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체로네: 회화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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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야콥 부르크하르트
저자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hkardt는 1818년 바젤에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97년에 사망한 스위스의 저명한 미술사가이자 문화사학자. 처음에는 신학을 공부하다 1839년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베를린과 본에서 1894년까지 랑케Leopold von Ranke, 그림Jacob Grimm, 쿠글러Franz Kugler 등에게서 배움. 1843년에서 1855년까지 바젤 대학교에서 강의한 후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서 역사학과 미술사를 가르침. 1858년 다시 바젤로 돌아와 1893년 제자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lfflin이 후임이 되기까지 교수직을 수행함. 주요 저술로는 본서 외에도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Die Zeit Konstantins des Grossen』(1853),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1860),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역사Geschichte der Renaissance in Italien』(1867) 등과 사후에 출판된 『루벤스에 대한 회상Erinnerungen aus Rubens』(1898), 『이탈리아 미술에 대한 논고Beitr?ge zur Kunstgeschichte von Italien』(1898) 등이 있음.
번역 박지형
역자 박지형朴芝馨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 대학 미술사학과 마기스터Magister 학위 취득함. 역서로 하인리히 뵐플린의 『미술사의 기초개념』, 에른스트 카시러의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가 있음.
목차
- 서언 v
베를린에 계시는 쿠글러Kugler 선생에게 ix
고대 회화 1
초기 기독교 회화와 비잔틴 회화 17
로마네스크 회화 39
고딕 회화 55
15세기 회화 125
구 네덜란드의 회화와 구 독일 회화 217
스테인드글라스 235
16세기 회화 241
매너리즘 451
근대 회화 467
역자 후기 551
<치체로네> 연구문헌 557
찾아보기 561
책 속으로
그러나 이러한 판단이 적용되지 않는 한 탁월한 예외가 있으니, 바로 고대 모자이크의 백미라 할 만한 ‘알렉산더의 전투’라고 불리는 작품이 그것이다.이 작품은 그리스, 또는 로마인과 야만족 사이의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나는 근래에 이 작품을 둘러싸고 떠도는 과도한 열광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림의 내용을 제대로 해석하여, 이를테면 전차 위의 인물을 한사코 야만족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11쪽
소위 검은 성모라는 개념은 독립된 유형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세월이 지나 갈색조를 띠게 된 마돈나 상을 분별없이 따라한 데서 유래한 개념이다. 산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파울 5세 예배소)의 그림은 원래는(9세기경) 분명 밝게 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 제작된 모작은 그것이 세월의 풍상으로 어두워진 뒤에 그려진 까닭에 짙은 갈색조의 피부색을 띠고 있다.34쪽
로마의 작품들이 비잔틴주의를 거의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데 반해 나폴리에서는 아직 건재하였다. 산타 레스티투타S. Restituta(좌측 예배소)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두 성인과 함께 있는 마돈나’는 이 양식을(1300년경) 치마부에와 흡사한 세련된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다.54쪽
미술사 전체를 통해 잊지 못할 위대한 몇 세기 동안 가장 위대했던 거장들 중 상당수가 생애의 만년에, 빨라야 오십을 넘겨 대부분의 작품과 걸작을 남겼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서 ‘최후의 만찬’을 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오십에 이르러서였으며, 지오반니 벨리니의 최고 걸작들은 그의 나이 팔십에 이르러 제작되었다. 120쪽
