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 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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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가을 / 012
소녀 / 022
군인 / 035
가수 / 046
여자 / 063
눈물 / 079
애증 / 172
가증 / 228
초개 / 264
경야 / 295
책 속으로
가을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이 지면 설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남루한 박수 몇몇에도 연우 가슴은 서늘해져 온다.
3년 전, 꼭 이맘때 즈음 명함 크기만 한 메모지에 적혀 나직한 무대로 올려왔던 신청곡을 몇 년 만에 다시 불러보았다. 채령이가 내 곁을 떠난 게 어느덧 두 해째가 된다. 내 노래를 들을 때면 마른 가슴이 젖고야 말았다던 채령이는 꼭 3년 전 이맘때쯤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났었다. 내 노래를 들을 때면 감당키 어려운 격정에 쌓였다가 곧 평온으로 회복되고 마는 것 때문에 나를 사랑했다던 채령이….
그랬던 채령인 이미 두 해 전, 그런 건 한낱 사치스런 유희적 생각이었다며 이맘때 가을 즈음에 나를 박차고 떠나갔다.
당신의 노랠 듣고 있다가… 그만 블라우스에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어요. 이젠 아득해져 버린 노래 ‘존재의 이유’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연우가 자신의 타임, 마지막 곡 준비를 위해 카포를 옮기려 할 때 웨이트리스가 보면대 위에 접어 올려준 메모지 속살이 설핏 보였다. 얼른 고개를 돌려 눈물을 떨어트렸다는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언제나 안락함을 줘왔던 사각무늬 카펫 문양들이 갑자기 연우 눈을 어지럽혔다. 어쩌면 지금 채령이 어느 구석진 쪽으로 몸을 숨긴 채 자신의 노랠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그럴 리가 없어. 채령인 지금 이곳에 없어. 미국으로 떠난 지 벌써 2년이 넘었어. 그리고 채령인 이제 내 노래 따윈 들으려 하지도 않아.’
‘또 어느 날부터인가 채령인 너무 약삭빠른 아주 낯선 여자가 되어버렸어,’
벌써 며칠째 공복에 마셔 대었던 소주잔 속에 넘치게 채워진 비릿한 웃음들이 허기진 속을 뒤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어지럼증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래서 기타를 껴안을 힘마저 잃고… 그렇게 되면 무대에 주저앉아버릴지 모르는데….’
결국엔 떨어지고 말, 기운 다한 떡갈나무 이파리들이 가을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 창가에 유난히도 하얀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하얀 여자는 그렇게 한참 동안 연우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초점을 놓아버린 연우의 흐릿한 시야 속엔 파리하리만큼 하얀 여자의 퀭한 가을빛 눈물이 보였다. 연우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엄지 검지에 쥔 피크를 날카로운 여섯 강선 위에 올렸다. 모든 게 울렁대는 무의식을 틈탄 C장조 아르페지오가 카페 실내로 흘러내렸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 둘~은 변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내가 아플 때보다 네가 아파할 때가 내 가슴~을 철들게 했고
너의 사랑 앞에 나는 옷을 벗었다 거짓의 옷을 벗어버렸다.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은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사랑으~로 남게 해~ 주~오.
연우는 분명히 보았다. 하얀 여자가 창가에 턱을 괴고 울고 있던 모습을…. 그러나 잠시 후 그 여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안락의자도, 카펫도, 스탠드 마이크도 더는 볼 수 없었다.
철제 침대 위에 뉘어진 연우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눈 밑을 타고 내린 눈물만큼이나 맑은 수액이 노란 물과 같이 연우 팔뚝 혈관 속을 타들어가고 있었다. 병실 모퉁이 가습기에서 품어져 나오는 하얀 물안개 무리들이 창백한 연우 얼굴 위로 내리고 있었다.
“이연우 씨, 눈떠 보세요.”
“…….”
“환자 보호자는 어디 가셨나?”
무심하게 생긴 중년 의사가 환자 보호자를 빨리 찾아보라는 말을 마치 지시하듯 했다.
“글쎄요, 어제저녁 무렵 이분을 병원까지 모시고 왔던 분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그럼 어제 오후 근무자가 작성해 놓은 차트 한 번 찾아봐요. 그곳에 보호자 연락처가 있을지 모르니.”
여러 장의 진료기록 카드를 뒤적거리던 간호사가 한 장의 카드를 살펴보았다. 카드 앞뒷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간호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환자 이름만 적혀 있지 연락처는 없는데요.”
“당직자란 사람이 그 흔한 핸드폰 번호도 적어놓지 않고 도대체가. 근무를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순간 날카로워진 의사가 갑자가 간호사에게 경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 의사는 짜증이 날 때면 자신의 괴팍한 성품을 숨기는 방편으로 높임말을 습관적으로 쓰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가 존칭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간호사들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기분이 언짢아지면 오히려 말을
출판사 서평
결코 불륜이 아니라 항변하는 둘의 사랑을 훔쳐보다
<작가의 말>
기어코 여덟 번째 소설을 쓰고 말았다. 보통 3년씩 걸렸던 이전의 소설 집필 기간에 비하면 이번엔 꽤 빨리 탈고한 것 같다. 아마도 ‘카카오 톡’이란 새로운 신무기 덕분이었다고 둘러대면 어떨까 싶다.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군 관련 사건, 사고들을 접하며… 여군을 상대로 한 성추행, 성폭행 얘기가 이 소설 속에 분명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양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이번 소설에 별의별 구실을 붙여본들, 어차피 불륜일 뿐이라는 따가운 시선까지….
