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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71996195(8971996196)
쪽수	192쪽
크기	154 * 194 * 15 mm /267g 판형알림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인문 > 한국문학론 > 한국고전문학 > 고전산문

조선의 대문호 혜환 이용휴가 선사하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장가는 단연 연암 박지원이다. 이런 연암과 쌍벽을 이룬 문장가가 조선에 있었다. 바로 18세기 문단의 거목 혜환 이용휴로, 정약용은 이런 혜환을 재야문형이라 별칭하였다. 『나를 찾아가는 길』은 이 거대한 인물의 소박하지만 철학적 깊이가 물씬 넘치는 글들이 담긴 《혜환잡저》에서 그의 대표적인 글 47편을 가려 뽑아 번역하고 평설을 단 책이다.

1부에서는 삶의 태도와 인식론, 혜환 관련 인물과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다면, 2부에서는 사회의식 및 시와 그림에 대한 견해 등을 주로 살펴본다. 각 작품의 제목을 내용에 따라 따로 달되, 번역문 아래 원제와 원문을 수록하여 원전으로 읽는 맛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용휴, 그의 삶과 글’이라는 해제를 수록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혜환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혜환의 글은 비교적 짧은 분량의 글 속에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글은 속세의 선비들을 울렸고, 수많은 사대부가의 문인들이 그에게 문장으로써 인정을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 심심하다고 느껴질 만큼 담백하지만 그 속에 노련한 문장가의 진지한 성찰과 나를 돌아보는 여유가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재야에서 써내려간 ‘참 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기록들을 읽어봄으로써, 함께 ‘참 나’를 찾아가는 철학 여행을 떠나볼 수 있다.

책머리에 - 혜환의 글을 다시 풀어 엮으며
해제 - 이용휴, 그의 삶과 글
발문 - 세 가지 만남

삶의 길, 죽음의 자세

상상 속에 그리던 삶
무엇에 빠질 것인가?
살구나무 아래 작은 집
조화로움에 대하여
잘 먹고 잘 살기
빛나는 곤궁함
내 동포 보기를 내 몸 보듯이
부끄러워서 안 부끄러운 사람
편안할 수밖에 없는 집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돌을 마주보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손자야 내 손자야
바로 이 사람
따르며 살리라
내 집에 세 들어 사는 나
나에게 돌아가기
우리 삶에 허락된 시간들을 위하여
자네와 한 시대를 산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네
끝내 지켜지지 않은 술 약속
한 염세주의자의 죽음
귀에 거슬리는 말을 이제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마실 가듯 그렇게 가시게나
절반만 살아도 온전한 한평생

세상 밖으로, 예술 속으로

가짜가 판치는 세상
선생님 질문 있어요
골치 아픈 먹물 놈들
임금에게 하는 충고
해서 고을 거지 이야기
최고의 이사
비웃는 자와 비웃음을 받는 자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네 개의 고을로 세상을 다 다니다
절반으로 전체를 읽다
기록을 다 믿는다면
두미호에 출몰한 용
괴상한 이야기에 대한 정말 괴상한 이야기
좋은 꽃은 빨리 시든다
겨울밤의 무지개와 날개 달린 푸른 호랑이
시인의 자리
진정한 소유
시인의 조건
그 시, 그 사람
예전에 쓴 것을 내던져라
옛것과의 단호한 결별
그림으로 더위 나기
환쟁이를 위하여

출판사 서평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룬 18세기 문단의 거목 혜환 이용휴
삶과 죽음, ‘참 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기록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장가는 단연 연암 박지원이다. 그의 대표작 『열하일기』는 조선을 넘어 현재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우리 고전 중 하나이다. 이런 연암과 쌍벽을 이룬 문장가가 조선에 있었다. 그것도 동시대인이다.
혜환 이용휴(1708~1782)는 실학자로 알려진 성호 이익의 조카다. 조부 대까지는 조정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남인계 실세였지만, 이익의 맏형인 이잠이 숙종의 친국 끝에 죽임을 당함으로써 역적의 집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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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돌아가기 fa**153 | 2019-06-06 | 추천: 0 |

