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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의 폭군이자 기피 대상 1호 김하균과 같은 반 화자인 ‘나’는 어느 날 교실에서 일어난 집단 폭행 사건에 휘말린다. 담임 선생님을 돕기 위해 병원으로 따라간 ‘나’는 반 아이들이 모종의 합의를 통해 ‘나’를 폭행의 주동자로 교묘히 몰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고, 홀로 한강을 배회하던 중 강물 속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의문의 소년을 발견한다. 그를 구하기 위해 강으로 뛰어든 ‘나’는 한강대교 아래 숨겨져 있던 비밀스러운 공간인 ‘벙커’의 입구를 발견하게 되는데…….
작가정보
목차
- 암모니아
그날의 김하균
노들섬의 소년
신의 아이들
그놈의 일기
김 사장과 김 할아버지
운동화의 진짜 주인
각성
게르
작가의 말
책 속으로
*** 본능적으로 내지른 내 주먹에 김하균의 몸이 휘청거리는 게 보였다. 휘청대던 녀석은 민석이 내민 다리에 걸려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때 누군가가 김하균의 옆에 있던 책상을 치웠다. 하균의 주위에서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하나둘 치워져 가는 책걸상들은 묘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전에 미리 논의를 한 행동이 아닌 전혀 예상치 못한 집단행동이었다. 무언가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p21)
*** 심호흡을 하고 물속으로 들어가 다리 근처를 살피던 그때, 반대편 강둑 가까이에서 깜빡이는 오렌지색 불빛이 다시 나타났다. 마치 그 오렌지색 불빛이 내게 그곳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바다 요정 세이렌에게 홀린 듯 그 불빛을 향해 나아갔다. 곧 눈앞에 커다란 시멘트 기둥이 나타났다. 강물 속에 잠겨 있는 한강 교각의 아랫부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중앙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출입문이 나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 네모반듯한 모양의 완전한 직사각형 문이었다. (p37-38)
*** 김하균이 왜 그토록 아이들을 때리고 괴롭혔는지 그 깊숙한 속내를 알게 되면 그 폭력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될까 봐 거부감이 들었다. 어쨌든 김하균이란 녀석을 그렇고 그런 ‘나쁜 놈’으로 기억하는 편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p105-106)
*** 녀석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하루를 그쯤에서 끝내 주기를 바라기라도 하듯 일부러 그런 짓을 저질렀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다가온 불행을 일부러 벌집 쑤시듯 헤집고 터뜨려 끝을 보려고 했던 걸지도……. 녀석은 엄마가 내민 그 봉투를 집을 떠나라는 의미도 받아들였던 게 분명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일기를 들여다보고 녀석의 진심을 알게 되어 버렸다. (p121)
*** 메시의 고함 소리에 벽이 흔들리며 형광등이 깜빡였다. 그사이 미노는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고 벙커의 벽은 마치 살아 숨 쉬듯 꿈틀대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벙커가 크게 휘청대는 그 순간 2층 해치까지 왈칵 강물이 솟구쳐 올랐다. 왈칵왈칵 피를 토하듯 해치가 강물을 뿜어 대자 벙커가 형체를 잃고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상처가 난 벙커의 벽면이 꼭 사람의 생살같이 퉁퉁 부어오르며 벌겋게 피를 흘리는 광경을 보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p188)
*** 차가운 바람이 분다. 눈을 뜨자 드넓은 풀밭이 펼쳐졌다. 사람의 흔적조차 없는 날것 그대로의 길이다. 낯선 이의 발걸음을 슬며시 붙잡으며 발목 위까지 긴 풀들이 차올라 있다. 바지의 아랫단이 촉촉이 젖어 들지만 괜찮다. 눈을 돌리면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듬성듬성 풀을 뜯고 있는 말들, 그리고 두 뺨에 발갛게 익은 복숭아 한입씩을 붙여 놓은 듯한 순수한 아이들……. (p251)
출판사 서평
2013년, 한국문학을 이끌어 갈
차세대 작가의 새로운 발견!
