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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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1956년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림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를 거쳐 1988년 8월부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기록관장(2001~2005, 2012)과 박물관장(2007~2011)을 역임했고, 미국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1997~1998),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2006), 영국 케임브리지대학(2013)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학부 시절부터 발해사를 연구하여 다수의 논저를 발표했고, 근래에는 생활사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목차
- 이 책을 쓰기까지
머리말
제1장 취난시설의 종류와 어원
제2장 세계의 온돌 발상지들
제3장 부뚜막과 연도부뚜막
제4장 극동 온돌의 시작, 북옥저
제5장 북방의 온돌 수용, 초기철기 ~ 고구려
제6장 남방의 온돌 수용, 초기철기 ~ 삼국
제7장 북방 온돌의 발달, 발해
제8장 남방 온돌의 변화, 통일신라
제9장 외부로의 확산
제10장 온돌의 전환, 고려
제11장 온돌의 만개, 조선
제12장 온돌 확산의 지역성과 계층성
맺음말: 온돌사 갈무리
온돌사 참고문헌
그림 출처
찾아보기
abstract
책 속으로
2006년에 온돌사 책을 출간한 직후에 영국의 유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서양의 중국계 연구자가 쓴 온돌사 논문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온돌이 중원에서 발생하여 만주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한반도 온돌과는 무관하다고 하였다. 논문을 보내준 이유를 알 만하였다. 이것도 온돌사를 제대로 밝혀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되었다. (5쪽)
그러면 ‘구들’은 무슨 의미인가? 『주해천자문』(1752)에서 보듯이 구들을 때로는 ‘구돌’이라 표기한 데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구돌은 데워진 구들장을 의미하는 ‘구운 돌’에서 유래한 것이고, 구돌은 다시 구들로 바뀌었을 것이다. 구들은 고어로 ‘구?’인데,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돌을 ‘?’이라 하였으므로 둘 다 ㅎ 말음 체언으로 서로 통한다. 또 ‘구운 돌’이란 말은 한자어인 ‘온돌’과도 연관된다. 현재로서는 한글 단어인 구들과 한자어인 온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오래되었는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구들이 원래 서민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구들이 먼저 사용되다가 나중에 한자화되어 온돌이 등장하였을지 모른다. 이럴 경우에 한자로 온석(溫石)이라 쓰지 않고 ‘돌’을 음차하면서 돌(?)로 썼을 가능성도 있다. (34쪽)
그러면 흉노의 쪽구들은 독자적인 창안인지, 아니면 동쪽의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영위된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의 영향인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브로쟌스키 데.엘.(Бродянский Д.Л.)은 이볼가 성터의 쪽구들은 동방의 크로우노프카 문화로부터 전파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동방의 장인들이 자바이칼 지방으로 흘러들어가서 쪽구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크라딘 엔.엔.(Крадин Н.Н.)도 흉노시대에 바이칼 연안에서만 사용되던 쪽구들은 극동에서 수입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지만 두 문화권 사이에 지리적 간극이 크고 그 중간 지대에서 쪽구들이 발견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양자는 각각 독자적으로 고안된 것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후술하다시피 북옥저가 읍루에 밀리면서 쪽구들이 남쪽으로 전파된 점을 감안하면, 북방을 경유하여 흉노로 전파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48-49쪽)
종전에는 선사시대 이래 한반도에의 문화 전파는 주로 서해안을 따라 중국 요령성으로부터 들어오는 경로에 집중적으로 주목하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러시아 연해주에 대한 발굴 정보가 알려지게 되면서, 2000년대부터 동해안을 따라 북쪽에서 내려오는 경로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중부의 중도식 무문토기문화(경질무문 토기문화)의 원류를 연해주의 크로우노프카문화에서 찾게 된 것도 그 일환이다. 다만 함경도와 강원도 북부의 고고 자료가 매우 빈약하여 그 전파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110쪽)
연도부뚜막은 쪽구들과 달리 난방과 조리, 조명의 기능을 일원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온돌의 역사에서 보면 오히려 구조적으로 퇴보한 것이다. 삼국시대의 말과 더불어 사라지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171쪽)
춘천 송암동 10호 주거지는 T자형과 ㄱ자형의 결합 양상을 띠고 있어 특이하다. 아궁이가 구들 시작 지점이 아니라 꺾이는 지점 가까이에 달려 있다. 송암동의 다른 쪽구들이 석제인 데 비해 이것은 점토제라는 점에서도 남다르다. 홍천 동막리 9호도 ‘열린고래’가 ㄱ자형으로 꺾여 있어서 T자형과 ㄱ자형이 결합된 모습을 띠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시흥 오이도 C-5호의 하단 구들도 이런 구조이고, 제10장에서 소개하는 춘천 우두동 711-1번지의 5호도 역시 그러하다. 정확히는 F자형 평면을 띠고 있지만, 사례가 많지 않아서 T자형으로 분류하였다. (265-266쪽)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수혈주거지와 지상건물지로 나누어 온돌의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수혈주거지에서는 구들 평면이 기본형인 ㄱ자형이 쇠퇴하고 아궁이와 굴뚝이 마주 보는 1자형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면서 독특한 구들로 이루어진 呂(여)자형 평면의 주거지가 새로 등장한다. 이렇게 수혈주거지에서 나름대로의 쪽구들 문화가 전개되었다. (369쪽)
