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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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작가정보
저자 강형철은 1955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숭실대 철학과, 동대학원에서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5년 『민중시』 2집에 「해망동 일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해망동 일기』, 『야트막한 사랑』,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평론집으로 『시인의 길 사람의 길』, 『발효의 시학』 등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상임이사와 문예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다.
목차
- 1부
눈인사|이슬비 이용법|구직|변명(辨明), 멸치|가로하늘타기|은적운(隱寂韻) 7|은적운(隱寂韻) 13|깊은 산속 옹달샘|사람의 일[人事]|틈|수색 지나며|꽃푼수|소리 너머|외출(外出)|장전항을 떠나며
2부
농사금지복|출향(出鄕)|이명(耳鳴)|환생|미인 예찬|한 소식|은적운(隱寂韻) 10|추석 차례|문병일지|담장 ?허지기 전|담장 ?허지다|수면제|정중한 부탁|저 들판 작은 교회
3부
쉰 살의 맨손체조|훔쳐온 돌|뼈 주무르는 다리|아열대 지대의 온대인|초봄|팔꿈치 세상 1|팔꿈치 세상 2|자전거 도둑|광화문의 야생마|소망|하나마나한 결의|공기잔치|복면강도|노래|차나 한 잔
4부
은적운(隱寂韻) 12|줄잡기|발 맛|집단농성|겨울 몽골 초원에서|사랑의 채무|철 지난 반성문|오동나무 곁에서|조장(潮葬)은 어떨까|고무신 술꾼|통영에서|비켜서서 혹은 멀리 서서|내 안의 흑백다방|봄날, 남산|재생
해설 황현산|시인의 말
책 속으로
환생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오락가락하는 老母
옛 기억이 되살아나시는지 밥 안치는 일을 자청하신다
손목 아래로 빚어지는 정겨운 리듬
썩썩 써스럭, 써-억 써억 썩
바가지가 요란해진다
쏟아지는 수돗물이 시원타며 손등이 웃고
어둑한 집 안의 오후가 환해진다
어머니 일흔아홉이니
쌀 씻어 밥 안치는 일은 칠십 년은 됐으리라
짚풀은 부지깽이로 아궁이에 넣어 지피고
한참 후엔 전기밥통에 쌀 씻어 안쳤으리라
식구들의 사발에 깨끼밥도 푸고
때로 고봉밥 꾹꾹 눌러 펐으리라
떨어지는 밥알은 손으로 주워드시면서
“엄니, 다시 시집가도 되겠네, 쌀 씻는 소리 들응게”
“야 좀 봐라, 못 허는 소리가 없네, 떼-엑!”
수면제
어떤 이는 나에게 효자라 말하고
어떻게 삼 년 동안 혼자 어머니를 모시냐고 궁금해하지만
나는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웃는다
여동생도 삼 년이나 모셨고
나는 이제 조금 모시고 살뿐이며
실은 내가 모시는 게 아니고
어머니에게 개인지도 받는다는 것
순간순간 온몸으로 깨우쳐주시는 가르침 받고 있는 것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우렁각시보다 더 요긴한
기막힌 처방전 하나 지니고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육 년쯤 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기발한 행동은 줄였지만
이따금 한마디씩 깨우쳐주시는 재미가 있고
어머니의 놀라운 상상력에 내 션찮은 상상력은 늘 어리둥절한다
부축하며 걸어도 주간보호센터 선생님들이 있고
학교에서 돌아오실 시간엔
하이코 우리 어머니 오셨네 큰소리로 모시면 된다
저녁밥을 천천히 대화하며 나누어 먹고
일회용 팬티 바꾸어드린 뒤
치카치카 양치를 하면 하루가 끝나는 것
한발 한발 서서히 침대에 안내하고
아직 정신이 있는 어머니께 비장의 수면제를 드린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네요 어머니 학교 갔다 오시고 밥도 먹고 야쿠르트로 입가심도 했고 약도 먹었네요 양치도 하고 팬티도 갈아입었으니 오늘은 다 끝났네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이제 편안히 주무세요 저는 제방으로 가서 이제 공부 좀 하려고요 어머니 정말 사랑해요
평생 장남 일에 안 된다는 말 한 번 안 하신 어머니
내가 교회고 절이라고 하셨던 어머니
공부해야 한다는 말엔 그 어떤 것도 방해가 돼선 안 된다고 믿는 어머니
‘공부해야 돼요’라는 말은
그래서 가끔 힘들면 사용하는
우리 어머니 최고의 수면제
은적운(隱寂韻) 12
붕어들이 서로 꿀붙으려다 미끄러져 수초 옆을 지나는 소리
수염밖에 별 자랑 없는 메기란 놈 으스대는 소리
빠가사리란 놈 쓸데없이 폼 잡으며 허리 돌리는 소리
그것들 조용하게 굽어보며
언제 덥석 물 것인가 궁리하는 가물치 운산하는 소리
그 아래께
어리연꽃 발가락에 물든 황토물 씻기는 소리
하하 웃음 지며 허공에 발 뻗으며 자라란 놈 떠가는 소리
출판사 서평
육십갑자를 돌아 부르는 지극한 사모곡
겨우 존재하는 것들의 속살을 보여줘 온 강형철 시인이 십여 년 만에 펴낸 네 번째 시집 『환생』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는 강형철 시인의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매개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노래한 시편들이 실려 있다. 독자들은 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 지쳐 놓치고 있던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삶의 근본임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마음은 어머니를 위해 부르는 우리 세대의 사모곡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적 몽환의 세계, 그 울림
