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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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조윤제
저자 조윤제는 서울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선임 이코노미스트,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겸임 교수, 한국조세연구원 부원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자문관, 서강대학교 교수, 대통령 경제보좌관, 주영국 대사 등을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한국의 권력구조와 경제정책: 새로운 정치, 경제의 틀을 찾아서』(도서출판 한울, 2009)(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이 있다.
목차
- 1 정치와 사회의 제자리를 찾아서
채텀하우스 룰│국가 지배구조, 이대로는 안 된다│정당 개혁 없이 정치 발전 없다│제자리로 돌아가라│화해와 포용 함께하는 ‘중도의 길’ 되어야│국가 기능 강화하는 개헌 되어야│대북정책에서도 실용과 유연성을│읽고 뛰게 하자│세계 질서 이끌 소프트파워를 키워라│공정사회, 일과성이 안 되려면│집단 사고, 지적 포획│언론, 정권, 재벌│질서와 국민 행복도│5개년 계획이 필요하다│안철수 돌풍은 정당 개혁 요구다│안철수의 기부는 민간복지다│정치인만의 잘못인가│지식사회와 생활문화│‘돈봉투’ 사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간이 나쁜데 쓸개를 이식한다?│지역정당 뛰어넘는 총선 되어야│19대 국회의 과제, 개헌│또 실패할 대통령을 뽑을 것인가│믿는 것과 믿고 싶은 것│산업화 50년, 민주화 25년│올림픽 소고│‘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후보’│사회 운영체계의 전반적 개혁 있어야│새 대통령의 과제│정치 쇄신 방향 옳은가│박정희 시대와 박근혜 시대│보수체계, 이대로 좋은가│창조경제와 사회문화│지배구조 개선 없이 선진 한국 어렵다│독립적 연구기관들이 출현해야│민주주의의 위기│안전은 비용 없이 얻어지지 않는다│국가 개조? 위선부터 벗어던지자│우리는 어떤 행정관료 시스템을 원하는가
2 불확실성 시대의 경제
재정지출 확대하고 금리 더 내려야│금융위기, 장기전을 준비하자│비상한 대책도 퇴로는 열어놓아야│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통화정책은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워야│금산분리 완화, 금융지주회사 대형화 적절한가│출구전략│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덫│‘친기업’과 ‘친시장’은 동의어가 아니다│G20과 국제통화제도의 개편│위기의 싹 키우는 물가ㆍ성장 정책│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부동산 경기부양의 유혹│국제통화제도의 개혁│중국, 세계 그리고 한반도│‘고령화 늪’과 집값│폐렴을 감기약으로?│인구와 금융위기│경제정책, 종과 횡의 충돌│한국의 개발 경험 전수하려면│경제민주화?│경제체제, 이대로 지속될 것인가│중국은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까│저성장 시대로 접어드는가│‘피터팬신드롬’과 중소기업정책│통화전쟁과 한국 경제│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규제 완화인가│중앙은행의 신뢰성│지식은 쓸모 있는 것인가│경제부총리와 금본위제도│중국의 경제개혁│전세대란, 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해야│한국 경제, 구조개혁으로 활력 찾아야│세계 경제구조 변화와 경제정책│재균형│버냉키 이후의 과제│분배구조 개선해야 지속성장 가능하다│서비스업 활성화의 빛과 그림자│중국 경제의 미래│지도에도 없는 길│공적연금 개혁│금융위기는 다시 온다│고성장 없이도 행복한 나라 되어야│지금 한국 경제 상황이 그리도 급박한가│추격형 사회에서 선도형 사회로
책 속으로
노 대통령은 장관이든 청와대 참모든 독대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반드시 관련 참모를 함께 만났다. 독대로 인해 잘못된 정책결정을 내리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제를 중시했고 참모들과의 토론을 좋아했기에 필자와는 많은 토론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필자가 그와의 면담을 원했을 때 그는 한 번도 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무리 일정이 바빠도 관저나 집무실에서 짧게는 10분, 길게는 3시간의 시간을 내어 정책에 대해 보고받고 토론으로 검증하려 했다. 때로 관점과 견해가 서로 달라 긴 설득이 필요하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게도 되었다. 나는 그와의 토론을 통해 진보적 가치와 관점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갖게 되었고, 아마 그도 개방과 시장 자율의 장점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는 결코 그의 입장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확인하는 것을 좋아했다. _ 32쪽, “제자리로 돌아가라”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주류 보수언론의 막강한 영향력에 힘입어 집권하게 되었다. 선거 과정에서 대운하 외의 종합적 정책 비전에 대한 검증 과정도 별반 없었으며, 다만 좌파정권을 심판하고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집권하고 출범하게 되었다. ……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바로 자신을 출범하게 한 그 정치적 포장에 갇히게 되어 지지 기반을 잃을 수밖에 없는 형국에 놓이게 되었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의 국민에 대한 약속과 정책 선택이 주류 언론과 보수 학계가 묘사해온 현실에 기반을 두었고 그것이 사실과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 내지 우파의 중간쯤을 좌파정책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국민들에게 인식을 심어준 결과, 새로운 정부가 택해야 하는 정책의 공간은 지극히 좁은 오른쪽 끝으로 쏠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 경제정책 면에서 본다면 19세기~20세기 초까지 미국 및 서구 국가들에서 풍미했던 극단적 시장자유주의정책, 그리고 외교정책 면에서 본다면 원조 수혜국, 냉전 시대의 극단적 친미주의정책, 대북정책에서는 냉전 시대의 대결정책만이 선택 가능한 정책 조합으로 남게 되었다. _ 42쪽, “화해와 포용 함께하는 ‘중도의 길’ 되어야”
