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 나무가 있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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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의 시에는 죽음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메멘토 모리’ 정신을 바탕으로 한 배반과 일탈의 상상력이 있어서 관습적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긋난 아이러니적 현실을 직시하고 예리한 직관으로 서로 어긋난 것들의 틈새를 파고드는 아이러니 시들이 돋보인다. 그 속에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시인이 몸소 체험한 아이러니한 현실의 맹점을 파고드는 예리한 눈이 있어서 그의 시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끝으로 현실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 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허정의 시집은 통시적 공시적 차원의 역사의식이 들어 있는 시들과 불교적 교리를 뛰어 넘는 역설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작가정보
작가의 말
시집 한 채를 오롯이 짓는 동안
계속되는 실존과 가상의 카오스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어쩌면 이 시집에 눌러살고 있는 여러 인물과 동물이
내가 만든 메타버스 안에서 가상 연기에
몰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목차
- ● 시인의 말
제1부 빨간 웃음
고흐와 나 14
드라이플라워 16
땡겨요 18
곰소 19
달월에서 월곶 20
구두 닦는 성자 22
우설牛舌의 정치학 24
전복의 꿈 26
빨간 웃음 28
어떤 호명 30
이분도체 31
붓꽃 피는 그 집 32
제2부 가을은 수레바퀴를 밀고 온다
소래포구 36
집 짓는 사내들 38
광부에게 40
우산 프로펠러가 달린 헬리콥터 42
옥사우나 신부님 44
황 씨의 수전증 46
목수의 아내 48
광화문에서 택배를 보내다 50
원근법 52
조선 최초의 우주비행사 53
가을은 수레바퀴를 밀고 온다 54
9호선 56
제3부 글자 감옥
각角을 말하다 58
닫혀버린 입 60
독재자의 신문 62
꼬꼬댁 꼬꼬 도꼬 64
씨부렁거리는 밑창 65
타박 고구마 66
왈왈왈 67
저승사자의 노래 68
글자 감옥 70
코스모스 꽃잎 위로 비의 공습이 71
싸락눈 72
제4부 나진국밥
나진국밥 74
녹우 76
미역 78
아랫배 80
엄마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82
감자 수제비 84
선운사 애기동백 86
짜장면 그리고 말 울음 소리 87
밥 무덤 90
공수래공수거 91
제5부 적도의 딸
적도의 딸 94
몸피체 편지 96
킬로토아 호수의 늙은 당나귀 98
천사와 악마 100
세상의 끝 그네 102
아보카도 나무가 있는 정원 104
이방인 106
피카소 호텔에는 피카소 그림이 없다 108
제6부 넥타이의 시간
날아다니는 꼬리뼈 112
녹동항 114
넥타이의 시간 116
낡은 구두 118
명함 120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 122
불일암 가는 길 124
해탈문 126
붓다처럼 128
대나무에 꽂히다 130
▨ 허정의 시세계 | 박남희 131
추천사
-
허정 시인은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줄기/ 한 단 잘라/ 국수를 삶고 싶다”(「녹우」)고 말한다. 외롭고 서럽고 고단한 사람들 에게 빗줄기 잘라 삶은 국수 한 그릇씩을 그득그득 내어준다. 시집 속의 시 한 편, 한 편이 삶을 받드는 지극한 성찰과 포용의 시편들이다. 시인의 집 처마 아래 퍼지르고 앉아 빗줄기 국수 한 그릇을 얻어먹었을 뿐인데, 비할 데 없이 간간하니 배부르고 따뜻하여라!
-
허정 시인의 시는 삶의 비애를 파고들며 아우르기를 하는 곡진함이 있다. 낮고 소소한 것과 이국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풍경들까지, 그 모든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련함과 쓸쓸함을 감싸 안고자 하는 따뜻함이 발현되고 있다.
책 속으로
[대표시]
빨간 웃음
실낱같은 인연 하나 스친 적 없는 길냥이를 묻기 위해
삽과 괭이를 든다는 것은
나의 무덤을 내 손으로 파 보는 예행연습 같은 것
겨울나무의 얼어붙은 뿌리와 뿌리 사이
강보에 싸인 아기의 부피와 질량이 덮일 만큼
구덩이를 파는 동안
이 말도 되지 않는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산길에서 우연히 만난 녀석의 푸석푸석한 사체와
갈참나무 옆에 기대어 있던 삽과 괭이는
왜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왜 나는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언 땅을 괭이로 파내고 그 자리에 낙엽을 깔고
시신으로 만난 인연을 다듬잇돌 크기의 구덩이에 눕혔는지
왜 그때 하필이면
겨울 햇빛이 녀석의 흰 이빨에 반사되어
내 눈동자에 빨간 웃음으로 박혔는지
집 짓는 사내들
오뉴월 땡볕 아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사내와 딱 마주쳤다
흘깃 그 눈빛을 본다
나는 개와 산책 중이었고
그는 철근 한 묶음을 어깨에 메고 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숭고한 노동의 땀방울 앞에
굴복했다
생生이란
가까운 허공에서 먼 허공으로
내가 깔아 놓은 한 장의 널빤지 위로
아슬아슬한 걸음을 떼는 것
굽은 등 펼 때 먼 하늘을 잠깐 바라보는 것
사내들
공허한 4층 높이 하늘에서
구름 위를 걷는 퍼포먼스를 보여 준다
이방인
키토에서 암바토로 돌아오는 길목
시위 진압 중인 군인이 쏜
최루탄 가스를 흡입하지 않으려고
코와 입을 틀어막은 양말 한 켤레
암바토
노란 벽돌집 이층 옥상 위에서
침보라소 화산을 바라보며 바람에 펄럭였던
꼬레아의 깃발 같은
낯선 이국의 여행지에서 만난
긴박했던 공포와 전율의 시간
언덕 위에서 날아드는 돌멩이와
화산재처럼 터져 비산하는 최루가스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졸지에 도망자가 된 이방인
겨우 안전지역에 와서야 알게 된
전쟁터에서 잃어버리고 온
양말 한 짝을
다른 양말 한 짝이 슬퍼하고 있음을
태평양 건너 또 한 나라
시대의 한 슬픔을 감내하고 있는
나의 양말 한 짝
그 대수롭지 않은 슬픔 한 켤레
한참을 주저하다
손에서 내려놓는다
기본정보
ISBN | 9788961042994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0월 22일 | ||
쪽수 | 158쪽 | ||
크기 |
131 * 210
* 13
mm
/ 246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현대시 기획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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