나에게 돌아가기 나 그옛날 첫 모습은 순수한 천리 그대로였는데, 지각이 하나둘 생기면서부터 해치는 것들 마구 일어났네. 뭐 좀 안다는 식견이 천리를 해치고 남다른 재능도 해가 되었지. 타성에 젖고 인간사에 닳고 닳아 갈수록 그 속박을 풀기 어렵네. 게다가 다른 사람 떠 받드는 이들이 아무개 어른, 아무개 공 해가면서, 대단하게 끌어대고 치켜세워주니 몽매한 이들을 꽤나 놀라게 했지. 옛 나를 잃어버리고 나자 참 나 또한 숨어버리... 더보기

나에게 돌아가기

나 그옛날 첫 모습은
순수한 천리 그대로였는데,
지각이 하나둘 생기면서부터
해치는 것들 마구 일어났네.

뭐 좀 안다는 식견이 천리를 해치고
남다른 재능도 해가 되었지.
타성에 젖고 인간사에 닳고 닳아
갈수록 그 속박을 풀기 어렵네.

게다가 다른 사람 떠 받드는 이들이
아무개 어른, 아무개 공 해가면서,
대단하게 끌어대고 치켜세워주니
몽매한 이들을 꽤나 놀라게 했지.

옛 나를 잃어버리고 나자
참 나 또한 숨어버리고,
일을 위해 만든 일들이
나를 타고 내달려 돌아올 줄 모르네.

오래 떠나 있다가 돌아갈 마음 일어나니
마치 꿈 깨자 해 솟아오르듯.
몸 한번 휙 돌이켜보니
벌써 집에 돌아와 있구나.

주변의 광경은 달라진 것 없는데
몸의 기운 맑고 평화롭도다.
차꼬를 풀고 형틀에서 벗어나니
나 오늘 새로 태어난 듯!

눈 더 밝아진 것 아니고
귀 더 밝아진 것도 아니라,
하늘이 내린 밝은 눈 밝은 귀가
옛날과 같아졌을 뿐이로다.

수많은 성인이란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
나는 나에게 돌아가기를 구하리라.
갓난아기나 어른이나
그 마음은 하나인 것을

돌아와 보니 새롭고 특이한 것 없어
다른 생각으로 내달리기 쉽지만,
만약 다시금 떠난다면
영원토록 돌아올 길 없으리.

분향하고 머리 조아려
천지신명께 맹세하노라.
이 한 몸 다 마치도록
나는 나와 함께 살아가겠노라고. (페이지77~79)

이용휴(李用休, 1708~1782)는
벼슬하기를 포기한 채 일종의 전업작가로 재야에서 한 평생을 보냈고,
오랜 문학 전통을 묵수(墨守)하지 않고 해체하는 데 진력한 사람이다.
18세기 문학 변화의 최전선에 섰으며 개성적 산문의 창작을 선도한 선구자다.
그런 행보를, '옛것과 합치'하려고 애쓰지 말고 '옛것과 결별'하라고 밝혔다.
이 책에서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위의 시는 1부 인< 삶의 길, 죽음의 자세>에 나오는 일부이다.
2부 인<세상 밖으로. 예술 속으로>에는 다음과 같은 산문이 실렸다.
'해서 고을 거지 이야기'에서 나오는 글 중 뒷부분이다.
'...나는 그 말이 소박하고 정직하여 속임이 없다고 여겼다.
대대의 문벌을 떠벌이지 않는 것을 보건데 더욱 믿을만 하다.
아! 최씨는 진실로 높은 선비다.
그러나 덕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세상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거지 또한 좋은 사람이다. 궁하고 늙어서 죽게 되었으나 참되고 질박함을 잃지 않았다. 이제
거친 비탈 오랜 골짝에 숨은 선비, 형편없는 밭에서 근근히 살아가는 농부 가운데에도 사람이
있음을 알겠다. 이런 생각에 드러내어 기록해 둔다. 그 거지는 김 모이고 해서(海西) 어느 고을에 산다고 한다.

부분적인 시와 산문 일부를 통해서 혜환의 사상을 드러내고자 했으나 미홉하다.
혜환의 면면을 알고자 한다면 일독(一讀)을 권해 드리고 싶다.
혜환은 18세기에 숨겨진 보석이나 다름없다.