오늘날 시장경제의 문제점은 기득권을 가진 시장세력에 의해 시장 경쟁의 룰이 왜곡되어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친시장’과 ‘친기업’을 자주 혼동했다. 대기업 집단은 언론과 여론 주도층 그리고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정책과 제도를 그들의 경쟁력을 지속ㆍ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결정되게 함으로써 경제력 집중, 소득분배의 불균등을 심화시켜왔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장경제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게 해주는 일이다. 시장이 신규 진입자나 중소업자들에게도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는 평평한 운동장이 되게 하는 것이다. _ 115쪽,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은 정당이다. 정당은 이루고자 하는 국가 사회에 대한 목표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뭉쳐서 정권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따라서 정당의 알맹이는 정책과 비전이다. 정책정당이 되기 위해 우리나라 정당들에 꼭 필요한 것이 지역정당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실현하고자 하는 국가 사회와 정책이 영남인이기 때문에, 혹은 호남인이기 때문에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누가 이를 주도하는가에 대한 열망이 다를 뿐이다. 영남인이 모두 보수적 가치관을, 호남인이 모두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것이 아닐진대 우리나라의 정당이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정상이 아니다. _ 120쪽, “지역정당 뛰어넘는 총선 되어야”
출판사 서평
실패를 반복하는 정치, 책임을 벗어던진 사회, 위기를 거듭하는 경제
제자리를 잃은 대한민국을 향한 여든다섯 번의 고언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경제보좌관과 주영국 대사를 지낸 조윤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의 칼럼집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부터 2014년 말까지 꾸준히 써온 글들을 책으로 엮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 지배구조와 개헌, 대북정책, 사회질서와 생활문화, 보상ㆍ유인 체계 등 정치ㆍ사회 이슈부터, 금융위기와 경제정책, 고령화와 부동산, 경제민주화, 중소기업정책, 공적연금 개혁, 중국 경제 등 다양한 경제 이슈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한국 사회를 둘러싼 수많은 과제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제한된 분량에 눌러 담다 보니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는 저자는, 그렇게 정선한 말들이 만들어낸 여든다섯 개의 글에 다시 만만치 않은 양의 후기를 정성껏 달았다.
혼돈의 시공간을 우회하지 않는 지성의 끈기와 통찰력
노무현 대통령 경제보좌관, 주영국 대사 출신 조윤제 교수의 첫 번째 칼럼집
세계 금융위기, 4대강 사업,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촛불집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총선과 대선, 북한과 중국의 지도자 교체, 세월호 침몰 등등 훗날 역사서에도 기록될지 모를 굵직한 사건들로 가득했던 지난 7년, 대상을 찾아 비난하기는 쉬워도 냉철하게 비평하고 차분하게 대안을 말하기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비난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더 나아진 무엇이 아니라 여전히 고된 삶과 혼돈한 사회뿐이다. 이 어지러운 시간을 함께 살아온 저자는 민감한 문제에 침묵하거나 쉬운 대상을 찾아 비판하기보다 학자로서의 양심에 따라 글로써 정직하게 비평하고 올바른 해법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신중하게 골라 쓴 글자가 20만 자, 어느덧 여든다섯 편의 원고가 모였다. 저자는 다시 긴 시간 이를 다듬고 못다 한 말을 덧대어 책으로 엮었다. 밑줄 그어가며 아껴 읽을 말들로 가득한, 조윤제 교수의 첫 번째(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칼럼집이다.
“제자리로 돌아가라”
비뚤어진 권력을 향한 저자의 무거운 충고
‘제자리로 돌아가라’라는 책 제목은 2009년 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쓴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저자가 한때 보좌하던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 그리고 이를 대하는 각계의 추모와 폄훼의 한바탕 속에서, 저자는 고인을 기리면서도 이 비극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사뭇 냉정한 어조로 써나간다(본 글에서는 애써 억눌렀을 그날의 비통함은 후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인은 대통령 취임 후 권력기관을 정치적 도구로 손에 쥐고 있지 않고 ‘법이 정한 제자리’로 돌려주려 했으나, “권력자의 장악에서 벗어난 검찰은 스스로가 절제와 균형을 잃고 정치화하지 않았는지, 독재자의 재갈에서 풀린 언론은 스스로가 정치권력화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갈등과 편 가르기를 부추겨오지 않았는지”, 저자는 묻는다. 그리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권력기관과 언론이, 학계와 시민사회가 절제를 익히고 각자 제자리를 굳건히 지켜주는 것이 비극의 재연을 막는 길”이라고 어느 때보다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을 가로지르는 가장 쓰고도 중요한 메시지 또한 이것이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실패를 반복하는 정치, 책임을 벗어던진 사회, 위기를 거듭하는 경제를 향해 각 주체가 본연의 자리를 찾을 것을 거듭 강조한다.
