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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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압도적 밀도감과 예측할 수 없는 파격적인 전개
『공허한 십자가』는 딸을 잃은 주인공 나카하라가 형사로부터 전부인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시작된다. 20년 전 두 사람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침입한 강도에게 딸 ‘마나미’가 살해당하자, 그들은 더 이상 부부로서의 삶을 살 수 없어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다. 그런데 나카하라의 전부인인 사요코마저 살해당하고만 것이다. 그녀를 죽였다고 자백한 사람은 일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백발이 무성하고 야윈 노인이다. 그의 범행 동기는 우발적 충동. 그리고 범인의 가족으로부터 ‘장인의 범행을 용서해달라’는 편지가 도착한다. 과연 죽어 마땅한 자들이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공허한 십자가』를 통해 속죄와 형벌에 대한 첨예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작가정보
1958년 오사카 출생.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그는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인정받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고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로 추리소설에 매력을 느낀 히가시노 게이고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전작을 섭렵. 읽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소설 습작을 하기에 이른다. 대학에서는 전기공학을 전공해 졸업 후에는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작가가 되어 학원물에서 추리, 서스펜스,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경계가 없는 다양한 작품으로 전 세계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1985년 에도가와란포상 수상작인 『방과 후』로 문단에 등장한 그는, 1999년 『비밀』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2006년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제134회 나오키상을,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주오코론문예상을, 2013년 『몽환화』로 제26회 시바타렌자부로상을, 2014년 『기도의 막이 내릴 때』로 제48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을 수상했다. 데뷔 후 5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써냈음에도 늘 새로운 소재, 치밀한 구성과 날카로운 문장으로 매 작품마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백조와 박쥐』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방황하는 칼날』 『녹나무의 파수꾼』 『백야행』 『가면 산장 살인 사건』 『비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가가 형사 시리즈〉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등이 있다.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일본어교육과에서 수학했다. KBS 아카데미 일본어 영상번역을 가르치면서, 외화 및 출판 번역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 『푸른 불꽃』 『신세계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 『방황하는 칼날』 『공허한 십자가』, 나쓰카와 소스케의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이케이도 준의 『한자와 나오키』,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 『즈우노메 인형』 등이 있다.
목차
- 공허한 십자가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사요코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사요코는 헤어진 아내의 이름이었다.
“네, 실은.”
형사는 기묘하게 한 박자 쉰 다음에 말을 이었다.
“어젯밤에 돌아가셨습니다.”
다음 순간, 나카하라는 숨을 훅 들이마셨다. 형사 입에서 나온 말이 그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한순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_25쪽
“무슨 소리예요? 내 딸이 살해당했다면서요? 왜 범인을 안 잡고 날 심문하는 겁니까?”
“범인을 잡고 싶다면 수사에 협조해주세요!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아사무라의 굵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분노와 슬픔과 억울함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피해자인 내가 왜. _38쪽
그는 증오의 대상을 노려보았다. 히루카와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체구가 작은 남자였다. 특별히 힘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눈꼬리가 약간 처진 얼굴은, 사람에 따라서는 착하고 소심하게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자가 딸을 죽였다고 생각하니, 나카하라에게는 교활하고 잔인한 얼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_67쪽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은 비단 딸만이 아니었다. 크고 작은 소중한 것을 수도 없이 잃어버렸다. 힘들게 손에 넣은 집도 재판 도중에 팔아버렸다. 그곳에 사는 것이 너무도 괴롭다고 아내가 말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인간관계도 어색해졌다. 배려 때문인지 어색함 때문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 _85쪽
“유족은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해 범인의 사형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 상상해보기 바란다. 가족이 살해당한 사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 범인이 죽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유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손에 넣으면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풀 수 있는가? (……)” _179~180쪽
차라리 듣지 말 것을……. 그자가 후회를 하든 말든, 반성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마음 한구석에서는 속죄하는 마음이 싹트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한 조각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유족은 여러 가지 형태로 수도 없이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_193쪽
“(……) 남편은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작은 생명들을 구하고 있어요. (……)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_394쪽
미안함은 참담함으로 변했다. 노인은 이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노인의 딸과 그 딸의 남편인 후미야는 앞으로 가해자의 가족으로서 많은 고통을 떠안게 된다.
그리고 비극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카하라라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비극은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
사오리는 빨랫줄을 다시 들었다. 법에 따라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면 자신의 손으로 결말을 짓는 수밖에 없다. _411~412쪽
“분명히 모순투성이군요.”
“인간이 완벽한 심판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그럼 그만 가보겠습니다.”
사야마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갔다.
사야마를 배웅한 뒤, 나카하라는 유리창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간다 료코가 상자를 화장터로 가져가는 참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사오리의 방에 수해 사진이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사진은 그녀에게 소중한 유골이 아닐까? _420~421쪽
출판사 서평
“딸이 살해당했다”
죽어 마땅한 자들이 있을까?
속죄와 형벌에 대한 첨예한 질문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나카하라와 그의 부인이었던 사요코. 20년 전, 사랑하는 외동딸 마나미가 강도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그 후 그들의 목표는 오직 범인의 사형뿐. 하지만 범행 동기가 우발적이었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목숨을 걸 각오까지 한 부부의 집념으로 범인은 결국 사형을 당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허탈감과 깨진 가정뿐이다. 부부는 서로 아픔만 껴안은 채 결국 이별을 선택한다.
실제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달라지기는커녕 상실감만 더해질 뿐이었다. 그때까지는 범인의 사형 판결을 받는다는 목적으로 살아왔지만, 그것이 이루어진 지금 무슨 목적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84~85쪽)
딸을 잃은 지 11년 후, 한 형사가 나카하라를 찾아온다. 전 부인 사요코가 길거리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그녀를 죽인 범인은 ‘사요코’의 가족은 물론 ‘나카하라’도 본 적 없는 노인이다. 이번에도 역시 범인은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나선다. 나카하라는 형사로부터 “길거리에서 한 여자를 살해하고 돈을 빼앗았다. 이 정도의 ‘가벼운 죄’로는 사형을 받지 않”(118쪽)을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또 한 번 무력감을 느낀다.
이 소설은 범인에게 ‘어떤 형벌’을 내려야 마땅한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는 표면에 불과하다. 이 소설은 ‘속죄’에 관한 이야기다. 나카하라는 이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이 반려동물 장례사로 생활하는 동안, 전부인 사요코가 잡지에 글을 쓰며 최근까지 도벽증 환자들을 취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피해자 유족의 감정에 대해선 무신경한 채 범죄자의 갱생에만 매달리고 있는 일본 사법제도에 강한 반감을 품고, 그런 자신의 생각을 알리기 위해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나카하라는 사요코의 족적을 따라가던 중 취재 상대였던 사오리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과연 ‘형벌’이 ‘속죄’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궁극적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394쪽)
흔히 죄를 지은 사람은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산다고 한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살인자를 그런 공허한 십자가로 묶어두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고.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속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기본정보
ISBN | 9788954448185 |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4월 15일 | ||
쪽수 | 428쪽 | ||
크기 |
137 * 196
* 33
mm
/ 568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虛ろな十字架/東野圭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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