'산의 뼈는 돌이다' 도가 사상의 냄새가 없지는 않으나 혜환은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의 문학 연마에 필요한 부분이라면 어느 서적이든지 가리지 않고 두루 섭렵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혜환의 글에서 언뜻언뜻 드러난다.

이용휴가 남긴 짧은 글들에서는 함축의 묘미가 있다.
그와의 사이는 몇 세기의 공백이 있으나
아직도 그의 뼈에서 향기가 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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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역전 ky**83 | 2014-10-30 | 추천: 0 |

오늘, 미국으로 이민 간 직장 선배의 메일을 받았다. "제가 내년에 마흔 둘이 됩니다." 로 시작되는 메일에 대한 답장이었다. "마흔이 별거냐.." 라는 한 줄 뿐이었다. 한 줄, 답장을 보니.. 그냥 눈물이 핑 돈다. 그 한 줄에, 그냥 뭉클했다. 그러게, 마흔이 별거인가.. 왜 지금 이 시점에, 자꾸 옭아매질까.. 그래서 괜한 짜증이 나고 그래서 사람이 다가 오는 것이 싫고 그래서 자신감 있는 사람을 보면, 괜한 시기심에 눈을 가늘게 뜨고.. ... 더보기

오늘,
미국으로 이민 간 직장 선배의 메일을 받았다.
"제가 내년에 마흔 둘이 됩니다."
로 시작되는 메일에 대한 답장이었다.

"마흔이 별거냐.."
라는 한 줄 뿐이었다.

한 줄, 답장을 보니.. 그냥 눈물이 핑 돈다.
그 한 줄에, 그냥 뭉클했다.
그러게, 마흔이 별거인가..
왜 지금 이 시점에, 자꾸 옭아매질까..
그래서 괜한 짜증이 나고
그래서 사람이 다가 오는 것이 싫고
그래서 자신감 있는 사람을 보면, 괜한 시기심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러고 있던 나에게, 던지는 인생 선배님의 한 줄..
'마흔, 별거 아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다
우연히 읽게 된
<마흔의 역전>
시간에 옭아매인 사람과 역전을 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한 마음반 호기심반..으로
손에 잡아..
한 쪽, 한 쪽을 모두 읽었다.

긍정
끈기
기본
열정
신뢰
꿈
경제적 안정
가능성
등등...
여느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같은 시기,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의 조언이어서인지
한 글자, 한 문장이
평범하지 않게 다가온다.

우리가 어린 시절 배웠던,
거짓말을 하면 안되고, 다른 사람을 해치면 안된다는
마음 깊이 뿌리내린 양심처럼..
내 마음 아래 깊이 박혀 있던
긍정 끈기 기본 열정 신뢰를 토대로 한 꿈의 완성이..
이제야 나를 알은 체하냐고..
나는 처음부터 이 자리에 이렇게 이대로 있었노라고,
서운한 티를 낸다.
몰라주었던 그 마음에 마음길이 열려서였나...
그래서 였나....뭉클했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책이었다.
역전의 꿈을 이룬 분들께 존경과 박수를 드린다

이렇듯
필연과 다짐은 우연히 찾아오나 보다.
이렇듯 무심하게 찾아오는
필연과 다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야 하는 가 보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인가 보다. 닫기
짧은 몇 줄의 글이 며칠을 머리를, 아니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sa**nco | 2014-10-08 | 추천: 2 |

구곡동(현 체부동) 골목/11.10.18 한문학자 박동욱 교수와 송혁기 교수의 혜환 이용휴〔숙종34(1708년)∼정조6(1782년)〕의 산문선이다. 혜환의 한문 산문집 「혜환잡저」에는 338편, 그 외의 여러 문헌들에 남아 있는 29편. 모두 367편이 있다. 그 중 46편이다. 혜환은 조선후기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뤘던 문장가다. 남인계 명문가 혜환의 집안은 숙종32(1706년) 백부 이잠이 노론계의 부당함을 고하는 상소로 인해 숙정의 친국 중 죽어 역적의 집안으로 전락했으나, 경종2(... 더보기

구곡동(현 체부동) 골목/11.10.18

한문학자 박동욱 교수와 송혁기 교수의 혜환 이용휴〔숙종34(1708년)∼정조6(1782년)〕의 산문선이다. 혜환의 한문 산문집 「혜환잡저」에는 338편, 그 외의 여러 문헌들에 남아 있는 29편. 모두 367편이 있다. 그 중 46편이다.