대통령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되어 정치 보복이 계속되는 것인가? 분권형 권력구조가 답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민주화된 사회에서 권력기관과 언론이, 학계와 시민사회가 절제를 익히고 각자 제자리를 굳건히 지켜주는 것이 비극의 재연을 막는 길이다. 검찰은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데 여론이 아닌 실체적 진실에만 의존하는 절제를 지키고, 언론은 스스로 경기장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입장과 목표를 관철하려 하기보다 냉정한 관전자와 비평자의 자리를 지킴으로써 민주화된 우리 사회의 건강한 규율과 균형을 세워주어야 한다. 학자들도 단체와 조직을 만들어 정치세력화하는 것보다 글로써 비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본분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는 절제와 균형을 벗어난 매도와 기득권의 방어와 확대를 추구하는 소리만 높아져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낮아졌으며 잃은 자가 되었다. 이번 비극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제 각자가 지켜야 할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_ 30쪽
정치ㆍ경제 문제의 구조적 해법을 찾아서
대한민국호의 침몰은 선장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정치ㆍ사회ㆍ경제의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오가는 글 곳곳에는 오랫동안 학술 연구와 정책 실무를 담당하면서 수많은 문제를 마주하고 고민하며 풀어나가야 했을 글쓴이의 경험과 연륜이 묻어난다. 글에서 강조하는 바를 몇 가지 추리면 이렇다. “권력기관은 법적으로 부여된 자신의 존재 목적을 이행하기 위해서만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정부는 실적을 쌓기 위해 시장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말고, 오히려 재벌의 독과점 등 시장의 역동성을 방해하는 힘에 맞서는 권력으로 자신을 세워야 한다.” “서민과 후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경제정책을 여론에 휘둘려 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러한 당연한 원칙을 거스르는 정치ㆍ경제의 구조를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도 규정을 어긴 해운사와 제자리를 벗어난 선장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저자는 개인의 책임을 묻기에 앞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ㆍ제도적 한계를 짚고 이를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한다.
이 시대 어떤 국가가 살아남는가
1부 ‘정치ㆍ사회의 제자리를 찾아서’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1부 ‘정치ㆍ사회의 제자리를 찾아서’에서는 국가 지배구조 개편과 개헌, 정당 개혁, 좌우 대립 해소, 대북정책, 교육, 공정사회, 질서와 사회문화, 보수ㆍ유인 체계와 공무원연금 개혁 등 정치ㆍ사회와 관련한 주제를 다룬다. 그중에서도 특히 저자는 국가 지배구조의 문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오늘날 정치ㆍ경제의 난맥이 국가 지배구조의 한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의 성패 역시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에 맞는 국가 지배구조를 모색하는 데 달렸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하에서 국가 지배구조의 요체는 대표성, 책임성, 효율성에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지배구조는 이 세 가지 모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국민이 직접선거로 뽑아 민주적 정통성을 가진 대통령을 역시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가 견제하게 함으로써 때로 국정이 오도 가도 못하게 되는 ‘이원적 민주주의 정통성’의 문제를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게 앓고 있다. 국정의 궁극적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통령은 입법 과정에 대해 무력하고, 국회는 국정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지금 같은 ‘여대 야소’에서도 국정이 표류하고 있는데, ‘야대 여소’가 되면 국정의 비효율성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거쳐 간 네 명의 대통령 모두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그 정부들은 ‘물정부’, ‘무능정부’, ‘아마추어 정권’으로 불렸다. 우리 국민은 민주화 이후 한결같이 무능한 대통령만을 선출했단 말인가? 아니면 우리의 국가 지배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고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오늘날 국가 간의 경쟁은 바로 국가 지배구조 간의 경쟁이다. 급변하는 세계경제 환경에 적시에 대응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나라 간에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된다. _ 19~20쪽
돈봉투 관행을 없애려면
그 밖에도 1부에서는 몇 가지 현안에 대해서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다. 최근 이른바 성완종 사태로 불거진 정치권의 불법 자금 논란에 대해서도 세간의 비난과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한다. 요컨대 “우리 사회의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제도를 개편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봉투 관행을 없애려면 우리 사회의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제도를 개편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위에서 부정을 엄격히 처벌해나가야 한다. 정치권이 진정 쇄신을 원한다면 국민 앞에 무릎 꿇는 사진을 돌리기보다 총선과 대선에서 전반적인 국가 시스템 개혁에 대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용기 있게 제시하기 바란다. 국민들이 세금을 좀 더 내더라도 정치인과 공직자를 국민의 공복으로 부리는 것이 이들이 기업과 돈 있는 자들의 이해를 좇아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_ 111쪽
공무원연금 개혁, 관점을 넓혀라
역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해서도 저자의 지적은 귀 기울일 만하다. 저자는 이 현안과 관련해 현재 국가재정이라는 측면에 고정된 프레임을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재조정한다.
