유로운 난
    난을 칠 때는 글씨 쓰듯이 하라|천하의 수고하는 이를 위로하고자|기쁜 듯 난을 그리다|흙 기운이 깊어 아름다운 난
    3 분방하고 기세당당한 대나무
    성난 기운으로 묵죽을 그리다|빈 산의 만 그루 대나무가 모두 나의 스승이니|8구름 위로 치솟는 듯한 필치로 그리다|먹으로 그린 가을 색
    4 은일隱逸의 이상을 추구한 산수
    산수화를 읽는 것은 산수를 보는 것과 같은 경지다|나는 법이 아닌 가슴속의 뜻을 그린다|종횡으로 붓을 휘둘러 외로움을 쏟아내다|서옥의 주인처럼 살고 싶다|눈 같은 꽃향기의 바다에 빠지다
    5 추하고 괴이하게 그린 돌
    괴석의 기이함이 눈을 즐겁게 한다|묵점을 흩뿌려 흉억胸臆을 그려내다|고목과 죽석으로 수壽를 기원하다|장수를 기원하는 나비
    6 조희룡 회화미의 양면성
    담淡의 미감|격동激動의 미감

    3부 조희룡의 글과 생각

    1 그림에 대한 생각과 기록
    화가와 화적畵籍에 대한 인식|그림의 가치는 뜻을 기탁하는 데 있다|시·문·서·화는 이치가 하나이다|신분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다|수예론手藝論, 재능은 손끝에 있다|그림 재능은 천예天倪에 따른다|나는 누구에게도 속한 바 없다|명성에 매달리지 말고 조예造詣를 보라
    2 조희룡이 남긴 시문詩文
    살아온 길을 기록한 시詩와 문文|벽오사 동인들과의 모임을 기록하다|중인들의 전기, 『호산외기』|『일석산방소고』와 『화구암난묵』|『한와헌제화잡존』과 『우해악암고』|『수경재해외적독』과 회인시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이 넘쳤던, 근대적 시각의 여항문인화가
    - 조희룡 연구와 평가

    부록

책 속으로

둥근 창 젖혀진 커튼 사이로 한 인물이 앉아 있다. 마주한 낮은 책상에는 책갑이 여럿 포개져 있고, 목이 긴 병에는 매화 한 가지가 촛불처럼 봄밤을 밝힌다. 향기 그윽한 찻잔을 앞에 놓고 기대 앉아 매화 시를 읊조려본다. “기름불 지글거리는 명리名利 속을 뚫고 나와 매화와 함께 지내노라니 철석鐵石 같은 마음이 모두 꽃 기운이라네.” 글을 읽다 매화에 빠져 그림을 그린 지 수십 년. 가슴을 울린 매화는 시가 되고 난이 되고 돌이 되었다. 풍족한 삶, 그저 즐기고 살 수도 있었지만 문자를 아는 사람의 소임 다하려다 인생의 큰 굴곡을 겪었다. 후회는 없다. 한 시대가 바뀌는 데 나의 예술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다면. 봄바람에 매화향이 서재를 감싼다. - 1부. “변화와 역동의 시대를 살다” 중에서. 본문 19쪽

이처럼 당대 사대부들과 두루 사귐을 가졌던 조희룡의 서화는 청나라에도 알려졌다. 1860년 동지정사冬至正使로 연행했던 신석우申錫愚는 당시 청나라의 이름난 서가書家인 정공수程恭壽를 만났다. 정공수는 신석우에게 조희룡이 그린 부채그림을 보여주며 조희룡에 대해 물었다. 이에 신석우는 정공수에게 “그는 김정희의 고족高足(제자를 높여 부르는 말)으로, 추사 거세去世 후에 오직 이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고 답하였다. 당시 화단에서 조희룡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기록이다. - 1부. “당대 문인사대부들과의 사귐” 중에서. 본문 115쪽

조희룡은 스스로 예술세계에 점점 몰입해가는 과정으로, 절정에 이른 충동과 격정을 ‘미친 듯이 칠하고 어지럽게 긋는다.[狂塗亂沫]’는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 ‘광도난말’로 대변되는 절정의 순간이 지나면, 점차 권태와 잠과 꿈이라는 환각적인 상태에 이르러 나비처럼 훨훨 날아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조희룡의 회화미는 크게 ‘무아의 경지’ 즉 ‘담淡’의 미학과 ‘광도난말’로 대변되는 ‘격동激動’의 미학을 표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담의 미와 격동의 미는 그의 감성 기저에 있는 양면성이며, 조희룡 회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주요 심미관이다. - 1부. “6 조희룡 회화미의 양면성” 중에서. 본문 267쪽