과감하게도 페루지노는 산 세베로 성당에 그려진 라파엘로의 프레스코 아래에 ― 1521년 라파엘로가 죽은 이후 ― 성인들을 그려 넣었다. 산 프란체스코 델 몬테 성당 안쪽 예배소에 그린 프레스코 ‘목동의 경배’는 상당히 아름다운 작품임에 틀림없다.(역주: 현재 움브리아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치타 델라 피에베 근처의 산타 마리아 데 비안키S. Maria de’bianchi 성당에 있는 ‘삼왕의 경배’ 역시 아름다운 작품이다. 198쪽
브뤼헬(大)Breughel d. ?의 것들로는 나폴리 박물관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캔버스에 그린 두 점의 템페라화가 볼 만한데, 그중 하나는 ‘세속’에 기만당하는 참회자의 우의를 묘사한 것으로 1565년경 제작되었으며, 다른 하나는 맹인의 비유를 묘사하고 있다. 226쪽
미켈란젤로는 전성기에 이르자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소 천정 그림에 착수하였다.(1508-1511년경. 이 기간 중 순전히 혼자 몰두한 시간은 22개월 정도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가장 밝게 보인다.) 그의 과업은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장면과 인물들을 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이라는 관점에서 그려 내는 것이었다. 그는 이 주제를 네 부분으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다. 일련의 일화들, 역사적인 개별 인물들, 정적인 자세의 인물군, 건축적 요소로서의 역할을 하는 인물상들이 그것이다. 그는 단순한 관념적 공간이 아닌 원근법에 근거하여 일련의 일화 등을 천정의 중앙면에 배치시켰다.226-227쪽
피렌체 회화는 레오나르도나 미켈란젤로에게서 아직 미처 만개하지 않았다. 15세기 동안 이 신성한 예술의 도시가 발흥시켜 이루어 낸 무한한 생명력은 아주 독특하고 각각 독자적이었던 다른 두 거장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중 한 사람은 원래 코지모 로셀리Cosimo Rosselli의 제자였던 프라 바르톨롬메오Fra Bartolommeo(본명은 바치오 델라 포르타Baccio della Porta, 1469-1517)이다. 273-274쪽
신화적인 묘사가 이상적 양식이 아닌 사실적 양식을 채택할 경우에는 그 내용이 영웅적인 것일수록 조화롭지 못하며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것에 가까울수록 더 조화롭다. 티치아노는 대부분의 동시대 화가들에 비해 이와 같은 사실을 명확히 깨달은 듯하다. 416쪽
면밀히 관찰해 보면 이탈리아에 남아 있는 당대의 작품들 중 색채 면에서 걸작에 해당하는 몇몇 작품들이 루벤스와 무리요의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탈리아에 남아 있는 루벤스의 흔적은 그의 초기 시절, 즉 그의 이탈리아 체류기로 소급된다. 로마 키에자 누오바 내진부의 대작 세 점(천사들에 둘러싸인 마돈나 상과 각각 세 명의 성인들이 등장하는 두 점의 거대한 그림)은 그의 독특한 인물 묘사와 색채 감각이 그의 주변을 에워싼 온갖 종류의 양식에 어떤 방식으로 대처했는지 보여 준다. 490쪽
그러나 영광의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돔이나 천정화에 제격인 주제다. 코레지오가 제시한 무모하고도 따라잡기 힘든 선례가 처음 한동안은 진지하게 수용되었다. 피아첸자 대성당 내진부 벽감 앞 아치를 장식하고 있는 로도비코 카라치의 프레스코 같은 작품들은 실로 무시할 수 없는 작품이다. 책을 들고서 꽃을 흩뿌리
출판사 서평
서양 미술사 전공자와 이탈리아 미술에 관심 있는 애호가들에게 광범위한 조망과 세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양 미술사 분야의 고전이자 필독서
이 책은 지은이의 1838년, 1846년, 1847년에서 1848년, 그리고 1853년에서 1854년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의 결과물이자 최초의 미술사 대작으로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빼고는 19세기 이탈리아 애호가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저술이다. 미술에 대한 애정과 개인적 취향을 거침없이 토로하는 기백과 더불어 당시의 미술사 연구수준을 가늠케 하는 세부적 언급은 그 자체로 하나의 놀라운 기념물이다. 이탈리아 반도에 소재한 작품들을 고대의 것에서 17세기의 것에 이르기까지 양식별, 지역별로, 또 불멸의 천재급 장인의 작품뿐 아니라 중간 정도의 재능, 더 나아가 저급한 장인의 것에 이르기까지 두루 소개하고 있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탈리아 미술의 전반적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출판사 서평
