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 양명학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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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鄭寅普, 1893~1950
한학자이자 역사학자로, 호가 담원(?園)ㆍ위당(爲堂)이다. 어려서 강화학파의 학통을 이은 이건방(李建芳)의 제자로 학문의 기초를 쌓았으며,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첫 번째 부인의 사망으로 귀국한 뒤 연희전문 교수로 재직하며 국학 연구와 언론 활동에 종사했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과 정약용(丁若鏞)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등을 교열해 간행하고, 우리 고서(古書)에 대한 해제를 신문에 연재했으며, 『양명학연론』과 『오천 년간 조선의 얼』 등도 신문에 발표했다. 해방 후 국학대학장과 제1공화국 초대 감찰위원장을 지냈으며, 6ㆍ25 때 납북되어 사망했다. 저서로는 『조선사 연구』(1946, 『오천 년간 조선의 얼』 개제)와 『담원시조집(?園時調集)』(1948)이 생전에 출간됐고, 『담원국학산고(?園國學散藁)』(1955)와 『담원문록(?園文錄)』(1967, 번역본)이 그가 납북돼 사망한 뒤에 나왔으며, 1983년에는 담원정인보전집이 연세대출판부에서 출간됐다.
목차
- 책머리에
1. 이 글을 쓰는 연유
2.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3. 왕양명의 생애
4. 「대학문」과 「발본색원론」
5. 양명학의 계승자들
6. 조선의 양명학파
7. 글을 마치며
[부록] 양명학연론 교주(校注)
참고 자료 『양명학연론』 및 그 재출간본들의 오류 연구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그러니 시대가 지나고 사회 분위기가 흐트러짐에 따라 그 학문은 ‘빈껍데기 학문’밖에 남지 않았고, 그 행동은 ‘거짓된 행동’뿐이었다. ‘참마음’의 입장에서 보면 그 학문은 빈껍데기이니 개인적인 계산으로 보아 꽉 찬 것이라는 얘기일 뿐이고, ‘참학문’의 입장에서 보면 그 행동은 거짓된 것이니 위선적인 습속으로 보아 꽉 찬 것이라는 얘기일 뿐이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조선 사람들의 참마음과 참행동은 학문 영역 이외에 구차스럽게 간간이 남아 있었을 뿐이며, 온 세상에 가득 찬 것은 오직 거짓된 행동과 빈껍데기 학문뿐이었다. (15쪽)
사람이란 예나 이제나 자신과 자기 집안을 중심으로 삼는 이기심에 의해서 부림을 당하는 존재다. 참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해 제지하거나 절제하지 않은 채 오직 ‘남의 말’에만 의지한다면, 그 ‘남의 말’은 언제나 밖에서만 빙빙 맴도는 것이니 참마음을 만만히 보는 그 속에는 이기심이 쉽사리 들어서게 되고 그럴수록 참마음에 대한 경시는 더해지며, 참마음에 비추어 살피지 않은 남의 말이기 때문에 어느덧 이기심의 이용 대상으로 변하기까지 한다. (18쪽)
옛사람들의 책을 보면, ‘우리 대명(我大明)’이라고 한 것이 있다. 허어, 대명이 우리 대명이란 말인가.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수(隋)나라 군대를 섬멸했다고 상국(上國)을 범한 죄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허어, 그대로 두 번 절하고 죽음을 맞이했으면 기분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인가. 어린애는 고사하고 바보천치에게 물어봐도 나와 남, 내 나라와 적을 구별하지 못할 리 없건만, 학문이 본심의 ‘애틋함’에서 떠났으니 본심 아닌 말, 본심 아닌 일을 해도 일시적으로 울리는 ‘본심 아닌 헛소리’를 추종하고 부르짖는 것을 도리어 빛나는 일로 안 것이다. (42쪽)
그러므로 별달리 양지에 대해서 연구할 생각은 하지 말고, 자신이 홀로 자신만 아는 가운데 스스로 속이지 못할 곳이 있다면, 그것이 분명하다면 양지로 생각하라. 이것을 깨달았다고 해도 그대로 바로잡지 않으면 점점 빛이 흐려진다. 속이려는 그‘것’이 근절될수록 속일 수 없는 그 자신의 본체가 점점 더 뚜렷해진다. 속이려는 ‘것’을 뽑아내고 속일 수 없는 그 자신의 본체를 완성하는 것을 ‘치지’라고 한다. (46쪽)
아들을 위하는 어머니의 그 마음에 온갖 보육의 방법이 샅샅이 미리부터 들어 있다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함에 있어서 정신을 집중한다면 이 마음에 한순간의 쉼도 없다. 포대기의 지푸라기 하나라도 혹 껄끄럽지 않을까. 자다가 굴러가 맨바닥에 몸이 닿지 않을까. 우는 소리만 들으면 저절로 걸음이 빨라지고 병나려는 그 기미도 어머니가 가장 잘 알 때가 많다. (108쪽)