혜환은 조선후기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뤘던 문장가다. 남인계 명문가 혜환의 집안은 숙종32(1706년) 백부 이잠이 노론계의 부당함을 고하는 상소로 인해 숙정의 친국 중 죽어 역적의 집안으로 전락했으나, 경종2(1722년) 신원되어 사헌부 종삼품 집의에 추증되며 역적의 집안에서 벗어났다. 숙부인 실학자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배워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나 노론의 집권으로 벼슬길에 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에만 힘을 쏟았다.
혜환의 아들 이가환이 채제공을 이어 남인 중 청남 계열의 지도자로 부상해, 정조의 신임을 받은 높은 벼슬에 올라 음보로 정삼품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나, 이가환은 노론계에 의해 천주교 괴수로 지목되어 순조 1(1801년)에 옥사했다. 명망에 비해 혜환의 글이 많이 남아 있지 않는 것은 이 동안 멸실된 것으로 추측된다.
혜환에게 문학은 영달을 위한 수단이 아닌 일상이었다. 혜환은 당대 30여 년을 문장가로서 근기 남인을 포함한 다수의 재야문인뿐 아니라, 이언진을 비롯한 여항문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다산 정약용은 「정헌묘지명」에서 “영조 말년에는 이름이 한 시대에 으뜸이 되었다. 무릇 탁마하여 스스로 새로워지려 하는 자는 모두 그에게 잘못을 바로잡았다. 몸은 포의의 반열에 있으되, 손으로는 문원의 저울대를 잡은 것이 30여 년이었으니 지금껏 없었던 일이다”며 혜환을 높이 샀다.

18세기 한문 문학가의 글이란 선입감에 부담을 갖고 책을 폈다. 하지만 첫 장 ‘상상 속에 그리던 삶’을 읽으며 그 우려는 말끔히 사라졌다. 혜환은 우연히 구곡동의 서씨와 염씨가 사는 곳으로 보고 자신의 소망을 글로 담았다. 두 사람이 살던 집은 자신이 마음으로 상상했던 그런 집 그리고 이웃이었다. “꼭 깊은 산속, 인적이 끊긴 계곡이 아니어도 좋다. 도성 안에서 외지고 조용한 곳을 택해 몇 칸짜리 작은 집을 짓는다. 방 안에 두는 것은 거문고와 책, 술동이, 그리고 바둑판이 전부. 돌벽으로 담으로 삼아 땅을 조금 개간한다. 적토에 아름다운 나무를 심어 좋은 새들을 부르고 나머지 땅엔 남새밭을 일구어 그 채소를 따다가 술안주 삼는다. 콩 시렁, 포도 시렁도 만들어 두어 그 그늘에서 더위를 식힌다. 처마 앞에는 꽃과 돌을 둔다. 꽃은 굳이 얻기 어려운 것을 구할 것 없이 사시사철 늘 묵은 꽃과 새 꽃이 이어지며 피는 것을 볼 수만 있으면 좋다. 돌은 굳이 옮겨 오기 어려운 것을 취할 것 없이 조그맣더라도 앙상하고 독특하게 생긴 것이면 좋다. 이웃은 뜻 맞는 친구 한 사람, 그 역시 얻기 나와 비슷하게 꾸며 두고 산다. 두 집 사이에 대나무를 엮어 사립문을 만들고 그리로 왕래한다. 난간 옆에 서서 부르면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신발이 벌써 섬돌에 이른다. 비바람이 아무리 심해도 왕래를 그치는 일이 없다. 이렇게 여유롭게 노닐며 늙어 간다.”
혜환이 소망한 집과 동네를 떠올리면 인왕산 자락 서촌의 어느 집이 그려진다. 방안의 앉아 있는 모습은 ‘포의풍류도’의 단원의 모습이었다. 단원은 영조21(1745년)생이고, 단원의 스승인 강세황가 교류가 있었으니 혜환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혜환이 소망한 집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로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구곡동은 지금의 서촌 체부동이다. 체부동의 역사는 조선건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집권사대부들이 사는 계획 마을 북촌이 만들어지고,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중인들이 사는 서촌이 생겼다. 서촌의 중심에는 체부동이 있었다. 그가 따르던 상당수의 실학자들이 이곳에 살았을 거다.
이 책으로 혜환이 살던 곳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추측컨대 혜환의 형이 살던 황화방(현 정동)과 구곡동(현 체부동) 사이에 살았을 것 같다. 체부동은 오래된 골목의 느낌이 좋아 한동안 즐겨 찾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며 혜환이 마치 서촌의 어느 골목에서 만난 인자하신 어르신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문득 3년 전 가을 붉은벽돌 골목 과꽃이 예쁘게 핀 정겨운 풍경이 떠오른다. 아마 혜환이 늘 곁에 두고 싶어 했던 풍경이 이 소박하지만 정겨운 풍경이었을 것 같다.

