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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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볼 수 없는 생생한 사진 자료와 도판 자료
원서와 같은 B4 특대 사이즈로 제작하여 사진과 도판의 디테일이 살아난다
『통구』는 고구려 고도에 대한 개괄적인 해설과 더불어 세부적으로는 통구성과 산성자산성, 광개토왕비, 석총과 토분(장군총, 태왕릉, 천추총, 오괴분, 모두루총 등)으로 분류하여 집필되었다. 고구려의 유적과 고분에 대해서는 상권[Ⅰ부]에 개괄하였고 하권[Ⅱ부]는 벽화고분(무용총, 각저총, 삼실총, 사신총, 모두루총, 환문총)을 중심으로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다.
『통구』의 내용을 이루는 일본 학자들의 조사는 이 지역 유적에 관한 본격적 학술조사로서 처음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의 여건에 비해 사진과 도면을 잘 만들어 놓아 지금도 활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정도이다. 특히 벽화고분의 사진 도판 및 모사 등은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조사 당시는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을 수립된 직후였으므로 연구와 보고서 발간의 바탕에는 집안 지역을 일본 제국의 영토로서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 깔려 있다. 특히 통구성-환도성터, 산성자산성-환도산성터로 설명하는 고구려 도읍지 비정과 관련해서는 재검토의 여지가 남아 있어, 이 보고서의 내용과 자료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케우치 히로시
(池內宏, 1879~1952)
1904년 도쿄제국대학 사학과 졸업. 1908년부터 1913년까지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내 만주역사조사부에서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지도하에 조선 및 만주 지역 연구에 종사하여 『임진왜란(文?慶長の役)』을 집필했다. 이후 「조선초의 동북경과 여진과의 관계(鮮初の東北境と女?との?係)」로 박사 학위를 받고 동대학에서 조선사를 가르쳤다. 만주역사조사부의 후속 연구인 『만선지리 역사연구보고』 간행에도 참여하여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대표 저서로는 『몽고 침입에 대한 신연구(元寇の新硏究)』, 『만선사 연구(滿鮮史硏究)』, 『조선의 문화(朝鮮の文化)』 등이 있으며, 동북아시아 및 일본 고대사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저자(글) 우메하라 스에지
(梅原末治, 1893~1983)
도시샤 보통학교(同志社普通?校) 졸업 후 1914년부터 교토제국대학 문과대학 박물관 조교로서 유물의 정리와 관리를 담당하며 하마다 고사쿠(賓田耕作)의 지도를 받았다. 1921년 하마다의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위원이 되어 경주 금관총 출토 유물의 정리를 담당한 것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의 수많은 고적조사 사업에 관여했다. 당시의 조사보고서로 『경주 금령총과 식리총 : 1924년도 고적조사보고(慶州金鈴塚飾履塚 大正13年度古蹟調査報告)』가 있다. 1939년 교토제국대학에서 「중국 청동기 시대의 연구(支那?銅器時代の?究)」로 박사 학위를 받고 동대학에서 가르쳤다.
저서로 『조선의 고대 문화(朝鮮古代の文化)』, 『조선의 고대묘제(朝鮮古代の墓制)』, 『동아시아의 고대문화(東?の古代文化)』 등이 있으며 일본 고고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비교문학과 박사. 한일 비교문화 전공. 현재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 역서 『소세키와 시키 왕복 서간집』(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6), 논문 「근대 일본의 조선사 연구와 만주역사조사부」(일본사상, 2018), 「요양 영수사벽화묘의 고구려 관련성에 관한 두 편의 논문」(선도문화, 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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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서문
Ⅰ부. 만주국 통화성 집안현 고구려 유적
제1장 서설
1. 고구려 고도와 통구
2. 통구 유적에 대한 학술적 조사
3. 새로 발견된 벽화고분과 그 조사
제2장 통구 평야
제3장 환도성과 국내성
제4장 고구려 유적
1. 통구성 - 환도성터
2. 산성자산성 - 환도산성터
3. 광개토왕비
4. 나머지 유적
제5장 고구려의 고분
1. 개관
2. 장군총
3. 태왕릉, 천추총 등
4. 작은 석총들
5. 오괴분의 토분
6. 모두루총
제6장 석총과 토분의 연대
Ⅰ부 도판
Ⅱ부 만주국 통화성 집안현 고구려 벽화분
제1장 서설
제2장 무용총
제3장 각저총
제4장 삼실총
제5장 사신총
제6장 모두루총과 환문총
제7장 결어
Ⅱ부 도판
ㆍ해제
책 속으로
[서문 중에서]
지금은 볼 수 없는 당시 집안현 유적의 모습들.