이렇게 말하면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도 있을까? 혹시 있다면 이는 특수한 일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그 사람도 자기의 사사로운 꾀가 단단히 봉하지 않은 어느 곳으로부터 갑자기 외부의 사물을 접할 때 상관도 없는 남의 일에 짠한 것이 스스로 당한 것 같은 때가 있을 것이다. (112쪽)
큰 종기를 앓는 사람은 보약을 먹으면 보약이 결국 피고름만 돕는다는 것처럼, 세상에 나오는 것 쳐놓고는 옳은 것이건 그른 것이건 모두 개인적인 속셈을 키우는 것이다. 어떠한 뿌리가 있다면 그 뿌리가 반석 같을 것이요, 어떠한 샘이 있다면 그 샘이 장강이나 황하와 같을 것이다. 그렇듯 근원이 깊고 크지 않다면 어찌 저렇듯이 천고를 집어삼킬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이 뿌리를 뽑지 않고 이 샘을 막지 않는다면 이른바 정치와 교화도 없을 것이며 이른바 학문도 없을 것이다. (122쪽)
이제 가까운 예를 들어 보면, 친구가 잘한 것을 들으면 겉으로는 좋은 체하면서도 한 점 질투가 가만히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이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내가 이렇게 천박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천박함을 스스로 말하는 속에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좀 우월해지려 하는 속셈이 있다. 간혹 이것까지 다 말해 조금도 숨김이 없는 듯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까지 말하는 것으로 더 우월하자는 속셈이 또 있다. (123쪽)
양명이 일생 동안 역설한 내용과 그 후학들이 힘껏 주장하고 애써 지킨 내용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가릴 수 없는 선천적인 이 지식에 의해 조금도 유감이 없게 하자는 것뿐이다. 이러한 것은 근본적으로 지적 활동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고 해도 이 지식은 없으란 법이 없는 것이지만, 또한 아무리 수많은 책을 읽었더라도 이 지식에 의지할 줄을 모른다면 모든 것이 빈껍데기일 뿐이다. (211~212쪽)
이 지식이란 매우 엄격해서 추호의 구차함도 없으므로, 어떠한 재주나 계교로도 이를 속이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나 혼자만이 아는 것이므로 가장 은미해서 소리와 냄새도 없는 곳이니 마음조차도 비교될 수는 없지만, 나 혼자만은 아는 것이므로 가장 절실해 목숨이 맡겨져 있는 곳이다. 이것을 제쳐 두고 인간의 옳고 그름에 대한 표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212쪽)
그러므로 누구나 내 본밑 마음의 천부적인 지식을 찾으려면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곳을 조용히 살펴보라.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그곳의 진실한 모습을 찾으려면 민중과 감통하는지 아니면 간격이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해 보라. 이 밝음은 어디에서든지 찰나 동안이라도 멈추는 일이 없으므로, 뜻 있는 사람들이 한번 깊고 멀리 생각해 보면 결코 대충대충 하고 말 일이 아니다. (213쪽)
출판사 서평
국난 극복을 위한 정인보의 외침
정인보가 겨냥했던 이 책의 1차적인 대상은 일반 대중이다. 그가 일제 치하인 1930년대에 이 글을 『동아일보』에 연재한 이유다. 그는 엉망이 되어 버린 사회가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지침으로 양명학의 창시자인 왕수인(호 : 양명)의 가르침을 식민 치하 조선 민중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왕수인이 제시한 양명학의 핵심은 주자학처럼 고도로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양심에 따라 살라는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자학에 맞선 ‘학문’이긴 했지만 복잡한 이론 탐구가 필요 없는 간단명료한 실천 지침이었다. 양명학에서 제시하는 간단한 원리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더 나은 사회를 기약할 수 있다는, 식민 치하 지식인 나름의 처방이었다.
