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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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형제를 적으로 아버지를 타도의 대상으로 몰고가기도 한다.
소설은 일본 유학 중 공산주의 세례를 받고 졸업을 맞아 귀국한 이종철의 장남 영우와 경성에서 전문학교를 졸업한 친일파 성향의 차남 한우의 갈등에서 출발한다. 막내 정우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상이군인으로 귀환한다. 이 세 명의 아들은 공산주의, 천황제 군국주의, 자유주의를 대변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분단과 전쟁, 남북 이념 갈등의 구도로 집약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한국전쟁을 거쳐 1970년대 전후까지의 한국 현대사의 혼란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구체적으로는 지방의 중소 지주였던 이종철과 그의 아들 영우, 한우, 정우의 파란만장한 행적을 서사시적으로 형상화했다. 저자는 공산주의, 일본의 천황을 중심에 둔 군국주의, 자유주의 등 해외로부터 유입된 이데올로기를 신화로 설정한다. 그 신화들이 이종철 가(家)의 삼대에 걸친 갈등과 좌절 그리고 비극을 야기한 것이라 보고 있다.
- 편집부
작가정보
경북 포항시 장기현 모포에서 출생하여, 성균관대학교 국문과 학사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워싱턴대학 아세아어문학과 객원교수, 대만정치대학 교환교수, 한국시가학회 회장,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교무과장 및 사범대학 직무대리, 성균관대학교 인문대학장, 대학원장, 한국고전번역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사림파문학의 연구』, 『한국민족악무와 예악사상』, 『조선조 시가의 이념과 미의식』, 『언어민족주의와 언어사대주의의 갈등』, 『한국 민족예악과 시가문학』, 『한문화韓文化와 한문학韓文學의 정체성』, 『옛 노래 속의 낭만연인』, 『한문화韓文化의 원류』, 『한문화韓文化의 단상』, 『논어강의-위대한 스승 공자사상의 재발견』, 『한문화韓文化의 한반도 전개와 발전양상』, 『맹자 정치를 말하다』, 『한국민족악무사韓國民族樂舞史』, 『시암이직현평전』 등이 있고, 역서로 『반중잡영泮中雜詠(尹』)』, 『유득공의 21도 회고시』, 『해동악부(李瀷)』, 『시법諡法(蘇洵)』, 『통전通典 _악전樂典(杜佑)』이 있다.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성균관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중에 집필한 것으로 1967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응모작이었습니다. 최종심 5편에 올라 문학평론가 백철 씨의 관심을 끌었던 작품입니다. 이후 고전문학과 민족예악론 그리고 인문학 연구에 몰두하여 장시간 보류했던 글입니다. 약간의 수정은 있었지만 초고의 내용을 보존한 것입니다. 만년인 지금도 많은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목차
- 1. 외래신화의 소용돌이
2. 일제강점기의 우화
3. 덴노헤이카의 영장
4. 대동아공영권의 부도수표
5. 해방공간의 이전구투
6. 좌익과 우익의 분란
7. 삼류 이데올로기의 폐해
8. 국군과 인민군의 허와 실
9. 자유와 평등의 사상누각
10. 민족 정통 신화의 태동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영우의 입장
“공산주의란 문자 그대로 모든 재산을 공동의 것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세계의 역사는 재산을 어느 특정 계급에 속한 사람만 독차지했기 때문에, 사회가 불안했고 갈등과 고통에 찬 생활을 강요받아왔습니다. 또 문화적 혜택은 그들 재산을 가진 사람만 누렸기 때문에, 재산을 갖지 못한 대다수의 무산대중은 도둑질과 협잡 사기 등의 범죄에 연루되었습니다. 조선조는 양반들만 재산을 독차지하여 일반 백성은 밥을 굶고 살아야 했어요. 조선이 일본에게 그처럼 쉽사리 나라를 빼앗긴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봉건왕조가 소멸한 뒤에도 옛날 왕족이나 양반이 누렸던 모든 권세를 재산가들이 누리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요즘의 재산가는 과거 왕족이나 귀족과 같은 번영을 누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현대판 양반이고 귀족입니다. 일제강점 후에는 일본 놈들이 귀족의 자리를 차지하여 모든 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내가 취직을 하려면 편지 한 장이면 할 수 있어. 그러나 난 시세에 따라 오늘을 사는 남자가 아니고 내일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이야. 지금 내가 뿌리고 있는 씨앗은 앞으로 오 년 후에 싹이 틀 것이고 십 년 후면 곡식을 거두어들일 수 있을 거야. 그 곡식이 내가 아닌 아들 상민이 거둘지라도 나는 씨를 뿌릴 거네. 상민은 곧 우리의 내일이니까. 또 내 포부가 실행되지 않아도 좋아. 노력하는 그 과정으로 만족해. 현실과 부딪쳐 난파할지라도 그것이 차라리 안이한 평화보다는 가치가 있다고 봐. 공산주의는 덴노헤이카를 몰아내는 가장 확실한 이념이며 조선의 독립과 번영을 가져다줄 유일한 사상이야!”
한우의 입장
“과거 오천 년 동안 못난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 준 것이 무엇이죠? 일본에 합방된 나라밖에 준 것이 없어요. 나는 이 한일합방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에 복속된 것과 같아요. 우리나라는 땅덩어리가 너무 작습니다. 조선 반도만으론 국민에게 영광을 줄 수 없습니다. 요즘 소위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병처럼 나돌고 있는 민족주의니 공산주의니 사해동포주의니 하는 것들 모두 잘 살기 위한 방법에 불과해요.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굶주리기보다는, 일본에 속하여 격양가를 부르면 족하다고 믿어요.”
