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자문묘 연구
도서+교보Only(교보배송)을 함께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해외주문/바로드림/제휴사주문/업체배송건의 경우 1+1 증정상품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패키지
북카드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수상내역/미디어추천
중국 공자문묘의 시대적 맥락, 특징과 사례를 총망라한
공자문묘 연구의 결정판!
작가정보
저자(글) 공상림
(孔祥林, 1951~)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시(曲阜市) 출신으로 공자의 75대손이다. 곡부 문화재 관리위원회 주임, 공자박물원(孔子博物院) 원장, 공자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세계 유학대회 사무국 사무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공자연구원 2급 연구원, 국제 유학연합회 이사, 중국공자 기금회(基金會) 이사, 중국 공자문묘 보호협회 명예 회장, 국제 제공(祭孔)연맹 주석, 한국 유도회(儒道會) 고문, 홍콩 공교(孔敎)학원 고문, 곡부사범대학교 특별 초빙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7년 중국 국무원의 특별 지원금을 받았고, 1999년 산동성 전문기술 첨단 인재로 선발되었으며, 2018년 산동성 사회과학 특별 공헌상을 수상한 동시에 산동성 사화과학 명가(名家)로 선정되었다. 연구 분야는 공자사상, 공씨 가문, 공자 관련 문화유산 등이며, 주요연구로 『世界孔子廟硏究』[중국 국가사회과학기금(國家社會科學基金) 연구 프로젝트의 연구 성과로 『國家哲學社會科學成果文庫』로 선정됨], 『孔府文化硏究』, 『孔子誌』, 『圖說孔子』, 『衍聖公與衍聖公府』 등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유네스코 파리 본부, 미국, 프랑스, 호주, 한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10여 개국과 중국 상해, 흑룡강성, 하북성, 요녕성, 내몽고 등 성시(省市) 도서관에서 200여 차례 강연을 했다.
저자(글) 공철
(孔喆, 1978~)
중국 산동성 곡부시 출신으로 현재 공자문묘와 국자감 박물관 부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圖說孟子』, 『圖說國子監』, 『孔子廟建築制度硏究』 등 저서를 저술했고, 주요 연구로 「先秦儒家思想的核心價値」, 「孔子廟附享的歷史演變」, 「大數據時代下儒學的生存與發展」 등 20여 편의 논문이 있다.
목차
- 제1편_ 중국 공자문묘의 역사
제1장_ 공자문묘의 탄생: 전국(戰國) 시대
제2장_ 공자문묘의 정초: 한대(漢代)
제3장_ 경사(京師) 공자문묘의 출현: 동진(東晉) 시대
제4장_ 지방학교 공자문묘의 시작: 북제(北齊) 시대
제5장_ 공자문묘의 확대기: 당대(唐代)
제6장_ 공자문묘의 성숙기: 송대(宋代
제7장_ 공자문묘의 침체기: 요(遼)ㆍ금(金)ㆍ서하(西夏)ㆍ원(元)
제8장_ 공자문묘의 중흥기: 명대(明代)
제9장_ 공자문묘의 전성기: 청대(淸代)
제10장_ 공자문묘의 쇠퇴기: 청 말(淸末)
제11장_ 공자문묘의 파괴: 민국(民國) 이후
제12장_ 공자문묘의 복원: 개혁개방 이후
제2편_ 중국 공자문묘의 제도
제1장_ 공자문묘와 학교의 배치관계
제2장_ 공자문묘의 건축구조
제3장_ 공자문묘의 건축제도
제4장_ 공자문묘의 봉사제도(奉祀制度)
제5장_ 공자문묘의 제사제도
제3편_ 중국 공자문묘의 현황
제1장_ 공자문묘의 보존 현황
제2장_ 공자문묘의 이용
제3장_ 대표적인 공자문묘
부록
부록 1_ 중국 공자문묘 대사기[中國孔子廟大事記]
부록 2_ 양무에 배향된 선현 일람표
부록 3_ 양무에 배향된 선유 일람표
부록 4_ 숭성사(崇聖祠)의 봉사인물 일람표
부록 5_ 중국 학교문묘 일람표
부록 6_ 그림 차례
책 속으로
