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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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마을?은 용두리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노년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장편소설이다. 수청군수는 오랫동안 비어 있던 용두리를 부활시키고자 입주자를 모집한다. 첫 번째 입주자인 민우기는 치매에 걸려 용두리로 온 박영숙을 보살피며 사랑을 키워 간다. 용두리에서 여생을 보내러 온 김병만 역시 주방일을 하다가 용두리로 온 박나리와 사랑하게 된다. 얼마 후 용두리 프로젝트가 실패하게 되자 군수는 입주자들을 내보내려 하지만, 입주자들은 어떻게든 용두리 마을에서 살아 보려고 합심한다. 이경희 소설가는 민우기라는 인물을 통해서 아버지가 바라던 세상을 실현시켜 주고 싶었던 만큼, 심심치 않은 익살과 풍자로 이야기를 밝게 풀어나가고자 했다. “가난하고 외로운 로맨티스트”인 그들의 삶이 고단하거나 슬프지만은 않은 이유다.
작가정보
작가의 말
무슨 이야기를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그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이 말이 하고 싶어서 그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그 말을 전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얼핏 이처럼 시끄러운 세상에 널린 게 주제와 소재일 텐데 무슨 고민일까 싶기도 하겠지만, 소설을 위한 이야기는 작가의 육화를 거치는 작업이라 취사와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이번 소설은 오랜 시간 엄살을 부리며 고민한 결과물이라고 말하기 쑥스럽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내 안에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소중한 이야기라 쉽게 꺼낼 수 없었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을 소설처럼 쓰는 일이 또 소설을 사실처럼 쓰는 일이 작가의 숙명이지만 아버지 이야기는 달랐다. 사실과 소설의 경계를 적당히 구분 짓기가 어려웠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감정의 높낮이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소재는 분명한데, 무슨 말이 하고 싶어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많이 머뭇거렸다.
그냥 솔직하게 풀어 보자는 결심이 서면서 나는 소설 속의 민우기라는 인물에게 아버지를 투영시켰다. 살아계시면 딱 그 나이였을 아버지도 선조한테 물려받은 지관이라는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농사꾼으로 살아야 하는데 농사에는 별 흥미가 없고 천지만물과 우주의 기운에 더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가난하고 외로운 로맨티스트였다. 하늘과 땅의 조화를 읽어 내야만 찾을 수 있다는 최고의 명당은 그래서 아버지가 고달픈 삶을 위로받기 위해서 꿈꾸던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민우기라는 인물을 통해서 아버지가 바라던 세상을 실현시켜 주고 싶었던 이유도 그 아름다운 환상이 복잡한 세상과 만나 부딪쳐야 더 빛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불행한 과거에만 머물러 있거나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심심치 않은 익살과 풍자로 이야기를 밝게 풀었다. 에피소드와 등장인물, 지명 등 실제의 것들을 상당수 차용한 것도 실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의도적 장치로 소설의 재미를 주기 위함이다.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이야기를 꺼내 놓고 나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진해진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아버지가 꿈꾸던 그 명당인 것만 같아 서럽고 죄송하다.
명당이 버림받고 지친 이들을 받아 주는 안식처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껄껄껄 웃을지도 모를 아버지께, 그곳에선 안녕하신지 안부를 묻는다.
2018년 10월 이경희
목차
- 1부
2부
3부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육십 넘은 거 맞아요?”
“네, 그럼요. 민증 보여드릴까요?”
자신을 꼬나보던 이유가 다른데 있음을 안 남자가 가방 속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자신 있게 보여주었다. 주민등록증 속의 남자는 갓 전역한 젊은이 같았다. 군수는 눈앞에 서 있는 남자와 주민등록증에 박힌 남자를 번갈아 확인했다.
“진짜 나이가 몇이오? 알고 있겠지만 용두리 입주자 규정은 60이 넘어야 합니다.”
“보고도 안 믿습니까? 예순 셋, 돼지띠 맞습니다. 제가 뭐 하러 나이를 속이겠습니까.”
남자가 순진한 눈빛을 껌벅거리며 말했다. 군수는 순간 난감했다. 남자를 용두리 입주민으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했다. 나이만 따지자면 입주자 규정에 어긋날 게 없지만 그는 나이보다 지나치게 젊고 건강해 보였다. 군수는 남자를 보면서 입주자의 나이를 너무 낮게 잡은 것은 아닌가 당황했다. 입주자 나이 규정을 육십이 아니라 육십오 세쯤으로 했더라면 지금 같은 애매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니, 칠십이 넘은 입주자들을 골랐어도 큰 무리 없었을 거라는 후회가 들었다. 남자는 누가 봐도 오십도 안 돼 보였다. (12쪽)
모두가 똑같아서 아버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특징이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혹시 아버지가 조끼를 잘못 입은 것은 아닌가 해서 옆 동네에도 가 보았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 옆 동네 역시 조끼 색만 다를 뿐 비슷한 얼굴들이었다. 박 과장은 하는 수 없이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다. 한참 후에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바로 앞에서 한 노인이 꾸물꾸물 일어서며 애비냐고 물었다. 그는 아버지! 하고 불렀다. 모여 있던 노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순간, 그는 또 아버지를 잃어버릴 뻔 했다. (119쪽)
그러나 민우기를 직접 찾아온 지역 신문사 사장은 말단 기자나 편집국장과는 달랐다. 그는 맨입과 맨손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민우기 앞에 정중히 무릎 꿇은 사장이 말했다.
“네, 물론 세상에는 두 분보다 더 간곡한 러브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씀하셨듯이 세 집 걸러 한 집이 노인인 세상에서 노인들의 연애담은 더 이상 주책도 아니고 대단한 구경거리도 아닙니다. 신촌이나 대학로 극장에는 이십 대보다 육십 대가 더 북적일 것이고, 패션몰이나 공연장은 실버 세대를 잡기 위한 마케팅으로 시끄러울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그들이 입을 맞추거나 끌어안는 일 따위는 이제 큰 구경거리가 아니라는 얘기죠. 세상은 아주 느리게 물밑의 풍경처럼 고요한 아우성으로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181쪽)
기본정보
ISBN | 9788939230279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10월 29일 |
쪽수 | 297쪽 |
크기 |
128 * 189
* 22
mm
/ 313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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