“형님은 엉뚱한 말을 하고 있어요. 자기 앞도 닦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양 여겨, 모든 사람의 불행을 걱정하는 것은 건방지고 주제넘은 생각입니다. 한일합방 때문에 우리가 남폿불 아래 살 수 있는 것이고 편한 양복을 입게 된 겁니다. 단 하루 만에 경성을 갈 수 있고 기차와 버스가 달리고, 앉아서 멀리 있는 사람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이것 모두가 누구의 덕이에요? 덴노헤이카의 은혜입니다.”
정우의 입장
“형수님은 나더러 역적이 되라는 말씀입니까? 우리 집안에 역적은 한 사람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나까지 기피를 하면 역적이 두 사람이나 되잖아요.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바로 반역죄라는 죄입니다. 나는 역적이 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공산군을 죽여야 합니다. 큰형님이 공산주의자였지만 공산주의는 사람을 영혼이 없는 기계로 만드는 고도의 논리체계를 가진 미신입니다. 공산주의는 곧 새로 만들어진 하느님입니다. 이십 세기에 날조된 유령이 나타난 겁니다. 내일이면 정든 집을 떠나 전선으로 갑니다. 피를 흘려서라도 자유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사람이 이 지구 상의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형수님들은 아세요? 그것은 바로 형수님들이 그렇게도 못마땅해하는 이념을 인간은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사람에게 이념 혹은 사상이라 해도 좋겠지요, 그 이념이 없다면 말입니다, 먹고 자고 누기만 하는 저 마당의 개와 무엇이 다르겠어요? 그 관념이 문명과 문화를 이룩한 역사의 원동력이며 역사라는 기계가 끊임없이 줄기차게 돌아가게 하는 기름입니다. 왜왕을 앞세운 대동아공영권 등의 청사진은 일제가 배양한 빛깔 고운 독버섯에 불과했어요. 빛깔만 보고 곱다고 그 버섯을 먹으면 가차 없이 죽습니다. 공산주의 역시 때깔 좋고 먹음직스러운 독버섯입니다. 그래서 두 분 형님은 명분도 없는 개죽음을 당한 거예요. 자유는 독버섯처럼 빛깔이 곱지는 않지만, 예컨대 송이버섯과 같습니다. 따라서 독버섯의 씨앗을 뿌리려는 공산 괴뢰군을 쳐부숴야 할 의무가 있고 송이버섯이 자라는 이 대지를 지킬 의무가 있는 겁니다.”
여성들의 입장
“왜 하는 수 없는 일입니까. 좌우간 이 씨네 집 아들들은 모조리 어리석기 짝이 없어요. 우리를 첩 아닌 첩으로 만들었다가 이제는 그것도 부족해서 과부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 이상 무모하고 무능한 남자들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도대체 대동아공영권이니, 공산주의니, 반공이니, 자유니 하는 어디서 굴러온 것인지도 모를 볼품없는 망령 같은 것을 가지고…, 거기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우리를 이 꼴로 만들어 놨잖아요! 우리 집안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피해를 봤으면 족하지 도련님도 정신을 차려야 마땅하지 않아요. 낮에 도련님이 하시는 말씀을 좀 생각해보세요. 공산주의만 이 땅에서 없어지면 무슨 장한 수나 생길 듯이 말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이 집안 세 아들은 고집이 똑같이 닮았는지 모르겠어요.”
“역사가 필요로 한 인물들이 아니라 역사가 필요로 한 제물들입니다! 내가 정우 도련님의 처지에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기피를 택할 것입니다. 군대를 기피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요. 얼마 전에 안 사실이지만 정우 도련님이 지서에 잡혀갔을 때 말이에요. 그때 도련님까지 죽이려고 했는데…, 임삼득 씨가 간곡히 부탁을 해서 살게 되었대요. 그 사람도 한 가닥 양심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에요. 더는 참화를 입어선 안 돼요. 한때 빨갱이로 몰아 죽이려고 한 사람한테 이제 와서 빨갱이를 무찌르는 국군이 되라고 하다니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래도 국군에 나가야 하나요?”
상민의 입장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일제의 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상감마마를 부정하고, 자신이야말로 가장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신화라고 뽐내던 왜왕의 대동아공영권의 허상이었던 총독부! 그 총독부 건물이 근정전을 막고 있다. 근정전 뒤에 우뚝 솟은 한양의 진산 북악을 사람의 얼굴처럼 생겼다 해서 일명 면악(面嶽)이라고도 하는데, 눈코 입의 형상을 갖춘 면악이 지금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다고 상민은 생각했다. 저 면악을 활짝 웃게 하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사명이라고 느꼈다.
해방 후 대한민국과 북한은 국통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격렬하게 다투었다. 세계의 국가들 가운데 국호에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첨가된 나라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아는 상민은,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폄훼한 조선왕조의 국통을 계승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보하기를 기원했다.
그는 아버지가 대한민국을 확실하게 긍정하지 않았던 사실에 대해 일말의 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신봉한 공산주의 신화는 그것을 시행하고 있는 북한의 반인민적 참상을 참작컨대 박제신화로 확인되었다고 상민은 규정했다. 아울러 국제정세의 오판으로 남침을 감행하여 수백만의 동포를 죽음으로 이끈 저들의 만행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본정보
ISBN | 9788963572420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8월 15일 |
쪽수 | 384쪽 |
크기 |
145 * 207
* 22
mm
/ 504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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