훌륭한 지도자와 소명감 있는 국가 엘리트를 갖는 것은 국민의 복이다. 그런데 이들을 키워내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책임이다.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를 보면서 아쉬운 점은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떤 행정관료 시스템을 지향해나갈 것인가 하는 고려가 실종되어 있다는 것이다. 평균수명 60세 시대에 설계ㆍ도입된 제도가 평균수명 80세 시대에 적합할 수는 없다. 적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제도는 제도 자체로서 당연히 개편되어야 한다. 그러나 연금도 보상체계의 일부이며 이를 국가 행정 엘리트들의 양성과 충원, 이들이 국가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헌신할 수 있도록 이끄는 보상체계, 인사의 규율과 관행에 대한 큰 그림 없이 단순히 재정적자와 국민의 혈세를 축낸다는 관점에서만 접근해왔다. 세계화 시대의 국가 간 경쟁은 국가 지배구조, 지도자들의 역량, 관료 시스템 간의 경쟁이기도 하다. 행정관료의 전문성이 강화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과의 교류가 더 활성화되어야 하며, 보수체계도 민간 부문과 더 가까워져야 한다. _ 199쪽
한국 경제,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2부 ‘불확실성 시대의 경제’
글은 정치ㆍ사회의 수많은 문제를 하나씩 짚고 나와 경제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2부로 향한다. 2부 ‘불확실성 시대의 경제’에서는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으로서, 그리고 오랫동안 국내외 경제를 연구해온 경제학자로서 저자의 식견이 더욱 빛을 발한다. 세계 금융위기와 재정ㆍ금융 정책, 복지와 성장, 경제민주화, 부동산, 국제통화제도, 중국 경제, 규제 완화 등 하나하나가 책 한 권의 소재가 될 법한 묵직한 키워드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먼저 저자는 우리 경제가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환기하며,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정책의 방향을 국내외 경제 상황을 종합해 조명한다.
재정과 통화의 초팽창적 운용은 세계경제를 공황으로부터 구했으나, 향후 경제정책의 운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세계경제 진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유동성 과잉에서 비롯된 위기를 전대미문의 유동성 확장정책으로 대응한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금리를 내리고 재정지출을 늘릴 때는 시장의 환영을 받으나, 조이고 줄일 때는 여기저기서 압박을 받게 된다.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서민 가계의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자금 조달에 쪼들리게 되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막강한 로비가 있게 되고, 중앙은행은 정부와 여론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된다. 정치적 압력이 수그러지면 그때는 경기가 과열 국면을 보이기 시작해 이미 늦었을 때다. _ 234쪽
경제정책은 대중을 호도하고 속이기 쉽다
비슷한 논점에서 저자는 경제정책을 정직성과 공정성, 건전성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펼 것을 당부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여론은 당장 눈에 보이는 득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경제정책은 오히려 대중을 호도하기 쉬운 탓이다. 정책 당국이 경기부양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환율과 금리를 조정하는 것이 국민에게 어떤 결과로 되돌아오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그런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환율이 오르면 일반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 수출기업을 도와주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 금리를 내리고 통화 공급을 확대해 인플레가 유발되면 근로소득자와 예금자의 주머니에서 빼낸 돈으로 부채가 많은 기업과 주택담보로 돈을 빌린 중산층 가계를 지원하고 재정적자로 빚을 진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종합부동산세로 강남 주민들이 수백만 원 혹은 기천만 원의 세금을 더 내게 되었을 때 국가에 소송을 제기하고 정권 퇴진 운동까지 벌였으나, 환율이 대폭 올라 그들의 해외여행 경비, 자녀 유학비가 수백만 원 혹은 수천만 원 늘어났을 때는 조용했다. 만약 정부가 소비세를 징수해 수출대기업들에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섰으면 언론과 시민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시장과 대중, 여론이 늘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그만큼 국가는 스스로 정책의 정직성, 공정성, 건전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정책은 대중을 호도하고 속이기 쉽다. _ 239쪽
사라지는 역동성, “한국 경제, 공정경쟁의 제도적 발판을 마련해야 산다”
한편, 저자는 한국 경제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요소로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꼽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 기득권의 담합과 유착 구조로 계급이 고착화되고 있고, 이것이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줄여가고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가 지목한 문제는 예컨대 이런 것이다. 재벌의 시장 독점을 돕는 친기업정책, 퇴출되어야 할 한계기업을 살려주는 중소기업정책, 일부의 불로소득만 늘리는 부동산 경기부양, 갈수록 커지는 소득 격차,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증폭시키는 규제 완화……. 설령 정책을 이런 방향으로 몰아 단기적으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그런 정책은 한국 경제의 활력과 건전성을 떨어뜨릴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경쟁 없는 경쟁력은 없다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공정한 경쟁의 발판을 제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그동안 정부 지원에 의해 보호ㆍ유지되어오다 위기를 맞아 휘청거리는 많은 한계기업들을 다시 정부의 지원 강화로 다 살리려고만 하지 말고 이 기회에 고통이 따르더라도 근본적인 산업과 고용구조의 개편이 일어나도록 정책의 틀을 짜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신용보증 규모가 큰 나라도 없고, 인구나 총생산에 비해 기업 숫자가 많은 나라도 드물다. 같은 예산을 쓰더라도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 지원을 늘리는 것보다 그러한 기업의 근로자들에 대한 재훈련, 재취업, 실업대책에 지원을 늘리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기업은 경쟁력을 잃으면 도태되어야 하고 그래야 새로운 산업, 새로운 기업이 성장할 길이 열리지만, 근로자는 우리 경제의 인적 자산으로 계속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_ 220쪽
높은 부동산 가격은 각종 사회비용으로 전가된다. 도시근로자의 주거생활비가 올라감에 따라 임금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상가의 임대료가 올라 도소매 마진이 올라가며, 공장과 사무실을 확보하려는 기업의 투자비용이 올라가게 된다. 젊은이들이 결혼해 살 집을 마련하는 비용이 올라 결혼을 미루고 출산율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는 모두 장기적으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_ 274쪽
