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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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표제작 <곡두>는 <자두>, <상쾌한 밤>과 함께 하나의 연작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결혼 경력을 가진 남녀가 재혼을 앞두고 겪는 일들이 펼쳐진다. <곡두>의 그녀는 <자두>에 등장하는 그의 연인이기도 하며, <상쾌한 밤>의 그의 이복여동생이기도 하다. 결혼의 당사자인 그녀와 그, 그리고 그녀의 배다른 오빠가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또다른 연작 <환대>, <구름 한 점>에서는 따뜻하고 사랑스럽기만 한 가족이 아니라, 맨 눈으로 본 꾸밈없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갑자기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둘러싼 자매를 통해 죽음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작가는 우리의 인식과 삶 자체가 허구이고 환상이라는 것을 수긍하면서도 거기에서 실재의 그림자를 찾고 그것을 기록하고자 했다. [양장본]
작가정보
이화여대 불문과를 나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광장으로 가는 길>이 뽑혀 문단에 데뷔했다.
미학적 문체와 새로운 소설 형식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소설뿐 아니라, 순수 문예지와 인문학전문 출판사 편집자로 활동을 했고, 국내외 예술기행과 미술, 번역 작업을 아우르는 전 방위적인 작업을 해왔다. 현재 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소설 창작과 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밤은 말한다>, <동행>, <당신의 물고기>, <버스, 지나가다>, <내 마음의 푸른 눈>, 중편소설 <아주 사소한 중독>, 장편소설 <행복>과 <춘하추동> 이 있다. 이 밖에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 유럽묘지예술기행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파리예술기행 <인생의 사용>, 미술에세이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옮긴 책으로는 <실베스트르>,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행복을 주는 그림>(공역), <고객서비스부> 등이 있다.
목차
- 곡두
자두
상쾌한 밤
환대
구름 한 점-환대2
33번 기억의 하루
달콤한 눈물
행인
킬리만자로의 눈[目]
백야
해설
작가의 말
책 속으로
“하선생과 어떻게 되는데예?”
할머니가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물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할머니가 그녀에게 재촉해 물었다.
“그래, 몬 관곈데예?”
그녀는 원치 않게 치부를 드러내듯 짧게, 오빠, 라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 오빠라면 그렇게 힘겹게 뱉어낼 관계가 아니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서평
천천히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슬픈 눈빛
『내 마음의 푸른 눈』이후 3년 만에 함정임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등단 이십년에 접어드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작품을 써온 함정임 작가의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 「곡두」외 아홉 편의 작품, 「자두」「상쾌한 밤」「환대」「구름 한 점-환대2」「33번 기억의 하루」「달콤한 눈물」「행인」「킬리만자로의 눈[目]」「백야」가 실렸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곳’이 아닌 ‘저곳’을 바라보는 인물들이 무심한 듯,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끝나지 않는 여행
함정임의 소설은 낡아빠진 차를 타고, 사막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로드무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여행은 <델마와 루이스>처럼 끈끈한 연대감을 만들어서 가슴을 찡하게 하는 쪽은 아니다. 소설 속 여행은 <엄마를 찾아 삼만리>처럼 가족을 찾아 떠나는 고전적인 여행에 가깝지만, 그들의 여행은 무언가를 향해 있다기보다는 목적이 없는 방랑같은 구석이 있으며,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 쓸쓸하다 못해, 낯설고, 낯설지만 친숙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의미없는 방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엄마’를 찾아 ‘삼만리’를 여행하는 아이처럼, 무모하고 덧없어 보이는, 모두 다르지만 같은, 하나의 무언가를 좇고 있다.
그들이 찾는 것은 오빠였다가 별거중인 아내였다가, 함께 동거를 시작한 사랑하는 여인이 기도 하며, ‘그것’이라는 막연하지만 구체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오빠를 찾아 불쑥 통영으로 떠나기도 하며, 부산에서 서울로 혹은 경주에서 부산으로, 아일랜드로, 아프리카로, 남미로 끊임없이 떠돈다. 하지만 인물들이 찾는 것은 역시 환영일 뿐이다. 그것들은 손에 쥘 틈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여행은 가슴에 안지 못하는 그녀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결국 그들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거나, 아예 돌아오지 않거나,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다.
