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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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30여 년 동안 관직생활을 하며 동인의 영수를 지낸 허엽의 딸로 태어나 집안의 사랑을 가득 받으며 성장한 허난설헌(허초희). 글을 짓는 것을 좋아하던 그녀의 재능은 김성립에게 시집을 간 후에는 오히려 짐이 된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어머니는 초희가 시마詩魔에 들려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며 그동안 써놓은 시들과 지필연묵을 끌어내 불사르는 등 온갖 구박을 가한다.
그렇게 자신을 억압하는 굴레를 벗어버리고자 시가를 뛰쳐나와 세상을 향한 초희는 여러 난관에 부딪히며 슬픔과 좌절을 경험하지만, 그 안에서 끝없이 시를 갈구하고 시를 써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다. 주색에 빠져 있는 남편에게 하고픈 말을, 어린 아이들을 잃은 가슴 저미는 슬픔을, 마음속 정인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끓는 감정들을 모두 시로 승화시킨 그녀는, 여자가 시를 짓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던 조선시대에서 끝내 시인이기를 열망한 비운의 여류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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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시대 천재시인이었던 허난설헌의 애달픈 생애를 바탕으로 쓴 역사소설이다. 하늘이 내린 뛰어난 재능도 여자에겐 축복이 되지 못했던 시대, 철저하게 남성중심사회였던 조선에서 여성의 글을 인정하지 않는 편견을 뒤로한 채, 시를 위해 온 생명을 불살랐던 그녀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또한, 그녀가 남긴 불멸의 작품들을 함께 음미하고, 여러 등장인물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작가정보
목차
- 저자의 말
세상을 향해
남편이 닭이면 닭을 따르고 남편이 개이면 개를 따르고
곶감
아주 특별한 봄
남귤북지南橘北枳
시마詩魔에 들린 여자
불씨
인간의 부귀공명은 한바탕 뜬구름
누이의 손에서 두보의 소리가 나오기를
절벽 위의 꽃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 따서 던지고는
초희楚姬
길가에 버릴지언정 다른 여자에게는 주지 마세요
가난한 여인의 노래
색주가의 사내들을 비웃다
만남의 노래
가위
눈 위에 핀 꽃
나는 난설헌이다
그녀를 가시울타리 속에 가두어라
시로 맹인에게 하늘의 푸르름을 보여주니
시는 내 삶의 힘
세상을 너의 것으로 해라
책 속으로
다문다문 햇살이 내려앉는 보리밭 위로 종달새가 끊임없이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초희는 종달새를 보면서 화담의 시를 떠올렸다.
물어보자,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천지에 가득한 봄기운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눈을 감고 새가 되었다. 푸른 하늘을 가졌다. 마음껏 자유를 먹었다. 호랑나비도 되었다. 꽃의 중심으로 들어가 달콤한 세상을 실컷 빨았다. --- p.51
이달은 동가식서가숙하며 전국을 떠도는 방랑시인이었다. 무덤이건 여막이건 머무는 곳이 집이고 침실이었다. 그는 고려 말 명재상인 쌍매당 이첨의 후손이지만, 어머니가 기생 신분이니 종모법에 의해 서얼이 되었다. 재능은 조선 천지를 뒤흔들 만큼 뛰어났지만, 천한 신분이라 등용되지 못했고 그 한을 평생 시와 술, 여자로 달래고 있었다.
이달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서 초희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 살아가야 함의 엄정함. 삶이 곧 밥이라는 것, 그것은 무서운 현실이었다. 여자는 글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에 저항하던 시절 초희는 배고픈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영양실조라는 말도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 p.57
초희가 혼례 전 그린 그림 「앙간비금도」는 허엽이 말한 안빈낙도의 삶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문실문실 쭉 뻗은 나무 밑으로 학창의를 입은 선비와 그 곁에 다홍저고리를 입은 소녀를 그린 그림은 실로 파격이었다. 그때까지 조선의 어느 화가도 산수화에 여자를 그려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과 강, 소박한 누옥과 면두가 맨드라미처럼 새빨간 암탉이 한가로이 흙을 쪼는 풍경은 허균의 이상향이었다.