마루의 도입은 생활 방식에서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마루방에서는 일반적으로 신을 벗고 좌식 생활을 주로 하게 되므로, 토방이나 전돌방에서 신을 신고 입식 생활을 하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물론 조선시대 기록화를 보면 마루에서도 신을 신고 입식으로 행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또 마루 위에 평상이나 침상을 놓고 생활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좌식으로의 완전한 전환은 온돌에 와서야 가능했다. (444쪽)
마루와 온돌이 고려 때에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생활방식도 변화를 겪었다. 우선 좌식 생활의 일상화가 이루어졌다. 마루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는지는 불명이나 대체로 고려시대에 온돌과 결합하여 한옥의 정형을 이루었는데, 이에 따라 이전에 맨바닥이나 전돌바닥에서 입식으로 생활하던 것이 좌식으로 일변하게 되었다. 식사도 앉아서 하여 의자는 사라지고 식탁은 다리가 짧은 소반으로 변모하였다. 가구 높이도 낮아지게 되고, 장막이나 병풍, 깔개와 같은 겨울철 방한도구의 쓰임새도 줄어들었다. (509-510쪽)
출판사 서평
‘최초의 온돌 통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가 17년에 걸친 작업 끝에 내놓은 ‘최초의 온돌 통사’. 문헌 기록과 고고 자료를 활용하여 고대 북옥저부터 근대 이전 조선시대까지 2천 년 이상에 걸친 온돌의 전체 역사를 처음으로 체계화하였다.
온돌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이다.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이제는 우리 문화의 특징을 말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수많은 전통 문화들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쇠퇴하거나 소멸했다. 그러나 온돌은 서양식 아파트가 일반화된 현재도 온수순환식 난방 형태로 살아남았고, 찜질방 등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내며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8년 5월 ‘온돌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된 점 역시 온돌이 우리 고유의 생활양식임을 잘 보여준다.
대다수의 문화가 중국에서 들어와 상층에 자리 잡은 뒤에 하층의 문화에 침투하여 전통문화로 정착하였지만, 온돌은 하층 문화로 자생하여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발해와 조선에서는 마침내 최상층까지 올라간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귀족 문화가 아니라 서민 문화로 출발하였으니, 하층 문화가 한민족 전체의 문화로 확대된 희귀한 사례인 것이다. 이것이 온돌문화의 핵심적인 특징이며, 그런 점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생활문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체계적인 온돌 연구가 없었다. 온돌사 연구는 빈약한 문헌 자료를 보완해주는 고고학 자료에 크게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 고고학계에서 본격적인 온돌 연구가 시작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70년대에는 구들을 무덤으로 오인할 정도로 온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온돌 연구는 1990년대 ‘주거지 고고학’, ‘취락 고고학’이 정립되고, 200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취사와 난방 시설을 의식하며 발굴하기 유형 분류가 가능한 단계에 들어섰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한국의 고유 문화로서 온돌의 기원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자가 집필 동기에서 밝혔듯이, 온돌이 화북에서 발생해 전해졌다는 중국 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마땅한 반론이 없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온돌은 극동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하여 발전한 것이며, 중국의 항(?)을 비롯한 세계의 다른 난방 시설과는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이를 방대한 자료들을 근거로 ‘온돌사’의 면에서 밝힌 것도 이 책의 의의이다.
후속 온돌사 연구 면에서 이 책의 주요한 의미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여 한 권으로 엮어냈다는 점이다. 목록만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수많은 발굴 보고서와 문헌 자료의 내용을 46개의 표로 정리하였고,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포함한 총 361장의 사진 자료를 전면 컬러 인쇄로 담아냈다. 후속 연구를 위한 충실한 자료집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단순한 자료집에 그치지 않는 ‘온돌 통사’로서, 기계적인 정리에 그치지 않고 역사의 흐름에 대한 거시적인 시야를 담아냈다. ‘온돌’의 정의, 즉 세계의 다른 난방시설과 구별되는 온돌의 특징을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유럽의 자료를 종합하여 밝혀냈다. 또한 지금까지 연구자마다 제각각 사용해온 노지, 화덕, 부뚜막, 구들 등 다양한 취난시설과 관련한 용어를 정의하여 제시했다. 온돌의 시대적 변천상을 구들의 평면 구조와 고래 수라는 두 가지 요소를 통해 제시한 점 역시 이 책의 주요한 성과다.
기본정보
ISBN | 9788952120588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9월 17일 |
쪽수 | 596쪽 |
크기 |
171 * 245
* 36
mm
/ 1310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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