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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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저편에서 들려오는 먼 북소리
25년 동안 25회, 우연한 계기로 참여하게 된 온누리호 해양 탐사를 시작으로, 그는 매년 꼬박꼬박 배에 타고 탐사를 나가고 있다. 그의 반평생은 바다와 함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박숭현 박사이지만, 대학교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이렇게 반평생을 바다와 함께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암석학에서 지질해양학으로, 고해양학으로, 또 중앙 해령으로. 마치 바다의 조류가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관심사를 옮겨온 궤적은, 돌아보면 어떠한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가 있었던 것만 같다. 첫 탐사의 회상에서부터 바다와 지구에 얽힌 풍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남극이 부른다』는 박숭현 박사 반평생의 탐사와 연구를 돌아보며 펴낸 첫책이다. “앞으로 과학자가 될지”조차 고민하고 있던 젊은 청년을 평생토록 바다에 매어 놓은 ‘먼 북소리’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저자가 책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폭의 대양과 같다. 때로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태평양처럼, 때로는 사납게 넘실거리는 북극해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쥐락펴락 한다. 혹자에게는 여느 사람으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특별하고 흥미진진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통로가, 혹자에게는 대양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참조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책이다.
작가정보
연세대학교 지질학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의 아라온호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연구선을 타고 매해 대양으로 나간다. 주로 지구의 내부 물질과 에너지가 나오는 통로인 해저 중앙 해령을 연구하여, 지구 내부 맨틀의 순환과 진화의 문제를 밝히고자 한다.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교 지구행성과학과 교수이자 그 분야의 권위자인 랭뮤어 교수와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2019년에 ‘질란디아-남극 맨틀’로 명명된 새로운 유형의 맨틀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였으며, 이로써 기존 30년 동안 고착되어온 맨틀 연구를 뒤엎는 놀라운 흐름을 만들었다.
목차
- 들어가며
1장 나를 부르는 바다
그렇게 바다가 내게로 왔다 / 심해 퇴적물과 윌리스 브로커 / 이산화탄소와 화산 폭발 / 고해양학에서 중앙 해령으로 / 남극 대륙을 둘러싼 거대한 활화산 산맥 / 중앙 해령과의 첫 만남은 지진, 파도와 함께
2장 40일간의 세계일주
7일의 탐사를 위한 33일의 여정 / 마드리드와 푼타아레나스 / 만만디 정신에 묶인 매퍼를 구하라! / 산 넘어 산, 멀미 넘어 눈 폭풍 / 세종 기지를 떠나 남극해로 / 거대한 파도와 해빙을 헤치고 / 죽음의 레이스를 뚫고나가다 / 남극해의 잔잔한 바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
3장 거친 파도 위의 방랑자
첫 남극 탐사기: 남극 대륙에는 세종 기지가 없다 / 첫 남극 탐사기: 안타티카, 불확실한 여정 / 첫 남극 탐사기: 활화산에서 펭귄을 만나다 / 호주 프랭클린호 승선기 : 서태평양 섭입대를 찾아서 / IODP 조이데스 레졸루션호 승선기 : 모호를 향하여 / 일본 미라이호 승선기 : 발파라이소와 이슬라 네그라의 추억 / 미국 놀호 승선기 : 해양 탐사, 사람과의 만남 / 프랑스 라탈랑테호 승선기 : 선상 파티로의 초대
막간: 항해의 닻을 잠시 내리다
4장 바다에서 지구를 읽다
바닷물은 어떻게 움직일까 / 바닷물은 왜 짠가 /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위치를 알 수 있을까 / 남극은 왜 차갑고 고독한 대륙이 되었을까 / 북극은 왜 얼어붙은 바다가 되었을까 / 북극곰과 남극 펭귄: 북극해 바닷길을 찾아서 / 북극점 도전의 역사와 그 이면 / 남극점을 둘러싼 성공과 비극, 위대한 실패 / 버뮤다 삼각지대와 일본 침몰 / 바다에서 발견한 지구의 작동 원리
추천사
-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던 박숭현 박사가 교양서적 발간에 도전하였다. 『남극이 부른다』를 출간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논문보다 대중 원고 쓰기를 어려워한다. 전문가가 대상인 논문은 과학자의 언어로 소통 가능하지만, 대중 원고 집필에는 다른 글재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소설가로서의 재능이 숨어 있다. 과학적인 내용이지만 소설같이 읽는 재미가 있다. 필자의 폭넓은 지식이 군데군데 양념처럼 들어가 색다른 맛이 난다.