각 글은 원본, 번역, 그리고 부연 이야기 순이다. 원본이 그대로 실려 번역과 번갈아 보며 읽으면 원본의 맛을 느낄 수 있고, 그리고 번역을 읽으며 그 맛을 음미하고, 또 부연 이야기를 통해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자의 부연 이야기만으로도 멋진 글이다.

혜환의 글은 편안했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는 두 역자의 편안한 번역이 더 그렇게 느끼게 했음에는 분명하다. 혜환은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그리고 돌리지 않고, 거두절미하고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하지만 유교가 강조되던 시절, 매듭하나 따지던 시절, 기존의 사상과 관념을 뛰어넘는 혜환의 글은 당시의 글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 글이라도 해도 앞선, 깨인 분의 글이라 여겨질 정도다.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혜환의 짧은 몇 줄의 글이 며칠을 머리를, 아니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혜환은 당시는 물론, 지금도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고마운 분이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혜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두 역자에게 감사드린다.

읽으며 밑줄 그었던 구절이다. 원본과 번역을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그 중 몇 구절을 옮겨 적으며 마음에 다시 새긴다.

“구도란 다만 생각을 바꾸는 데 있으니, 생각이 바뀌면 모든 것이 이를 따르는 법이지(求道, 只在轉念, 念轉而無不隨者)”“그들과 경쟁하지 않고 그들에게 압도되지 않으니 절로 높아진다(不與競不受壓自爲高焉)”“남을 헐뜯는 자는 자신을 헐뜯는 것이고, 남을 성취시키는 자는 자신을 성취시키는 것이다(毁人者自毁, 成人者自成)”
“마음에 거리낌이 없으면 이치가 허락한 것이니 행하고, 마음에 거리낌이 있으면 이치가 허락하지 않은 것이니 그만둔다(心安, 則理所許也, 爲之: 不安, 則所不許也, 已之)”“욕망이 그 밝음을 가리고, 습관이 참됨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이에 온갖 감정과 여러 행동이 모두 남들을 따라만 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한다(欲蔽其明習汨其眞也. 於是有好惡喜怒․ 行止俯仰, 皆有所髓而不能自主者)”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자신을 수양하여 진보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則當勉勉孜孜勤修而求進矣)”“나는 이제 그대를 잃었으니 슬픔이 가슴에서 우러나와 세상에서 남을 조문하는 상투적인 말로 그대의 귀를 번거롭게 할 겨를이 없구나!(余今失君, 悲從心生, 不暇以世俗祭人之套語煩君聽也)”
“세상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겨 묻기를 부끄러워하고 의성에 갇혀 살다가 죽는 사람이 많다(世之人, 自智而恥問, 生死疑城之中者多)”“아침에는 읽고 낮에는 강론하며 밤이면 생각하여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과실이 있으면 고치고 잘한 게 있으면 따르고 의로우면 행하여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따라야 합니다(朝則讀, 晝則講, 夜則思, 溫故知新; 過則改, 善則服, 義則行, 舍古從新)”
“모든 사람을 다 사귈 수 없으므로 사우를 정한다.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으므로 사서를 먼저 읽는다. 많은 무리 가운데 뽑아서 그 요체를 얻는 것이다(人不可盡交, 故定四友; 書不勝盡讀, 故先讀四子; 是皆選於衆而得其要者也)”