조희룡은 매화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벽癖이 있었다. 매화를 좋아하여 수십 그루 심고 가꾸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그린 매화 병풍을 둘러치고, 매화를 읊은 시가 새겨져 있는 벼루와 먹을 사용했으며, 매화 시를 지어 큰 소리로 읊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차를 마셨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거처를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 이름 짓고, 호號도 ‘매화를 좋아하는 늙은이’라는 뜻으로 매수梅?라고 하였다. 매화를 유난히 좋아하였던 만큼 매화 그림 또한 다양한 형식으로 즐겨 그렸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만 해도 30여 점이 넘어 한 작가로서는 적지 않은 매화도가 전한다. - 2부. “매화벽梅花癖, 매화를 향한 지극한 사랑” 중에서. 본문 132쪽

도가의 단약으로 상징되는 붉은색에 대한 또 다른 연상으로, 같은 그림의 화제에 “홍로주紅露酒(붉은색 술) 한 잔이 있으면 이 중 7분分은 매화에게 주고 3분分은 남겨 한서漢書를 보는 데 쓰는데, 이때에도 책을 펴면 먼저 「매복전梅福傳」을 읽는다.”고 하였다. 홍로주를 마시고 그리니 자연 홍매화가 그려졌다는 멋진 표현이다. 또한 매화를 그리고 남은 여력으로 한나라 책을 보는데 그 책들 중에서도 벼슬을 버리고 신선의 도를 얻었다는 매복의 전기 「매복전」을 읽는다고 하였다. 단약을 통한 선가의 불로장생 사상과 홍로주라는 붉은 물방울이 주는 영험한 상징성을 동시에 활용해 홍매를 표현하려 한 것이다. - 2부. “신선의 단약을 삼키고 피어난 꽃, 홍매” 중에서. 본문 154-155쪽

이렇듯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창적인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은 예술세계에 몰입하는 전문가의 의식으로 이어졌다. 그는 예술세계에 몰입할 때의 충동과 격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검속檢束이 한 번 변하여 환락歡樂에 이르고, 환락이 변하여 취정醉情에 이르고, 취정이 변하여 글씨에 이르고, 글씨가 변하여 그림에 이르고, 그림이 변하여 돌에 이르고, 난에 이르고, 광도난말狂塗亂抹에 이르고, 권태에 이르고, 잠에 이르고, 꿈에 이르고, 나비의 훨훨 낢에 이른다.” - 3부. “나는 누구에게도 속한 바 없다” 중에서. 본문 304쪽

출판사 서평

매화 화가이자 ‘19세기 묵장墨場의 영수領袖’라 불린 조희룡
조선 회화의 근대를 연 자유와 격정激情의 예술세계

19세기 여항문화계의 리더,
조희룡의 삶과 작품 그리고 문학세계

이 책은 뛰어난 문장가이자 전문 예술가의 삶을 살다간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1789~1866)의 독특한 생애와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19세기라는 변화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문인 예술가의 모델을 창시한 선구적 개인으로서 조희룡을 재조명한다. 그는 19세기 중인들의 전기집(『호산외기壺山外記』)을 최초로 엮어냄으로써 여항인으로서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을 드러냈으며, 다수의 시와 문장을 통해 내면세계를 가감 없이 표출하였고, ‘수예론手藝論’ 등 기존에 없던 독보적인 서화관을 선보였다. 서화가로서 그는 사군자와 괴석 그림에 특히 능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매화 화가’로 불릴 만큼 매화를 좋아하고 잘 그렸으며, 파격적인 매화 그림으로 당대를 풍미함은 물론 매화 그림의 역사를 새로 썼다.

