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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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고희림
저자 고희림은 원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평화의 속도』『인간의 문제』가 있다. 현재 대구경북작가회의, 시월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의 말
머리를 지탱한 목이 탄다
나는 점점 조그만 벌레가 되어간다
참석자 수를 헤아리고
혁명을 파는[掘] 몫 없는 벌레
목차
- 시인의 말_5
제1부
열사의 몸·12
혁명·14
유혹·17
환영·18
광장·21
대가리 1·22
대가리 2·24
분노·27
대가리 3·30
국가 葛·32
춘화 언니·34
우리를 알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게·36
정치의 계절·38
칼춤·40
제2부
어머니의 신과 나의 신·44
증언·46
지혜의 골목·48
지하철에서·50
아름다움은 내 몫이 아니다·52
고장난 물·54
명함 유감·55
생각과 물음·56
동성로·60
방생·62
영구 2·64
신음·66
밥줄·68
죽음의 엘레지·70
제3부
세속 도시의 즐거움!·74
꽃밭·75
붉은 신호등·76
마음의 자유·77
결정·78
공방空房·79
세속 자유에의 권유씨·80
시골풍·82
밤안개·83
감나무 弔詩·84
감길·86
그는·88
촛불·89
시월·90
오독·92
가을·94
봄날 오후·95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96
제4부
군무 ·100
대가리 4 ·102
종로에서 ·105
대가리 5 ·106
별자리 ·108
밤늦게 헤어진 너는 집에 잘 들어갔겠지 ·110
서기 ·112
지평선에서의 하룻밤 ·114
말 없는 신 ·116
다시 갑신년 액씨 ·118
近代·120
법의 가호가 있기를! ·121
그 무렵, ·122
호밀밭의 파수꾼 ·125
야단법석 ·128
비밀 부인 ·130
작가론
홍승용 | 리얼리즘 시예술의 가능성·137
추천사
-
시대의 어둠을 볼 줄 아는 사람, 현재의 암흑에 펜을 적셔 글을 쓰는 사람을 동시대인이라고 했던 아감벤의 말은 고희림 시인에게도 적절하다. 시인은 시대의 어둠이라는 “특별한 시각상”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또한 시인은 시각을 잃은 듯한 어둠에 담겨 있지만, 어둠을 찢고 밝음을 향해 가는 길을 쉽게 희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분노의 용광로를 거치지 않고서는” 어둠을 이길 수 없고,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삶에 이를 수 없”다는 인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시인은 결코 빛이니 어둠이니 하는 형식 따위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보다 근원적인 갈증에 자신을 투여할 줄 안다. 그러나 그의 시의 독특함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인이 직면한 어둠과 분노는 어떤 결핍이나 질식, 파괴적 몸짓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의 어둠은 또렷한 시각상을 나타내고, 그의 분노는 차가운 손을 잡아주는 체온처럼 따듯하다.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는 부정성이 거세된 시대, 과잉된 자기 긍정으로 탈진된 자아의 시대에 그가 돋보이는 것은, 긍정으로 환원될 수 없는 부정성이 부정성인 채로 충분히 따뜻하다는 데 있다. 고희림 시인만의 특별한 시의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
시인이 1946년 ‘대구10월항쟁’의 떼죽음 현장을 누비면서 건져 올린 이번 시집의 진앙지는 아마도 「대가리」 연작일 것이다. 사적 이익 집단이 된 국가는 ‘대가리’로 지칭되는 국민들의 무조건적 복종만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국가에 의해 배제된 대가리들은 “냉정하게 분류”되어 “그가 3대 독자든/그녀가 만삭이든/내일 혼례식을 앞둔 약혼녀”든 모두 타살된다. 더 큰 비극은 죽음이 아물기도 전에 새로운 죽음이 덧쌓인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처럼 냉전 이데올로기는 “돈의 사슬에 묶인” 자본의 이데올로기로 대체되었을 뿐이며, “명령을 받은 대가리에 / 군번을 새”긴 청춘들은 “나갈 때도 총 돌아올 때도 총”만 반복할 뿐이다. “자신의 목표를 말하지 못한 채 / 전쟁의 목표를 외우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참괴의 여진 속에 떨게 한다. 누구보다 심성이 여린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외고 있다. “우리의 공통점은 맹목성, / 순수의 다른 이름이다 // 우리, 어떤 시간과 공간 좌표에 있더라도 / 멀리서 겨우 눈짓만 하더라도” 하고. 그의 바람처럼 “순수”와 “맹목”이라는 연대의 힘으로 부디 이 교활한 국가 시스템을 전복할 수 있기를!
그런 세상이 “천지에 가득 찬 꼬뮌”의 꽃밭국가 아니겠는가?