고즈넉하게 서 있는 광개토왕비, 집안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목멱산,
들판에 가지런히 배열한 듯 앉아 있는 피라미드들!
오늘날 고구려 도읍지와 관련된 고고학적 자료가 가장 풍부한 지역은 중기 도읍지로 밝혀진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輯安縣)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고구려사 관련 고고학 연구에서 표준이 되는 지역이다. 고고학 분야가 아니라도 고구려사 연구자들은 반드시 답사를 가고, 그 결과 고구려사 중에서 가장 많은 연구가 진행된 지역이기도 하다.
집안현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압록강 바로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압록강 건너는 북한의 만포진이었다. 현재 이 지역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네 길이 있다. 요녕성(遼寧省) 환인(桓仁)에서 동쪽으로 들어가는 길, 길림성 통화(通化)에서 동남쪽으로 가는 길, 북쪽에서는 임강(臨江) 지역에서 남으로 들어가는 길, 그리고 북한에서 만포진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길이다. 그러나 이곳은 길이 험난할 뿐만 아니라 교통 여건이 좋지 않아 답사를 하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해야 했다. 특히 환인에서 동쪽으로 넘어가는 길은 더없이 험난하여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 길을 닦아 많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길들이 연속되어 겨울에는 다니기 어렵다. 한국 공무원들이 연수를 갔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던 길이다. 물론 통화에서 가더라도 험난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곳을 변방의 작은 행정구역 정도로만 인식했을 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손이 닿지 않은 유적, 유물들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진 것은 청나라가 행정구역을 설치하면서 부터이다. 1876년(광서光緖 2) 회인현(懷人縣, 지금의 요녕성 환인현)이 설치된 후 본격적인 출입이 시작되었고, 환인에서 동쪽으로 200리 정도 떨어져 있는 집안까지 왕래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예로부터 산삼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여겨졌으므로 산삼을 캐는 중국인들의 왕래가 늘어났을 것이다. 이후 1902년에는 회인현 관할이었던 집안에 현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이곳은 만포진에 병마첨절제사영을 설치한 기록이 있으므로 조선의 영토였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청나라 영토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집안에 있는 유적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광개토대왕비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금대의 도읍지로 인식되었다. 광개토대왕비가 발견되자 글씨에 관심이 많았던 호사가들이 탁본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은 비로소 유명해진 것이다. 또한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고대 북방사 연구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압록강(鴨綠江) 서쪽에 위치한 이 유적이 발견되면서 고구려 연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고구려 첫 도읍지가 환인으로 비정되었다. 당시 일본학자들은 대동강 유역이 낙랑군이라는 견해를 내놓으면서 낙랑군의 북쪽에 현토군, 그리고 현토군에서 나온 고구려와의 연관관계 등을 고려하여 낙랑군, 현토군, 홀승골성, 국내성이라는 벨트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번에 번역 출간하는 『통구』는 1900년대 초 일본 학자들이 이 지역을 조사한 보고서로서 그들의 고구려사 연구의 기초가 된 것이다. 한국학계에서 집안 지역의 연구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분야였지만 1945년 이후 1993년 한·중수교가 이루어질 때까지 사실상 직접적 연구를 할 수 없었다. 남북 분단이라는 국제 정세 속에서 집안현이 중국 영토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는 1945년 이전 일본 학자들이 남겨 놓은 자료를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들 자료 역시 제한적이었고, 실제 답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본인들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 또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번역자가 이 지역을 처음으로 답사한 것도 1993년이었으나, 당시 이미 많은 유적들이 사라져버렸거나 훼손된 상태여서 1800년대 말 혹은 1900년대 초반에 확인되었던 유적의 상태는 알기가 어려웠다. 이후에도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유적들이 원래 모습과는 다르게 변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단편적 자료들에 의지하여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본 규슈 지역의 북방계 석실분 조사를 하던 중 『통구』를 접하게 되었다. 『통구』에는 조사 당시 촬영된 사진 도판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 지금은 볼 수 없는 당시 집안현 유적의 모습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고즈넉하게 서 있는 광개토왕비, 집안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목멱산, 들판에 가지런히 배열한 듯 앉아 있는 피라미드들! 이 사진들을 처음 보았을 때 참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일본 학자들이 집안의 유적을 고구려 중기 도읍인 국내성-환도성으로 비정한 근거가 된 이 조사 보고서를 ‘국내성’ 혹은 ‘환도성’ 조사보고서로 내지 않고 『통구』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점이다. 참 묘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이러한 의문을 비롯하여 일본 학자들에 의한 기존의 연구는 다시 검토될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62463927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5월 13일 | ||
쪽수 | 364쪽 | ||
크기 |
263 * 368
* 34
mm
/ 2700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1900년대 만주 고고학 연구자료 국역총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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