한번 만나주셔야 겠는데요…오빠, 라고는 차마 말을 못했다
여행은 표제작「곡두」에서 시작된다. 「곡두」에서 그녀는 「자두」의 등장하는 그의 연인이기도 하며, 「상쾌한 밤」의 하린의 이복여동생이기도 하다. 그녀는 함께 사는 그의 어머니가 ‘보자신다’는 말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복오빠를 찾아 통영으로 나선다.
누가 그녀의 손을 잡아줄 것인가. 처음 그것은 노인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인 줄 알았다. 어제 그의 어머니가 보자신다는 말을 그에게서 듣자마자 피의 부름처럼 본능적으로 오빠를 찾았었다. 양파를 까던 손을 멈추고 돌연 섹스를 하고, 통영으로 내처 달리게 만든 힘을 그녀는 뒤늦게 반추하고 있었다.
-「곡두」 중에서
그리고 「상쾌한 밤」에서 그녀의 오빠 하린은 그래도 오빠인데 상견례에 참석하라는 아내의 연락을 무시하고, 경주에서 상행선이 아닌 하행선을 타고 송정으로 달려간다. 오빠는 개인파산자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고, 점점 자신과 동떨어져가는 아내를 보면서 심한 이질감을 느끼던 참이었다.
하린은 뜻하지 않게, 봄날 저녁의 바닷가를 걸었다. 저녁 일곱 시. 아내는 기다림을 포기하고 그의 생면부지 여동생의 상견례를 치르고 있을 것이었다. 몸에 밴 의무감과 성실성으로 아내는 훌륭하게 그의 빈자리를 메우고 여동생의 위신을 세워줄 것이었다. 전국에 집을 지으며 유랑하듯 살다가, 자식에게 빛을 유산으로 남겨준 별난 아버지의 숨겨놓은 딸이라는 사실은 생략한 채. 아버지의 훌륭한 유산 덕분에 개인파산자가 되어 전국을 그 아버지처럼 유랑하며 사는 오빠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은 발설하지 않은 채. 유령 같은 그를 사이에 두고 아내와 여동생은 시누이 올케 간의 모종의 유대감을 이어가고 있었다.
-「상쾌한 밤」 중에서
당신,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또다른 연작「환대」 「구름 한 점」에서는 끊임없이 음악이 흐른다. 그것은 <넬라 판타지아>였다가, ‘떡갈나무’ 숲속에 ‘졸졸졸’흐르는 샘물이었다가, 해질 무렵 숲속에서 들리는 ‘오보에 소리’가 된다. 이를 배경음악 삼아, 두 소설에서 작가는 따뜻하고 사랑스럽기만 한 거짓의 가족이 아니라, 진짜 가족, ‘맨 눈으로 본’ 꾸밈이 없는 가족을 보여준다.
안서와 윤서는 자매이며,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도장집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갑자기 식물인간이 돼 버리고, 안락사를 해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지 않은 채 윤서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간병을 한다.
요즘은 며칠째 오보에 소리가 들리지 않았었다. 안서는 들키기 싫은 고양이처럼 나무 뒤에 숨어 연주가 끝날 때까지 서 있던 적도 있었다. 그의 앞에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렸다. 오보에 소리는 마술 같아서 한번 들으면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귓전에 남아 있었다. 언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뱃고동처럼 은근하게 울려 퍼지는 오보에 소리에 잠시 넋이 나가 있었던지 윤서의 말이 온전히 들리지 않았다.
