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시청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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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첫 시집 『소리들이 건너다』부터 『이별 없는 길을 묻다』 『먼 바다 가까운 산울림』 『얼룩을 읽다』에 이르기까지, 서정적 문체와 예리한 통찰력으로 대상을 감각화하는 데 특출한 재능을 보여 주면서 독창적 시 세계를 확립해 왔다.
해설을 쓴 유종인(시인, 문학평론가)은 “김경숙의 시적 눈길은 자신을 둘러싼 사물이나 현상을 기존의 관습적인 분별로부터 떼어놓는 신선한 예지叡智로 분방奔放한 화수분 같다. 그러기 위해 시인이 품어내는 시각視角의 일단一端은 기존의 미추美醜에 대한 관념에 통쾌하게 통박痛駁을 놓듯 역전적逆轉的 감각과 의식을 풀어낸다”고 평했다.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점은 시인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사물이나 현상이 기존의 관념에서 탈피하여 보다 새로운 차원의 감각으로 열린다는 것이다.
이는 이전 시집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이지만,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미美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역전시키는 사유들이 빛난다. 삶의 아이러니와 그 징후를 포착해 내어 존재를 고찰하는 시인의 시적 태도는 한층 세련되어졌을 뿐만 아니라 웅숭깊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4를 쓴 오봉옥 시인은 “김경숙은 순명純明의 시인이다. 그의 웅숭깊은 시선이 닿는 순간 사물들은 하나하나 살아 움직인다. 세상의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이 미더운 것은 거기에 그 맑고 깊고 따뜻한 마음이 배어있기 때문이다”라고 평했고, 유홍준 시인은 “김경숙 시인의 시들은, 사물과 일상의 잔상들에 자신의 모습을 응축해 비춰보는 시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중략)… 저는 시인의 시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마음의 평정을 얻습니다”라고 평했다.
이처럼 김경숙의 시편들은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어루만지는 물처럼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우리의 감각과 정신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시인의 눈길이 머문 자리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존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작가의 말
나무는 자신을 버려서
몇백 년 서있는 기둥이 되고
물은 천지 생명들을 먹여 살리고
외려 자신은 사라지듯
다 없어졌지만
다 있듯,
무화無化
물과 나무가 변화하듯
시詩들도 그러하길 바라지만
각자의 의중에서
살고 죽는 일
그 일에
캄캄한 두 손을 모읍니다
2018. 봄. 마루금을 모종하며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먼지력
입속 표정으로 11
천체에 걸리는 존재들 12
눈물 겹 14
유연한 척후 16
남방노랑나비 18
단맛으로 죽다 20
바람 한 켤레 22
곁을 품다 23
먼지력曆 24
톱밥 26
실눈 28
이소 30
연못 32
빗소리 시청료 34
구석을 키우다 36
블라인드 38
추녀 끝을 맞다 39
핑계를 갖다 40
나무 유골 42
제2부 가을 구독
풀집 47
신전의 기둥 48
가을 구독 50
백지 현상 52
그대, 혹은 그때 54
오방이 빛나는 말 56
비벼 운다 57
소귀 털 붓 58
혼잣말 60
풀의 뼈 62
미안 체납 64
벚꽃, 털갈이를 하다 66
날개의 먼 조상 67
곡비哭婢 2 68
실패담 69
해몽을 점치다 70
가면 상점 고객 72
유리의 배후 74
무인 상점 76
무중력 한 벌 77
제3부 물 깨고 식사하기
게양 81
물 깨고 식사하기 82
돌에게서 사람에게로 83
가을, 환승역 84
틈의 겉장 86
내 발 속에 마흔 개의 발이 들어있다 88
꽃들은 모두 한철 방이다 90
울려라 경보 92
망중한 94
붉은 손바닥 96
봄의 타이머 98
수의를 짓다 100
순번을 앓다 102
임시 감옥 103
달필 104
수습 105
연필의 소환 106
그늘이 달린다 107
질주 108
끝물 110
밤에 읽히는 책 112
해설
유종인 존재의 위상배열位相配列과 혼융混融의 시학 114
추천사
-
김경숙은 순명純明의 시인이다. 그의 웅숭깊은 시선이 닿는 순간 사물들은 하나하나 살아 움직인다. 세상의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이 미더운 것은 거기에 그 맑고 깊고 따뜻한 마음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난 이번에 다시 내는 그의 시집을 넘기다가 가슴이 미어지는 절창에 이를 때마다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절창들이 순명純明의 힘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그가 보고 싶었다.
