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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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작가정보
저자 조지 로버트 기싱George Robert Gissing (1857~1903)은 영국의 소설가, 수필가. 스물세 편의 장편소설과 여행기, 에세이, 비평, 단편소설 등 다양한 글을 남겼다. 생전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작품이자 대표작인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1903)은 영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세이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영미 수필문학의 백미이다.
기싱은 1880년에 첫 장편소설 《새벽의 노동자》를 자비로 출간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 1886년에 발표한 《민중》을 기점으로 차츰 소설가로서 인정받았다. 1890년대에 이르러서는 영국과 국외에서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19세기 말엽의 비평가들은 그를 토머스 하디, 조지 메러디스와 더불어 영국을
선도하는 소설가로 손꼽았다. 또한 훗날 기싱의 열렬한 팬이 된 조지 오웰은 그를 “영국이 배출한 최고의 소설가”로 평가하며, 그의 가장 훌륭한 소설로 《민중》, 《꿈꾸는 문인들의 거리》(1891), 《짝 없는 여자들》(1893)을 꼽은 바 있다. 민중의 삶을 그린 소설 《밑바닥 세상》(1889)을 펴낸 후 이탈리아로 떠났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방된 사람들》(1890)을 출간했다. 그러나 이미 이전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 기싱은 프랑스 남서부에서 요양 생활에 들어갔고 1년간 머물면서 《윌 워버턴》을 집필했는데 이 소설은 1905년에 사후 출간되었다. 1903년 12월 28일에 세상을 떠나 프랑스의 영국인 묘지에 묻혔다.
역자 박명숙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보르도 제3대학에서 언어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프랑스 고전주의 문학을 공부하고 ‘몰리에르’ 연구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와 배제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출판기획자와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과 《목로주점》,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전진하는 진실》,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 《거짓의 쇠락》,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로랑 구넬의 《가고 싶은 길을 가라》, 플로리앙 젤러의 《누구나의 연인》, 티에리 코엔의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꿈꾸었다》, 도미니크 보나의 《위대한 열정》, 마리 카르디날의 《두 사람을 위한 하나의 삶》, 장 이브 보리오의 《로마의 역사》, 카타리나 마세티의 《옆 무덤의 남자》, 《라퐁텐 그림 우화》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 서문
봄
여름
가을
겨울
옮긴이의 말/성숙한 영혼이 빚어낸 아름다운 삶의 풍경들
추천사
-
“조지 기싱은 영국이 배출한 최고의 작가다.”
-
“급변하는 전환기에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며, 삶의 본질을 통찰하려는 지식인의 노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책 속으로
사람들은 흔히 가장 귀한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들 한다. 그런 상투적인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한 번도 돈이 부족했던 적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1년에 고작 몇 파운드를 더 벌지 못해 느껴야 했던 슬픔과 무력감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돈의 위력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된다. 오직 가난 때문에 얼마나 많은 따사로운 즐거움들과 모든 이들이 희구하는 소박한 행복들을 포기해야 했던가! 〈봄〉 30쪽
나는 죽을 때까지 읽을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릴 것이다. 아무 때나 습득했던 모든 지식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면 나는 스스로를 박식한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지속되는 걱정거리나 동요, 두려움만큼 기억력에 매우 나쁘게 작용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읽는 것의 일부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꾸준히 즐겁게 읽을 것이다. 나는 미래의 삶을 위해 지식을 축적하려는 것일까? 잊는다는 것은 더는 나를 두렵게 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낄 뿐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 뭘 더 바랄 수 있겠는가? _〈봄〉 72쪽