“아! 사람의 생각은 선으로 갔다가 악으로 갔다가 하여 왕래가 일정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윤회의 씨앗이다. 사람의 의식은 잠깐 사이에 일어났다가 잠깐 사이에 사라져서 생명이 일정하지 않으니, 이것이 생사의 근본 원인이다. 이는 진실로 모두 현존하는 일이다. 이를 가지고 유추해보면 저승이 없이는 세상의 이치가 통할 수가 없다(噫! 人之情念, 或之善, 或之惡, 往來不常, 便是輪回種子; 神識焂而作, 悠而息, 起滅無定, 此爲生死根因, 而固皆見在思也. 類而推之, 亡幽弗痛矣)”
“훗날 만약 성품과 기질이 같은 사람이 있어 시문을 통해 그를 만나 서로 감동하고 끌려서 인연의 붉은 실로 영혼의 교분을 맺게 된다면, 그때에야 비로소 그의 감추어진 오묘함이 드러날 것이다(他時, 若有性氣同者, 與遇於紙上, 相感相引, 起靈絲而合神契, 則其秘奥必露矣)”
“아! 품계란 밟아 올라가서 1품에 이르더라도 아침에 거둬 가 버리면 저녁에는 평민이 되고, 재물이란 늘려 모아서 만금에 이르더라도 저녁에 잃어버리면 다음날 아침에는 가난뱅이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문인재사가 소유한 것은 한번 소유한 후에는 제 아무리 조물주라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유이다(積階至一品, 朝收之, 暮爲白身; 殖貨至萬金, 暮失之, 朝爲窶人, 若文人才子之所有者, 則一有之後, 雖造物, 無可如何, 是卽眞有也)”

혜환은 참 멋진 사람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글은 멀리 있거나 떠나는 이를 위해 지은 증서와 송서, 남의 글과 그림을 위해 써준 서문과 제발, 가옥의 이름에 담긴 뜻을 풀어 준 기문, 자를 지어주며 그 의미를 설명해준 자설, 장수 축원의 수서, 망자를 위한 제문 등이다. 다 다른 이에게 준 글이다. 혜환은 자신의 지식과 재주를 단순히 자기 것으로만 하지 않았다. 혜환은 그것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혜환은 산지식인이었다. 그것이 당시 그를 따르던 지식인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것 같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은 독방에서 자신을 향해서만 되뇌는 주문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던지고자 한 경구였다. 그리고 이렇게 문학을 매개로 하는 인간관계들이야말로 이요휴가 삶을 이어 나갈 수 있게 한 힘이었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이용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했다.”“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벗어나지 않는 지점에서 이용휴가 길어 올린 깨달음들은, 오히려 방종이라기보다는 절제였고 외적 발산이라기보다 내면을 향한 응시였으며, 실은 전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본래 누구나 가지고 있던 것들이었다. 다만 세상이 강제하는 이런저런 관습들에 매여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아등바등 사는 이들로서는 쉽게 이르기 힘든, 아니 언젠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만 것들이기 때문에 한 순간에 기이해 보일 뿐이다.”

책이 끝으로 가며 아쉬웠다. 하지만 이 산문선에서는 혜환의 글 중 46편이 소개되었으니 숫자상으로 321편이 남아있다. 두 역자는 원문의 뜻을 해치지 않고 주석에도 의존하지 않으면서 한줄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고, 또 관련된 글들을 소개하고, 또 부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분 덕에 훌륭한, 그리고 다정다감한 혜환을 만날 수 있어 글을 읽으며 감탄하고 공감하고, 또 고마워했다.
두 분에게 큰 부담을 드리는 건 알지만 나머지도 차례로 소개해주셨으면 하고 바람을 붙인다.
2014.10.7.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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