서구의 교양인들이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필수적으로 참고한 여행안내서
19세기말 20세기 초 유럽의 귀족과 교양인, 지식인들이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면 반드시 한 번 읽어 보거나 지니고 다녔던 책으로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와 부르크하르트의 『치체로네』를 꼽을 수 있다. 지금도 서구의 지식인이 이탈리아를 여행갈 때면 『치체로네』를 한번 훑어보고 여행루트를 정하여 답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는 유적지나 박물관. 미술관등을 여행할 때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경험하게 된다.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면 볼 수 있는 안목도 제한되고 무엇을 어떻게 선별하여 보아야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이탈리아 회화에 대한 제대로된 식견을 열어보이는 책
바로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여 이 책은 전공자와 비전공자 모두에게 이탈리아 미술의 시대적 변천상과 지역적 전통, 각 화파 간의 관계와 개별 장인들의 계통에 관한 정통적인 정보를 대가적 시점에서 펼쳐 보이고 있다. 즉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작가들과 작품들 앞에서 지쳐 헤매는 이탈리아 여행자들에게 깊이 있는 지침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작품을 보고자 하는 의욕과 호기심을 자극하여 여행에 활력을 보태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이루어진 <치체로네> 회화편 완역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치체로네>에 대해 여기저기 짧게 언급되었을 뿐 어설픈 번역마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미술사의 일차 문헌을 확보하고 제대로 소개하는 것이 미술사학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체계적인 연구를 이루어 나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본다면 <치체로네> 회화편의 완역은 또 하나의 시금석을 제시하는 셈이다.
역자 후기
이 번역서는 스위스의 걸출한 역사학자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저서 『치체로네Der Cicerone』의 회화편을 완역한 것이다. 원래는 건축과 조각을 포함한 미술 전 영역을 아우르는 방대한 규모이지만 우선 아쉬운 대로 가장 접근이 수월할 것으로 짐작되는 회화 부분만을 번역하여 내어 놓는다.
우리에게 부르크하르트의 이름은 우선 문화사 분야의 전무후무한 전범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Die Kulture der Renaissance』의 저자로서 친근하게 기억된다. 역자가 대학 초년에 사학 개론 시간을 통해 그의 이름에 처음 접했을 때도 그는 우선 정치사와 대별되는 문화사의 대변자였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에 대해 ‘개인과 세계의 재발견’이라는 고전적인 정의를 내린 대가풍의 역사학자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하나만 놓고 보아도 그의 자유로운 정신적 풍모가 느껴질진대 거기에 더 보태어 그가 실은 미술사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실은 자못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 책의 부제 ‘이탈리아 미술을 즐기기 위한 안내’가 이미 말해 주듯 이 책은 전문가들을 위한 학술적 목적의 책이 아니며 어떤 체계나 이론보다는 저자 자신이 여행 중에 얻은 인상과 미술사적 지식을 종합해 비교적 자유롭게 서술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치체로네’라는 제목부터도 원래 사전적으로 로마 웅변가 키케로Cicero풍의 달변을 갖춘 여행 안내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부르크하르트가 의도하는 ‘예술 향유’는 주관적 자발성만을 근거로 하는 감각적이고 찰나적인 반응 역시 아니어서 ‘치체로네’는 전문가와 아마추어 독자 양 