가슴속 가장 내밀한 공간을 재해석한 독창적인 시선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 작가 추정경의 신작 장편소설
제4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이름은 망고』의 작가 추정경이 2년 2개월 만에 새 장편소설 『벙커』로 돌아왔다. 이 소설은 교내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한순간에 가해자로 낙인찍혀 버린 열여섯 살 소년이 우연히 한강대교 아래에 숨겨져 있던 미스터리한 ‘벙커’를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가 겪게 되는 한 달 간의 사건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벙커』가 전작의 틀을 깨고 작가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인 동시에, 자신의 십 대 시절과도 맞닿아 있는 의미 있는 소설이라고 밝혔다. 목적 없는 공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이어지는 쳇바퀴 같은 일상, 세상과 어른들 사이에서 느끼는 단절감,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도 온전히 의지할 수 없는 현실……. 이 소설은 그 폭력 아닌 폭력을 견디지 못해 아무도 모르는 공간으로, 또 자신의 내면으로 숨어들어 버린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동시에 끝끝내 아물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껴안고 결국 자신의 아이에게도 그 상처를 고스란히 대물림할 수밖에 없었던 어른들의 아픈 뒷모습이기도 하다.
상처 입은 영혼들이 숨어드는 곳
폭력과 분노로 부서진 이들이 빚어내는 비밀스러운 공간, 벙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세 소년이 그곳으로 모여든다!
학급의 폭군이자 기피 대상 1호 김하균과 같은 반인 화자 ‘나’는 어느 날 교실에서 일어난 집단 폭행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여섯 명의 아이들이 주축이 된 이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 김하균은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가고, 담임 선생님을 돕기 위해 병원으로 따라간 나는 반 아이들이 모종의 합의를 통해 나를 폭행의 주동자로 교묘히 몰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순간에 가해자로 몰려 학교로도 집으로도 돌아갈 수 없게 된 나는 홀로 한강 근처를 배회하던 중 강물 속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의문의 소년을 발견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강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우연히 한강대교 아래에 숨겨져 있던 비밀스러운 공간 ‘벙커’의 입구를 발견하게 된다.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벙커. 그곳에서 나는 ‘메시’라 불리는 미스터리한 소년과 일곱 살 꼬마 ‘미노’를 만나고, 두 사람의 도움으로 한 달 기한의 벙커 생활을 시작한다. 나는 메시와 미노를 도와 의식 불명에 빠진 사람들의 신발을 세탁하는 일을 맡는다. 또 메시와 미노의 주변을 맴도는 의문의 본드 할머니와 마주치기도 한다. 그 밖에도 벙커에서는 매일같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하균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나쁜 놈’인 줄로만 알았던 하균에게 말 못할 아픈 속사정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한편 벙커로 몰래 숨어든 김 사장과 김 할아버지가 세 사람의 일상에 끼어들면서 벙커에서의 생활은 점점 더 꼬여만 가고, 메시와 약속한 한 달이 가까워지면서 잊고 싶은 현실로 돌아가야 할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신비한 소년 ‘메시’와 ‘미노’의 정체는 무엇인가? 누구도 본 적 없었던 한강대교 밑 ‘벙커’의 진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은둔과 단절 VS 치유와 해방
인간 내면의 ‘은밀한 공간’에 관한 가장 독창적인 해석
데뷔작인 『내 이름은 망고』는 작가 추정경을 있게 해 준 고마운 책이지만 동시에 어떤 울타리가 된 책이기도 하다. 나는 그 울타리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로서 가장 나쁜 행동은 자기 복제가 아닐까. _ 작가 인터뷰 중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청소년문학의 미답지를 개척한 작품”, “숨겨진 잠재력”이라는 평가를 받은 전작 『내 이름은 망고』가 캄보디아라는 바깥의 세계를 그려 냈다면, 『벙커』는 그와 반대로 인간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공간, 즉 ‘마음’이라는 내적 공간을 시각화해 낸 소설이다. 작가는 ‘벙커’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소설 속 인물들은 물론 우리 내면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도 깊숙이 들여다본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친구들을 괴롭히던 학급 내의 폭군 김하균을 때리고 결국 가해자로 몰려 방황하던 중 우연히 벙커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벙커에 들어서는 순간 본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메시와 미노로부터 ‘가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그 순간 ‘나’에게 벙커는 되돌리고 싶은 과거, 잊고 싶은 현실을 피해 숨어 버린 도피처이다. 한편으로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고 김하균의 일기를 읽으며 ‘나’는 그토록 미워하고 경멸하던 하균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게 된다.
