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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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나’(박태이)는 친구 ‘재호’가 학교의 불량 서클인 ‘이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어느 날, 할아버지 서재에서 우연히 읽게 된 기록에서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주는 강력한 존재를 불러내는 놀이를 알게 된 나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 이 놀이를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놀이에는 절대적인 규칙이 하나 있다. 아홉 소리나무를 깨워 불러낸 ‘그것’의 질문에 절대 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 물음에 답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를 내어주고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는 것. 할아버지의 또 다른 기록을 발견하게 된 나는 자신을 빼앗겨버린 친구들을 구하고, 이 놀이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서는데…….
- 2015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 수상
작가정보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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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그것은 남자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입을 벌렸다. 그것의 길쭉한 손가락들이 집게처럼 남자의 혀를 위아래로 찍듯이 집고서 쑥 잡아당겼다. 남자의 혀가 순식간에 찢겨 나오며 입안에 피가 찰박찰박 고였다. 고통 때문에 남자가 경련을 일으켰다.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린 피가 흙바닥에 고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스며들어 흔적도 남지 않았다. _12쪽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것을 보았다. 나와 똑같이 생긴 그것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온몸의 피가 증발한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것은 더 이상 내게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내 얼굴을 한 그것이 물었다.
―내가 누구야? (……)
“모…… 몰라.”
―아니, 넌 알고 있어. 말해봐, 내가 누구야?
“알 게 뭐야, 내 흉내를 내봐야 넌 내가 아니야.”
―하지만 난 너와 얼굴이 똑같지.
“네가 내 얼굴을 훔친 거잖아.”
그것이 키득거리며 턱을 들었다. 쭉 뻗어 올라간 그것의 목에 핏줄처럼 보이는 것들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피부색이 짙어지면서 벌거벗은 상반신 전체에 기묘한 형태의 결이 생겼다. _22쪽
나는 그것이 누군가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곤충의 날개처럼 가느다란 그물 무늬로 뒤덮인 피부, 어쩌면 무늬가 아니라 결인 것 같기도 했다. 암청색, 황금색, 적갈색, 흑갈색, 황갈색, 황토색…… 무표정한 그 얼굴의 피부색은 시시각각 변했다. 눈썹은 없고 이마뼈가 도드라졌다. 움푹 팬 고랑처럼 깊고 긴 눈구멍 속에 눈동자가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깊이 모를 어둠뿐. _66쪽
조명이 꺼지고 박수가 터져 나오고 다시 조명이 켜졌다. 잠깐 동안 무대는 텅 빈 채였다. 이윽고 배우들이 차례로 무대 위에 등장해 인사했다. 하지만 용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주연배우가 무대 인사에 나오지 않자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 설마……?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저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게 뭔가. 아니다. 무대 옆에도 스태프가 있었다. 관객과 스태프 모두 합쳐 6백여 명이 지켜보는 중에 어찌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가 있단 말인다. _107쪽
머리 나무의 소리가 울리자 다른 소리나무들도 기다렸다는 듯 튀어 올랐다. 죽어 있던 나무들의 무미건조한 소리가 머리 나무의 소리를 통해 살아 숨 쉬는 소리로 바뀌었다. 소리는 텅 빈 공간에 잠겨 있던 무언가를 퍼 올려 사방에 흩뿌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엔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을 자기도 알지 못해 꺼내 보려는 욕구가 있었다. 두드릴 때마다 깊은 심지 속에 박혀 있던 단단한 응어리들이 깨지며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_116~117쪽
두 개의 검은 발이 슬그머니 벌어졌다. 그 사이로 또 하나의 발이 고개를 내밀었다. 세 개의 발이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것을 본 모두의 머리끝이 곤두섰다. 아홉 번째 소리나무가 와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비가 저토록 세찬 소리를 뿌리며 쏟아지는데 우리는 고요의 한가운데 있었다. _233~234쪽
또다시 천장과 바닥에서 소리나무들의 발 구르는 소리가 사납게 지나갔다. 연서가 울부짖으며 창문을 가리켰다. 돌아보니 기괴한 얼굴들이 비닐 창을 짓누르며 다투어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일그러진 가면 같은 얼굴들은 기어이 비닐을 찢고 창을 통과했다.
벌거벗은 어깨가 빠져나왔다. 암갈색의 거무스름하고 매끄러운 피부, 갈퀴처럼 휜 단단한 손가락들이 창틀과 벽을 타고 덩굴처럼 뻗어 내렸다. 둥그스름한 검은 하체가 미끄러지듯이 흘러 들어오면서 주름이 잡혔다. 그 사이로 앞코가 뾰족하게 들린 세 개의 발끝이 보였다. _236쪽
“여기 두 여자 중 하나는 여왕이고 나머지 하나는 여왕의 그림자요. 일명 허수아비라고 하지. 그래서 이 두 여자가 한 몸인 것처럼 포개져 있는 거요. 하나이면서 둘인 존재이기 때문에. 이 두 여자는 서로 얽혀 있는 등나무요. 놀이는 이 등나무 여왕으로부터 시작되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셋이 아홉이 되는 놀이, 사람과 나무가 벌이는 자리 뺏기 놀이.” _285~286쪽
종목은 힘겹게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우물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창아의 하얀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종목은 아득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창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뒤통수를 가린 머리카락을 갈랐다. 목덜미의 얼룩점이 드러났다. 얼룩점이 연서의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안녕, 종목아! 오랜만이야. _311쪽
위험한 액체가 지하의 나무 계단 아홉 개와 나무 벽을 타고 그 안쪽까지 흘러내려 깊숙이 적시는 동안, 종목은 다른 휘발유 통의 뚜껑을 열고 작업장 여기저기에 흘렸다. 이윽고 판자문 앞으로 다시 돌아온 그가 말했다.
