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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작가정보
저자 폴 콜린스(Paul Collins)는 잊힌 것들에 대한 따뜻한 기록자. 196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폴 콜린스는 날마다 도서관에 출몰해 희귀본 서가를 들락거리는 책벌레이자 골동품 수집가, 그리고 작가이자 교수이다. ‘콜린스 라이브러리’의 편집장이기도 했던 그는 현재 포틀랜드 주립대학 조교수로 일하며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폴 콜린스는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고 오랜 시간 다락방에 묻어두었을 만한 이야기들을 케케묵고 고루한 옛것이 아닌, 생생하고 재미나며 친근한 지금의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그는 잊힌 이야기들의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을 객관적 사실과 개인적 경험을 뒤섞는 독특한 일인칭 방식으로 서술한다. 그래서 그의 책은 역사서이자 체험기이며, 비밀을 밝혀 나가는 추리극이 된다. 폴 콜린스의 블로그에 가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것에 관심이 있고 기이한 취미를 가졌는지 엿볼 수 있다. 고서들, 오래된 자료들, 역사 속에 잊힌 아이디어들에 대한 흥미로운 자료가 풍부하다. 또한 맥스위니스 출판사에는 그가 만든 책들과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 내용들이 소개되어 있다.
역자 홍한별은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행본 번역 일을 한다. 옮긴 책으로 《권력과 테러》,《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오카방고의 숲속학교》,《우울한 열정》,《밴버드의 어리석음》등이 있다.
목차
- 1장에서 책과 여행이 시작되다
2장은 여행기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택시 운전사에 기대어 본다
3장은 지루한 기차 여행을 건너뛰고 바로 웨일스 시골로 간다
4장에서는 우리 집이라고 부를 장소를 찾는다
5장에서는 책 사냥을 간다
6장에서는 텔레비전 앞에 늘어져 있다
7장에서는 존경을 표한다
8장에서는 계속 그것에 대해 생각만 한다
9장에서는 엘모어 후버드의 기지와 지혜를 발견한다
10장에서는 삶이 나를 그냥 내버려 두기를 바란다
11장에서는 책을 겉표지로만 판단한다
12장은 아무도 읽지 않는 쓰레기다
13장에서는 망가진 과거를 돌아본다
14장에 와서야 제목에 나온 장소가 나오다니 정말 너무 늦었다
15장에서는 상원의원을 주시하라
16장은 좋은 제목이 생각이 안 난다
17장은 죽음의 문손잡이에 매달려
18장은 때를 잘못 맞추다
19장은 生 生 生 生 生 生
마지막장은 앞날에도 이어질 불운을 살짝 예고하며 끝난다
책 속으로
책을 썼다는 사실에는 참 희한하고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책은 잊히기도 하지만 한편 놀라울 정도로 생명력이 질겨서 대개의 경우 작가보다 오래 남는다.《주홍글씨》를 쓴 호손은 자기가 처음으로 출간한 소설《팬쇼》를 어떻게든 없애 보려고 모두 사들여서 태웠다. 친구나 친지들에게 준 책도 다시 빼앗아 왔다. 누구에게도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내조차도 호손이 죽기 전까지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호손은 성공하지 못했다. 몇 권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호손은 죽었지만 오늘날《팬쇼》는 여러 가지 판본으로 나온다. (168쪽)
내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을 정말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 시대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와 똑같이 기술 진보에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고, 남녀평등을 목표로 삼았고, 세계 문화와 세계 시장이라는 장대한 야망을 품었고, 기적적인 통신 방법으로 대륙을 한데 묶었다. 그들은 우리였다. 그들은 양자역학의 우주, 다윈 이후의 세상, 군주제 이후의 국가, 기계적 장치로 가득한 하늘과 바다를 더듬더듬 나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희망과 수사는 우리 것을 닮았지만, 그들이 사용한 장비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부실했다. 재료라고는 가죽, 철, 돌, 사기밖에 없으면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꿈은 우리 것과 다르지 않았으되 수단은 고루하기 짝이 없었다는 차이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공감을 자아내면서도 우스꽝스럽게 여겨진다.
