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표정이 구름이라는 것은 거짓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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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첫 시집 『오늘의 표정이 구름이라는 것은 거짓말이야』는 시적 대상이 로고스 중심주의에 의해 내적 이미지화되는 순간 존재가 허구적 상징으로 전락하는 기존의 관념을 부정하면서, 철저한 자기 검열과 반성을 통해 언어의 추상화란 오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러한 시 의식은 추천사를 쓴 강희안 시인의 말처럼 “완벽한 서사의 포즈를 취한 어떠한 기의도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기표가 있다는 확고한 판단중지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시인은 특수 체험에 대한 존재론을 근거 짓고, 그 존재의 언어들이 대상에 서로 틈입하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고대 그리스 철학의 ‘에포케epoche’를 환기하게끔 한다.
한편 해설을 쓴 문종필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이번 시집에서는 “물의 감각을 덧씌워 대상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시인의 독창적인 시적 감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인은 대상에 대한 집요한 관찰을 통해 사물에게 새로운 이름과 몸짓을 부여하며, 이를 통해 시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새로운 언어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 또한 자신의 개인사적 사건들을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사유함으로써 시대의 아픔과 상처에 연대한다. 같은 맥락에서 시인은 집단 기억으로부터 자신의 실존을 감지하는 순간을 시의 언어로 그려내면서, 시를 역사적 보편의 자리로 가져다 놓기도 한다. 단순히 사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날 선 감각과 시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생동하는 이미지들은 이수 시인의 시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시적 양상이라 할 수 있다. 해설의 말을 빌리면, 시인은 “자신만의 흔적을 바탕으로 교환 불가능한 경험을 시집 속에 옮겨 담”음으로써 핍진성을 획득하는 한편, 기존의 관념과 의미 체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거듭하여 궁극적으로 생의 이면에 존재하는 빛나는 시적 진실의 순간을 포착해 낸다. 이때 우리는 고독과 허무로 점철된 언어가 슬픔의 흙으로 덮인 대지를 뚫고 시의 싹을 틔우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그림자들이 몰려들었다
서로에게 냄새가 흘러 들어가
둥근 문장들이 떠올랐다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지류 11
유리의 표정 12
하수구 13
깃털 14
늙은 수사 16
도자기의 기억력 18
복기의 오독 19
빌라는 살아있다 20
붉은 구멍 22
암모나이트 23
접시꽃 안테나 24
습지 이야기 26
안개 바다 28
통증 29
늙은 개 30
무지개송어 31
드림캐처 32
저지대 34
제2부
날개뼈의 복화술 37
공중의 계단 38
리톱스 40
유품 42
현수교 효과 43
유리의 날개 44
비문증 45
마오리나무웨타 46
전망대 48
고시원 화재 50
바람의 지문법 51
민들레 비행선 52
물의 무덤 54
버려진 공장 56
수석 전시관 58
날개의 광장 59
신진항 60
저녁의 빛 62
제3부
지상의 장례 65
주차빌딩 66
중고 서점 68
기울어지다 70
히말라야시더의 눈 72
조율하다 73
수림에서 74
옥외계단 75
맥도날드 76
붉은 사막 77
안개와 가로등 78
한밭수목원 79
백로의 자세 80
이사 82
밤그림자에는 83
물속의 나무들 84
설익은 열매 85
해설
문종필 나는 함몰된 하나의 구멍이야 86
추천사
-
이수 시인의 첫 시집은 여타 언어의 회의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식물성 무늬로 거느린 육식의 습성”으로 기술한 데카르트적 반성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시 의식은 “완벽한 서사”의 포즈를 취한 어떠한 기의도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기표가 있다는 확고한 판단중지에서 비롯된다. 시인이 누군가의 등을 본다는 건 “서사의 파열선을 끌어안는 일”이며 “너의 얼굴이 모호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인은 대상이 로고스 중심주의에 의해 내적 이미지화되는 순간 존재가 휘발된 허구적 상징으로 전락한 기존의 관념을 부정한다. “오늘의 표정이 구름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므로 철저한 자기 검열과 반성을 통해 언어의 추상화란 오류에서 벗어날 때 “먼지의 무게에 대한 바람의 질문”에 응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이수 시인의 첫 시집은 우리 시단에서는 보기 드물게 특수한 체험 영역들에 대한 존재론을 근거 짓고, 그 존재의 언어들이 대상에 서로 틈입하면서 “처음으로 돌아가는 회귀성 슬픔”의 과정만이 망라되므로 가히 ‘에포케epoche의 현상학’이라 명명할 만하다.
책 속으로
유리의 표정
바다는 몸피를 숨기며 빛난다 물고기들의 혈투를 모른 척 덮고 있는 오후의 수면, 반짝이는 것들은 턱밑에 구멍을 숨긴다
마른 꽃다발은 살짝 스쳐도 부서진다 어깨를 부딪쳤을 뿐인데 무너지는 사람, 한 점 점성도 허락지 않는다
빌딩에서 빛들의 아우성이 쏟아진다 어둠에서 울음은 혼자서 자란다 넘어지는 일들이 잦아졌다
원룸의 골목에서 길을 헤매다가 우기를 만났다 쉽게 상하는 물고기들, 비린내를 풍기며 구름이 몰려온다
장식장에서 상패들이 빛난다 깨어지며 슬프게 태어나는 모래의 알갱이들, 눈물을 잃어버린 유리의 기억 같은
동네 음식점은 주인을 잃었다 매번 뜯기며 부서지고 있는 내부들, 길목에는 군데군데 쓰레기 무덤이 생겼다
어디선가 모래가 소리 없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발목부터 사라지고 있다 누군가의 얼굴이 수북하게 쌓인다
기본정보
ISBN | 9788960214804 |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3월 25일 | ||
쪽수 | 104쪽 | ||
크기 |
128 * 208
* 11
mm
/ 168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시작시인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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