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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경향신문 > 2010년 선정
작가정보
저자 김용만
'새로 쓰는 연개소문傳' 이 고구려에 관한 그의 네 번째 저작일 만큼 고구려 연구에 관해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고구려 전문가’이다. 1998년에 그의 첫 번째 저작 『고구려의 발견』은 고구려를 중국 문명과 다른 독자적 문명권으로 보고 전개해 나간, 한국 ‘최초의’ 고구려 통사였다. 이후 그는 2000년에는 고구려 생활사인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를 펴내, 고구려 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냈다. 2001년에는 고구려 인물들의 전기인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를 펴내기도 했다. 이번에 펴낸 『새로 쓰는 연개소문傳』에서 저자는 고구려 문명이 어떻게 중화 문명과 대립하고 경쟁했던가를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 작업에 대해 저자는 직접적으로는 7세기 시기의 고구려와 동아시아 역사를 탐구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21세기 오늘의 상황에 초점을 두고 있다.
목차
- 머리말 - 신화에서 역사로 :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1. 연개소문은 왜 혁명을 일으켰을까?
연개소문은 누구인가
대립하는 두 파벌 : 주화파와 주전파
중원의 혼란과 영류왕의 실기
시대의 라이벌, 이세민의 등장
상처받은 고구려의 자부심
마침내 혁명의 칼을 뽑아들다
- 천리장성은 장벽이 아니었다! -
2. 당은 왜 고구려를 침략했을까?
연개소문의 혁명 때문이라고?
이세민을 괴롭힌 콤플렉스의 정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기 두렵습니다."
"고구려와 전쟁만은 하지 마십시오."
침략 전쟁의 억지 명분
피할 수 없는 문명의 충돌
- 고구려가 먼저 당을 공격했다! -
3. 신라는 왜 당을 끌어들였을까?
백제의 위협과 신라의 위기
연개소문과 김춘추의 역사적인 만남
연개소문, 백제와 손을 잡다
신라의 어쩔 수 없는 선택
4. 1차 고-당 전쟁
당군의 뜻밖의 진격로
당의 주력군이 등장하다
요동성이 함락되다니
지체된 시간의 비밀
신성과 건안성 : 연개소문의 반격
고구려 해군의 눈부신 활약
주필산 전투의 미스터리
이세민은 왜 토산을 만들었을까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라
이세민은 왜 요택으로 달아났을까
엉터리로 기록된 당군의 전과
- 연개소문, 이세민을 쫓아 만리장성을 넘다? -
5. 냉전 속의 열전
김춘추와 이세민의 협상
설연타의 멸망 : 얻은 것와 잃은 것
당의 새로운 작전 : 거듭된 소모전
이세민의 죽음
배 수천 척을 비밀리에 만들라
백제의 허무한 멸망
6. 2차 고-당 전쟁
대를 이은 팽창 야욕
해로로 진격해온 당의 주력 부대
연개소문의 백제 부흥 작전
압록강 전투와 철륵의 참전
연개소문의 대공세
비록 적은 물러갔지만
- 연개소문은 언제 죽었는가? -
7. 3차 고-당 전쟁
꿈을 깨어지고, 자식들은 못나고
적에게 기회를 준 배신자 남생
신성이 무너졌다!
668년 9월 26일
전쟁은 끝나고……
맺음말 : 대국의 조건
연개소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고구려는 왜 멸망했을까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연개소문의 내정과 외교, 군사 역량에 관하여
연개소문은 어떻게 권력을 장악했을까?
연개소문의 직위
연개소문 정권의 구성원
소외된 고문
왕권과 신권
보장왕은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왕실과 불교세력
연개소문과 도교
중리부와 세습 정권
연개소문은 어떻게 당을 고립시키려 했을까?
요서 지역 각축전
당나라의 요서 지역 진출
고구려의 거란 지배
사마르칸트에 간 고구려 사신
당과 거란
거란에서 당을 몰아내라
거란에서 물러난 고구려
고구려와 당은 실제로 어떻게 싸웠을까?
1차 고-당 전쟁시 당나라 원정군의 규모
이세민과 연개소문의 전략과 전술
당과 고구려의 군사적 능력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연개소문과 642년의 유혈 혁명
때는 642년 9월 어느 날.
연개소문은 자신을 죽이려던 당시 군왕인 영류왕과 동료 귀족들을 무참히 살상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그때 그의 나이는 불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연개소문의 출생년도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연개소문이 615년에 때어난 것으로 추계한다면 혁명 당시 연개소문의 나이는 27세에 불과하다. 연개소문의 출생년도에 대한 논란은 이 책 22쪽 참조). 이후 연개소문은 죽을 때까지 20여 년간 권력을 장악하고 고구려를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그가 혁명을 일으킨 이유는 영류왕과 귀족들이 그의 ‘흉악 잔인하며 무도한’ 성격을 문제 삼아 제거하려고 했고, 연개소문이 자신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사전에 알아내 역습을 한 것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연개소문 혁명의 배경에는 당시 당나라를 두고 생긴 친당 유화파와 강경파의 대립, 문신들과 무인 출신의 대립, 전통 귀족과 연개소문을 중심으로 한 신흥귀족 간의 대립 등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작용했다.
