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위린 대사의 한국 외교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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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세계일보 > 2017년 12월 3주 선정
작가정보
저자(글) 사오위린
저자 사오위린은 1909년 중국 저장성(浙江省) 인현(?縣)에서 태어났다. 1935년 국민정부 외교부의 일본ㆍ러시아과 과장, 1937년 주일본 요코하마 총영사를 거쳤으며, 1944년 김구의 요청으로 중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임시정부의 고문을 맡아 한국의 독립운동을 여러 방면에서 지원했다. 임시정부의 요원들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김구, 이승만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1949년 7월부터 1951년 9월까지 초대 주한 중화민국대사로 재직했으며, 주한대사직을 사임한 이후로도 한일 교류를 중재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등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1984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번역 이용빈 외
역자 이용빈은 미국 국무부 및 해군사관학교 초청 방문, 중국 베이징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대학원 수학,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학술 방문, 홍콩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목차
- 제1장│ 중국에서 전개된 한국 독립운동
말 한 마디로 결정된 운명
3ㆍ1운동에 대한 추억
한국임시정부의 독립 투쟁과 중국의 대한 원조
제2장│ 한국임시정부 고문에서 주한대사로 부임하기까지
김구 주석의 고문으로 영입되다
한국의 독립을 위한 한중 연합 노력
제3장│ 주한대사 부임과 고난의 투쟁
부임 전 장제스 총재와의 면담
역사적인 한중 진해회담 개최
한국전쟁 직전의 폭풍 전야
급변하는 남북한 정세와 우톄청의 방한
제4장│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한국전쟁
서울에서 철수하기까지 길고 길었던 이틀간의 낮과 밤
장제스 총재의 한국 원조 결정과 유엔의 한국 원조 결의
대전 전선에서 재회한 중미 사절단
전시 대구에서의 소소한 다반사
배수진을 친 최후의 거점지 부산
제5장│ 유엔군의 공격과 중공 참전
인천 상륙, 그리고 서울 수복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제1전지 업무 보고
중공의 참전과 중화민국의 전술
주한대사로서 한국전쟁에 임한 나의 전략
한국전쟁 당시 한중 외교와 한국의 정치 흐름
주한 화교 동포들과 생사를 함께하다
제6장│ 맥아더 장군의 사퇴와 나의 사직
전략 논쟁과 맥아더 장군의 사퇴
나와 맥아더 장군의 교류
일본과의 합의, 그리고 한국전쟁의 정전회담
나의 사직과 후임 결정
제7장│ 주한대사를 사임한 뒤의 나와 한국
끊을 수 없는 한국과의 인연
반공의사의 타이완 복귀와 아시아 반공 조직에 대한 구상
한일 교류 중재 및 이승만의 국립묘지 매장 요청
향후 한중 관계 전망
해제. 한중 근대사의 중심을 관통하는 외교 기록
책 속으로
나는 김 주석에게 앞으로 이승만 박사와 어떻게 협력할 것이며 또 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김구 주석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우리는 모두 다 합심 협력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그 분이 대한민국 전체를 이끌어도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사(國事)이며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획득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고 넓은 마음을 지닌 김구 주석과 집권욕이 강한 이승만 박사는 삼국시대의 유비와 조조에 비교할 만했다. 나는 당시 이미 김구 주석은 장차 최고지도자의 위치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_159쪽
당시 임 장관이 나에게 비밀리에 들려준 말에 따르면, 영국은 처음에 대한민국을 승인할 때 문서에 북위 38도선 이남에 한정한다는 설명을 붙여 중국이나 미국의 태도와는 달랐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의 신경이 곤두섰으나 밖으로 내색할 수 없었고 당시 한국 국민들에게 이를 그대로 공표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영국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원한은 실상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때 영국이 맥아더 장군의 북진을 저지하는 제한전을 하자고 주장한 것 역시 여기서부터 유래된 것이었다. _260쪽