사실 어느 시대나 그 후대의 눈에는 어리석게 비치리라고 생각한다. 과거라는 나라는 그 원주민들을 비웃어도 되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너무 심하게 웃으면 안 된다. 머지않아 우리도 그 나라에 살게 될 테니까. (84-85쪽)
안타까운 점은 스트링어의 책 내용이 표지만큼 뛰어나지 못하다는 점이다. 헌정사를 쓴 페이지만 빼고.
사랑하는 남편에게
남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벌써 여섯 달 전에 완성할 수 있었을 겁니다.
내 책과 관련된 무수한 사람들만 없었더라면 나도 여섯 달 전에 제목을 정할 수 있었을 텐데. 편집자가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계속 제목을 제안해 온다. (237쪽)
책 제목으로 내가 제안한 건 모두 퇴짜를 맞았다.
‘토성의 고리 위를 걷다’
“《토성의 고리》 라는 다른 책이 있어요.” 편집자가 말했다. 편집자가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낙심한 인물 스케치’
“상업적 자살 행위예요.” 표지 디자이너 데이브가 이메일로 반대한다.
좋다. 차 한 잔과 다이제스티브 비스킷을 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몇 시간 뒤 줄을 그어 지운 흔적이 잔뜩 있는 종이를 들고 방에서 나와 자랑스럽게 제니퍼에게 간다.
‘N?i레이 눈을 가진 사람.’
“너무 가벼워.” 제니퍼가 말했다.
짜증스러운 일이다. 벌써 좋은 제목을 정해 놨는데 말이다. 원래 내가 붙인 제목은 ‘패배자 : 주목할 만한 실패의 역사’였다. 하지만 미국 출판사에서 좋아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패배라는 게 아주 나쁜 일이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편집자 한 사람이 말했다. “미국인들 가운데 큰 글자로 ‘패배자’라고 적혀 있는 책을 들고 돌아다니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상하지만 유럽 출판사들은 그 제목을 좋아했다. 이 사실을 통해 미국인들과 대비되는 유럽인들의 특성을 아무렇게나 추론해도 좋다. 난 그저 새 제목을 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제목을 생각해 내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W. 서머싯 몸 같은 작가는 제목 짓기를 아예 포기했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몸이 그 문구가 예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내용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물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제목을 붙일 수도 있다. 1829년 이런 제목의 광고 포스터가 있었다.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서 : ‘Scissars(가위)’라는 단어가 다른 어떤 단어보다 다양한 철자로 나타난다.” 그 아래 480가지의 철자법이 죽 나와 있다. 제목만 읽고 나면 굳이 더 읽어서 가위의 다양한 철자에 sisszyrs와 cyzsyrs가 들어간다는 사실까지 알고 싶지는 않을 듯하다. (233-234쪽)
출판사 서평
잊힌 것들에 대한 따뜻한 기록자, 폴 콜린스의 대표작
책들의 종착지 헤이온와이에서 책의 시작을 묻다
생애 첫 원고《밴버드의 어리석음》을 막 탈고한 작가 폴 콜린스는 돌이 갓 지난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영국의 헌책마을 헤이온와이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그는 헌책마을의 설립자인 리처드 부스를 만나 엄청난 책들로 뒤덮인 헌책방에서 미국 문학책을 분류하는 작업을 맡게 된다. 책들의 종착지에서 책의 마지막 운명을 다루는 일은 새내기 작가였던 폴 콜린스에게 책이란 무엇이며, 인생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한때 누군가의 꿈과 열정의 결정체였으나 지금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잊힌 책들에 대해 그는 연민과 애정을 느낀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 속 큰 고리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열망과 성공과 실패, 사연들이 숨겨져 있기에…….