조희룡은 추사 김정희에게 서화를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고, 김정희의 복심腹心으로 억울한 유배를 다녀오기도 했으며, 말년에는 김정희의 복고적이고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성향과 대비되는 매우 새롭고 독창적인 예술관으로 중인층의 문예계를 주도했다. 19세기 문예계에서 그의 영향력과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기록으로, 조선시대 서화가들의 인명사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쓴 오세창吳世昌은 그를 “묵장의 영수” 즉 “먹을 다루는 세계의 우두머리”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19세기를 선도한 문인 예술가로서 우리가 조희룡을 기억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가 ‘그림의 독창성’과 ‘화가의 개성’을 중시하고 스스로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이 넘쳤던, 최초의 근대적 시각의 전문 예술가였다는 점이다.

조희룡이 매화 화가라면 이 책을 쓴 저자 이선옥은 매화 그림 전문가다. 「조선시대 매화도 연구」(2004)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돌베개 테마한국문화사 시리즈 중 하나로 매화를 포함한 사군자를 다룬 『사군자, 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2011)을 펴낸 바 있다. 또한 오랫동안 호남 지역에 머물며 그 지역의 예술에 집중했던 그는 전남 신안 임자도에 유배되었던 조희룡에게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세기 문인 예술가로서 조희룡에 대한 연구와 인식은 그간 김정희라는 한계, 조희룡이 가졌던 신분의 한계, 일제강점기라는 문화 단절이 가져온 시대적 한계에 부딪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였다. 이 책은 1980~1990년대 중인문학과 조희룡 회화에 대한 연구, 1999년 번역 출간된 조희룡 전집 등의 성과 위에 매화, 사군자 그림, 조희룡, 남도 예술에 천착했던 필자의 오랜 연구 성과가 집적되어 이루어졌다. 조희룡을 좀 더 깊이, 좀 더 종합적으로 들여다본 이 책을 통해, 19세기 서화계를 이끌었으며 자유와 파격의 새로운 회화세계를 이룩한 근대회화의 개조開祖 조희룡에 대한 진정한 다시 보기와 바로 보기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들 학이 가을 구름을 타고 펄펄 나는 듯하다 - 우봉 조희룡

조선의 19세기는 문예 부흥기라 불리는 18세기와 서구 문물이 들어오고 일제에 의한 식민지를 경험한 20세기 초 사이에서 강한 변화의 회오리가 몰아친 시기였다. 조선 사회의 근간이었던 엄격한 신분제가 동요하고 청의 학문과 문물이 서학과 함께 유입됨과 동시에, 상업자본주의 발전, 상품화폐경제 확대, 소비문화 확산 등 중세적 신분사회에서 근대적 시민사회로 옮겨가는 과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19세기를 살았던 조희룡은 사대부 가문 출신의 문인화가이면서 신분이 낮은 중인 계층의 여항인이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와 함께 신분적 한계와 불평등에 따른 잠재된 내면의 울분, 60대 초반에 겪은 유배라는 사건은 그의 문학과 예술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희룡의 50대 이전 기록 즉 성장과정이나 화가로서의 입문 등 청, 장년기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은 어려서부터 창백하고 말랐으며 키가 컸다고 한다. 그는 14세에 어떤 집안과 혼담이 오갔는데 허약하게 생겨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하여 퇴짜를 맞았다. 그때부터 그에겐 ‘장수’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듯하다. 이후 그는 건강을 특별히 챙겼으며 유배 간 임자도 섬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3년 간 닭을 몇 백 마리나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가 유배 갔다가 서울로 돌아온 것은 63세 때였는데, 60대 이후의 기록에서 그는 매우 유쾌하고 활달한 인물로 보인다. 그가 중심이 되어 활동했으며 평생 뜻을 함께했던 지기들과의 모임인 벽오사碧梧社 모임 관련 기록에 “얼굴을 돌리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마구 떠드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하였으며, 모임을 기록한 『오로회첩』에는 “선선하게 흥이 나서 한 폭을 펼쳐 난을 그리고 시를 쓰는 자”로 묘사되어 있다.

연지빛 홍매화를 그리며 도교의 불사약不死藥을 뜻하는 단약丹藥과 연결시키고, 매화 한 송이 한 송이를 부처의 현신이라 했던 그의 작품에는 도교와 불교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말년에 그는 날마다 향을 피우고 『유마경』을 외우며 마치 불가에서 수행하는 것처럼 지냈다고 한다. 그와 절친했던 벗 나기羅岐는 노년의 그의 모습을 “늙을수록 더욱 건강한 조단로趙丹老는 마치 들 학이 가을 구름을 타고 펄펄 나는 듯하다.”고도 하였다. 유배라는 굴곡을 겪기는 했지만 그 이후의 삶은 늘 새로움과 자유로움의 추구였으며 맑게 수양하고 서화를 즐기며 신선처럼 살았던 듯하다. 그는 78세로 장수하였는데, “모든 잡념을 끊고 득실을 한결같이 보고 영예와 모욕을 잊은 채, 여유 있고 한가롭게 애오라지 한 생애를 마쳤다.”고 하였다.