일반적인 국제관례에 따르면 전시에 외교대표의 행방은 주재국 정부 및 지도자의 행적을 규칙으로 한다. 주재국 정부가 전쟁으로 인해 수도를 떠나야 한다면 사전에 우방국 사절에게 알리고 각 대사관을 위해 교통수단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정부가 각국 대사에게 말도 하지 않고 그날 밤 서울을 떠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각국 사절에게 피난 수단도 통지해주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한국정부가 우방국 대사들을 포기한 것과 같았으며, 국제 외교에서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한국이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정상 참작할 여지는 있었다. _297쪽
미국정부가 전면적인 참전을 결정하고 유엔의 대한 원조 결의안이 채택되자 이 대통령은 한국전쟁 발발 후 나와 두 번째 가진 만남에서는 첫 번째 만남보다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그는 입으로는 한국을 돕기 위한 중화민국의 파병안에 환영하고 감사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이미 영국과 미국이 중화민국의 파병안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인지 태도가 많이 변했고 우리 제안에 소극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미군이나 유엔군이 북진을 실시하지 않는다면 그 시기에 중화민국군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이는 곧 미군이나 유엔군이 북진을 실시한다면 중화민국군의 원조는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복선을 고려해서인지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완곡하게 말했다. “한국의 군사력이 충족되어서 야포와 전투기, 전차가 필요할 뿐입니다.” _331~332쪽
미국정부는 중화민국의 참전 파병이 중공의 참전을 촉진시키고 한국전쟁을 국제 전쟁으로 확대시킬 것이라 우려하고 있었다. 미국정부의 이러한 생각은 영국이 중국공산당을 방임하는 한편 유럽을 중시하고 아시아를 경시하는 데서 영향을 받은 결과다. 맥아더 장군은 최고위 군사지휘관이었으나 자신도 미국정부의 정략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훗날 1953년 겨울 맥아더 장군의 경질이 결정된 후 뉴욕 월가의 맥아더 장군 아파트에서 그와 점심을 함께하면서 오랜 대화를 나눌 때 그는 내게 이러한 내막을 토로했다. _344쪽
그렇다면 중공은 오직 인력만 있었는데 어떻게 유엔군을 반도에서 쫓아낼 수 있을까? 뒤집어서 말하자면 유엔군은 화력 장비가 절대적으로 우세했고 제공ㆍ제해력이 뛰어났으므로 중공을 다시 압록강 북쪽으로 쫓아내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최고 결정기구인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와 미국ㆍ영국의 고위급 회의는 이미 한국전쟁을 ‘승리하지 않아도 되는 제한전’이라고 결정하는 한편, 가능하면 빨리 전쟁을 종식시킬 방법을 찾길 원했다. _427쪽
출판사 서평
항일운동에서부터 한국전쟁, 남북 분단까지
김구, 이승만에서부터 맥아더 장군까지
중국 외교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인물들
중화민국 초대 주한대사인 사오위린의 회고록으로, 1919년 3ㆍ1운동부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해 서거할 때까지 60년 동안의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와 한중 관계사를 다루고 있다. 사오위린은 동북아시아의 큰 틀에서 한반도 문제를 냉철하게 분석하면서 자신이 직접 만난 김구 및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국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세력을 평가하는 한편, 한중 항일운동 협력사, 한국전쟁에 대한 중화민국의 시각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한국 근대사의 중심을 관통한 저자의 기록을 담은 이 책은 당시 상황을 복원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자 외교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다.
항일 투쟁 시기의 한국 문제 전문가에서 초대 주한대사로 부임하기까지
한국과 운명을 같이했던 중국 외교관 사오위린
이 책은 중화민국(타이완) 초대 주한대사인 사오위린의 외교 회고록으로, 3ㆍ1운동부터 항일투쟁, 해방공간, 한국전쟁, 그리고 이승만 정권에 이르는 격동의 세월을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기반으로 집필한 외교 기록이다. 사오위린은 1934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쓰촨대학의 교수로 부임했으나 당시 시대 상황에서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겨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외교관의 길을 선택한 인물이다. 중국 국민정부의 외교부에 들어간 사오위린은 당시 국제적으로 외교 승인을 받지 못한 한국임시정부와 관련된 국제업무를 비공식적으로 처리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으며, 한국 문제 전문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명성에 힘입어 1944년에는 김구의 간곡한 요청으로 임시정부의 중국인 고문으로 초빙되기도 했다.