박숭현 박사를 처음 본 것은 그가 학생 때였다. 20여 년 전으로 기억한다. 북동태평양 심해 탐사를 같이 나갔다. 차분한 성격으로 맡은 역할을 열심히 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박숭현 박사는 바다에서의 첫 경험을 회상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그가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앞으로 과학자가 되려는 꿈나무들에게 나침반과 등대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남극은 여느 사람은 가볼 꿈조차 꿀 수 없는 극한의 땅이다. 글쓴이는 극지연구소에 근무하며 남극 탐사를 여러 차례 다녀왔다. 경이로운 자연을 접하면 경외심과 함께 호기심이 발동한다. 과학자라면 그 호기심을 풀기 위해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극한 환경에 도전한다.
『남극이 부른다』는 그의 연구 대상인 지구의 속살을 품고 있다. 바닷속으로 탐험을 떠나는 박숭현 박사는 21세기 새로운 대항해시대를 이끄는 탐험가이자 과학자이다. 그와 함께 자연 탐사 여행을 떠나보기 바란다. -
박숭현 박사는 내가 극지연구소 소장일 때 아라온호를 활용하여 남극 중앙 해령 탐사를 기획하고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는 끊임없이 숨 쉬며 변화하는 지구에 대한 애정과 최고의 성과를 만들기 위한 열정이 대단한 연구자이다. 이 책에는 젊은 지질학도에서 세계적인 지구과학자로 성장한 박숭현 박사의 25여 년 동안의 삶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전 세계 바다를 누비는 다양한 문화 체험과 더불어 하나뿐인 행성 지구에 대한 이해를 키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책 속으로
해양연구소에서 온누리호를 타고 동태평양에 나가자는 제안을 했을 때, 나는 앞뒤를 고려하지 않고 참여하기로 했다. 『유령선』의 주인공 핌이 친구를 따라 바다로 나갔듯, 나도 별생각 없이 항해에 나섰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잠재해 있던 바다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해양 탐사와 해양연구소 생활을 통해 만난 ‘해양학’이란 학문은 나를 해양과학자의 길로 이끌었다. 나에게 있어 해양학은, 너울대는 푸른 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바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구 환경과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 총체적으로 생각하게 해준 매혹적인 학문이었다.
_ 6쪽, ‘들어가며’ 중에서
FFG에 잡혀서 올라온 감자같이 생긴 동글동글한 망간단괴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5,000m 깊이의 심해저에 왜 이런 검은덩어리들이 존재하는 걸까? 이렇게 깊은 바닷속에 있는 금속 덩어리까지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망망대해의 푸르름과 검은 망간단괴 그리고 팀원들과의 끈끈하고 효율적인 팀워크, 바다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_ 23쪽, ‘1장_나를 부르는 바다’ 중에서
중앙 해령은 야구공의 실밥같이 지구를 두 바퀴 휘감는 약 7만 km 길이의 방대한 해저산맥이다. 지구 적도의 둘레 길이가 약 4만 km인 것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규모이다. 이 긴 중앙 해령의 3분의 1가량이 남극 대륙을 둘러싸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 중 하나인 남극 대륙이, 용암이 끓어오르는 뜨거운 화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남극 중앙 해령은 그 규모로만 보아도 지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거친 바다 환경 때문에 탐사가 극도로 힘들어, 여전히 미지의 지역으로 남아 있다.