경제 활력을 살리고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제구조의 근본적 혁신과 체질 개선이다. 그리고 경제 각 분야에 치열한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다. 경쟁 없이 경쟁력은 생기지 않는다. 극히 적은 소유지분으로도 순환출자를 통해 전 계열 기업에 대한 경영지배권을 장악하여 그룹 내에 일감을 몰아주고, 대다수 소액주주보다 총수 일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오늘날 한국 기업의 경영 행태는 경제정의는 고사하고 시장경제 원리에도, 자본주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 원칙은 노동시장에도, 자본시장에도, 경영자시장에도 도입되어야 한다. 제한 없는 순환출자에 따른 경영권 승계를 지나치게 보호하면 우리 경제의 미래에 너무나 중요한 대기업들이 최고의 전문경영인들에 의해, 시장원리에 의해 경영될 기회를 제한하게 된다. _ 360쪽
경제문제의 해법, 정치에 열쇠가 있다
각 주제에 대해 저자는 나름의 해결 방향을 제시한다. 그런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경제문제의 해법을 정치구조의 개선에서 찾는 접근법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경제운영과 언론의 책임성, 특히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여론과 권력에 대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계, 수출업계 등이 대중에게 가야 할 소득을 자기네 주머니로 가져가고자 하는 행태를 정부가 견제하지 못하고 이에 덩달아 춤추며 경제정책을 왜곡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 국가의 경제정책이 시장의 독점적 권력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린 여론에 사로잡히지 않고 좀 더 장기적인 시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되려면, 이를 가능케 할 정치체제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문제는 경제야”라는 빌 클린턴의 말에 “경제문제의 본질은 정치야”라는 말을 더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종과 횡의 충돌’
한편, 저자는 오늘날 한국의 경제정책이 놓인 어려움을 ‘종과 횡의 충돌’로 개념화한다. 이는 저자의 다른 책 『한국의 권력구조와 경제정책』(2009)에서 소개한 개념이기도 하다. 요컨대, 종적인 문제는 빠른 경제성장과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새로이 분출하게 된 복지에 대한 욕구를 수용해야 하는 국내적 도전을 말하고, 횡적인 문제는 현재 한국 경제가 놓여 있는 국경 없는 경쟁이라는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당면하게 되는 외부적 도전을 말한다. 종적인 측면에서는 과거 서구 사회가 그랬듯이 복지 강화와 큰 정부가 요구되며, 횡적인 측면에서는 최근 서구가 추구해온 바와 같은 감세와 작은 정부가 요구되어 이것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이러한 충돌은 오늘날 경제정책에서 진보와 보수의 충돌로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종과 횡의 충돌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상대와 지혜를 모아 ‘중용의 도’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정책과 사회제도는 진화하는 것이다. 인류가 실험해온 그 어떤 체제도 완전한 것은 없었다. 헐벗고 굶주릴 때는 성장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만, 일정한 소득수준에 이르면 성장만으로는 안정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 지금 우리는 종과 횡, 혹은 진보와 보수를 다 끌어안고 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자유무역협정 등 개방과 경쟁의 확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강화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 재정을 통한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고 공정경쟁 기반을 확립해 경제력 집중과 부에 따른 사회계급의 고착화를 억지해나가야 한다. 이를 어떻게 조화롭게 설계할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커다란 과제다. _ 306쪽
중국 경제 전문가가 말한 중국,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
저자의 글 중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 경제를 다룬 글들이다. 당장은 남의 이야기 같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 우리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 정부 당국에 경제 자문을 제공하며 중국 경제에 직접 깊이 관여했다. 가장 최근에는 시진핑을 중심으로 새로 들어선 중국 지도부가 추진할 금융개혁안을 짜는 데 외부 조언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국 경제가 현재 마주한 문제의 본질이 결국 ‘중국의 국가 지배체제와 권력구조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과거 중국이 취해온 무역 개방, 가격 자유화 같은 상품시장 개혁 조치와 달리 지금 중국이 당면한 개혁 과제는 금융, 노동, 토지와 같은 요소시장의 자유화다. 이는 각 분야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기득권을 재구성하고, 나아가 국가의 권력구조,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려 있는 심대한 과제다. 중국이 이 도전을 뛰어넘지 못하면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_ 416쪽
저자는 중국이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시장경제 체제로의 이행을 가속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결국 중국의 국가 지배체제와 권력구조를 건드리는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중국 정치체제의 불안정성 심화와 변화를 촉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촉발할 것이며, 세계 다른 어느 국가보다 우리에게 큰 파도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향후 20년 내에 도래할 중국의 패권 시대를 하나의 가정이 아니라 기정사실화하고 국가 전략을 짜나가야 한다”라고 역설한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 경색된 남북 관계, 후세대는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남북 관계의 경색이 이어지는 상황을 크게 우려한다. “우리가 남북 간 협력 단절과 대결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에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는 점점 심화되고, 일본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 하고 있다”면서, “동북아 기류가 빠르게 변화하고 또한 그 변화의 방향이 거의 확실한 지금의 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대북 관계, 대일 관계를 냉전식 사고와 발언으로 국내 정치의 입지 이용에 허비하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19세기 말 조선이 어땠는지 떠올려보면서, 우리 세대가 후세대에게 그런 평가를 받지 않도록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대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주문한다.