그림의 허공에 초희는 와르르 날아오르는 새 무리를 그려 넣었다. 그림 속의 소녀는 고개가 뒤로 젖히도록 꺾어 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이에 대한 연민과 저항이 다시금 일었다. 어쩌면 누이는 자신이 그린 새들처럼 세상을 향해 날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는 절대 새들처럼 세상을 부유할 수 없었다. 그건 죽어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존재했고, 그들에게는 각자의 본성에 맞게 부여된 일이 있었다. 남자는 글을 읽고 세상을 떠돌며 삶의 길을 닦는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닦은 법을 따르면 그뿐이었다. 남자는 역사를 만들고, 여자는 아이를 낳고 조상을 모시는 것이 예에 맞았다. --- pp.99-100
시는 그렇게 왔다. 울남한 바닷물 위로 쑥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잉걸불 속에서 빨갛게 타올라 화로의 재 속에 간직되던 불씨처럼, 어머니가 좋아하던 깊은 산속의 접중화처럼, 기름진 땅을 두고 푸석거리는 모래밭에 피던 바닷가의 해당화처럼, 어부의 배에 실려 오던 펄떡거리는 물고기처럼, 물고기 눈을 감고 있던 짙푸른 해초처럼. 우주 속을 유영하던 그것들은 어느 날 초희의 영혼에서 시로 부풀어 올랐다. --- p.155
나연이 기다리는 것은 정혼자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연이 잃어버린 꿈일 것이다. 바느질을 하고 길쌈을 짓고 동생들을 키우고 거기에 아비의 똥오줌까지 받아내야 하는 고단한 삶 어디에도 구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연에게 이미 정혼자는 사람이 아닌 신이었다. 부처였다. 나연은 허깨비를 잡고 자신의 고독을 삭이고 있을 뿐이다.
초희 역시 나연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녀 역시 무언가를 애타게 갈망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초희는 그것을 찾아 금기를 어기고 울타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밤하늘의 별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을 뿜듯이 인간은 고통을 겪을 때에야 삶의 정수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 pp.219-220
아이가 눈물이 흥건한 눈으로 초희를 바라보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초희는 가슴이 뭉클해져 경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아이의 몸은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차게 얼어 있었고 새털보다도 더 가벼웠다. 초희는 더욱 힘을 주어 아이를 품속에 꼭 껴안았다.
‘경란아, 네가 나의 미래구나. 오라버니가 죽고 네 어머니가 죽고, 또 내가 죽어도 너는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구나. 하지만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란다. 이 세상에는 너와 같은 소녀들이 많이 있을 테니까. 너는 점점 자라서 여인이 될 터이지. 그리하여 세상을 알게 되고 사랑을 배우고,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겠지. 슬퍼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용서하며 살아가게 될 터이지. 경란아, 그것이 삶이란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란다. 고통이 따르는 것. 하지만 경란아, 고통이 오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고통은 네게 순금의 영혼을 줄 테니까. 네가 순금의 영혼을 가질 수만 있다면, 너는 더 이상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니까.' --- pp.374-376
출판사 서평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숭고한 자유시혼!
여자가 아니라 시인이기를 갈망한 허난설헌의 삶과 사랑의 노래!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했던 조선의 여류시인이자 허균의 누이. 일반 사람들 대부분이 허난설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마 이 정도일 것이다.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지만, 그 명성에 비해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이다.
황진이, 신사임당과 더불어 가장 많이 회자되는 조선의 여인이지만 역사적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지금까지 온갖 의문에 싸여 있는 허난설헌. 그녀의 삶을 그린 소설이 예담에서 나왔다. 역사 속 여성들을 탐색하며 글을 쓰는 작가 윤지강이 조선의 천재시인 허난설헌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가 바로 그 책이다. 작가는 허난설헌의 애달픈 생애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씨줄로, 그녀의 시 세계를 날줄로 하여 그 삶을 복원해놓았다.
하늘이 내린 뛰어난 재능도 여자에겐 축복이 되지 못했던 시대, 철저하게 남성중심사회였던 조선에서 여성의 글을 인정하지 않는 편견을 뒤로한 채, 시를 위해 온 생명을 불살랐던 허난설헌. 상상력으로 되살아난 그 삶의 결을 따라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또 그녀가 남긴 불멸의 작품들을 함께 음미하고, 여러 등장인물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시대가 허락지 않았으나 끝끝내 시인이기를 열망한 불운의 시선詩仙!
조선 중기, 30여 년 동안 관직생활을 하며 동인의 영수를 지낸 허엽의 딸로 태어나 집안의 사랑을 가득 받으며 자란 허초희는 어릴 때부터 글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비단에 수를 놓는 것보다 붓을 들고 글을 짓는 것을 더 좋아하고, 그네 뛰는 것보다 말 타는 것을 더 즐기던 그녀는 삼당파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이달 선생에게 시와 참된 시인의 자세를 배우고 익힌다. 하지만 김성립에게 시집을 간 후 그 재능은 오히려 그녀를 고달프게 만들었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어머니는 초희가 시마詩魔에 들려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며 그동안 써놓은 시들과 지필연묵을 끌어내 불사르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등 온갖 구박을 했다.
그렇게 자신을 억압하는 굴레를 벗어버리고자 시가를 뛰쳐나와 세상을 향한 초희는 여러 난관에 부딪히며 슬픔과 좌절을 경험하지만, 그 안에서 끝없이 시를 갈구하고 시를 써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다. 주색에 빠져 있는 남편에게 하고픈 말을, 어린 아이들을 잃은 가슴 저미는 슬픔을, 마음속 정인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끓는 감정들을 모두 시로 승화시킨 그녀는, 여자가 시를 짓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던 조선시대에서 끝내 시인이기를 열망한 비운의 여류시인이었다.