지금까지 한국에 출간된 폴 콜린스의 책은 모두 4권이다. 개인의 서사와 역사적 사실을 겹쳐서 서술하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 때문에 그의 책은 역사서이자 체험기이며, 비밀을 밝혀가는 추리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식스펜스 하우스》는 폴 콜린스의 작품들 가운데 ‘작가’로서 폴 콜린스의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책이다. 책과 더불어 살아온 인생과 함께 헤이온와이에서 만난 책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폴 콜린스의 대표작으로서 2003년에 출간되어 미국 독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추천사
ㆍ문학의 죽음에 대한 강박이 아마 이 플롯이 뚜렷하지 않은 책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콜린스가 우연히 자기 원고를 변기에 빠뜨리고 그 위에 소변을 누는 순간 말이다. 무덤에 대고 아기를 낳는다는 새뮤얼 베케트의 표현이나 사랑하는 것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오스카 와일드의 문구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러나 콜린스는 누렇게 된 원고에 대해 그답지 않게 현실적으로 대처한다. 종이를 건져 내어 핸드드라이어에서 말려 첫 장 말고는 모두 구해낸다. 나쁘지는 않지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인용을 하는 것은 그것뿐이다. 결국 언젠가는 그것을 스스로 말하거나 행해야 한다는 것. - 빌리지보이스의 마크 슈바르츠
ㆍ돈키호테 같은 책벌레의 모험을 담은 매혹적인 수기다. - The Onion Review
ㆍ이야기는 집을 사려는 시도, 첫번째 책의 출간 임박 등을 둘러싸고 펼쳐지지만 작품의 고갱이는 여기저기로 빠지는 방백과 서점에서의 보물찾기이다. 저자는 계속 초점을 바꾸지만 깔끔하게 전환을 하기 때문에 그가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 즐겁다. 미국과 영국의 차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지 않은 분야가 아직 남아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콜린스는 책의 덧없음에 대한 숙고에 종종 빠지지만 이 책은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책장을 장식하리라. - Booklist Review
너무 늦게 소개하는, 폴 콜린스의 대표작《식스펜스 하우스》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야기, 혹은 잘 알려진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늘 시야에서 벗어나곤 했던 부분을 끄집어내어 따뜻한 빛을 쪼이는 이상한 작가가 하나 있다. 혹자는 성공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기도 바쁜 세상에 왜 우리가 실패하고 묻힌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며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나 물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기발한 생각, 외로운 분투, 숭고한 열정, 역사 속에 잊힌 딱한 이상주의자들의 삶에 따뜻한 연민을 보내는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폴 콜린스다.
이번 《식스펜스 하우스》까지 한국에 출간된 폴 콜린스의 책은 모두 4권이다. 개인의 서사와 역사적 사실을 겹쳐서 서술하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 때문에 그의 책은 역사서이자 체험기이며, 비밀을 밝혀가는 추리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에서는 한때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나 실패와 조롱의 나락으로 추락해 버리고 만 열세 사람을,《네모난 못》에서는 ‘자폐증’이라는 말이 처음 만들어지기 전에 존재했던, 따라서 어떤 기록에도 그런 이름으로 명시되지 않은 자폐인들을,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에서는 세계 3대 혁명(미국 독립운동과 프랑스 혁명, 영국 혁명)에 소용되고 난 뒤 잊히고 버려진 사상가 토머스 페인을 이야기한다. 그의 책에는 역사에서 잊힌 이들이 폴 콜린스의 글을 통해 다시 부활하여 위로받고 안식을 얻는다.
《식스펜스 하우스》는 사람이 아니라 책에 대한 이야기지만, 묻히고 버려지고 잊힌 것에 대한 애틋한 마음만은 변함없다. 영국의 헌책마을 헤이온와이에서 폴 콜린스는 아무도 읽지 않는 헌책들을 읽으며 이 책들에 다시 생명을 부여한다.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 무수한 책들은 모두 사정없이 버려지고 소각되거나 폐지처리장으로 간다. 운이 좋아야 간신히 누군가의 눈에 띄어 다시 팔린다. 그러나 그 책들이 모두 쓰레기인가? 폴 콜린스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는 심지어 실패한 책 안에 숨겨져 있어 “무명의 깊은 바다 속에 침몰한 채로 영영 물 밖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멋진 문장”에 대해서까지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런 까닭에 《식스펜스 하우스》는 폴 콜린스의 작품들 가운데 ‘작가’로서 폴 콜린스의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책이다. 책과 더불어 살아온 인생과 함께 헤이온와이에서 만난 책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폴 콜린스의 대표작으로서 2003년에 출간되어 미국 독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책을 만든 편집자로서 작가이자 나와 같은 편집자로서 폴 콜린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폴 미안해, 너무 늦게 소개해서.”