진영의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바, 전문가들에게는 세부 사항의 진위 여부를 놓고 비판 대상이 되었으며(실제로 본 역서에서는 역주를 통해 수많은 오류를 바로 잡아놓았다) 아마추어 독자들에게는 즐거운 독서를 기대하는 그들의 취향에만 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 감상을 함에 있어 ‘감상자의 생동하는 수용’, ‘향유할 줄 아는 소질’, ‘예술 작품의 격에 대한 주의 집중’등을 강조하는바 이는 예술가라는 존재와 시대 상황, 즉 예술 전반의 전제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가 진정한 향유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예술 작품은 각 시대마다 신적인 그 어떤 것을 실현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본능적 힘과 상상력을 보여 주는 그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예술은 지고의 가치를 실현한 것으로, 분석될 수도, 설명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그것을 실현해 내며, 감상자는 자신의 향수 능력을 발휘하여 다양한 정도로 거기에 동참한다. 부르크하르트의 문명 비평적인 염세주의와 심미주의는 인간성에 내재한 궁극적인 창조적 잠재력에 대한 신념의 싹으로 평가되는바, 그에게 있어 미술이나 시는 세계와 시대와 자연으로부터 모두에게 타당하고 이해 가능한 이미지를 수집한다. 이런 이미지들은 지상에 있으면서도 불멸하는 것이며, 모든 민족을 위한 언어인 것이다. 외형적으로 예술 작품은 모든 지상의 것과 전승된 것들의 운명에 굴복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러한 것들의 횡포로부터 모든 인간을 해방시키고, 열광시키고, 정신적으로 통합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 살아남는다.
부르크하르트에게 있어 ‘향유’는 결코 단순한 수용이 아닌 능동적이고 정확한 재구성의 능력이며 본래적인 전체 연관을 직관적으로 재수립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개별 작품을 미술사 내지 일반사에 관련시키는 작업으로, 비단 미술사학의 목표일 뿐 아니라 미술을 연구하는 자극제 역할도 담당한다. 즉 미술사학적인 호기심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는 무반성적인 향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술가와 양식, 시대와 부응하는 관찰을 요구하며 이를 위해서는 미술사적 교육을 통한 머리와 눈의 훈련이 요구됨을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 ‘향유’는 미술사학적인 인식의 전제이자 결과이며, 또한 그 ‘질’을 결정하는 요소인 것이다.
부르크하르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에서도 근대인의 두 가지 능력을 강조하는바, 그중 하나는 국가의 행위나 세계의 모든 사물에 대해 객관적인 관찰을 할 줄 아는 능력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명백히 주어진 주관성, 정신적 개별성에 대해 인식하는 능력이다. 후자의 맥락에서 그는 순수성과 개방성을 인간의 당연한 속성으로 간주, 단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예술 작품을 대하는 전문가와는 차별되는 예술 경험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포괄적이고 다차원적인 예술 향유 개념은 그의 시적이고 경건주의적인 출신과 더불어 조화와 사랑에 대한 그의 평생의 열망을 반영한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예술 향유는 우리의 독특한 정신적 기관을 소생시키고 각성시키는 그와 같은 것이다. 그는 특히 이탈리아라는 이상적인 세계, 위대하고 자족적인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을 선호한다. 그에게 이탈리아는 예술 관조를 자극하는 풍부한 토양과 함께 하나의 유토피아를 제공한다.
부르크하르트에게 있어 우리 인간에게 존재하는 충족되지 않은 동경과 위대한 것을 기리는 힘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예술이 더 이상 탐구나 비교의 대상이기를 넘어 그 안에 내재한 ‘미’의 위력에 이끌려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1874년 부르크하르트는 미술사학의 강령을 밝히는 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가장 축복받은 것은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고귀함을 알아보고 체득하는 능력이다.”
