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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재학 중에 등단하여 시인이 됐지만 첫 책은 『농구코트의 젊은 영웅들』이었다. 농구와의 인연을 길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30년 세월을 신문에 농구 기사를 쓰면서 살았다. 늘 농구를 생각했다. 남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고 점점 내 생각의 부피가 늘었다. 그러다 기자직을 놓고 연구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농구장도 농구인도 농구 경기도 점점 멀어졌다. 언제나 농구가 먼저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좋아하는 팀도 딱히 없다. 그 팀이 아니면 안 되는, 그런 팀은 없다. 농구를 프로야구보다 더 좋아하지만, 어떤 팀도 LG트윈스만큼 사랑하지는 않는다. 이런 내가 2021년 들어서 농구 경기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의 막바지 몇 경기와 포스트 시즌 경기를 아주 진지하게 관전했다. 기록까지 해가며. 나에게는 농구 경기를 기록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하는데 불편하지 않았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 책은 2021년 9월 이전에 내가 주로 여자농구를 관찰하며 자맥질한 몽상의 늪, 그 관찰기다. 삼성생명과 KB의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도쿄올림픽 농구, 남자프로농구 이야기를 썼다. 맨 뒤에는 내가 젊은 기자였고 허재가 아직 20대일 때 인터뷰한 기록을 정리해 부록으로 실었다. 독자는 몇몇 뛰어난 선수와 코치의 이름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에 대한 생각이 나와 일치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2만 명이 모인 체육관에서 농구 경기를 보아도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고독할 수밖에 없다. 괴테가 베네치아에서 사무치게 느낀,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누구나 체험할 것이다. 그 고독 속에서 인간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철학적 인식 같은 것들이 고갱이를 이룬다. 나는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쓸 때 독자와의 교감이나 누군가의 공감 또는 동의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이정표와 같은 역할과 거리가 멀다. 모두가 그렇듯 자신의 길을 외롭게 걸은 자취이다.
책은 가을에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내 겨울을 맞으리라.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선명하게 남는다. 필름에 맺은 상처럼 이미지들이 또렷하다. 내 감정의 표면 위에 석필처럼 깊이 새긴 메시지들이다. 그것들은 아야소피아 2층, 대리석 난간에 새긴 처연하고도 덧없는 사랑의 맹세와도 같다. 한때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많은 일들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장소들이 오늘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어떤 것들은 미라처럼 구슬프다. 나는 윤후명의 소설 「누란의 사랑」을 떠올린다. “그 사랑은 끝났다. 그리고 누란에서 옛 여자 미라가 발견된 것은 다시 얼마가 지나서였다. 그 미라를 덮고 있는 붉은 비단 조각에는 ‘천세불변(千世不變)’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언제까지나 변치 말자는 그 글자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래, 가슴이 아프다. 그 사랑은 끝난 것이다. 이렇게 아픈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자리를 잡았는가.
작가정보
시인.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 『농구 코트의 젊은 영웅들』(1994), 『타이프라이터의 죽음으로부터 불법적인 섹스까지』(1994), 『농구 코트의 젊은 영웅들 2』(1996), 『길거리 농구 핸드북』(1997), 『X-레이 필름 속의 어둠』(2001), 『스포츠 공화국의 탄생』(2010), 『스포츠 보도의 이론과 실제』(2011), 『그렇다, 우리는 호모 루덴스다』(2012), 『미디어를 요리하라』(2012·공저), 『아메리칸 바스켓볼』(2013), 『우리 아버지 시대의 마이클 조던, 득점기계 신동파』(2014), 『놀이인간』(2015·★2016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휴먼 피치』(2016), 『맘보 김인건』(2017), 『기자의 독서』(2018), 『옆구리에 대한 궁금증』(2018), 『한국 태권도연구사의 검토』(2019·공저·★2020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기자의 산책』(2019), 『아픈 곳이 모두 기억난다』(2019), 『금요일의 역사』(2020) 등이 있다.
목차
- 머리말 ■ 4
프롤로그 _ 기호로 읽는 농구, 그 괴로움에 대하여 ■ 13
극한직업 _ 모비스 79:78 전자랜드 ■ 20
선수의 성장 _ 삼성생명 67:56 하나원큐 ■ 26
자유투라는 의지, 승리라는 운명 _ 하나원큐 91:88 삼성생명 ■ 34
전주원 ■ 40
가정이 아닌 그 곳 ■ 44
서장훈 ■ 53
단상(斷想)들 ■ 62
정신이 신체를 지배하는 경기 ■ 72
진광불휘 _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
삼성생명 74:57 KB ■ 81
삼성제일주의 ■ 89
유도훈 ■ 97
잡어(雜語) ■ 103
10피트 높이에 걸린 꿈 ■ 114
김승기 ■ 124
농구대통령, 연예대통령 ■ 139
최희암 ■ 150
박신자 ■ 161
도쿄의 불빛 ■ 170
독백 _ 올림픽이 끝난 밤에 ■ 181
잡설(雜說)1 ■ 188
잡설(雜說)2 ■ 196
나카지마 감독 ■ 208
[덤] 허재, 오래된 농담(籠談) _ 1994년 2월의 취재수첩 ■ 212
기본정보
ISBN | 9788963276496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9월 27일 |
쪽수 | 244쪽 |
크기 |
131 * 186
* 21
mm
/ 321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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