책벌레 폴 콜린스가 길어 올린 책과 인생에 대한 따뜻한 연민
첫 작품 《밴버드의 어리석음》의 출간을 기다리는 초보 작가였던 폴 콜린스. 그는 번잡한 샌프란시스코 생활을 접고 영국의 시골마을에 이민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갓 돌을 넘긴 아들 모건에게 시골 생활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핑계로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가득 찬, 인구 37.5명당 서점이 하나씩 있는 영국의 헌책마을 헤이온와이에 정착하기로 한다. 그곳은 폴 콜린스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그는 날마다 도서관에 출몰해 희귀본 서가를 들락거리는 책벌레이자 골동품 수집가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폴 콜린스와 그의 가족이 헤이온와이에 정착하며 벌어진 일들을 다루는 흥미진진한 영국 생활 도전기이며 동시에 ‘책 자체에 대한 책’이다. 책이 어떻게 쓰이고, 읽히고, 혹은 읽히지 않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절판되고, 파괴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헤이온와이는 마을 전체가 수백만 권의 헌책과 헌책방들로 가득 차 있어 책 애호가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있는 곳이다. 폴 콜린스는 우연한 기회에 이 헌책마을의 설립자이자 ‘자칭’ 헤이의 왕인 리처스 부스에 발탁되어 서점에서 미국 문학작품을 분류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와《 주홍글씨》를 쓴 다니엘 호손, <가지 않은 길>을 쓴 로버트 프로스트 등 베스트셀러 작가에서부터 이름 모를 무명의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와 만난다. 천장까지 뒤덮인 책의 무덤 앞에서 책을 고르며 그는 끊임없이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때 누군가의 꿈과 열정이 담긴 책, 그러나 이제는 책더미 속에서 누군가가 발견해 주지 않으면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책, 유품을 정리하는 경매에서 헐값에 팔린 책들, 값어치를 모르는 이들에게 감자 몇 알과 바꿔 얻어 온 책더미들, 불쏘시개가 될 뻔하다 운 좋게 여러 쓰레기와 함께 살아남은 헌책들 속에서 그는 깊은 연민과 애정을 느낀다. 자신의 책도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 책을 출간하려는 작가가 이런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임신한 여성이 영안실에서 일하는 것하고 비슷한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날마다 망각을 맞닥뜨린다. 대부분 책이나 작가는 비평의 포물선을 따라 지나간다. 대개 첫 번째 책은 ‘장래가 촉망’되었다가 두 번째 책은 ‘실망스럽기’ 마련이다. 세 번째 이후는 ‘괜찮은’ 책이고(독자들에게 무척 미안하지만 이 책은 두 번째니까 ‘실망스러운’ 책이다). 그런데 만약 책 한 권만 내고, 아니면 두어 권 정도만 내고 사라져 버린다면? 세계의 하드 드라이브에서 한자리도 차지하지 못한다면? (165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 콜린스는 말한다. 책의 생명력은 작가보다 더 길다고. 그것이 훗날 다른 사람들에게는 놀림거리로 남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거나 누군가에게는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여겨질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 속 큰 고리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열망과 성공과 실패, 사연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기억과 망각의 무수한 반복이 역사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역설한다.