이러한 인연은 한국이 독립한 후 초대 중화민국 대사로 부임하는 계기로 이어졌지만, 대사로 부임한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해 화교들을 이끌고 부산으로 후퇴했으며, 화교들의 타이완 철수를 지휘하기도 했다. 타이완 사학계의 거두 량징춘 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하나의 회고록이 의의를 지니려면 비범한 시기, 비범한 지역, 비범한 사람에 의한 것이라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사오위린이 한국에 대사로 부임한 시기는 한국과 중화민국 양국이 미국의 극동 정책에 의해 함께 버림 받았던 때였고, 외교 사절로 부임한 지역은 미소 냉전이 한창이어서 전쟁 발발 위기에 놓인 위험한 곳이었는데, 사오위린은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훌륭하게 극복한 비범한 사람이므로 이 책의 의의가 매우 높다고 평가한다.
사오위린은 이처럼 한국 역사의 주요한 사건들을 함께 겪어온 인물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전쟁 중에는 외교관이 아닌 군인이 대사의 자리를 맡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 2년여 만에 주한대사직을 사임했으므로 공식적으로 주한대사직에 몸담았던 기간은 길지 않지만, 주한대사직을 사임한 이후에도 한일 교류를 중재하고 이승만의 국립묘지 안장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등 그의 인생 전반은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한 신문기자는 사오위린과 한국의 인연을 ‘운명’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중국 입장에서 역사적 사건을 다룸으로써 한국 근대사의 새로운 시각 제시
급변하던 한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는 이 책은 여러모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우선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국제정세에서 중국이 취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한 예로 대륙을 탈환하기 위한 ‘대륙반공’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던 장제스와 국민정부는 통일을 앞세운 김구보다 반공과 독립을 주장한 이승만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사오위린은 1951년 7월 중화민국정부에 ‘한국전쟁 수복 지역 행정조치 보고서’를 제출해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고했는데, 이는 타이완이 대륙을 수복할 때를 대비해 꼼꼼하게 작성한 보고서이기도 했다. 한편 한국과 중국이 강대국에 의해 희생된 사례로는 1945년 2월 개최된 얄타회담을 들고 있다. 사오위린은 영국과 미국이 남북한 분할 군사 점령을 결정한 것에 대해 이는 영미 양국이 소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중국을 배신한 결과라며,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영국과 미국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이처럼 이 책은 한국에 대한 중국의 외교 방식을 증언하고 새로운 시각과 연구과제를 제공해주는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한국의 외교 환경과 국제정치적 지형을 파악할 수 있는 탁월한 사료
60년에 걸친 역사를 다룬 이 책은 한국 근대사를 파악하는 데는 물론, 한국과 중국의 관계사를 연구하고 한중 관계를 입체적으로 되짚어보는 데 매우 소중한 자료다. 특히 사오위린이 곁에서 직접 겪은 김구와 이승만의 성향을 비교한 것이나, 한국전쟁 발발 당시 한국정부와 중화민국정부의 대응방식에 실망한 일화,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승만의 유골을 고국에 묻도록 이승만을 대신해 요청한 일, 한국전쟁 때 중화민국의 원조를 한국이 거절한 내막, 한국전쟁 전략으로 제한전을 선택한 트루먼 대통령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추구한 맥아더 장군 간의 갈등, 미국ㆍ영국ㆍ소련 등 강대국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좌지우지된 국제적 상황 등 외교사적으로 중요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1980년에 간행되어 출간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 책은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이승만 정권의 몰락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사의 외교 환경과 국내 정치 상황을 복원하는 고리역할을 할 것이며, 국내의 연구가 주로 임시정부의 활동에만 주력해 중국 측 입장을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한 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한국이 독립하기 전에 중국에 있던 한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협조하기 위해 김구 주석으로 고문으로 초빙되었고 이로 인해 이승만의 의심을 산 바 있다. 