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도시의 미래일 수 있을까?
도시에서도 마을이 가능할까? 관이 주도하는 마을이 마을일 수 있을까? 모두를 위한 마을은 환상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도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마을이 주목받은지 꽤 오래되면서 한층 깊은 고민들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근래 주민들의 자발적인 마을하기의 노력이 행정과 만나면서, 빠르게 확산되는 만큼 과연 정부가 나서는 마을정책이 괜찮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이 책은 성미산마을에서 20년 가까이 마을살이를 했고, 현재는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센터장으로 있는 저자가 들려주는 마을살이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종합 보고서이다. 저자가 성미산마을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마을살이의 원리라고 할 만한 것들을 정리하고, 마을살이를 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과 매력을 가능한 한 망라하고 있다. 더불어 2012년 이후 3년 간 진행된 서울시 마을공동체정책의 수립과 실행의 과정을 섬세하게 기록함은 물론 이후 서울시 마을정책의 방향과 전망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마을이 대안일 수 있는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나설 것인지 찾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1. 마을, 그 매력과 두려움 - 20년 마을살이의 경험으로 전하는 마을살이의 원리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새로운 공동체적 마을이 생겨나고 있다.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낳은 부작용을 완화하고 상호부조와 호혜적 관계가 살아 있는 생활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인 도시 속 마을공동체인 성미산마을만 해도 그 역사가 20년을 넘었다. 왜 사람들은 도시 한가운데 살면서 마을을 꿈꾸는 것일까?

일자리는 불안하고 주거비와 교육비는 갈수록 올라가고, 의료비는 민영화다 영리화다 들썩이며 불안하다. 아이들은 파릇한 청소년기를 송두리째 공부에 바치고, 그렇게 대학을 가도 취직이 난망하고 결혼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 노인들은 방치되고 홀로 세상을 뜬다. 맞벌이가정 아이들의 방과후가 챙겨지지 않는다. 생계형 자살이 빈발하고, 별안간 목숨을 잃는 사고가 많아진다. 심지어 동네에서 아이들과 여성들이 봉변을 당한다.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챙기고 살아야 하나? 혼자는 엄두조차 안 나고, 함께라면 가능할까? 그렇다면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도시에서도 마을이 가능할까? ― 《머리말》(9쪽) 중에서

이 책의 1부에서는 20년 가까이 성미산마을에서 마을살이를 한 저자가 마을의 매력과 두려움을 생생하고 유쾌한 글로 풀어내고 있다. 《2025년 서울, 어느 마을의 마을살이》를 담은 프롤로그에서는 43세 주부, 27세 청년, 56세 명퇴한 남성, 17세 청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마을살이 경험이 없는 독자들도 그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나아가 마을살이를 맛본 주민들에게는 마을살이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과 고민을 나누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마을이 대안이다’라고 강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살이의 풍요로움과 어려움을 공히 제시함으로써 ‘그럼에도 왜 마을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2. 마을, 행정과 만나다 - 풀뿌리와 행정의 거버넌스, 그 진화를 위하여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하나하나 일구어온 마을 생태계가 최근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고 있다. 10여 년 동안 중앙정부의 여러 부서에서 마을정책을 꾸준히 추진했고, 전북 같은 광역도시는 물론 진안, 완주, 강릉, 안산 등의 기초자치단체에서도 마을정책을 의욕적으로 꾸려왔다. 여기에 2012년 서울시가 마을공동체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주민 주도로 일구어왔던 마을은 행정과의 만남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정부는 공공성 위기의 대안으로 마을 주민들 간의 호혜적 관계망을 복원함으로써 시민이 창출하는 공공 영역을 통해 국가 공공 정책의 효과를 높이려고 한다. 한편 주민들은 막대한 자원과 힘을 가진 행정을 활용해 스스로 조달하는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마을을 꾸려가고자 한다. 이처럼 마을이 행정과 만나는 민관 협치의 거버넌스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마을공동체정책은 무엇보다 주민 주도성이 중요한데 관 주도의 관행이 여전한 거버넌스의 현실을 고려하건대, 이제 마을과 행정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 책은 마을공동체정책에 대한 거버넌스의 경험을 구체적이고 밀도 있게 기록함으로써,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마을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를 열고 방향을 제시할 충실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3. 누구나 살고 싶은 마을을 꿈꾸다 - 서울시 마을공동체정책 3년의 기록
서울시는 2012년 이후 마을공동체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 서울시는 관과 민의 협력적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시험대와 같다. 따라서 서울시의 마을공동체정책과 그 실행 과정을 돌아보는 것은 마을지향 행정, 나아가 마을 관계망 구성과 지역사회의 공론장 형성에 이르기까지의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다.
2012년에는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설립되었고, 기대와 우려 속에 마을공동체조례, 공모제 개선 등 마을공동체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법과 제도, 조직적 준비를 완료하였다. 2013년에는 주민의 등장과 연결을 화두로 2년여 동안 약 7만 명의 주민이 마을지원사업에 연결되었고 2,500여 개의 주민 모임이 사업에 참여했다. 2014년에는 광역 차원의 센터에서 구 단위의 마을지원 조직을 만들어 좀 더 현장에 밀착된 세심한 지원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마을 생태계를 꾸리는 데 초점을 두었다. 미시적인 생활세계를 촘촘히 재구성해가며 살 만한 도시,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이 여정의 목적지이다. 아이를 함께 기르고 안심하고 오래살 수 있는 마을, 동네 가게가 살아 있고 세대가 어우러지는 마을을 꿈꾸며 그러기 위해 국가(공공)는, 또 시민(주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곱씹게 한다.