아, 아이의 입술에서 느껴지던 짭짤한 소금물 맛이란! 이제 난 언제든 내가 원하는 때에, 어디든지 내가 원하는 곳으로 휴가를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바닷바람과의 그 짭조름한 입맞춤은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 다시 한 번 그때처럼 딱 반시간만이라도 햇살이 눈부신 파도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볕을 쬐거나, 은빛 모래언덕 위를 뒹굴거나, 바다고사리가 반짝이는 바위들 사이를 건너뛰다가 불가사리와 말미잘이 있는 얕은 물속으로 미끄러지면서 까르르 웃음을 터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_〈여름〉 102쪽
어제는 엑서터에 갈 일이 있었다. 해 질 무렵 그곳에 도착해 볼일을 보고 따사로운 석양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서던헤이에서 아래층 창문이 열려 있는 어떤 집을 지나치는데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솜씨 있는 연주였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1~2분이 지나 연주자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가슴이 뛰었다. 나는 내 주위를 맴도는 장려한 음악에 취한 채 짙어지는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리고 황홀경에 빠져 전율했다._〈여름〉 179쪽
아침을 환히 밝혀주던 햇살이 천천히 모여든 구름 사이로 숨어들었지만, 그 빛의 일부가 여전히 대기 속에 머물다가 조용히 내리는 비를 금빛으로 물들이는 듯 보인다. 정원의 고요한 나뭇잎들 위로 후드득 소리와 함께 빗방울 듣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면서 차분한 사색으로 나를 이끈다. _〈가을〉 204쪽
나는 언제나 길에서 벗어나 시골 교회의 묘역을 가로질러 산책을 하곤 한다. 도시의 공동묘지가 불쾌한 만큼 시골의 안식처는 나를 매혹한다. 나는 묘석에 새겨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여기 누워 있는 모두에게는 삶에 대한 조바심과 두려움이 모두 끝났거니 생각하며 깊은 위안을 받는다. 나는 조금도 슬픔에 젖지 않으며, 여기 잠든 이가 어린아이건 노인이건 모두가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했음을 느낀다. 그들은 삶의 종말을 맞이했고 그 종말과 더불어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으니, 그 종말이 조금 늦게 찾아왔건 조금 일찍 찾아왔건 그런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여기 잠들다(Hic jacet)’라는 묘비명보다 더 큰 경하(敬賀)의 말이 있을까? _〈가을〉 222쪽
등불을 끄고 문간에 이르면 나는 언제나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곤 한다. 마지막으로 이글거리며 타고 있는 석탄의 불빛에 비친 내 방이 너무나도 아늑하게 유혹적이어서 나는 쉽사리 그곳을 떠날 수가 없다. 반들거리는 목재, 의자, 책상, 책장 그리고 몇몇 호화 장정본의 금박 제목에까지 따뜻한 불빛이 반사된다. 그 불빛은 이쪽 그림을 비추거나, 저쪽 그림에 내려앉은 어둠을 반쯤 흩어놓기도 한다.
_〈겨울〉 270쪽
나는 어둠 속에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락방 창가에 서서 보니 마치 밤중처럼 거리가 환히 밝혀 있었다. 가로등과 상점의 쇼윈도도 또렷이 보였고, 사람들은 볼일을 보러 어디론가 분주하게 가고 있었다. 그사이 어느 정도 안개가 걷히긴 했지만 여전히 지붕 위에 걸려 있어 하늘에서 오는 어떤 빛도 지상에 가닿을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몇 시간 동안 거리를 쏘다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손에는 따뜻함과 빛을 살 수 있게 해줄 동전 몇 닢이 들려 있었다. 내가 아끼던 책을 중고 서적상에게 팔고 받은 것이었다. 나는 내 주머니에 든 돈만큼 더 가난해졌다.
_〈겨울〉 275쪽
출판사 서평
자연과 책읽기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문장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헨리 라이크로프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 작가 조지 로버트 기싱(George Robert Gissing, 1857~1903)의 자전적 에세이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The Private Papers of Henry Ryecroft, 1903)》)(이하 《수상록》)이 새롭고 적확한 번역으로 완역 출간됐다. 원제는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사적인 기록’으로, 말년에 시골의 자연에 묻혀 한가로이 살아가는 어느 문인의 일기를 사계절에 맞추어 편집한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몽테뉴 수상록》과도 같이 인간 본성과 자아,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 및 현대 문명과 문화, 사회에 관한 예리한 비평이 미려하고도 담백한 문장 속에 담겨 있다.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인문주의자
조지 기싱 만년의 걸작 에세이
토머스 하디, 조지 메러디스와 함께 영국을 선도하는 3대 소설가로 평가됐던 기싱은 20세기에 이르러 조지 오웰에 의해 “영국이 배출한 최고의 소설가”로서 찬사를 받았다. 오웰은 기싱의 가장 훌륭한 소설로 《민중(Demos, 1886)》, 《꿈꾸는 문인들의 거리(New Grub Street, 1891)》, 《짝 없는 여자들(The Odd Women, 1893)》을 꼽았다. 그러나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이 영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의 에세이로 널리 알려지면서 이 책은 기싱의 대표작이 됐다.