-「환대」 중에서
「구름 한 점」에서는 안서의 시선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 안서가 달맞이언덕에서 마주친 달자씨는 안서를 막내딸 희순으로 착각을 한다. 후에 은희순 씨를 만나면서, 안서는 동병상련을 느낀다. 둘의 마지막 대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는 소설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 죽음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중국으로 떠난 윤서와 남편을 따라 서울로 떠나려는 안서, 구름 한 점 처럼 잠시 언덕에 머물다 떠난 달자씨와 의식 불명의 상태로 이병원 저병원을 전전하다 눈을 감은 아버지. 소설의 인물들은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정처없이 떠돌다가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다시
「행인」의 그는 친구의 권유로 취재차 아일랜드에 가게 된다. 그가 아일랜드에서 본 것은 아일랜드의 아름다움이나 쓸쓸함이 아닌, 위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자신과 한 추억을 나눈 미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좀 더 멀리까지 걸어갔다가 강으로 이어지는 육교 위로 접어들었다. 고작 육교 위를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탑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 강물을 내려다보는 듯 아찔했다. 사방이 툭 트인 가운데 강물이 햇살을 받아 검게 출렁이고 있었다. …사월의 검은 태양 아래 빛의 형체로 명멸하던 그녀, 두 달 전 바람처럼 생의 뒤편으로 사라진 미정의 영상이었다.
-「행인」중에서
그나, 아일랜드에서 만난 남자는 모두 이곳에 오기 전에 두고온 것에 대한 기억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남자는 실종된 아내를 찾아 전 세계를 방황하고 있었고, 그도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린 미정의 뒤를 쫓아 ‘이니스프리 호수 섬’에 오게 되었다. 그들의 떠남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옛적으로 돌아가기 위함이고, 돌아가기 위해서 떠도는 것이다.
[추천의 글]
함정임 씨의 소설 표제작 「곡두」는 안경 없이 맨눈의 시력으로 가족을 보고 있습니다. 보고 있되 아주 깊은 데를 보고 있지요. 깊은 데라니? 진짜 가족, 그러니까 윤리적 명제로 감싸인 생물학적 가족 타령인 까닭. 이 어쩔 수 없는 초 논리적 운명 덩어리인 핏줄. 유형상으로 「곡두」는 여로형 정석을 따른 소설. 서울에서 거제도를 거쳐 무려 여덟 시간을 달려 통영까지의 여로. …곧 뿌리 찾기의 탐색과정이 시작됩니다. … 그렇다면 함정임식 방식, 곧 21세기식 반응은 어떠할까. …물론 눈물바다 쪽일 순 없지요. 그러기엔 너무 지적(자의식)이니까. 그렇다면 ‘무소의 뿔처럼……’쪽일까. 그러기엔 함씨는 마음이 너무 여리군요. 그렇다면 또 무슨 길이 있는가. 있지요. …‘미적美的 거리’ 유지가 그것. 참신함의 근거인 셈. 그만큼 이 미적 거리란, 함씨 고유의 육친적 콤플렉스인 것. 작가의 깊은 곳에 닿은 소설. 가작인 까닭.
-김윤식(서울대 명예교수, 명지대 석좌교수, 문학평론가)
함정임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떠돈다. 통영으로, 아일랜드로, 아프리카로, 남미로… 그러나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남십자성을 바라본들, 거기 비쳐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일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여행 가방을 들고 나설 수밖에 없는 함정임의 인물들은 이제는 희귀해진 낭만주의자의 비극적인 면모를 지닌다. 곡두에 들린 듯 떠도는 그들의 궤적은, ‘사는 게 참 지랄’인 이 세상의 속악마저 지워내고 우리 눈앞에 잠시 수묵화의 고즈넉함을 펼쳐놓는다. 인간사의 번다함에서 물러난 그 적막이, 귀하게 느껴진다.
-이혜경(소설가)
[그는] 쉼 없이 글을 써왔다. 함정임의 소설은 이름으로 실재와 연결돼 있는 환상의 세계이다.
그 환상의 편린들은 뿔뿔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련되고 겹쳐져 실재를 지시하고 있는바, 바로 그 점에 함정임 소설의 환상이 갖는 현실성이 놓여 있다.
-해설 중
기본정보
ISBN | 9788970636306 |
---|---|
발행(출시)일자 | 2009년 09월 21일 |
쪽수 | 327쪽 |
크기 |
129 * 200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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