추사의 제자에서 당대의 쌍벽으로 - 조희룡과 김정희

조희룡은 헌종의 총애를 받아 임금으로부터 금강산 실경을 그려오라는 명을 받기도 했고, 궁궐 누각에 문향실이라는 편액을 썼으며, 매화 시를 지어 올린 적도 있다. 또한 회갑에 헌종으로부터 벼루와 책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그런 왕의 총애는 헌종의 요절과 철종 즉위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당시의 예송 논쟁에서 김정희와 권돈인이 탄핵되자, 김정희의 복심腹心으로 지목된 조희룡도 덩달아 유배를 가게 된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실록에 적힌 조희룡의 죄목에는 “장래의 화禍가 반드시 요원燎原을 이룰 것이니 어찌 미천한 기슬??(서캐와 이)의 유類라 하여 미세한 때에 방지하여 조짐을 막는 도리를 소홀히 하겠습니까?”라 한 부분이 있다. 신분제가 동요하고는 있었으나 당대 조정대신들은 조희룡과 같은 중인들을 천시했고,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날로 성장해가는 여향인의 세를 두려워하여 그 싹을 제거하려는 어떤 의도도 엿보인다.

조희룡은 당대 문예계를 주도했던 추사 김정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의 예술세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림을 배우던 청장년 시절에는 김정희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문인들의 미의식을 그림에 적용하였고, 중국과 빈번히 교류했던 김정희를 통해 중국의 앞선 문물과 지식, 새로운 화풍을 접할 수 있었다. 김정희의 복심으로 유배 갈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으나 이들이 언제 어떻게 만나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더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두 사람 각각의 문집에도 의외로 상대방에 대한 언급은 미미하다. 다만 조희룡의 글을 통해 그가 젊은 날 김정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를 다녀 온 후에는 여항의 서화가들을 이끌고 김정희에게 나아가 서화평을 받았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조희룡과 김정희는 몸담고 있는 신분 배경뿐 아니라 타고난 기질도 달라 예술에서 차이를 보였다. 조희룡은 김정희가 추구하는 전통적인 남종문인화의 정수를 디딤돌 삼아 자신만의 새로운 회화세계를 구축하여 추사와는 다른 길을 갔다. 조희룡은 1849년~1850년 일곱 차례에 걸쳐 화가 8인과 서예가 8인을 이끌고 추사 김정희를 찾아가 서화 품평을 받았다. 1849년은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에서 돌아온 다음해이자, 조희룡으로서는 회갑을 맞는 해였다. 조희룡이 주도한 당시의 서화 품평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조희룡이 초기에는 김정희의 문하에서 성장하였을지라도 김정희의 유배 기간 동안 나름대로 여항화가들의 좌장으로서 세력을 키웠을 가능성을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희룡이 그림을 그려 품평을 받지 않고 이들 서화가의 작품에 시를 써 격려했다는 것은 이들 사이에서 조희룡의 위치를 확인시켜준다. 조희룡에게 김정희는 선망과 극복이 대상이면서도 각자의 세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정한 라이벌이었을 것이다.