글에 담으려 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 그리고 ‘중도의 해법’
문제의 본질, 균형 있는 관점을 얻기 위한 저자의 끊임없는 노력이 빚어낸 글의 생명력
‘시평(時評)’이라는 글은 시간이 흘러 글에서 다룬 문제가 시야에서 멀어짐에 따라 글의 가치도 자연스레 스러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의 글이 지금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고 보고 이를 책으로 엮어서 소개하는 것은 단지 저자가 말한 문제들이 현재에도 유효한 까닭만은 아니다. 각 글에서 저자는 눈앞의 문제를 대하면서도 시선을 돌려 그 문제가 가리키는 본질을 짚어내는 데 집중한다. 누군가의 실책을 따지기보다 그 실책을 불러온 구조적 문제를 언급하며, 전후좌우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맥락을 읽어낸다. 예컨대 경제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안으로는 국내 정치ㆍ사회의 역사와 현실, 밖으로는 세계 정치ㆍ경제의 흐름에서 그 문제의 본질을 찾아 대안을 제시한다. 이슈는 사라졌어도 본질은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것이다. 한편, 저자가 따로 반년 가까운 시간을 들여 각 글에 덧붙인 후기는 본 글의 시의성에 심폐소생술을 하는 역할만 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본 글보다 더 긴 호흡으로 그 주제에 관해 못다 한 이야기와 조금은 사적인 이야기, 전문적인 설명까지 마음껏 풀어냄으로써 이해와 재미를 더한다.
비평의 대상이 여야와 보수ㆍ진보는 물론, 언론과 재벌, 시민사회, 학계를 가리지 않는 탓에 혹자는 저자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누구 편이오?” 이에 대해 저자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정확히 짐작하기는 어려우나, 그 특유의 온화하고 넉넉한 미소가 말보다 앞설 것임은 눈에 선하다.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사적인 경험을 덧붙여야겠다. 2009년 봄, 신입 딱지를 막 뗀 편집자로 처음 조윤제 교수를 만난 날을 기억한다. 그의 화려한 이력이 주는 위압감에 눌려 만나기 전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편집자를 향해 그는 온화한 미소와 함께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뻘인 그보다 허리를 더 굽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지금도 쉽지 않다!). 대화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자신의 말을 아낀 채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의 나이가 어떻든 자세히 묻고 그것으로 부족하면 따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짧은 말 한마디에도 그 생각의 깊이와 꼿꼿함은 충분히 느껴졌다. 그렇게 그를 만난 이후로는 그의 이력이 아니라 기품과 깊이에 압도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보기 드문 친절과 겸손으로 타인을 대하는 그가 자신을 향한 지적 검열에는 냉정했다. 한 꼭지도 쉽게 쓰지 않았다 한다. 비록 오래된 문제여도 그것을 보는 자신의 관점이 균형 잡힌 것인지, 누구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수십 번 고민했다 한다. 그는 글을 책으로 엮으면서도 이를 자주 되묻고 교열하곤 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그의 주장에 전부 동의할 리는 없다. 하지만 원칙을 중시하고, 좌우를 아우르며, 바로 앞이 아니라 후세대가 살아갈 시간에까지 닿으려는 그의 끝없는 노력에 이의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당신은 누구 편이냐고 묻지는 않기를.
우리 사회를 진정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줄 틀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유권자이자 여론의 주체인 우리 개개인의 몫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선택 지점을 고민하는 일, 그 생각을 나누고 평가하고 채워가는 일은 나를 위해서, 또 우리를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다. 균형 있는 관점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그 바른 지점을 짚어주는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비록 당장 삶이 고되지만 그럼에도 놓지 말아야 할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참고로, 이 책을 읽기로 했다면 밑줄 긋고 싶은 순간이 많을 것이니 미리 적당한 연장을 옆에 두시길!