그 후 한국이 독립되자 중화민국정부는 나를 서울 초대 주한대사로 파견했으나 이 대통령은 국제관례를 무시하고 6개월을 미루다가 김구 선생이 살해된 후에야 나의 임명에 동의했다. 듣기로는 나와 김구의 관계가 친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지어 내가 주한대사를 사임하고 타이완으로 돌아간 후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가을 중화민국을 방문했을 때 장제스 총통에게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아마 다른 중요한 원인이 있었겠지만, 내가 ‘예스맨’이 아니었기에 이승만 대통령의 환심을 살 수 없었던 것이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_464쪽
나는 외교부가 전시 상황에서 주한대사관의 인사 및 경비 관련 문제에 대해 보인 관료주의적 태도를 일찍부터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며, 이에 수차례 사직을 청했다. 이제 맥아더가 사직해 한국이 승리를 거둘 희망이 더욱 적어졌으므로 내가 직책에 남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먼저 한국 국회의장 신익희의 타이완 방문 일정을 안배한 이후 나 역시 타이완으로 돌아가 보고를 올릴 수 있도록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_565쪽
통상 외국 주재 외교 사절이 복무 당시를 회고할 때면 취임부터 시작해 이임할 때로 끝이 난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아주 다르다. 나는 주한대사로 부임하기 전에 벌써 몇 년 동안 한국의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주한대사 직위에서 사임한 후에도 한국에 체류하는 교포 및 한국 여야와의 관계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공식적인 임기는 길지 않았지만 한국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어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_581쪽
내가 “만약 내가 한국 친구들에게 협조를 요청해 일본과의 회담에 성공한다면 미국정부는 한국에 무엇을 대가로 제공할 수 있습니까? 한국의 경제 원조액 증액을 승낙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린은 “물론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1000~2000달러 증액은 문제없겠지요?”라고 추궁하기까지 했다. 그린이 연이어 “문제없습니다”라고 장담했다. 나는 이 히든카드 때문에 한국에 가서 말하기가 꽤 쉬웠다. _625쪽
1965년 7월 19일, 이 전 대통령은 90세의 나이로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국정부는 이에 전임 대통령의 시신을 항공편으로 수송해 국립묘지에서 화장한다고 밝혔다. 한국정부는 이를 즉시 실행했고, 그제야 나는 이 전 대통령과의 20여 년의 교분을 마감할 수 있었다. 이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돌이켜보면, 그는 내가 주한대사로 부임하는 데 대한 동의를 6개월이나 미루었다. 또한 주한대사에서 사임하고 나서 2년 뒤 내가 타이베이에 없을 때 장제스 총통의 면전에서 나를 한껏 몰아붙였다. 내가 대사직을 사임한 지 15년이 지나 이 전 대통령이 그렇게 반대하던 한일 수교를 도우려 할 때 그는 자신이 묻힐 땅을 나를 통해 구했다. 이 또한 기이한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_632쪽
1967년 박 대통령이 정식으로 타이베이를 방문해 장 총통과 회담을 가진 기간에 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나는 그를 한 번 만났다. 나는 박 대통령 개인의 결연함과 정직함에는 탄복했으나, 당시 진언을 할 수 있는 공직자의 자격이 아니었으며 사적인 교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용기를 내어 박 대통령에게 특별 서한을 보냈다. 그에게 공산당과 투쟁하는 기간 동안에는 특히 민주와 인권 문제에 신경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상술한 각계의 반대파 지도자들에게 정치상의 특별 사면을 실시하라고도 조언했다. 이는 남한을 안정시켜 공산당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_653쪽
기본정보
ISBN | 9788946064041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11월 30일 |
쪽수 | 672쪽 |
크기 |
165 * 232
* 41
mm
/ 1060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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