_ 90쪽, ‘2장_40일간의 세계 일주’ 중에서
마젤란 해협으로 많은 배들이 지나다니던 19세기 동안 호황을 누리던 푼타아레나스는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선박들이 가까운 길을 놔두고 굳이 멀고 위험한 마젤란 해협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몰락해가던 이 도시가 다시 활력을 찾게 된 것은 파타고니아와 남극 관광 붐 덕분이었다. 파타고니아는 혹독한 날씨 때문에 사람이 살기는 힘들지만 화산 활동, 빙하 그리고 바람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풍경을 체험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을 매혹시켰던 것이다. 파타고니아는 다채로운 지질현상 때문에 많은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는 곳이기도 하다. 푼타아레나스는 이제 오지 여행의 거점 도시가 된 것이다.
_ 169쪽, ‘3장_거친 파도 위의 방랑자’ 중에서
포트모르즈비는 왜 이토록 위험한 도시가 된 것일까? 파푸아뉴기니는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수많은 부족들이 고립된 상태로 상호 소통 없이 살아왔고 그 결과 부족별로 다른 언어를 오랜 기간 사용해왔다. 이 고지대인들은 해양보다는 산악에 적응된 사람들인 셈이다. 서로 교류가 없는 수많은 고지의 부족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세계 언어 6,000여 개 중 약 1,000여 개가 파푸아뉴기니에 있다는 것이다. 한 부족이 통제하는 지역은 대체로 안전하다. 라바울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한 부족의 통제권을 벗어난 지역은 위험해진다.
_ 214쪽, ‘3장_거친 파도 위의 방랑자’ 중에서
현재 저위도 대부분 중앙 해령 지역의 열수 생물과 생태계의 정보는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남극권 열수 생물과 생태계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는 상태이며, 아라온호 탐사가 몇 개의 신종 열수 생물을 채취하고 영상을 획득함으로써 느린 발걸음으로 접근하고 있는 상황이다. 남극권 열수 생태계의 규명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맞춤으로써, 전 지구적 열수 생태계 연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탐사 시도와 유인 및 무인 잠수정 탐사가 필수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첨단 장비를 활용한 탐사는 해양 탐사 기술 발전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해양 연구든 남극 연구든 대한민국은 늘 후발 주자였다. 남극 중앙 해령에 걸려 있는 중요한 과학적 이슈들을 해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은 이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_ 285쪽, ‘막간: 항해의 닻을 잠시 내리다’ 중에서
남극 출장을 간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가 “펭귄을 직접 봤냐”, “펭귄 사진을 찍어 와서 꼭 보여달라”라는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남극’이라고 하면 즉시 펭귄을 떠올린다. 그러면 북극의 상징은 무엇일까? 펭귄만큼 인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새하얀 북극곰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남극에도 곰이 있을까? 혹은 북극에도 펭귄이 살고 있을까?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기 때문이다.