작가로선 작은 곤혹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소설의 탈고가 가까워질 무렵 가까스로 수명을 부지하던 간통죄란 괴물법이 위헌 판결을 받고 이 땅에서 소멸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며칠에 걸쳐 세상은 온통 난리법석이었다. 하지만 불과 열흘도 못 가 그 소란, 술렁거림은 오간 데가 없어졌다. 유감스럽게도 난 그 일을 보면서 사람들의 철저한 이중성을 보았다.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시대 역행적 법이란 딱지를 붙였던 전근대적 법이 사라진 걸 두고 작가로서 할 말이 많지만 입을 닫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거부하며 믿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런 게 작금의 엄연한 현실이다. 작가는 이런 것들에 대해 독자, 아니 우리 모두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달콤한 연애는 안달 낼 만큼 하고 싶지만, 짐스럽고 거추장스런 결혼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는 젊은 여성들.
원 나잇 스탠드(one night stand)? 미혼 남녀의 각 57.7%와 36.6% 가 원 나잇 스탠드, 즉 하룻밤용 섹스를 해봤다는 통계가 있다(류경한 소설 『남자가 아프다』 159페이지).
사회는 이렇듯 젊은 남녀에게만큼은 유독 관대해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젊은이라 불리는 오늘의 청춘들이 중장년이 되었을 때 자신의 자녀가 지금의, 자신의 세대가 되었을 때, 그때도 원 나잇 스탠드에 관대할까? 용납하고 말까?란 의구심을 가져보는 건 작가의 우둔함일까?
그래서일까? 사회는 이제 혼외 남녀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들까지 넌지시 용납하는 것 같다. 소위 말하는 러브호텔들이 낮밤 관계없이 성업 중인 걸 보면 말이다. 지금 이 시간 그곳에서 벌거벗고 뒹구는 남녀는 누구일까? 왜 그런 것엔 애써 모르는 척하는 걸까? 그런 게 그렇게나 부도덕한 것이라면? 사회적 악이라면? 악의 온상인 러브호텔을 단번에 없애는 초법적 법을 만들어 없애던지, 아니면 종교계와 유림단체가 강력한 성명을 내던지든, 보수단체들이 얼룩무늬 군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목청 높여 시위라도 해야지 않나? 그럴 것도 아니면서 왜 유독 이 소설 속 연우, 은주를 돌팔매질하려는 것일까?
가장 근엄하고 원칙, 정도, 정의로운 철옹 집단으로 알려진 군 담장마저도 어이없게 허물어지고 마는 오늘. 그리고 억압, 군림으로 가정을 지켜왔던 가부장적 독선으로 더는 가정을 지탱시킬 수 없다는 작금의 현실. 이렇듯 모든 게 달라지는 시대인 것 같다. 민감한 것들이 하나씩 둔감해지는 시대의 한복판에 분명 우리 모두가 서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알아왔고 그래서 이렇게 말해 왔다.
‘인간에게 있어 사랑보다 더 귀함은 없다.’
그 어떤 형태이건 ‘인간의 사랑은 아름답다는 것.’
인간, 남녀의 절절한 사랑이라면 육체의 합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
이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것.
주변의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조급증을 내며 이렇게 저렇게 살고 있다. 굳이 앞뒤를 분간할 이유도 없이 오직 앞만 보고 숨차게 뛰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쾌속만능의 시대, 어쩌면 우린 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지 모른다.
비록 별 영향력이 없는 작가라 스스로 말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작가로서 책임과 의무를 해야 하는 나름의 큰 짐을 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는 게 그렇게나 힘들었던지 무모해 뵈는 욕심을 또 내고 만다.
다급해진 세상 탓인지 사람들의 생각은 점점 좁아지고 야박해지다 보니 매사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각자의 마음이 외소해져서 일까. 이젠 가슴보단 윤기 나는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것 같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작가는 이런 욕심을 부려보았다.
‘공허한 몸짓이 아닌 진정 가슴 뜨거운 주인공을 만들어보겠다….’
‘보고나면 더 보고파지는 그런 사람을 만들어보고 싶단 욕심….’
‘비굴한 사랑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상처투성인 사람들을 위로, 치유해 보고자 그들의 방패가 되고자 애써봤지만 작가의 역량으론 또다시 한계를 절감하고 만다.
작가는 감히 독자들께 도움을 청하고자 이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그렇게 저렇게 속도 내었던 소설 말미쯤에서야 발견한 게 있었다.
자유… 용기….
바로 자유를 찾고자 했던 용기였다. 다 잃어버려도 다시 얻을 수 있는 자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남다른 자유적 용기….
작가는 그렇게 연우와 은주의 남다른 용기와 무한자유를 확인한 후 그들에게 편승하고픈 충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어코 자유를 얻어낸 사람들. 한없이 궁핍하였지만 그 빈핍함 속에서 기어이 자유로워진 연우와 은주.
작가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그리웠던 게 자유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직 사람한테서만 얻을 수 있었건만 작가는 그것도 모른 채 여지껏 허상만을 쫓아다녔던 것 같다.
새 아침에 아름다움을 피우기 위해 꽃은 밤새 준비했을 것이다. 만약 그런 밤이 없었다면 아마 꽃은 피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연우와 은주는 그런 밤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어둠 때문에 더 외로워 몸부림치며 처절한 실패와 성취의 희열, 눈물까지 껴안고 살길 원했던 그들의 사랑은 금모래, 은모래가 되었다. 두 사람의 나머지 인생은 그 둘만의 아주 작은 우주 속에서 둘만의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이 넘치는 그 둘만의 우주엔 욕망이란 유령은 절대 없을 것이기에….
사람 그리고 자유.
이렇듯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고
기본정보
ISBN | 9788959594344 |
---|---|
발행(출시)일자 | 2015년 10월 20일 |
쪽수 | 320쪽 |
크기 |
148 * 210
* 30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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