매화를 사랑하여 향설해香雪海에 빠지다 - 조희룡과 매화 그림

서화가로서 조희룡은 사군자와 괴석 그림을 특히 잘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매화 그림에 뛰어났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했던 매화 그림 분야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스스로 매화 그림에 재력才力 즉 하늘이 내린 소질을 가졌다고 생각하였는데, 묵죽에 재력이 있는 청대 화가 정섭鄭燮의 법을 배우기 쉽지 않듯이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겠다고 하였다. 조희룡의 독보적인 매화도 형식 가운데 하나는 세로로 긴 화폭에 굵고 거친 줄기가 마치 용이 승천하듯 하늘로 솟구치는 힘차고 강렬한 매화 그림이다. 그는 이런 형식의 매화도에 실제로 용 그리는 법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매화를 그리는데 얽히고 모인 가지와 만 가지 꽃의 향배 정할 곳에 이르면, 문득 이 생각이 떠올라서 크게 기굴(奇?)한 변화가 있게 한다. 용 그리는 법을 매화 그림에 도입했으니, 그림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은하수를 보는 듯 막연하여 그 뜻을 알기가 어렵다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희룡은 또한 홍매를 즐겨 그렸다. 단지 붉은 안료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가지마다 만발한 붉은 꽃을 그려 화려한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홍매는 조희룡 매화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이전 시대에는 거의 없었던 19세기 매화 화풍의 가장 큰 변화이다. 그의 홍매에는 앞서 말했듯 도교, 불교적 사상과 함께 특히 소외되었던 일반 대중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렸다는 독특한 효용론까지 담겨 있다. 조희룡의 또 다른 독보적인 매화 형식으로 전수식 매화도 병풍이 있다. 이는 ‘매화 한두 그루를 여러 폭 병풍에 펼쳐 그리는 형식’으로, 조희룡은 병풍에 그린 크고 기굴奇?한 매화를 불상의 ‘장육존상’에 비유하여 ‘장육매화丈六梅花’라 하고 이는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조희룡은 이러한 형식의 대형 매화도 병풍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그렸고, 이후 세대 화가들은 그의 영향을 받아 그렸다.

조희룡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간송미술관 소장 〈매화서옥도〉이다. 북송 대 은일 시인 임포林逋의 고사를 그린 그림으로, 그에 관한 시가 읊어지고 관련 그림이 다수 그려진 것에 비하면 매화서옥도는 18~19세기 작품이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개자원화전』과 같은 화보의 영향이 있었고, 조희룡의 경우 김정희가 소장하고 있던 청대 화가 장심張深의 〈매감도梅龕圖)〉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매화를 그의 가장 대표적인 화법인 광도난말狂塗亂沫, 즉 ‘미친 듯이 칠하고 어지럽게 긋는다.’는 붓질로 극적으로 표현했으며, 다다르고 싶은 삶을 그린 이상향의 표현이자 자화상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작품에는 향설해香雪海, 즉 ‘매화 향기와 눈 같은 꽃이 바다와 같다’는 광경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흐린 겨울의 적막한 분위기를 압도하는 눈처럼 흩날리는 매화의 풍치는 화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조희룡의 예술적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여항인들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조희룡은 19세기 여항문인화가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그려진 매화서옥도의 유행을 이끌었다. 이는 단순한 화재畵材의 유행이 아니라 여항화가들의 상승된 문인의식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중인들의 전기집에서 그리움의 시[懷人詩]까지 - 조희룡의 글

조희룡은 그림으로 이름을 날리기 이전에 뛰어난 문장가로 유명했다. 그가 남긴 시와 편지, 산문, 화제畵題 등을 엮은 문집이 여럿 전하는데, 그중에서도 최초의 중인 전기집인 『호산외기』는 중인문화를 이끌고 중인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조희룡이 남긴 그들에 관한 기록이자 역사의식의 산물이다. 조희룡은 청나라 화가들의 전기인 장경長庚의 『국조화징록國朝畵徵錄』을 접한 뒤 우리나라 역대 화가들의 전기를 쓰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자, 중인들의 전기집을 썼다. 100년 이내의 인물들로 언행, 문장, 재예才藝 등에서 특별한 업적이 있는 중인 42명의 자취를 엮어 후세에 길이 전해지길 바랐다. 그는 금강산의 명승들을 비유하여 “이름난 봉우리와 이름 없는 언덕 중에도 빼어난 것들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다만 미처 잘 알려지지 않았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는데, 이와 같이 여항의 빼어난 인물들이 모두 “적막한 구석에서 초목처럼 시들어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당대에는 비록 이름 없이 죽어가지만 후대에 능히 그 빛을 발하게 하고자 기록을 남긴다고 하였다.