_ 328쪽, ‘4장_바다에서 지구를 읽다’ 중에서
1988년 이후 남극 킹조지섬에서 세종 과학 기지를 운영해오던 한국은 2013년 남극 대륙에서도 장보고 기지의 운영을 시작했다. 이로써 남극권에 두 개 이상의 상주 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열 번째 국가가 된 것이다. 한국은 세종 과학 기지 건설 이후 매년 남극 탐사대를 파견하고 있는데, 왕래가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면 적어도 기지 내에서의 생활은 일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생활과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 정도이다. 20세기부터 진행된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의해, 인류는 남극의 혹독한 환경마저도 어느 정도 길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_ 340쪽, ‘4장_바다에서 지구를 읽다’ 중에서
출판사 서평
연구자, 항해자 그리고 탐험가
그가 풀어내는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
박숭현 박사는 통상적으로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전형적인 ‘과학자’와는 다소 다른 면모를 가진 인물이다. 스스로도 ‘항해자’ 혹은 ‘탐험가’라고 불리는 것을 즐긴다. 무엇보다 그의 주 무대는 연구실이 아니다. 연구실은 그에게 있어, 해양 탐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 혹은 해양 탐사를 마친 후에 자료를 정리하기 위한 공간에 불구하다. 그의 본질은 바다 위에 있다. 공식적으로 통계가 나온 바는 없지만 어쩌면 자신이 한국에서 배를 가장 많이 타는 과학자가 아닐까, 하며 넌지시 웃음 짓는 저자의 기저에는 어린 시절 쌓아올린 바다에 대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여기에 불을 붙이기까지 이 열망은 기억 한켠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으나, 결코 사라지지는 않은 채 숨죽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해양 탐사라고 하는 것의 특수성 때문에, 연구지와 연구팀에 따라서 이리저리 배를 옮겨 타며 떠돌아다니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당연히 저자 또한 한국의 온누리호에서 시작해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배들을 옮겨 다녀야 했다. 사람에 따라서 진저리를 칠 법도 한데, 그에게는 이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다. 연구선도 사람처럼 국적이 있다 보니, 선적에 따라서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 그렇게 다른 문화와 접하고,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얽히는 것 또한 경험이 되고 양식이 된다. “해양 탐사는 단순한 과학 연구를 넘어선,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며 이문화와의 교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진심으로 이 탐사 생활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그렇게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탐사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여기에는 다소 어렵고 전문적인 연구 내용만이 아니라, 탐사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선상 체험이 포함되어 있다. 발파라이소에서는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시를 떠올리며, 마드리드에서는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의 그림을 생각하고, 하와이에 가서는 서든 록(Southern Rock)을 찾아 듣는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과학 탐사를 배경으로 한 탐사기이지만, 마치 한 편의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여느 과학자들의 기록과 그의 탐사기를 구별 짓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박숭현 박사는 2015년에 세계 최초로 남극권 중앙 해령의 열수 분출구와 신종 열수 생명체를 발견하며 화제를 모았는데, 이때 열수 분출구에 붙인 이름이 ‘무진’이며, 키와(kiwa)속의 신종 게는 아라온호의 이름에서 따서 ‘키와 아라오나(kiwa araona)’라고 명명했다. 이중 ‘무진’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딴 이름이다. 무진의 안개를 떠올리게 하는 열수의 형상과 탐사 과정에서 드리운 여러 가지 불확실한 감정 및 모호한 느낌을 오롯이 담은 명명이라고 했다. 문학과 철학을 사랑하는 저자이기에 가능했던 명명이다. 그의 모든 글에는 이런 특유의 감성이 녹아 있다. 보이지 않는 저편, 단단한 해저에 잠든 매력적인 이야기를 캐내어 우리 가슴에 스며드는 언어로 풀어내는 힘이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글을 “지구과학, 역사, 문화, 모험 그리고 탐사에 대한 내용 등 다양한 재료들이 혼합된 비빔밥 같은 책”이라고 표현한다. 요리사의 솜씨가 서투르다면 전부 다 제맛을 잃어버릴 만한 개성 강한 재료들이다. 그러나 박숭현이라고 하는 솜씨 좋은 요리사는 이 재료들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기분 좋은 한 끼를 선사한다. 무더운 여름에 간접 체험을 통해서 극지가 주는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 바다가 품고 있는 지구에 대한 비밀을 알고자 하는 사람, 언제고 극지 혹은 바다로 직접 나아갈 꿈을 꾸는 사람, 이 모든 이에게 저마다 필요한 맛을 느끼게 해줄만한 책이다.