모진 고통을 온몸으로 부여안으며 자유를 꿈꾼 여인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에는 귀여운 아들을 잃었네.
서럽고 서러운 광릉 땅에
두 무덤 나란히 마주 앉았구나.
쓸쓸한 바람 백양나무에 불고
도깨비불 번쩍이는 숲속에서
소지燃紙를 태우며 너의 혼을 부르고
물을 따라 네 무덤에 바치노라.
가엾은 너희 남매는
넋이라도 밤마다 놀고 있으려나.
눈 감아도 아른거리는 어린 딸과 아들을 모두 잃었다.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아이는 붉은 핏물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친정아버지는 어느 날 모함에 빠져 객사하고, 며느리를 아꼈던 시아버지도 갑작스럽게 눈감았다. 가장 많이 의지해온 오라버니도 귀양을 갔다……. 젊은 나이의 초희에게 삶은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들을 안겨주었고, 계속되는 모진 고통을 견디던 그녀는 시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시를 쓰고 지우고 고치고 또 고치고 스스로 읊으면서 슬픔을 이겨냈다. 벼루의 밑창이 바닥나고 수십 개의 붓이 몽당붓이 되는 동안 오직 시만이 그녀의 아비였고 어미였으며, 오빠였고 아들이며 딸이었다. 시만이 그녀의 유일한 연인이었고, 삶의 모든 힘이었다.
가슴속 깊은 한과 절망에서 비롯한 시. 스스로 ‘난설헌’이란 호를 지은 초희는 그렇게 사랑하는 많은 것을 잃으며 세상에 아름다운 시를 남겨두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이생을 떠났다.
조선 여인의 삶과 질곡을 감싸 안은 난설헌의 노래!
밤늦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니
베틀 소리만 삐걱삐걱 처량하게 울리네.
베틀에 짜여진 명주 한 필은
결국 누구의 옷이 될거나.
한 손에 가위 들고 마름질하노라니
싸늘한 밤기운에 손가락이 곱아오네.
남들이 시집갈 때 입을 옷 잘도 짓건만
해마다 해마다 나는 홀로 밤을 지샌다오.
허난설헌 시의 정점을 이룬 절창 「가난한 여인의 노래」에서 볼 수 있듯, 그녀의 작품들에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의 독특한 감상을 애상적으로 노래한 것들이 많다. 손곡 이달의 마음 씀씀이에 반해 홀로 그의 딸을 키우는 산청댁, 기생의 신분으로 시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고자 하는 함로화, 가난에 시달리며 고생하다 아비의 노름빚 때문에 늙은 양반에게 첩으로 팔려가는 나연이 등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도 당시 여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오로지 정성을 다해 조상을 섬기고 남편 내조에 힘쓰며,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잘 따라야 하는 것만이 여자의 도리라 여겼던 조선시대에 숨 막히는 삶을 살았던 여인들. 난설헌은 그렇게 고달픈 여인네의 생활과 삶의 질곡을, 소외된 자의 슬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노래한 시인이었다.
따뜻한 감성과 올곧은 시대정신, 불멸의 시혼이 되다!
양반집 세도가 불길처럼 드세고
높다란 누각에서 풍악 소리 울릴 제
가난한 백성들은 가난으로 헐벗으며
주린 배를 안고 오두막에 누워 있네.
어느 날 아침 높은 권세 기울면
오히려 가난한 백성을 부러워하리니
흥하고 망하는 것은 바뀌고 바뀌어도
하늘의 도리를 벗어나지는 못하리라.
답답한 현실의 벽 앞에서 늘 새로운 세계를 열망했던 난설헌은 감성적인 시와 함께 모순된 사회에 저항하는 시대정신이 담긴 시도 지었다. 불평등한 사회현실을 꼬집기도 하고 정치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뚜렷하게 밝히는 모습에서 여성 운동의 선구자임도 알게 된다. 또한 그녀는 여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선계仙界를 노래한 유선사遊遊詞를 지어냈는데, 87수에 이르는 선계의 노래 속에서 여성의 자유연애와 과부의 재혼을 당당하게 부르짖는다. 그것은 조선시대의 유교적 가치관을 뒤집는 매우 위험한 도발이었다.
남성이나 시대적 가치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려 한 여인, 억압된 삶 속에서 시로 자유를 꿈꾼 허난설헌은 진정 시대를 앞서간 천재시인이다. 이렇게 재능을 숨기지 못하는 숙명과 지독히 외로웠던 그녀의 삶이 섬세한 필치로 되살아난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는 애달픈 사연과 탁월한 여인의 심리 묘사로 그 고통과 시름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한 많은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킨 그녀의 모습에서 뭉클하게 번지는 뜨거운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59132836 |
---|---|
발행(출시)일자 | 2008년 02월 25일 |
쪽수 | 380쪽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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