공자 사후 옛집이 곧장 묘우로 개조된 일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남송(南宋) 소흥(紹興) 갑인(甲寅)년(4년, 1134년)에 출판된 『동가잡기(東家雜記)』로, “노애공(魯哀公) 17년에 옛집에 묘우를 세우고 묘우를 지키는 가호(家戶)를 100호(百戶)나 설치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가잡기』는 공자의 17대손인 공전(孔傳)이 지은 책으로, 공자 집안의 첫 번째 지지(地誌)이다. 그 이후의 지지(地誌)들은 모두 그에 따라 공자문묘가 노애공 17년(B.C. 478)에 출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22쪽, ‘제1편 제2장_ 공자문묘의 정초: 한대(漢代)’ 중에서
진(晉) 왕조는 궐리(闕里)의 공자문묘에 관심이 많았다. 태시(泰始) 3년(267)에는 노(魯)나라에 명하여 철마다 세 희생물을 갖추어 공자에게 제사 지내도록 하였다. 또한 공자의 종손을 봉성정후(奉聖亭侯)로 봉하여 제사를 주관하게 하고, 태녕(太寧) 3년(325)에는 조서(詔書)를 내려 봉성정후(奉聖亭侯) 공정(孔亭)에게 철마다 공자에게 제사할 수 있는 경비를 지급하였다. - 48쪽 ‘제1편 제3장_ 경사(京師) 공자문묘의 출현: 동진(東晉) 시대’ 중에서
만주족 귀족은 공자 사상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찍이 명 만력(萬曆) 35년(1607)에 누르하치(努爾哈赤)는 청나라의 발상지인 허투알라성[赫圖阿拉城, 현 요녕성(遼寧省) 신빈(新賓)]에 공자문묘를 세웠고, 입관(入關) 전 성경(盛京)에도 공자문묘를 세웠다. 숭덕(崇德) 원년(1636)에는 이곳에 관리를 보내 공자에게 제사를 지냈고, 숭덕 5년에는 봄『가을 두 차례(음력 5월『8월) 석전례(釋奠禮)를 올렸으며, 입관 후에는 ‘숭성학(崇聖學)’을 전국을 다스리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 188~189쪽, ‘제1편 제9장_ 공자문묘의 전성기: 청대(淸代)’ 중에서
민국 연간에 일어난 두 번째 파괴는 공자문묘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조하면서 일어났다. 신해혁명으로 청 왕조가 멸망하고 공화국이 건립되면서, 유학이 국가 지도 이념이 되는 역사는 막을 내렸다. 1912년 공포한 『대학령(大學令)『에서 경과(經科)를 폐지하고 유학경전을 다른 학과로 배속하였으며, 학교에서 “공자 존숭과 경전 학습”[尊孔讀經]을 금지하였다. 이로써 유가 경전이 전한(前漢) 이래로 학교의 주요 교과서로서 역할을 해왔던 2000여 년의 역사가 종결되었다. 원세개(袁世凱)는 스스로 황제에 오르려는 망상을 실현하기 위해, 1913년 『통령존숭공성문(通令尊崇孔聖文)『을 발포하여 전국 곳곳에 ‘존공독경’을 회복하도록 명령하였고, 각급 학교마다 독경 과정을 개설하도록 결정했다. 1914년 9월에는 『제공령(祭孔令)『을 반포하여 공자 제사를 전면적으로 재실시하도록 명하였으며, 강유위(康有爲) 등 봉건시대 문인들은 원세개(袁世凱)의 지지하에 제멋대로 ‘존공숭유(尊孔崇儒)’를 주창했다. - 218쪽 ‘제1편 제11장_ 공자문묘의 파괴: 민국(民國) 이후’ 중에서
사천성 부순현학문묘(富順縣學文廟)는 최초 북송(北宋) 경력(慶曆) 4년(1044)에 지은 것인데,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청 도광(道光) 16년(1836)에 세운 것들이다. 문묘에는 정문을 설치하지 않았고, 문묘 정면에는 ‘수인궁장(數『宮牆)’이라고 적힌 문병을, 문병 양 끝에는 각각 작은 문을 만들어 동쪽에는 ‘성역(聖域)’, 서쪽에는 ‘현관(賢關)’이라고 하였다. …(중략) … 이러한 형식은 비교적 독특한 형식이지만, 덕배천지와 도관고금 방은 문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축물로 일반적으로 동서쪽 문묘 담에 만들어졌다. 방 북쪽의 동서 양쪽에는 극문(戟門) 옆의 두 곁채와 비슷한 명환사, 향현사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문묘의 부사건물에 속한다. - 306쪽, ‘제2편 제2장_ 공자문묘의 건축구조’ 중에서