우주보다 먼 곳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관측하다
“우주에는 몇 분이면 도착하는데, 남극 기지에 오려면 며칠이나 걸리는군요. 여기가 우주보다도 머네요.” 일본의 우주비행사 모리 마모루(毛利衛)가 자국의 남극 기지를 방문하면서 남긴 말이다. 그저 이동 시간만을 가지고 던진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남극까지의 거리는 약 1만 3,400km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국제적으로 지구와 우주 사이를 규정하는 경계인 카르만 라인(K?rm?n line)은 열권의 중간, 해발고도 약 10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대기권에 포함시킬지도 논란이 있는 외기권(外氣圈, Exosphere)을 고려하더라도 해발고도 1만 km에 불과하다. 물리적인 거리를 따지더라도 남극은 명백히 ‘우주보다 먼 곳’인 셈이다. 거기다 박숭현 박사의 주된 연구 대상인 중앙 해령은 남극해에서 다시 수천 km 내려가야 비로소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이 까마득히 먼 곳에서, 빛조차 닿지 않는 심해로 탐사 장비를 내려 시료를 채취하고 분석하는 일련의 과정은 너무도 지난하여, 마치 수도승의 고행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매번 풍랑을 견디며, 짧게는 일주일도 채 되지 못하는 탐사를 위해 수개월에 이르는 여정을 떠난다. 저자를 위시한 연구자들이 이런 고행을 감내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바다가 부른다, 남극이 부른다, 지구가 부른다
지구의 비밀을 밝혀달라고 그를 부른다
저자는 “땅만 바라봐서는 지구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강조한다. 말 그대로 지구의 순환은 태양과 우주, 생물체와 지구 내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서 이루어지는 ‘전지구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바다 또한 그 거대한 순환의 한 축을 이룬다. 바람과 지구의 자전 그리고 대륙의 분포 등 지형적 요소가 조합되어 표층 해류의 움직임을 만들고, 해수의 순환은 지구의 기후를 결정짓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를 연구하는 것은 지구를 연구한다는 것이고, 나아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령 저자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인 판구조론과 대륙이동설을 보자. 과거에는 모든 육지가 초대륙 판게아(Pang?a)의 형태로 한데 모여 있었고, 곤드와나(Gondwana)와 로라시아(Laurasia)라는 두 개의 대륙으로 나뉘었다가 이윽고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인류의 삶에도 여러 모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를테면 특유의 광채를 자랑하며 뭇 사람들의 선망이 되는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광산은 현재 러시아와 중국, 인도네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호주 등 세계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광산들은 과거 곤드와나 대륙에 존재했던 단 한 곳의 킴벌라이트 광맥에서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곤드와나 대륙이 분열하여 각 대륙을 형성할 때, 급격한 압력 변화로 지하 깊숙이 숨어 있던 킴벌라이트 광맥이 지표 가까이로 상승하였고, 다이아몬드는 인간 앞에 그 자태를 드러내 많은 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맨틀의 움직임과 지구의 진화사를 추적하다보면 이처럼 지구의 수많은 과거사가 오늘날의 우리 삶과 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 부쩍 놀라게 된다.
어디 그뿐이랴. 저자 박숭현 박사는 남극 해저에서 빙하기-간빙기의 순환 증거를 찾아내 《사이언스(Science)》를 통해 발표했다. 빙하기와 간빙기에 해양지각이 형성되는 속도가 각기 달라, 중앙 해령 주변의 지형을 분석함으로써 이 주기를 파악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지구는 결코 본질적으로 안정적인 균형 상태에 있지 않다. 태양계 내에서의 운동, 지구 자체의 운동 그리고 지구 위의 기후 등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조건들은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우리 삶의 터전으로서의 지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변화와 지구 내부의 활동까지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 운동과 진화사의 비밀을 밝히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지구과학자들의 숙원이며, 남극 해저는 이 문을 열어젖히기 위한 열쇠를 품고 있는 미답지이다. 저자를 포함한 연구자들이 거친 풍랑과 눈 폭풍을 감수하고 남극해로 뱃머리를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본정보
ISBN | 9788962623444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7월 31일 |
쪽수 | 372쪽 |
크기 |
147 * 200
* 31
mm
/ 512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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