지행합일, 아는 것은 느끼고 통하는 것
왕수인과 그의 생각을 이어받은 정인보가 주자학을 비판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주자학의 핵심적 방법론인 ‘즉물궁리(卽物窮理)’(모든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탐구한다)가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사변적 작업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얻은 지식이 실천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명학에서는 첫 번째 문제를 복잡한 탐구가 아니라 ‘양지(良知)’, 즉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두 번째 문제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즉 지식과 실천이 별개가 아니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학문’에 대한 이런 양명학의 관점은 이 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정인보가 글을 연재하던 시점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양명학연론』은 또 하나의 의미를 키워갔다. 연구자들을 위한 양명학 연구 자료로서의 의미이다. 양명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명학 입문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양명학의 기본 개념, 창시자 왕수인과 그 후계자들에 대한 소개, 그가 양명학의 핵심 논문으로 본 두 논문의 번역 및 해설, 여기에 한국(조선)의 양명학사까지 망라해서 길지 않은 글 속에 양명학의 기본 내용들을 짜임새 있게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명학연론』은 간행본들이 절판된 뒤에도 ‘제본복사’를 통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읽혔다. 특히 한국 양명학사 부분은 정인보가 인용한 조선 양명학자의 글들을 연구자들이 자주 인용할 정도로 중요한 지침서 역할을 했다.
현대어본으로 다시 탄생한 양명학연론
그러나 책의 가치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잊힌 고전’이 되어 갔다. 출판이 지속되어야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것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당대 일급 한학자 정인보가 어려운 한자어를 한껏 구사해 쓴 글이어서 시대가 흘러 한자가 낯선 세대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난해한 글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신문 연재 이후 저자의 교정에 의한 재출간이 이루어지지 않아 텍스트가 엉망인 채 방치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옛날 신문에서 오탈자가 많은 것은 당연했고, 당시에도 글이 어려웠으니 더욱 엉망이었다. 심지어 정인보의 서술과 왕수인의 글 인용 구분이 명확치 않아, 후대의 재출간본에서 필자를 뒤바꾼 부분도 수두룩했다. 그것을 바로잡아 재출간하기 전 6·25전쟁이 발발했고, 정인보는 납북되어 사망했다. 잡지 『사상계』에 다시 수록하고, 다른 글들과 묶어 단행본으로 펴내는 등 몇 차례 재출간됐으나, 엉망인 텍스트의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일부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옛날 어투가 점점 낯설어져 새로운 오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책은 『양명학연론』의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다. 이 책은 석학이자 우리나라에 희귀한 양명학자 계보의 끝자락을 지켰던 위당 정인보가 남긴 명저를 인멸 위기에서 건져내, 묵은 때를 말끔하게 벗겨내고 다시 대중 앞에 내놓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52243089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7월 23일 |
쪽수 | 476쪽 |
크기 |
152 * 225
* 33
mm
/ 687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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