선현 종사는 역사상 단 한 차례 폐지된 적이 있었는데, 바로 명 가정 9년의 사전을 개정했던 때였다. 당시 신당(申黨)을 신정(申『)과 같은 급으로 생각하여 신당을 종사 명단에서 삭제하였다. 또한 공백료(公伯寮), 진염(秦『), 안하(『何), 거원(『瑗), 임방(林放) 등이 『공자가어(孔子家語)『에 기록되어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자의 제자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이들도 모두 명단에서 삭제되었다. 그러나 신당, 공백료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청 옹정 2년에 종사의 자격이 모두 회복되었다. - 462쪽, ‘제2편 제4장_ 공자문묘의 봉사제도(奉祀制度)’ 중에서
통찬이 “예찬(『饌)”이라고 창하면 사찬관(司饌官)이 전 안의 공자의 신안(神案) 앞으로 가서 한 번 조아리고 일어서서 찬반(饌盤)을 높이 받들고 전으로 나간다. 4배, 12철의 진설생도 한 번 조아린 후 각 단의 찬반을 높이 들고 사찬관(司饌官)을 뒤따라 노대에서 중간 계단으로 내려간다. 다른 각 단의 진설생도 제단의 찬반을 높이 들고 사찬관(司饌官)을 뒤따라 침전에서 서액문(西掖門)으로 나가서 예소(『所)에 찬을 묻은 후에 배위로 돌아온다. 통찬이 “사신(辭神), 삼궤구고두(三『九叩頭)”라고 창하면 정헌관 이하 모두 3궤 9고두의 절을 하며 휘생은 휘를 내리고 악생은 음악을 멈춘다. - 513쪽. ‘제2편 제5장_ 공자문묘의 제사제도’ 중에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까지 전국에는 각급 학교 문묘 1740개가 세워져 있었다.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문묘는 539개이며, 그중에서 1980년대 이후 수리와 복원을 거쳐, 현재 비교적 완전하게 복구된 것은 93개, 거의 완벽하게 복구된 것은 107개, 주요 건물들 모두를 복구한 것은 64개, 대성전(大成殿) 등 일부 건물만을 복구한 것은 275개이다. 1949년 이후 중국 광동성(廣東省) 삼수(三水)와 조양(潮陽), 광서성(廣西省) 유주(柳州), 그리고 산서성(山西省) 분양(汾陽)에서 체계를 갖추어 공자문묘를 새로 지었고, 강서성(江西省) 남창(南昌)에서는 대성전 등 문묘 건물을 새로 지었으며, 남녕(南寧)에서는 학교와 문묘를 중건했다. - 537쪽 ‘제3편_ 중국 공자문묘의 현황’ 중에서
악록서원(岳麓書院)은 초기에 세워진 유명한 4대 서원 중 하나로, 북송 개보(開寶) 9년(976)에 처음으로 창립되었다. 담주태수(潭州太守) 주동(朱洞)이 5대(五代) 말 승려 지선(智璿)이 만든 서당을 토대로 “옛것을 바탕으로 확장하면서(因襲增拓)” 정식으로 서원을 창립했는데, “강당은 다섯 칸, 학사는 52칸이 있었다(講堂五間, 齋舍五十二間)”. 함평(咸平) 2년(999)에 태수(太守) 이윤칙(李允則)이 중수할 때 “선사, 10철의 소상을 만들고 72현인을 그렸다. 황제와 관리, 유학자들의 모습은 모두 옛 제도를 따르고 있는데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 673쪽, ‘제3편 제3장_ 대표적인 공자문묘’ 중에서
출판사 서평
중국에 투영되어 있는 거대한 공자를 문묘를 통해 만나다
공자문묘의 역사와 특징을 촘촘하게 연구, 정리한 기념비적 대작
공자문묘는 봉건국가가 공자를 봉사(奉祀)함으로써, 공자사상을 표창(表彰)하고, 추숭(推崇)한 예제(禮制) 문묘(廟宇)이다. 공자문묘의 제사가 국가 사전에 편입됨으로써 새로운 왕조가 건립될 때마다 오직 공자문묘에서만 사용한 제의(祭儀), 음악(音樂), 무용(舞踊)을 제정(制定)하였다.
이 책은 중국의 공자문묘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총망라한 결정판이다. 중국에서 공자문묘가 탄생하고부터 당·송대를 거쳐 확대되는 과정, 요·금·서하·원대의 침체기를 거쳐 명·청대에 전성기를 맞는 과정과 민국(民國) 이후 공자문묘가 파괴되는 양상,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복원되는 상태까지 전체 역사를 촘촘히 정리하였다. 또한 문묘의 건축 양식, 제사 양식과 그 발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현재로 이어지는 공자문묘의 보존 및 복원 상태와 의의를 조망하였다. 이 과정에서 총 300여 장의 사진자료를 실어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였다.
유교사상 연구에서뿐 아니라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일독해야 할 흥미로운 대작이 아닐 수 없다.