책 속으로
누구나 일시적으로 관료가 되며 언제까지나 관료가 될 수 없는, 꽃
피고 지는
오 천지에 가득 찬 꼬뮌,
―「꽃밭」 전문
잃어버린 시간을 찾은 듯 먼지 앉은 한 권의 책을 펼친다
생각할 게 노을처럼 붉어지고 꼴까닥 해 넘어가 나도 따
라 넘어가면
나는야 다시 시작되는 긴긴 까닭을 너와 나의 아기처럼
안고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천지에 가득한 슬픔을 지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존재가 있는 곳,
나와
너의 코뮌으로 간다
―「광장」 전문
들은 텅 비었으나 경운기 소리로 꽉 차 있었다
냇물은 불었으나 갈 길을 막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나를 붙드는 것일까 이런 생각뿐이었을 때
들판에 꽉 찬 신기루가 말했다
나는 사람들보다 소리가 더 가까운, 외딴 풀밭이다
설계 없는 집, 비닐하우스다
개울이 커튼처럼 흘러내리는 농로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배역이다
제목은 ‘철새공화국’이다
나는 물 아래 소리와 물 위 소리 사이에 누워 있다
나는 저 모든 지상의 것들을 위한 희생자다
뼈처럼 산처럼 쌓여 있는 길고 예리한 뿌리들이다
나는 땅 밑에서 올라와 땅 위를 미친 듯 돌며
깊고 뜨거운 그 많은 길을 견뎌온,
늙은 왕자의 달을 잉태하였다
어쩌랴 어쩌랴
내일 아침이면 그 실루엣의 배가 지평선 위로 불룩 솟아
오를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죽고 난 다음
에도 생산일 것이다
생산이 끝난 벌판에 바람이 일 듯
―「지평선에서의 하룻밤」 전문
출판사 서평
[간략 소개]
고희림의 시세계는 정치적이다. ‘모든 것은 정치적’이라는 일반적 의미를 넘어서서 정치적이다. 그것은 어떤 대상들이 시인의 눈에, 언어의 그물에 잡히느냐, 그렇게 포착되어 객관화될 때 어떤 온도로 다루어지느냐,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에너지를 발산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상태로 독자의 피부 속에 스며들어 증식되는 현실 판단의 문제다. 이는 작가마다, 작품마다 다양한 색깔을 띨 수밖에 없다. “풀뱀 득실득실할 시절”의 짓궂은 악동들에 대한 아련한 이야기와, “그를 죽여 되려 전쟁에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 오로지 명단에 있고 숫자만 맞으면” 사살한 국가, 아이들을 산채로 수장하고도 “아이들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군 / 계산기를 두드리던 국가”를 향한 질타 사이에는 분명 온도와 밀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지배질서에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오히려 동의를 유발하고 그래서 실질적으로 억압적이냐, 아니면 지배질서의 흉한 몰골을 드러내 그 너머를 꿈꾸고 한 발이라도 내딛도록 충동질하는 마법의 힘을 발휘하며 그래서 해방적이냐는 작품의 정치적 의의를 가늠하기 위한 기본 척도일 것이다. 이 척도에 비춰볼 때 고희림의 시세계는 직설적으로든 우회로를 통해서든 지배질서와 타협 없는 싸움을 벌이며 또 그만큼 해방적이다. _홍승용(현대사상연구소 소장)
[책소개]
국가와 자본의 죽임을 넘어
코뮌으로 가는
시의 지난한 여정!
고희림의 세 번째 시집 『대가리』는 집요하게 국가의 폭력성을 묻는다. 아마도 시인 자신이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대구 10월 항쟁과 한국전쟁 시 발생했던 민간인 학살이 그 연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희림에게 그것보다 더 큰 폭력은 현재의 국가폭력이다. ‘대가리’ 연작에서 시인이 다루고 있는 국가의 구조적 폭력이라든가 ‘세월호 참사’나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일상을 시화하는 장면에서 그것은 더욱 드러난다.
예를 들면, “생명은 추상되어 대가리 숫자가”(「대가리1」)된다던가, “대가리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계산기를 두드리던 국가는 죽은 뱀”(「대가리2」) 같다던가, 목숨을 “밥 먹을 때도 대가리/자기 전에도 대가리”(「대가리3」)로 환원하는 국가 장치에 대한 비판은 이번 시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양상들이다. 인간의 생명이 ‘대가리’로 환산된다는 것은 사실 생명을 죽임으로써만 가능한 셈법이다. 「국가 葛」에서 “아이들이 사라진 건 국가의 잘못이 정녕 아니다 그 전에도 전에도 사라진 사람들을 국가가 어찌 다 기억할 수 있겠나”하고 풍자하듯 물을 때 그것은 더욱 드러난다. 그 비근한 예를 우리는 2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생생하게 겪은 바 있다.
고희림이 비판하는 이런 국가의 폭력성은 현재에는 자본과 결탁된 형태로 여실히 드러난다. 「아름다움은 내 몫이 아니다」에서 시인이 오늘날의 노동현장에 대해서 “무간지옥을 벗어날 길이 없다//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햇빛을!”이라고 절규할 때도 노동자들을 산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 자본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 해당된다. 「생각과 물음?구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가 주최한 문화제에서」라는 시에서 “인간 대접 받고 싶다는 것이죠/일하고 싶다는 것이죠/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겁니다”는 노동자들의 간결한 외침을 대신 전할 때도 시인의 목소리는 다시 반복된다.