소설가로 명성을 떨치던 기싱은 1900년 9월, 오랜 시간 구상해온 에세이집을 집필하기 시작해 7주 만에 완성했다. 기싱은 ‘사색과 몽상’이라는 가제를 붙인 이 원고를 쓰면서 《수상록》이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리라 예상한 듯 메러디스를 비롯한 여러 지인들에게 증정본을 보냈다고 한다. 1902년 5월부터 1903년 2월까지 〈포트나이틀리 리뷰〉에 연재되는 동안 《수상록》은 독자들의 열렬한 호평과 관심을 받았으며 연재를 끝마치기도 전인 1903년 1월에 출간됐다. 허구적 요소도 자전적 요소도 섞여 있으나 소설도 자서전도 아닌 새로운 양식의 이 에세이에 대중적 호응뿐 아니라 비평적 찬사도 이어졌다.
현대 물질문명에의 비판적 성찰
평생을 추구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기계발에의 경주
《수상록》에는 소설가 조지 기싱이 친우인 헨리 라이크로프트가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남긴 글들을 정리해 출간한다는 내용의 〈서문〉이 붙어 있다. 일반 독자들에게 실존 인물인 것처럼 비쳤던 ‘헨리 라이크로프트’는 사실 기싱의 삶과 사유, 꿈이 투영된 가상의 인물이다.
글쓰기로 힘겹게 생계를 꾸려온 가난한 문인 헨리 라이크로프트는 친구로부터 뜻밖의 유산을 받아, 각박한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로 은퇴한다. 한가로운 사색을 즐기고 여유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된 라이크로프트는 자연 속에서 책을 읽으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이를 자아 성찰의 계기로 삼아 다양한 소재의 글을 남긴다. 여기에는 물질적 궁핍이 삶에 미치는 영향, 점점 상업화되어가는 문필업에 대한 우려, 과학 문명과 산업화의 폐해, 국제 분쟁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호전적 세력들에 대한 반감 등을 함께 다루고 있다. 개인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의 면모가 보이는 것은 당시 정신적으로 성숙해지지 못한 사회에 팽배해진 물질만능주의에 의해 대중이 정신적 혼란과 동요에 휩싸였던 세기말을 경험하면서 현대 문명과 산업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아한 나이듦의 품격
성숙한 영혼이 빚어낸 아름다운 삶의 풍경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글 전반에는 영국과 영국인들, 영국 음식과 더불어 “영국의 자연과 시골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예찬, 책과 독서에 대한 절절하고 깊은 사랑의 고백”이 넘쳐흐른다. 기싱은 영국인들의 미덕과 악덕을 함께 논하면서도 민족적 자부심을 놓치지 않으며,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정갈한 영국 음식에 대한 자랑을 숨기지 않는다. 이름 모를 꽃들의 향명을 찾으며 소박한 행복을 맛보는가 하면, 셰익스피어, 괴테, 기번 등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애정을 마음껏 드러낸다. 무엇보다 책에 대한 따라갈 수 없는 애정이 우리를 깊이 감동시킨다.
다음 구절의 의미를 나보다 더 절감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안식을 찾아 사방을 헤맸지만, 책을 들고 구석에 앉아 있을 때 말고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_70쪽
가난했던 시절, 저녁을 사 먹는 대신 갖고 싶었던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기뻐하던 라이크로프트는 “돈은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지 책을 사기 위한 것일 뿐, 곰곰 생각해야 할 다른 어떤 의미도 갖고 있지 않았다”(55쪽)라고 고백한다. 《수상록》에는 이렇게 책에 관련된 감동적인 일화들이 가득한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헨리 라이크로프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사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광들은 유년기에서 청년기, 장년기에서 노년기로 흘러가는 우리네 삶의 풍경들과 포개진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점점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후대에 전할 삶의 지혜와 통찰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100여 년 전 모두가 불안하고 흔들리는 시대에 울리던 한 인문주의자의 진정 어린 목소리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하다.
* 책속으로 추가 *
돈은 시간이다. 돈이 있다면 나는 시간을 사서 즐겁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돈이 없다면 어떤 의미로든 내 것이 될 수 없을 시간을 말이다. 아니, 더 나아가 나는 그 시간의 처량한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돈은 시간이다. 시간을 사는 데 돈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돈을 제대로 쓴다는 의미에서 볼 때는, 돈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도 돈이 충분히 없는 사람만큼이나 가난한 것 같을 때가 종종 있다. 우리의 일생은 결국 시간을 사거나 사려고 애쓰는 것으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손으로는 시간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_〈겨울〉 337~338쪽
기본정보
ISBN | 9788956609881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3월 04일 |
쪽수 | 360쪽 |
크기 |
150 * 210
* 30
mm
/ 485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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