서울시 마을공동체정책의 원칙은 ‘주민 주도’이다. 하지만 정부가 마을을 만들겠다고 나선 마당에 주민 주도형으로 하자는 것은 어쩌면 형용모순일 수 있다. 성미산마을은 공공의 재정 지원 없이 주민 주도로 마을을 형성한 대표적인 상향식(bottom-up) 사례이다. 반면 새마을운동은 전형적인 하향식(top-down) 사례이다. 지금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는 서울시의 마을공동체정책은 성미산마을도 새마을운동도 아니다. 양자의 절묘한 결합이다. 즉 자원은 행정에서 지원하되(top-down), 그 결과는 주민 주도적인(bottom-up) 성과로 내자는 것이다. ― 《행정 혁신과 협력적 거버넌스》(204쪽) 중에서

4. ‘마을공동체’의 언어 만들기 - 마을, 마을살이, 마을하기
도시에서 마을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서울만 해도 곳곳에서 마을공동체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 마을공동체정책을 통해 지난 2년 간 접속한 주민만도 7만여 명이다. 마을살이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적절하게 마을과 관련한 언어를 정리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반영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 또 마을 생태계를 일군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그에 맞는 언어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오랜 마을살이와 마을행정의 경험을 되새기며 마을공동체 언어를 적극적으로 생성하고 정리해낸다. 대표적인 것이 마을, 마을살이, 마을하기라는 개념이다.
‘마을’은 주민들이 생활상의 필요와 욕구에 관해 함께 하소연하고,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궁리하며, 함께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이웃들의 협력적 생활 관계망이다. ‘마을살이’는 마을이 형성되는 원리이자 마을이 움직이는 원리이다. 마을살이는 이웃들의 관계망이 형성되는 과정으로, 그 원리는 하소연과 궁리,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동이다. 활동가들이 마을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의식적으로 벌이는 ‘마을활동’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마을하기’는 정부가 정책으로 추진하는 ‘마을만들기’와 구별하는 의미로, 주민이 자신의 삶터에서 자발적으로 이웃들과의 생활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움직임이다.

5. 작은 데에서 출발하는 귀중한 삶의 실험 - 추천사
마을공동체 운동은 사회와 정치, 그리고 우리의 삶을 바로잡으려는 여러 움직임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활동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압축적인 경제 성장은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을 근본에서부터 파괴했다. 성장에 대한 강압 못지않게 그에 대한 비판과 저항도 거셌다. 특히 마을공동체 운동은 압축 성장이 만들어낸 문제를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풀어내며, 마을의 삶을 다시 찾으려 한다. “정치인에게 위임하지 않고, 시민단체가 대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시민 스스로 대안적 삶의 방책을 마련하고, 그렇게 살아가며 행복과 만족을 느낌으로써 정치를 달라지게 하려는 것이 곧 마을운동이다. 이 책은 이러한 삶의 실험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그 실험의 결과를 평가하고 여러 제안을 담고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 김우창(문화평론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