국가와 자본의 결탁으로 행해지는 이 죽임의 현실은 죽음을 자본의 증식 수단으로 삼는 데서 그 비극성을 증폭시킨다. 「죽음의 엘레지」에서 시인이 전하는 현실은 이렇다. “‘‘배당보다 보험입니다/보험의 보장은 대물림됩니다/캐딜락으로 죽음을 모십니다/저승길이 보람된 길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대가리’로 표상되는 정량적인 죽음으로 환원하는 공정에 국가와 자본과 문화적 구조들은 서로 긴밀히 뭉쳐 있는 것이다.
이 도저한 죽임의 현실에서 시인은 절망만을 그리지 않는다. 시인이 죽임의 현실을 박차고 날아오르려 하는 곳은 “누구나 일시적으로 관료가 되며 언제까지나 관료가 될 수 없는, 꽃/피고 지는/오 천지에 가득 찬 꼬뮌”이다. 이 시에서 인상적인 것은 “코뮌”을 먼 곳에 위치시키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코뮌”은 유토피아적 속성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구체를 입는다. “코뮌”에서는 “누구나 일시적으로 관료가 되며 언제까지나 관료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통치와 피치가 사로 갈마드는 곳인 것이다. 그런대 그 “코뮌”은 이미 “천지에 가득 찬” 상태다. 즉 바로 이 현실의 내부에 존재해 있다는 인식이다.
이에 대해 시집 말미에 작가론을 쓴 홍승용 현대사상연구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고희림이 그려놓는 코뮌의 모습은 상세하지 않다. “누구나 일시적으로 관료가 되며 언제까지나 관료가 될 수 없는” 사회, 달리 말하면 아무도 이런저런 권력을 움켜쥐고 ‘갑질’을 할 수 없는 사회 정도가 전부다. 코뮌을 구체적으로 그리기에는 아직 지나가야 할 슬픔과 겪어야 할 고통이 ‘천지에 가득’하다. 또 이 슬픔과 고통을 대면하고 그 뿌리를 들춰내는 일이 코뮌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그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어 아름다움이나 사랑보다 숭고나 분노와 더 친밀할지 모른다. 그래서 고희림은 “비명처럼 날카로운 분노의 용광로를 거치지 않고는/결코 삶에 이를 수 없”으니, “그대의 마음에 분노를 키우라”고 권한다. “사랑은 슬프고/분노는 사랑보다 숭고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희림이 말하는 ‘코뮌’의 지금 여기에서의 모습은 바로 ‘투쟁’이 된다.
1
마음은 깊은 곳에 있었다
커다란 몸부림과 소용돌이로
가끔씩 심연의 본원적 용트림으로
바닥의 하염없는 격정과 분노가
가끔씩 수면의 회오리로
어릴 적 마음은 파도 치는 곳이라고 알았다
세파를 겪고서야 겨우 그건 표층일 뿐
원래 마음은 하나였는데 깊일 알 수 없었다
어릴 적 의아심을 가지고
혁명을 바라보던 그때는
태양의 속삭임처럼 그늘이 없었다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모두가 원래 자유인 그 자유였다가
허위이면서 고문이었다가
살아본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의 간절함이었다
2
세상살이 물 흐르듯 지나지 못하고
다만 이런 세상에 혁명이라는 말에 현혹된
말도 안 되는 꿈을 단번에 버리고 싶은
부끄럼 같은 것이 오히려
불안하다
밥 잘 먹고
커필 마시며
문학과 혁명을 공부하면서
잊어버리고 잊지 않으려 하는 맘이
서로 충돌하여
나는 내가 사라지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수많은 생각과 생각을 잇는 다리를
피난민처럼 건너고 있다
다리를 건너가면 무엇이 또 있을까
다리를 건너갈 수는 있을까
다르다 다 다르다
너무 달라서 사람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다
멀리서 다르고
가까이서 다르고
내일이 와도 봄을 알 수 없다
3
국가와 혁명의 원죄를 대속한,
아이들이 사라진 바다
평화롭기조차 하다
_「혁명」
그러나 그 투쟁은 위의 시처럼 우리의 내면의 경작과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며, 시의 궁극은 “수많은 생각과 생각을 잇는 다리를/피난민처럼 건너고 있다/다리를 건너가면 무엇이 또 있을까/다리를 건너갈 수는 있을까”처럼 존재와 세계의 동시적 변혁 혹은 그 변혁의 이행과정이라고 해도 같은 말이다.
고희림의 시집 『대가리』는 그 이행에 대한 시적 기록이기도 하다.
기본정보
ISBN | 9788966550609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3월 02일 |
쪽수 | 152쪽 |
크기 |
125 * 205
* 20
mm
/ 227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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