-
반사反射의 시들이라 불러봅니다. 김경숙 시인의 시들은, 사물과 일상의 잔상들에 자신의 모습(현재)을 응축해 비춰보는 시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눈’입니다. 그것은 에셔의 눈(Eye)처럼 무서운 눈도 아니고, 뭉크의 눈처럼 공포로 가득 찬 눈도 아니고, ‘수천 겹 눈물이 감싸고 있는 눈’입니다. 시인은 ‘눈물 뭉치’인 눈으로 자신을 둘러싼 온갖 ‘울음 군락지’들을 봅니다. 시인의 시들은 그 눈물 뭉치인 눈의 원근법적 접근으로 써진 듯합니다. 반사의 시들이라 했습니다만 사실은 ‘잔상의 시들’입니다. 저는 시인의 시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마음의 평정을 얻습니다. 시인에게 눈은 끝없이 보아야 하는 성찰의 도구로, 입은 한없이 헹궈야 하는 반성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람에 일렁이는 ‘연못은 주름 창고’라고 했나요. 잔주름이 늘어난 제 얼굴도 시인의 시들을 읽으니 모처럼 평온해집니다. ‘얼굴이란 손이 가장 많이 쓰다듬은 곳’. 앞으로 얼굴에 신경 좀 쓰겠습니다. 화장품보다는 마음공부에 열중하겠습니다. 첫 인상이 좋은 시들을 읽었더니 ‘입안을 헹궜던 물로 얼굴을 씻는 라마승’처럼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책 속으로
빗소리 시청료
눅눅한 편성표다
한여름, 거센 빗소리가 클로즈업되고 고화질 와이드 화면 속으로 앞산과 들판이 젖는다 뻐꾸기 소리는 종일 재방영되고 마을을 덮치는 안개는 대서특필 생중계 중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때맞춰 시청료를 걷으러 오는
장마의 틈
잠깐 갠 날씨
같은 화면인데도 원추리 꽃대와
쥐똥나무 울타리들은 한 뼘 웃자랐고
매미 울음을 담장 위에 널어 말리는
예측 불허의 틈, 틈
그것을 우주가 한눈판 사이라 하자
파랗게 젖은 일색을
널어 말리는 중이라 하자
축대가 무너진 자막 사이로 무지개가 떠오르고 우왕좌왕 다급해하는 사이렌 소리들이 범람한다 빗소리 뜸해진 숲엔 이끼들이 초록 부침개를 부치고 관절 사이로 빗방울들 콕콕 들어와 박힌다 엎질러진 술병도 놀라 파랗게 갠다 수위를 높인 저수지에 흙투성이 하늘이 몸을 씻고 있다
특종 뉴스로 실시간 보도되는 장마는 진흙탕이다
젖은 얼룩들은 흰옷 무늬를 꿈꾸며
화면 밖에서 안절부절못하고
다투어 웃자라는 연체료들이
밭고랑 사이마다 무성해지고 있다
틀어놓은 장마 채널 방송에서
오래전 샛강으로 떠내려간 황소 울음이 들리고
흐렸던 사람들이 모처럼 갠다
그래도 비틀어 짜면 찌뿌듯한 며칠이 흘러나올 것 같다
기본정보
ISBN | 9788960213845 |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7월 10일 | ||
쪽수 | 136쪽 | ||
크기 |
129 * 209
* 12
mm
/ 20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시작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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