책을 썼다는 사실에는 참 희한하고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책은 잊히기도 하지만 한편 놀라울 정도로 생명력이 질겨서 대개의 경우 작가보다 오래 남는다. 《주홍글씨》를 쓴 호손은 자기가 처음으로 출간한 소설 《팬쇼》를 어떻게든 없애 보려고 모두 사들여서 태웠다. 친구나 친지들에게 준 책도 다시 빼앗아 왔다. 누구에게도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내조차도 호손이 죽기 전까지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호손은 성공하지 못했다. 몇 권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호손은 죽었지만 오늘날 《팬쇼》는 여러 가지 판본으로 나온다. (168쪽)
군데군데 숨겨져 있는 ‘책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을 읽는 재미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바로 폴 콜린스가 그의 첫 작품인《밴버드의 어리석음》의 출간을 앞두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영국에 살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편집자와 메일로 제목, 교정, 표지 문구, 마케팅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덕분에 책의 죽음과 더불어 책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책벌레들이라면, 집이 무너질 정도로 책이 많아 이삿짐을 쌀 때마다 핀잔을 듣는 책수집가들이라면, 필생의 역작을 쓰고 출간을 기다리며 가슴 설렐 작가들이라면, 오늘도 낮밤을 잊고 저자와 원고로 옥신각신하며 문장 하나, 표지 문구 하나, 제목을 고민하는 편집자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절로 웃음을 터트릴 만한 위트로 가득 찬 이야기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업자가 작가의 총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비난부터 하기 전에 정황을 모두 알아보는 게 옳다.” 1893년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칼럼니스트 제임스 페인이 이런 글을 썼다.
출판하는 사람과 출판되는 사람 사이의 전쟁은 역사가 깊은 명예로운 전쟁이다. 양쪽 모두 상대방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양쪽 다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작가 입장에서, 수정된 원고를 보는 것은 충격이다. 내가 쓴 원고라도 몇 달 만에 보게 된다면 마치 남의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내가 원래 뭐라고 썼는지 보게 되고 그다음 그걸 무어라고 고쳐 놓았는지 읽는다. 그러면 화가 치밀었다가, 다시 겸허한 마음이 된다. 그러다가 다시 화가 난다. 그러고는 두어 시간쯤 침대에 누워 한숨을 내쉰다. (275쪽)
《밴버드의 어리석음_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의 작가,
폴 콜린스의 따뜻하고 재치 넘치는 영국 생활 도전기
책의 가치를 묻는 폴 콜린스의 태도는 헤이온와이에 정착해 살아가는 그의 생활 방식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는 바로 영국 문화의 단면을 엿보는 것에 있다.
폴 콜린스와 그의 가족들이 영국에 정착하는 일은 온통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투성이다. 만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 집을 구하는 일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영국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 차 있다. 판매자를 위해서만 일한다고 공공연히 떠드는 부동산 중개업자와, 낡은 지하실에 물이 넘쳐 포도주 통이 넘실거리는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집주인 사이에서 집 구하는 일은 멀고도 험하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간절히 원하는 집은 일명 ‘식스펜스 하우스’이다. 6펜스짜리, 우리 돈으로 10원도 안 되는, 말하자면 엄청나게 낡고 오래된 집에 그는 강한 애착을 보인다. 지하실에는 물건이 둥둥 떠다닐 정도로 물이 차서 더럽고, 바닥마루는 밟을 때마다 파도처럼 울렁거리는, 한때 술집이었던 작고 낡고 무너질 것 같은, 더러운 식스펜스 하우스를 얻으려고 노심초사 애정을 바친다. 잘 짜여진 미국의 합리적인 삶을 그리워하고, 영국의 비논리적인 생활 방식에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그는 이런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것 같다. 아마도 헌책을 좋아하는 폴 콜린스라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땠어요?”
“밤에 옷장에 옷을 걸어 놓으면, 다음 날 아침에 옷이 젖어 있었죠.”
그때 랫클리프 부인이 무언가를 떠올렸다. 소방관인 딸이 지난봄에 그 건물 지하실에서 물을 뽑아내는 일을 했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늘 매물로 나와 있었어요. 주인도 여럿 바뀌었죠.”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애물단지라는 얘기다.
우리는 그 집을 사기로 했다. (213쪽)
시종일관 소심하기 짝이 없는 불평을 하지만 영국에 대한 그의 시선은 따뜻하고 위트가 넘친다. 날카로운 통찰력과 유머로 가득 찬 그의 글을 읽다보면 영국 문화의 단면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희한하게도 영국 시사만화가들은 세계 최고다. 미국 시사만화는 세상 누구나, 신문을 보지 않는 무식한 사람들조차도 뜻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미국 만화가들은 화면 안에 있는 모든 대상에 이름표를 붙인다. 그냥 당나귀와 코끼리를 등장시키면 안 되고,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있게 민주당, 공화당이라고 써넣어야 한다. 아직 그 개념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지 W. 부시를 그렸다면 몸통 어딘가에 ‘부시’라고 적어야 한다. 미국 시사만화가들은 사람들의 멱살을 움켜쥐고 흔들어 댄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알았냐고? 왜 웃기는지 알겠어?”