『일석산방소고一石山房小槁』는 유배 가기 전 자신의 거처였던 일석산방에서의 한가로운 생활의 단면들을 적은 45수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시이다. ‘화구암(畵鷗?)’은 임자도 유배지에서 주로 쓰던 당호로 동그스름한 지붕의 작은 초막을 이르는 말인데, 글자 그대로 하면 ‘그림과 갈매기가 있는 작은 집’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지은 수필집 이름도『화구암난묵畵鷗??墨』이다. 이 책은 유배지의 황량함 속에서 고독한 예술가의 눈을 통해 본 당시 화풍과 화단의 동향, 예술에 대한 인식을 담은 산문집이다.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은 그림에 대한 제사 즉 화제畵題에 쓰인 문구만을 따로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화제에는 서화에 대한 조희룡의 견해가 그 어느 글에서보다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제시되어 있어, 그의 예술관과 작품을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 소중한 자료이다.

『우해악암고又海岳庵稿』에는 신해년(1851, 철종 2) 유배 길에 오르던 때부터 3년째 되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금강錦江을 건너던 시점까지의 다양한 경험을 적은 시 192수가 실려 있다. 유배 길의 고달픔과 유배지에서의 고독한 심사, 집 소식을 기다리는 초조함과 벗에 대한 그리움, 고독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섬의 경승, 괴석에 관심을 보이는 글이 대부분이다. 『수경재해외적독壽鏡齋海外赤牘』은 임자도 유배 기간 중 쓴 편지를 모아 훗날 자신이 따로 편집하여 만든 책이다. 31명에게 보낸 글 60편이 들어 있다. 그의 편지는 단순히 소식을 주고받은 문안 편지가 아니라 한 편 한 편 풍부한 시적 상상력이 농축된 문학작품이다. 먼 바다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던 만큼 적막한 자신의 처지를 다채로운 수식을 써 표현하였고, 객지에서의 생활 정취와 친구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가족과 제자에 대한 애틋한 정감 등을 담았다.

조선 회화의 진정한 근대를 열다 - 조희룡의 예술관

조선시대 화가 가운데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예술적 취향과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밝힌 경우는 드물다. 특히 조선시대 화가가 자신은 화가이고, 화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재능은 특별히 어떤 분야에 있고, 화가들은 각자 독창적인 자신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 조희룡은 자신의 문집과 그림 위에, 예술을 하게 된 동기와 스스로의 재능, 이를 저해하는 사회적 위치에 대한 갈등, 그리고 기존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과는 다른 그만의 파격적인 예술관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스스로 화가임에 자부심을 느꼈고 화가의 개성과 독창성을 중시한 그의 글은 조선에서 진정한 근대적 개념의 화가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조희룡에게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화가’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했을까? 또한 그는 그림을 볼 때 ‘무엇을 어떻게’ 보았을까?

조희룡은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심미적 경향을 보인다. 서화를 유교적 도의 구현체로 보는 유교적 관점이 아니라, 주변의 자연이나 의식주처럼 그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했다. 서화는 기쁨을 주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고통을 극복해가는 힘이 되기도 하며 감정을 정화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병을 낫게 하고 수명까지 늘게 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그림이 자신뿐 아니라 수고하는 자를 위로하기 위해 그린다고 하여, 오늘날 미술이 주는 대중적 기능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화가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였는데, “회화와 같이 예술에 속한 일은 학문과 정치의 밖에 있어서, 학자나 고관대작이 노력한다고 해도 그것을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며 화가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그러한 전문성은 화가가 갖는 재력(才力), 손재주, 천예(天倪)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문장과 학문의 기운이 넘치고 인품이 뛰어나고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얻을 수 없는 높은 경지의 것으로 보았다. 이는 그림을 ‘말기末技’나 ‘말예末藝’로 보고 그림에서 문자향과 서권기를 강조했던 당대 문인들의 일반적인 회화관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가치관인 독서와 학문의 가치와 함께, 하늘이 내린 재능에 노력이 따라야 함도 강조했다. 그는 그림을 볼 때도 옛 것인지 지금 것인지, 혹은 그것이 진품인지 안품?品인지에만 얽매여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고금, 진안, 작가 등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림 자체가 주는 감동을 먼저 받아들이며 그 조예가 깊은가를 살피라고 하였다. 또한 동시대의 그 누구도 옛날의 대가들처럼 훗날 역사적으로 크게 평가받는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당대 화가에 대해서도 공정한 눈으로 가치를 가늠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ISBN 9788971998236
발행(출시)일자 2017년 09월 20일
쪽수 392쪽
크기
177 * 226 * 23 mm / 844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테마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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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 조희룡
19세기 묵장의 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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