642년 권력을 장악한 연개소문은 이전까지의 당나라에 대한 유화정책을 바꾸어 당과의 전쟁을 피하지 않았다. 645년의 1차 고-당 전쟁과 661~662년의 2차 고-당 전쟁에서 모두 승리함으로써 그는 고구려의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면서 고구려의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연개소문, 신화 속에서 역사로 - '연개소문이 돌아가시자 나라가 망했다’?
『새로 쓰는 연개소문傳』은 7세기 고구려의 마지막 장을 장식했던 연개소문을 당시 7세기의 동아시아의 역사 한 복판에 불러내 그를 역사적으로 위치지우고 이해하려한 연개소문에 관한 본격 저작이다. 연개소문을 온전히 복원하기 위해 저자는 『삼국사기』 등의 우리 측 사료는 물론 『구당서』『신당서』『자치통감』『책부원귀』『일본서기』 등 당시의 동아시아 사료를 꼼꼼히 검토하고 검증하여 신화 속의 연개소문을 동아시아 역사의 무대로 불러낸다.
사실, 그동안 연개소문은 이제까지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신화 속의 인물이었다. 우리 야사 속에서 그는 퇴각하는 이세민을 쫓아 만리장성을 넘어 장안까지 쳐들어가 항복을 받아낸 신출귀몰한 영웅으로 그려지는 반면, 당태종 이세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중국의 경극(京劇)에서는 흉포하고 잔인한 변방의 악당쯤으로 등장한다. 충효사상에 입각한 유교사관에서는 그를 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찬탈한, 그리하여 고구려를 멸망하게 만든 원흉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당의 대군과 맞서 싸운 탁월한 전략가이자 구국의 영웅이라고 칭송한다. 단재, 백암 등은 연개소문을 가리켜 ‘우리 역사 최고의 영웅’이라고 상찬하기도 했다.
이처럼 상반된 평가를 받고, 갖가지 설화와 야사가 난무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사료의 빈곤 때문이다. 당에게 멸망당한 고구려는 자신의 역사서를 남기지 못했기에, 중국측 역사서의 편파적인 왜곡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전문 역사가인 이 책의 저자 김용만은 신화의 베일에 가려진 채 극단적 평가를 받아왔던 연개소문을 역사의 무대로 복권시킨다. 중국 사료에 대한 비판적 독해와 논리적 추론을 통해, 연개소문의 삶과 통치 형태, 대당 전쟁의 전략과 전술 등 이제까지 잘못 알려졌거나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낱낱이 밝혀낸다.
연개소문은 왜 혁명을 일으켰을까? 그는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며 고구려를 통치했을까? 그는 왜 당과 전쟁을 벌였을까? 그는 왜 신라를 적으로 돌렸을까? 무엇보다 세 차례 고-당 전쟁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고구려는 왜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까?
만주벌판을 달리던 고구려인의 이미지는 연개소문만큼이나 우리에게는 신화의 아우라를 띠고 있다. 우리가 그런 민족적 자긍심에 도취해 있는 동안, 중국은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획책하고 있다.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연개소문의 생애와 고-당 전쟁의 진상을 소상히 들려주는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본문 소개
고-당 전쟁, 동아시아 최고의 문명의 충돌
우리는 흔히 ‘고-당 전쟁’ 하면 이세민이 안시성을 함락하지 못해 실패한 전쟁쯤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양만춘만이 영웅으로 기억된다. 고구려가 멸망한 것도 연개소문과 김춘추의 회담이 결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탄한다. 이것이 대부분 역사 교과서의 기술이다.
그러나 고-당 전쟁은 그런 몇몇 개인들의 문제로 간단히 치부될 수 없는, 7세기 동아시아 문명권의 운명을 건 대전이었다. 전쟁의 결과,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지만 승자인 당나라도 토번과 돌궐 등 다른 이민족에게 시달리다 단명하고 말았다. 두 나라 모두 사활을 걸고 싸웠으며, 결국 모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 이 전쟁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이세민의 정복욕, 전쟁광적인 기질은 원인 중 하나일 뿐이다.