“네가 태이는 홀릴 수 있어도 나한텐 어림없어. 너와 함께 여길 태워버릴 거야. 그것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더 남아 있지 않도록 말이야.” _345쪽
출판사 서평
“이 놀이는 아주 위험한 거야.
널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도 있거든.“
‘얼굴’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반드시 ‘나’를 지켜야 한다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아홉 소리나무가 깨어나면
당신의 얼굴을 한 ‘그것’이 찾아온다!
장편소설 『고리골』로 제2회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던 조선희 소설가가 선보이는 신작 미스터리 소설!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는 ‘소리나무’와 관련된 구전 설화에서 차용해온 기묘한 소재와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자극하는 뛰어난 심리묘사로 2015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하는 위험천만하고 비밀스러운 놀이가 펼쳐진다. 아홉 개의 소리나무를 두드려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인 ‘그것’을 불러내는 놀이. 15년 전, 이 이상한 놀이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실종되면서 놀이에 감춰져 있던 무서운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놀이에서 이기지 못하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는 것.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우리를 근원적 공포로 몰아넣는다.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순간,
비밀스러운 놀이가 시작된다!
고등학교 시절, ‘나’(박태이)는 친구 ‘재호’가 학교의 불량 서클인 ‘이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어느 날, 할아버지 서재에서 우연히 읽게 된 기록에서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주는 강력한 존재를 불러내는 놀이를 알게 된 ‘나’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 이 놀이를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나’는 “이 놀이는 아주 위험한 거야. 불려 온 그것이 널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도 있거든”(72~73쪽) 하는 석수장이 김이알의 경고도 무시한 채, 친구들과 함께 아홉 개의 소리나무를 두드려 ‘그것’을 불러낸다. 마침내 불려 온 ‘그것’은 나를 대신해 ‘이빨들’에게 끔찍한 복수를 실행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날부터 놀이에 가담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실종되기 시작한다.
차량 안팎은 깨끗했고 파손된 부분이나 고장도 없었다. 미터기는 꺼져 있었고 승객은 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기는 했던 것 같았다. 조수석 밑에 운전자의 휴대전화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차량 주변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 크고 길쭉한 세 개의 눌림 자국. (……)
그 세 개의 눌림 자국은 도로를 가로질러 길 없는 산 쪽으로 향했다. 아스팔트 노면이 푹푹 팬 것을 보면 엄청난 무게를 지닌 무언가가 남긴 자국일 터였다. 세 개의 눌림 자국에 드러난 연속적인 규칙성은 마치 삼족(三足) 보행의 흔적 같았다. 그 자국은 산비탈을 오르는 도중 갑자기 끊겼다. _14쪽
지키지 않으면 결국엔 빼앗기고 만다!
인간의 원초적 공포를 자극하는 최고의 미스터리
아홉 소리나무를 두드려 불려낸 ‘그것’이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얼굴’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군가의 ‘얼굴’로, 누군가의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놀이를 계속해나가야 한다. 이 놀이에서 “그것은 불러낸 사람의 얼굴을 훔치고 그 자리를 빼앗는다. 둘 중 하나가 남을 때까지 그것은 질문을 하고 사람은 고통과 두려움에 쫓기다가 기어이 저 자신을 대답으로 내놓는다”(246쪽). 15년 전, 놀이에 가담했던 아이들이 그렇게 저 자신을 내어놓고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것처럼. 하지만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미스터리한 존재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아야 하며,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현실의 근원적 불안함을 직시하고 있다.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은 생을 다 살아내는 그날까지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내는 거야. 굴복하면 자기 자릴 빼앗기지. 그건 우리가 만든 규칙이 아니야. 우린 그저 그 빈자리에 들어갈 뿐.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오라버니는 이 놀이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어. 왜냐하면 오라버니는 우리 편이니까. 숨겨진 쪽!” _229쪽
[줄거리]
150년 이상 된 고가들이 모여 있는 전통 가옥촌 도동 마을로 진입하는 국도변 갓길에서 차량 문이 활짝 열린 빈 택시가 발견된다. 사고나 범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현장, 이상한 것이 있다면 차량 주변의 흙바닥에 찍힌 크고 길쭉한 세 개의 눌림 자국뿐.
실종자 수사 전담 형사 차강효는 사라진 운전자, 정국수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그와 관련된 인물들 중 이미 실종자가 여럿임을 알게 되고 이상함을 감지한다. 사라진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마을 출신의 친구들이라는 실마리를 따라 도동 마을로 찾아간 그는 15년 전에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듣게 된다.
그 시각, 15년 동안 도동 마을을 떠나 있었지만 마침내 ‘그것’에게 발각된 ‘나’(박태이)는 ‘이 놀이를 시작한 사람이, 이 놀이를 끝내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고향으로 향한다. 15년 전, ‘나’는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주는 강력한 존재를 불러내는 놀이에 대해 알게 된다. 집단 괴롭힘으로 죽임을 당한 친구의 복수를 위해 친구들과 함께 아홉 소리나무를 깨워 ‘그것’을 불러내는 의식을 행한다. 이 놀이에는 절대적인 규칙이 하나 있는데, 그렇게 불러낸 ‘그것’의 질문에 절대 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 물음에 답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를 내어주고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는 것. 할아버지의 또 다른 기록을 발견하게 된 ‘나’는 자신을 빼앗겨버린 친구들을 구하고, 이 놀이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다.
기본정보
ISBN | 9788954439169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11월 23일 |
쪽수 | 368쪽 |
크기 |
140 * 203
* 24
mm
/ 453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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