대조적으로 영국 만화는 알 듯 말 듯 미묘하다. 오늘 어떤 신문에는 윌리엄 헤이그(영국 외무장관)가 교황 옷을 입고 운석에 깔려 있는 만화가 실렸다. 일단 만화가는 이름을 써넣지 않아도 독자들이 윌리엄 헤이그를 알아보고 그가 최근 여론조사 때문에 곤경에 빠졌음을 알고 있으리라고 전제한다. 또 믿기지 않게도, 독자들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왕립미술관 설치미술 작품을 알아보리라는 전제도 깔려 있다. 이 작품은 교황이 성당 천장을 뚫고 들어온 운석을 맞고 바닥에 쓰러진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7-208쪽)
폴 콜린스와 그의 가족들이 과연 영국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었을까? 애석하게도 대답은 ‘노’이다. 첫 저자 낭독회는 실패로 끝나고, 여권을 분실하고, 벽이고 바닥이고 모두 고쳐야 살 수 있다는 감정 평가를 받은 식스펜스 하우스에 대한 기억을 뒤로하고 그는 다시 미국 시민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폴 콜린스의 말마따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아름다움’이다.
책속으로 추가
마찬가지로, 메리 고돌핀이 1867년에 펴낸 두꺼운 책 《1음절 단어만으로 쓴 로빈슨 크루소》 도 별로 들춰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저자 ‘프라이데이’의 이름만은 도저히 줄일 수가 없었는지 그냥 그대로 남겨 두었다). 1937년 J. 발로 브룩스의 망한 역작 《랭커셔 사투리로 쓴 성경이야기》 에도 별 기대할 것이 없고. 전능하신 신께서 고무장화를 신고 돼지 먹일 구정물 안에 들어가 있는 농부의 모습을 한 대천사 라파엘에게 말씀을 내리시는 광경을 상상하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발로 브룩스 씨의 작품이 딱 맞을 것이다. “라프, 내가 니라믄 그만 툴툴댈 것이여! 대천사 양반씩이나 되어서 참을심이 있어야제.”
제목 붙이기는 균형을 잡는 일이다. 제목이 너무 모호해도 안 된다. 그 책을 서점에 가서 사려고 할 때 책 제목이 생각이 안 날 테니 말이다. 너무 흔해도 안 된다. 누군가가 벌써 그 제목을 썼을 테니까. 당신이 문학사에서 뒤쪽에 있으면 있을수록 생각해 낸 제목을 이미 누군가가 썼을 가능성이 크다. 전래 동요 구절도 모두 쓰이고 남은 게 없다. 〈배를 저어라〉라는 동요의 네 소절은 이미 모두 책으로 나와 있다. 《저어라 저어라 배를 저어라》 라는 책, 《천천히 냇물을 따라》 라는 책,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라는 책도 있고, 《삶은 한낱 꿈일 뿐》이라는 책은 여러 권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작가들이 셰익스피어를 철저히 우려먹은 탓에 이제 아무 뜻 없는 관사와 접속사만 몇 개 남은 지경이다. 성서는 오래전에 이미 바닥이 났다. 특히 잠언과 전도서가 심하다. 아가서에서 뭘 이용해 볼 생각은 꿈도 꾸지마라. 《솔로몬의 노래》(구약의 〈아가(雅歌)〉가 영어로는 〈솔로몬의 노래The Song of Solomon〉인데 토니 모리슨이 이런 제목의 소설을 썼다)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235쪽)
기본정보
ISBN | 9788963720487 | ||
---|---|---|---|
발행(출시)일자 | 2011년 07월 14일 | ||
쪽수 | 316쪽 | ||
크기 |
148 * 215
* 30
mm
/ 390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Sixpence House/Collins, Paul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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