밖을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온 건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였다. 그런데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 현관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덜컥덜컥 문을 잡아당기는 소리가 들릴 텐데도 아무도 나와 보지 않는다. 마치 나란 인간이 이 철문 안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인 것처럼.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누르려는데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갈 곳이 없다. 25층 아파트 어디에도 내가 갈 곳은 없다. _ 본문 김하균의 일기 중에서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에게로, 그 아버지에게서 자신에게로 이어져 내려온 ‘폭력’의 상흔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홀로 고통스러워한 하균의 마음을 끌어안는다. 동시에 상처투성이인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마침내 벙커 바깥의 세상으로 되돌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그래서 벙커는 화해와 치유, 성장과 해방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는 ‘마음’이라는 내적 공간을 ‘벙커’라는 물적 공간으로 바꾸고 다양한 소설적 요소를 더해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에 충격과 연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누구의 가슴에나 상처를 감춰 둔 ‘자기만의 방’이 있다!
주인공 ‘나’가 벙커로 들어가 자신을 마주하고 훌쩍 자란 모습으로 세상에 돌아오는 동안, 작가 또한 소설과 함께 한 뼘 더 성장했다. 그사이 작가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지닌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픈 아이를 돌보는 애틋한 엄마의 마음으로 그렇게 이 소설을 썼다. 한강대교 아래에 숨겨진 벙커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지만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나와 우리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벙커가 도처에 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한 비밀을 쏟아 냈던 하균의 일기장처럼 누군가에게는 진심을 담아 낸 글이, 누군가에게는 꼭꼭 걸어 잠근 자기만의 방이, 어떤 이에게는 고단한 일상을 잊게 해 주는 심야의 영화관이 또 다른 벙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조용히 상처를 어루만지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다시 희망을 발견한다.
‘벙커’라는 좁고 폐쇄된 공간 속에 아득하게 넓고 깊은 우리 마음속 심연을 담아 낸 소설 『벙커』. 소설적 재미와 가독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전작보다 한층 더 독창적인 시선을 보여 준 작가 추정경. 우리가 작가로서의 그녀의 행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작가 인터뷰
Q. 어떻게 한강대교라는 공간을 떠올리게 되었나?
A.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벙커를 어느 장소에 둘지는 계속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전철을 타고 한강철교 위를 지나는 순간 한강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며칠 후에 한강대교를 찾아가 이곳저곳을 관찰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때 이곳을 배경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Q. 이 이야기의 출발점을 꼽자면?
A. 언제 이 이야기를 떠올렸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나의 십 대 시절에 닿는 것 같다.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숟가락으로 파서 버리고 싶을 만큼, 나도 그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목적 없는 공부에 지쳐 있었다. 그 기억이 계속 음에 남아 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Q. 전작이자 데뷔작 『내 이름은 망고』의 주인공은 여자아이다. 이번 소설에서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A. 나를 둘러싼 틀을 깨고 싶었다. 『내 이름은 망고』는 작가 추정경을 있게 해 준 고마운 책이지만 동시에 어떤 울타리가 된 책이기도 하다. 나는 그 울타리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로서 가장 나쁜 행동은 자기 복제가 아닐까. 남자아이들 이야기를 쓰는 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나는 겉모습과 달리 평소 운동을 무척 즐기는 타입이다. 테니스도 하고 검도도 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는데 그때 남자아이들의 특성도 많이 깨달았다. 그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Q. 폭력은 『벙커』의 중요한 테마이다. 어린 시절에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나?
A. 소설 속 김하균처럼 아버지에게 맞으며 자랐던 것은 아니다. 막내딸이라는 이유로 많이 봐주셨다. 다만 우리 아버지 세대가 다 그런 면이 있지 않나. 자식들과의 소통의 부재라는 거. 가족 간의 단절, 공부에 대한 강요…… 그런 것들도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폭력이 된다. 또 그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으면 그 폭력이 대물림되는 것이다. 그 점을 『벙커』에서 그려 내고 싶었다.
기본정보
ISBN | 9788963709826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07월 01일 |
쪽수 | 257쪽 |
크기 |
135 * 170
* 20
mm
/ 400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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