부르크하르트의 ‘향유’ 개념은 그의 예술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함축하며 예술이 우리 인간의 품격에 행사하는 깊은 각인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접한 부분은 부르크하르트가 예술가들에 대해 보여 준 ― 거의 해학적이기조차 한 ― 거리낌 없는 개인적 취향의 토로였다. 일급 장인들에 대한 문학적 찬사와 저급 예술가들에 대한 연민과 투덜거림, 그중에서도 프라 안젤리코나 라파엘로에 대한 편애와 페루지노에 대한 빈정거림, 틴토레토에 대한 가감 없는 진술 등등이 그것인데 나중에 출판된 ‘루벤스에 대한 회상’을 통해서도 확인되듯 그의 취향은 아마도 어두움보다는 찬란한 우아함 쪽에 기울어지는 듯하다.
이 책이 원저자의 의도대로 하나의 여행 안내서로서 오늘날에도 유효한지를 묻는다면 다소 회의적이다. 다만 여행하기에 불편한 점잖은 옷차림에 열악한 교통 여건을 감수하고 이탈리아 시골 어느메 한적한 교회에 그려진 성인의 일대기 벽화를 보기 위해 타박타박 도보 답사를 나서는 당시 여행자들의 ‘미의 순례’길이 어렴풋이 그려진다.(실제로 ‘치체로네’는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빼고는 당시의 이탈리아 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지침서였다.) 도시별로 정리된 색인을 제시했다지만 오늘날 누가 일일이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린 ―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다 그렇고 그렇게 보이는 ― 벽화며 제단화들을 보고 다니겠는가. 도대체 전공자들까지 포함해서 그 누가 이 책에 거명된 수많은 장인들의 이름을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범람하는 여행 정보 책자로 주마간산 관광객 노릇에 족할지언정 적어도 인생이라는 여행을 함에 각자가 꾸린 가방 깊숙이 이 책을 더하여 상상의 호사를 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미 가본 길이면 그 길대로, 초행길이면 초행길인 대로 대가의 동행은 벅찬 경이를 선사한다.
폐허로 퇴색한 이름 모를 화가의 벽화 자국 한 모퉁이 앞에서조차 정체를 알 수 없는 동경이 밀려온다면 그는 이미 ‘위대한 아마추어’이리라.
‘치체로네’는 1855년에 출판된 『원 치체로네Urcicerone』를 필두로 부르크하르트 생존 시기에 6판까지, 사후 7판에서 10판까지 학자들의 보완을 거치며 출판되다가 이후 최근까지 원 텍스트에 준한 신판의 출간이 거듭되었다. 본 역서 역시 원 텍스트에 준한 것으로 부르크하르트 당시의 미술사 연구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여기서 명시할 사항은 독자의 이해와 흥미를 도모코자 역자 임의로 도판 자료를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번역서의 경우 원서 본래의 모습을 벗어날 수 없다는 철칙에 위배되지만 저자가 본문에서 언급한 수많은 작품들을 독자 스스로 확인하라고 하기에는 너무 한다 싶어 고민한 결과다.(이미지들은 저작권과 무관한 구글 퍼블릭 도메인Googl Public Domain의 것을 사용하였다.)
또 본문에서 현재 기준으로 틀리게 제시된 정보는 역주를 통해 바로잡아 놓았는데 이 과정에서 2001년 바젤Basel 슈바베Schwabe출판사에서 나온 부르크하르트 전집 제3권(‘치체로네’ 회화편)의 주석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부디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이 책의 앞부분인 건축과 조각(회화 부분은 원래 세 분야 중 가장 뒤에 놓여 있다) 분야에 대해서도 근간 번역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해 본다. 문맥이 명료하지 않거나 표현이 어색한 곳이 많은 점에 대해 독자 여러분의 관용과 지적을 기대해 본다.
이렇다 할 직함도 없는 본인에게 신뢰와 격려를 보내주신 서울대출판문화원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행여 그분들의 용단에 누가 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번역이 진행되는 동안 벌어진 일상의 불편을 감수해 준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2014년 7월, 박지형
기본정보
ISBN | 9788952115850 |
---|---|
발행(출시)일자 | 2014년 07월 31일 |
쪽수 | 604쪽 |
크기 |
153 * 225
* 20
mm
/ 1166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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