[책속으로 추가]
지금 우리는 반값 등록금, 보편적 복지, 무상보육을 확대해도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가계부채가 가처분소득의 약 150%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는데도 이것이 충분히 관리 가능하고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여기저기 끝없이 파헤치고 개발ㆍ정비하는 비용을 예산이 아니라 공기업의 빚으로 떠넘기며 앞으로 그런 공기업이 별문제 없을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대책은 실종되고 바람만 있을 뿐이다. 손수건이 돌아가고 있는데도 내게 와서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 모두 믿고 싶어 하는 것인가? _ 132쪽, “믿는 것과 믿고 싶은 것”
정치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정치는 그 사회의 거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이 정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의 면면을 봐도 대부분 우리 사회의 엘리트 출신이다. 왜 그들이 그 정도의 정치밖에 못하겠는가? 어찌 오늘날의 정치가 그들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재벌 개혁을 말하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 국민에게 지탄의 대상이 된 재벌의 문제점은 그들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국가 사회가 같이 만들어온 것이다. 그들이 법 위에 군림했다면 검찰과 사법부도 잘못된 것이고, 각종 특혜를 누리면서 불공정행위가 묵과되었다면 정책과 제도를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 정부도 잘못된 것이다. 또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경쟁의 법칙과 제도가 정해졌다면 이는 정치와 행정뿐 아니라 그들 편에 서서 그런 여론을 조성해온 언론과 학계도 잘못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접근 없이 어느 한 부문을 바꾸겠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실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과성으로 끝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뿐이다. 사회는 유기체와 같다. 한 부문을 바꾸려면 연관된 모든 부문을 함께 바꿔야 한다. _ 150쪽, “사회 운영체계의 전반적 개혁 있어야”
민주주의의 큰 취약점 중 하나는 미래 세대가 오늘날 투표를 통해 대표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령 유권자 비중의 증가와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 저조로 각국에서 점점 더 미래지향적 정책이 퇴조하고 있다. 연금, 조세, 국가부채, 의료, 복지, 부동산 정책 등은 모두 세대 간 이해가 충돌하는 부문이다. 오늘날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이 분야들에 대한 정책 결정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늘리고 현세대의 이익을 보호하는 포퓰리즘 성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증세와 연금 개혁은 더 어려워지고 복지제도 확대는 더 쉽게 채택된다. 현세대에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은 뒤로 미룬 채 중앙은행의 저금리, 통화팽창에 기대어 쉽게 위기를 넘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장기적으로 경제 활력을 떨어뜨려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키며 실업률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_ 187쪽, “민주주의의 위기”
우리나라가 서 있는 지점은 이미 크게 바뀌었으나, 시스템은 아직 개발연대의 것을 바꾸지 못했다. 더 좋은 사회,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 바꿔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만만찮은 비용을 부담할 각오를 해야 한다. 참사에 한탄하고 관련자를 질타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바꾸고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그동안 쉬운 일만 하고 어려운 일은 피했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길은 어른들이 애도와 분노에 갇혀 마녀사냥 하듯 책임자들을 찾아 매질하다 금방 또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번 참사를 계기로 새로운 시스템을 확실히 정착시켜나가는 것이다. 눈물보다 결기가 더 필요한 때다. _ 193쪽, “안전은 비용 없이 얻어지지 않는다”
지난 2014년 1월에 퇴임한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은 언론과 학계의 찬사 속에 그 자리에서 퇴임했다. 그는 전대미문의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정책으로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에 대처함으로써 미국과 세계경제를 대공황의 위험에서 구해냈다는 칭송을 받고 있다. 제2종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좀 더 긴 시계로 본다면 게임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후임인 재닛 옐런 의장의 어깨 위에는 제로 금리를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가 하는 무거운 과제가 걸려 있다. 그와 미 연준이 인플레 유발 없이, 또한 주식시장의 붕괴 없이 이 과제를 적시에 해낼 것인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과거의 예들을 보면 선제적 통화정책, 즉 경기가 한창 회복 중인데 긴축적 통화정책을 적시에 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_ 217쪽, “비상한 대책도 퇴로는 열어놓아야”
미국이 주도하고 국제 공조로 이뤄진 엄청난 재정ㆍ통화 팽창을 통한 이번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은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에 심대한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우리를 비롯해 이들 나라의 정치와 정부 정책의 공정성, 정당성은 앞으로 얼마나 적시에 출구전략을 구사할 것인지, 그리고 그에 따른 비용을 얼마나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배분할 것인지에 따라 평가받게 될 것이다.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보호해주며 장기적으로는 무력한 일반 시민의 주머니를 터는 일이 당장 일자리를 늘리고 성장률을 높였다는 이유로 업적과 성취로 부각될 것인가? 당장 몇 년의 성장률을 높이는 반면 경제 곳곳에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구조적 취약성을 키우는 것이 여론에 의해 박수로 수용된다면 미래와 차세대를 걱정하며 신중한 정책을 채택하는 정부는 앞으로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실패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_ 241쪽,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덫”
노무현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자 이에 대해 보수언론과 강남 주민들을 중심으로 세금폭탄이라며 큰 반발이 생기고 강남 주민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5년 신설한 종합부동산세는 과거 재산세를 일부 흡수한 것이기도 해서 종합부동산세 때문에 국민의 부담이 실제로 얼마나 증가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 2~3조 원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연간 수입량은 약 5000억 달러에 달해 환율이 1000원에서 1300원으로 오르면 약 150조의 추가 부담이 생기는데, 그 절반만 일반 대중이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부담을 진다고 해도 약 70~80조 원의 추가 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 첫 경제팀이 고환율정책을 추진하고 곧 세계 금융위기로 환율이 크게 올라 국민 부담이 늘어나도 보수언론이나 강남 주민은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물론 수출기업에는 큰 이득이 되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소니나 일본 자동차업체를 제치고 세계시장에서 약진하고 당기순이익이 급증하게 된 데에는 2008년 이후의 환율정책이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_ 244쪽,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덫”