역대 왕조들의 공자문묘에 대한 정책 그리고 흥망성쇠를 보다
중국 공자문묘의 역사
제1편에서는 중국 역사 속에서의 공자문묘를 살펴본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은 공자를 기념하기 위해 공자의 옛집에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옷가지[衣]와 모자[冠], 서적[書], 거문고[琴], 타고 다닌 마차[車] 등을 보관했다. 그 뒤로 공자의 옛집은 그를 제사 지내는 문묘(廟宇)로 바뀌었다. 한 무제(漢武帝)가 “모든 학파를 배척하고 오직 유학만을 존숭한다(罷黜百家, 獨尊儒術)”라는 정책을 실시한 후, 공자사상은 국가의 지도사상이 되었다. 당대(唐代) 정관(貞觀) 4년(630), 당 태종(唐太宗)은 각 주(州)?현(縣)의 학교에 모두 공자문묘를 건립할 것을 명하였고, 이때부터 공자문묘는 중국 각지에 보급되었다. 이후 역대 왕조는 수시로 학교의 공자문묘를 수리하도록 했으며, 청대(淸代)에 이르러서는 국자감(國子監), 부학(府學), 주학(州學), 현학(縣學), 청학(廳學), 향학(鄕學) 등 각급학교에 공자문묘가 1740개소 이상 존재하게 되었다.
청(淸)나라 광서(光緖) 32년(1906) 과거(科擧)제도 폐지로 공자문묘도 타격을 받았다. 또한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辛亥革命)에 의해 청(淸)나라가 전복되고 봉건 군주제(郡主制)가 폐지된 뒤로부터 현대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하여 과거 관청(官廳) 주도의 학교들은 대부분 신식학교로 바뀌었다. 이어서 1919년에 일어난 ‘5?4 운동’에서는 “공자 사상을 타도하자(打倒孔子店)”라는 구호를 외치고 봉건 시대의 옛 예교(禮敎)를 비판하면서 공자문묘의 제사가 폐지되었다. 공자문묘는 그때부터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공자문묘의 건축과 봉사(奉祀), 제사 제도의 양상과 변화를 총괄하다
중국 공자문묘의 제도
제2편에서는 중국 공자문묘의 제도적인 면을 총괄하여 분석한다.
학교 공자문묘는 출현 당시부터 국가 사전(祀典)의 예제건물에 포함되었다. 공자의 사상은 학교를 통해 전파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기에 학교 건축과 공자문묘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중국은 예제를 매우 중시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대대로 공자문묘에 관한 사전(祀典)이 매우 중시되었으나 의외로 공자문묘의 건축 제도에 대한 일관된 규정은 미비했으며 건축 양식은 기본적으로 대동소이했다. 이 책은 공자문묘의 건축을 전도건축(前導建築), 봉사건축(奉祀建築), 부사건축(附祀建築)과 기타건축(其他建築)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역대 왕조마다 제사 제도는 상세하고 통일되어 있었다. 공자문묘에서 제사를 지낸 인물의 숫자, 제사 복식, 제사 방법, 심지어 제사 인물의 좌향(坐向)까지도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국가에서는 문묘의 제사 등급 및 명칭도 명확하게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제사 예식을 비롯하여 사용하는 제사 용품, 음악, 무용 등도 규범화하였다. 이 책에서는 역대 왕조마다 이러한 제도의 변화 발전 양상을 풍부한 구체적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문화예술적 자산이 축적되어 있는 공자문묘의 보존 가치를 주목하다
중국 공자문묘의 현황
제3편에서는 중국 공자문묘의 현상태와 보존 의의를 살펴보고 문묘의 사례를 조망한다.
공자문묘는 본래 최고의 문화시설로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문화 예술 자산이 축적되었다. 이 책에서는 현존하는 공자문묘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본다. 첫째, 공자문묘의 시설을 복원하여 사회 교화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 공자학당이다. 둘째, 문물부서 관리하에 사무실이나 문물창고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공자문묘이다. 셋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공자문묘이다. 일부 공자문묘는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지만, 해당 부서에서 현재 보수할 여력이 없어서 비바람에 방치되고 있는 유형도 적지만 남아 있다.
모든 공자문묘는 그 자체만으로 박물관이나 다름없으며, 건물, 비석, 예기(禮器), 악기, 제사용 예의, 음악, 무용 등이 모두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공자문묘는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완전하거나 비교적 잘 보존된 문묘는 대부분 박물관으로 개조되거나, 일부는 학교나 다른 용도로 전용되면서 보존 발전해가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62622607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12월 28일 |
쪽수 | 791쪽 |
크기 |
182 * 255
* 43
mm
/ 1359 g
|
총권수 | 1권 |
Klover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리뷰 종류별로 구매한 아이디당 한 상품에 최초 1회 작성 건들에 대해서만 제공됩니다.
판매가 1,000원 미만 도서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일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해당하는 Klover 리뷰는 별도의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리뷰는 1인이 중복으로 작성하실 수는 있지만, 평점계산은 가장 최근에 남긴 1건의 리뷰만 반영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문장수집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