저자는 고-당 전쟁을 당을 중심으로 한 중화문명권과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문명권의 필연적인 ‘문명의 충돌’로 설명한다. 그 바탕에 있었던 것은 바로 서로 다른 천하관이다. 중국은 자신만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관으로 자신의 질서를 이민족들에게 강요했다. 신흥강대국 당에게 대부분의 나라들은 굴복했지만 고구려만은 굴복하지 않았다. 고구려 역시 자신을 천하의 중심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고구려의 천하관은 다원적이라는 것이다. 즉, 중국을 중심으로 한 천하를 인정하는 대신,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천하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쌍방이 서로 다른 천하를 인정한다면 공존할 수 있었겠지만, 중국은 오직 하나의 천하만을 원했다. 이렇듯 ‘제국을 영속시키려는 의지’의 충돌이 필연적으로 전쟁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당이 전쟁 명분으로 내건 고구려의 신라 침범은 고구려의 천하관에 비추어보면 분명 월권이었다. 신라나 백제, 왜, 말갈 등은 모두 고구려 천하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이 혁명을 일으킨 것도 영류왕의 지나친 대당 유화정책이 고구려의 천하관에 어긋나는 행위, 즉 대국의 존속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신라 같은 약소국은 생존을 위해 강대국인 당에게 머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지만, 수나라 100만 대군을 물리친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가 대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과 맞설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천하관의 대결은 결국 국제전이 되었다. 세 차례 고-당 전쟁에 거란, 설연타, 철륵, 말갈, 백제, 신라, 왜 등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전쟁을 벌였고, 몇몇은 회복불가능한 타격을 입기도 했다. 심지어 고구려는 사마르칸트까지 사신을 보내 동맹을 맺으려 기도하기도 했다.
연개소문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이세민과 중국 사학자들이 뻥튀기한 양만춘만을 기억한다거나, 민족의식이 아직 없던 시절에 자국의 이익을 추구했던 연개소문과 김춘추의 협상 실패를 한탄하는 것만으로 고-당 전쟁을 평가하는 것은 협소하고 안일한 역사인식일 뿐이다.
연개소문, 그의 삶과 죽음
앞에서도 말했듯이, 연개소문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그가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저자는 면밀한 사료 검증을 통해 연개소문의 구체적인 생애를 형상화한다. 저자가 복원해낸 연개소문의 삶은 다음과 같다.
연개소문은 615년경 평양을 중심으로 한 신흥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평원왕과 영양왕 시기 급속히 성장한 연개소문의 가문은 동부(東部)에 속했으며, 무인적인 기질이 강했다. 영류왕이 집권하고 다시 전통 문벌귀족이 득세하면서 연개소문은 위기에 처한다. 아버지가 죽은 후 연개소문이 막리지 관직을 이어받으려는 것을 전통 귀족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더 이상의 전쟁을 원치 않는 영류왕과 전통귀족들에게 대당 강경론자인 연개소문은 눈엣가시였다. 겨우겨우 관직을 승계한 연개소문이 다시 강경 발언을 계속하자, 영류왕과 전통귀족들은 그를 암살하려 한다. 하지만, 모의를 사전에 알게 된 연개소문은 마침내 혁명의 칼을 뽑아드는데…….
연개소문이 언제 죽었느냐를 추론해내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665년설도 단재의 657년설도 모두 틀리다고 논박한 후, 『일본서기』의 기록과 고구려의 3년 상(喪) ?습 등을 근거로 663년 10월을 연개소문이 죽은 시점으로 주장한다. 또 연개소문이 중리부(中裏府)라는 인사정보관리 기관을 토대로 어떻게 대외강경파 무장들을 중용하면서 전통귀족들을 소외시키고 권력을 강화해 갔는가 하는 분석도 이 책에서 처음으로 밝혀지는 내용이다.
밝혀지는 오해와 그리고 진실
이 밖에도 이 책은 그동안 고-당 전쟁에 대해서 잘못 알려졌던 많은 사실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천리장성의 위치나 성격(산성이냐 토벽이냐)에 대한 논란에 대해, 저자는 천리장성이 어떤 단일한 성벽이 아니라 요동성, 신성, 백암성, 건안성, 비사성 등 고구려가 요동 일대에 쌓아놓은 성들의 네트워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리장성 같은 방벽은 어느 한 곳이 뚫리면 무용지물이 되지만, 천리장성은 성들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이 무너져도 다른 성들이 즉시 여기에 응해 도움을 주기 때문에 잘 돌파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당군은 1차 고-당 전쟁시 요동성, 백암성, 비사성 등을 함락했으나 신성과 건안성을 함락시키지 못했기에 안시성에서 물러났던 것이다.
또한 저자는 645년 당이 고구려를 먼저 침략한 것이 아니라 644년 고구려가 먼저 당을 기습공격했다고 주장한다. 644년 연개소문은 당의 군량보급에 차질을 일으키기 위해 영주(營州) 일대의 전진기지를 습격하였다. 비록 괄목할 만한 전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고구려가 일방적으로 당의 대군에 당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저자는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책부원귀』 등 사료를 철저히 조사하여 당군의 실제 규모를 역산해낸다. 흔히 수나라는 100만 대군이고 당나라는 그보다 훨씬 적은 10만이 쳐들어왔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사서에 기록된 주요 참전 장군과 그들이 거느린 병사수를 역산해본 결과, 순수 전투병만도 50만에 이른다. 당군이 이처럼 대규모였기에 연개소문은 청야수성(淸野守城) 작전을 펼쳤던 것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고구려와 당의 무기, 전략전술, 각 부대의 움직임 등을 상세히 비교하며 고대 동아시아 최대의 결전이었던 세 차례 고-당 전쟁의 실상을 정확하고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55612127 |
---|---|
발행(출시)일자 | 2003년 10월 20일 |
쪽수 | 403쪽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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