우리는 지금도 1960~1970년대 성장지상주의의 사고방식에 갇혀 경제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경제성장률, 수출증가율, 경상수지 흑자 등이 정부의 최고 경제 업적으로 인식되어왔다. 상대적으로 소득 격차의 확대, 빈자들의 곤궁함에 대한 주의는 소홀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못살고 소득과 부가 상대적으로 균등하게 분배되었으며 친척이나 이웃 간 상부상조의 문화가 지배했던 과거에는 이러한 정책 방향이 타당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경제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은 평균의 개념이지 국민 생활 전반의 사정을 말해주는 지표는 아니다. …… 성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우리 사회지표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 성장도 시장경제도 지켜내기 어려워질지 모른다. 단순히 시혜적 복지를 늘리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조세와 재정지출의 구조, 거시경제정책의 목표, 공정경쟁 질서와 시장구조, 고용제도 전반에 대한 재구성을 검토해야 한다. 이는 통일 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_ 265~266쪽,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북한 내부의 변화는 외부와의 협력, 개방 없이 쉽게 이뤄질 수 없음이 지난 30년의 경험으로 분명해졌다. 우리가 남북 간 협력 단절과 대결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에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는 점점 심화되고, 일본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 하고 있다. 같은 민족끼리 어떻게든 협력과 교류를 확대해가야만 북한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고 통일의 기반도 닦을 수 있다. 설령 북한에 퍼주었다 한들 얼마나 퍼주었겠는가. 부실 저축은행 하나 구제하는 데 필요한 돈만큼이나 들었을까. 우리의 후세들이 100년 후 지금의 남북한의 관계를, 남북한 지도자의 식견과 의도를 어떻게 역사서에 평가할지 생각하며 남북 관계를 대범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후손들에게 지금 우리가 100년 전 조선의 우리 선조들처럼 평가되지 않기를 바란다. _ 285~286쪽, “중국, 세계 그리고 한반도”
부동산 가격 상승은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젊은 세대가 노후 세대를 위해 세금을 내는 것과 같다. 젊은이들이 가족을 이루고 살 집을 마련하는 데 내야 하는 비용이 느는 것이나 이들이 노인의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이나 실질적 효과는 비슷하다. 차이점은 전자의 경우 젊은 세대가 집과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만 세금을 많이 내고, 그렇지 못한 빈곤층 노후 세대들에 대해서는 전혀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다. 만약 집값을 지금보다 훨씬 떨어뜨리고 대신 젊은 세대에게 그만큼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하면 이들의 부담은 같은 반면, 이를 노인층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부가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이 내리면 기업의 투자비용, 인프라 건설비용, 사무실 및 가게 임대비용이 내려가 그만큼 장기적으로 경제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고, 젊은 세대의 내 집 마련을 앞당겨 출산율을 높일 수도 있다. _ 288쪽, “‘고령화 늪’과 집값”
규제는 국가가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을 위해, 또한 여론이나 투표에 대표되지 않는 차세대의 복지를 위해 도입하여 시행한 경우가 많다. 이런 규제들이 규제 완화 드라이브 속에 희생된다면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규제 완화 드라이브의 최종 수혜자는 결국 정치적 영향력이 큰 집단이 되고, 규제 개혁이 진행되면서 그 과정에서 원래의 취지와 달리 결국 규제가 정치적으로 포획되게 된다. 이는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MIT의 사이먼 존슨 교수는 정부 당국이 월스트리트의 규제 완화 로비에 포획된 결과로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354쪽,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규제 완화인가”
때때로 중앙은행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지금 당장 그 잘잘못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통화정책은 적어도 2~3년이 흐른 후에야 그 적절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국민경제를 위해 단기적으로 필요해 보이는 정책들이 장기적으로는 병을 깊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각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이를 존중해준다. 지금 우리에게 실물투자 확대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의 신뢰성이라는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_ 357쪽, “중앙은행의 신뢰성”
국제사회에서의 힘과 주도권은 실물경제의 규모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력 없이 세계문제에 대해 주도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중국 금융시장의 개방과 자유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국 지도부도 수년 전부터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으려면 국내 금리의 자유화, 환율정책의 유연화 등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국내금융 자유화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무엇보다 기업과 금융기관이 시장원리에 따라 운용되게 해야 하며, 그러려면 이들의 지배구조가 변해야 하고,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길은 민영화를 추구하는 것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 금융개혁을 추진하려는 중국의 가장 큰 딜레마다. _ 428쪽, “중국 경제의 미래”
연금제도의 강화 없이 한국인 삶의 안정과 행복을 도모하기는 어렵다.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은 기업연금과 개인연금 제도의 확대, 공적연금 체계의 개편 등으로 풀어가야지 연금 지급률을 깎아 해결하려는 것은 최선의 해법으로 보기 어렵다. 유능한 인재들을 군과 정부로 끌어들여 이들이 본분의 역할에 충실케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목표 중 하나다. 정부나 국회가 국가정책과 제도에 대해 좀 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서 개선책을 찾아나가기를 기대한다. 435쪽, “공적연금 개혁”
기본정보
ISBN | 9788946060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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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출시)일자 | 2015년 05월 29일 |
쪽수 | 448쪽 |
크기 |
153 * 225
* 23
mm
/ 665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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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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