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서문 ■

역사, 인류가 이루어낸 풍요롭고 다양한 성취에 관한 이야기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다. 역사가들도 항상 같은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역사는 여러 사실 가운데 특정한 것을 취하는 일종의 선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실을 낱낱이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를 완전히 다시 체험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역사는 기껏해야 어떤 한 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한 과거들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때로는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중요한 사건’이냐 아니냐가 결정되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일은 대개 역사가들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역사적 중요성을 기준으로 삼아 이 책을 썼다. 따라서 이 책에서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 운동, 결정적 사실, 상황들을 설명하고자 했다. 다른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모든 나라와 통치자의 이름을 단순히 늘어놓는 방법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오랜 세월 동안 세계 곳곳에서 인간의 신념과 제도의 바탕을 마련한 위대한 문명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단순한 사실을 나열하는 것은 백과사전이지 역사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각 연대별로 일어난 다양한 사건을 기록하는 연대기가 역사의 중요한 토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혼란스럽고 복잡한 연대기 가운데 중요한 사실을 가려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시작될 역사 이야기는 단순 사실만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발전해 가는 인류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나는 이 책에서 시간적·공간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과 개인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여 주고자 했다. 그렇게 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지역과 개인이 인류 전체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가 항상 좋았다고 볼 순 없지만,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한계와 장애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변화·발전해 왔다. 역사 속에서 인간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이를테면 다른 생물들은 단지 자연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위치를 찾아 살아남았을 뿐이지만, 인류는 처음부터 자연을 자신에 맞게 바꾸어 나갔다. 돌이나 뿔을 도구로 삼기도 했고, 불을 피워 그것이 꺼지지 않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인류에게 이는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거대한 투쟁의 첫 발걸음이었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는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일으킨 변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자연을 정복해 가면서 인간이 겪게 된 수많은 고통과 재앙 이야기만큼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보통 ‘역사시대’는 어떤 사실이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시대를 뜻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전의 시대, 즉 ‘선사시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사실 인류가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은 이 선사시대에 속한다. 문명이 태어나기 전 수만 년 동안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지구를 개척하고 서서히 변화해 왔다. 인간과 비슷한 생물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보다 훨씬 전인 수십만, 수백만 년 전에도 훗날 인류의 발달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 뒤에 나오는 주된 내용은 인류가 이루어낸 풍요롭고 다양한 성취, 즉 문명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줄곧 우리가 놓인 현실과 어려움을 잘 보여 줄 수 있는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고 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독자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 이 책의 본문은 내용을 완전히 새롭게 보강했으며, 나아가 풍부한 그림과 도표, 시간표, 지도들로 내용을 보충했다. 이는 상상력이 풍부한 오늘날의 출판인들이 없었다면 이루어 내지 못했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 J. M. 로버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