환갑을 바라보는 강형철 시인은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육십갑자를 돌아낸 시인의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 십여 년 만에 실천문학에서 펴낸 그의 네 번째 시집 『환생』은 ‘환생’이라는 것은 다시 돌아온다는 표층적 의미를 넘어 심층적이고 복합적인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먼저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통해 바라본 환생은 정신이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 간혹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정신을 통해 어머니와 시인은 예전의 관계성을 회복하며 그것은 모자간에 형성된 시간의 지층을 반추하는 일이다. 이는 “어둑한 집 안의 오후가 환해”(「환생」)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과거의 반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피가 뜨거웠던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느라 고초를 겪었던 아들을 생각하곤, 다시 그 아들이 잡혀갈까봐 걱정하는 노모가 있다. “존재의 바닥으로 내려가 현실의 정신과 몽환의 정신이 하나로 되어 있는 어머니는 저 옛날의 아들 같은 젊음들이 또 다시 큰일 앞에 서게 될”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모성의 본연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불교적 세계관을 토대로 보이는 환생이 있다. 즉 형상을 바꾸어서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 말로 세상사의 인연들이 연못 속의 인과관계처럼 드러나며 그 시선의 한가운데에는 시인의 따스한 눈길이 있다. 이제 어머니의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며, 만일 극락이 있다면 또는 환생이 있다면 어머니라는 존재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 극락의 한 지점을 시인은 드디어 포착해낸다.
붕어들이 서로 꿀 붙으려다 미끄러져 수초 옆을 지나는 소리
수염밖에 별 자랑 없는 메기란 놈 으스대는 소리
빠가사리란 놈 쓸데없이 폼 잡으며 허리 돌리는 소리
그것들 조용하게 굽어보며
언제 덥썩 물 것인가 궁리하는 가물치 운산하는 소리
그 아래께
어리연꽃 발가락에 물든 황톳물 씻기는 소리
하하 웃음지며 허공에 발 뻗으며 자라란 놈 떠가는 소리
_「은적운 12」 전문
마지막으로 환생의 의미를 시인은 희망적 세계의 부활로 여기기도 한다. “암석쯤이야 어깨로 밀며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남산보다 더 큰 산이라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어디선가 무엇인가 다가오는 소리”(「봄날, 남산」)를 환청처럼 듣는다. 시인은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젊은 시절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청춘을 바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소망은 아직도 이 땅에 봄날처럼 희망이 찾아올 것을 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시인이 환생을 하는 순간이며, 존재의 이유인 것이다.
이 시집은 시인이 발표한 지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시들과 최근의 시들을 합쳐 총 4부로 묶었다. 1부는 나름으로 전체적인 이야기를 모았고 2부는 어머니와 살고 있는 이야기를 모았다. 3부와 4부는 최근에 생각하는 것들을 시로 쓴 것들이다. 시인은 특히 2부 시편들은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웃으면서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품들로 엮었다.
이번 강형철 시집 『환생』은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어머니의 정겹고 지혜로운 삶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소중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추천의 글
무거운 실존의 비애를 사뿐히 보듬고 가는 농담도 있다. 그 밑에 잠긴 수심의 부력은 얼마나 될까? 그 팽팽한 침묵을 견디는 시, 「이슬비 이용법」, 「농사금지복」, 「출향」 같은 시들은 인디언 추장의 마지막 모습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청자, 백자 같은 것에는 관심조차 없이, 신동엽처럼 장독 항아리, 투가리 미학을 감내하는, 시인의 느리고 투박하고 능청맞은 풍자와 해학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운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구차스런 일상들을 소리 없이 구원한다. 자의식 과잉과 명구(名句) 남발, 재능 낭비로 가득 찬 이즈막의 시적 현시욕에 이렇게 심하게 저항했던 사례가 있었을까 싶다. 시를 읽다 웃어본 것도 울어본 것도 얼마만인지.
_김형수(시인)
시인의 말
열아홉 무렵 어머니의 품을 떠나 사십여 년 가까이 객지 생활을 하고 다시 그 품에 돌아와서 새삼 어머니의 사랑을 실감한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생각에 약간의 자부심이랄까 그런 것들이 없지 않았는데 이즈음에야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사는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도 깨달았다. 여전히 나는 미욱한 아들이다.
천승세 선생님이 “시란 목숨의 반성문이다”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아직 그 정도까지 내 시는 못 갔지만 나에게 있어 시는 반성문인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부끄럽다. 그렇지만 이 시집에서 혹시 좋은 대목을 발견한다면 나를 매개로 드러난 고마운 사람들 모습 덕분이라고. 학자의 가상물질이었던 힉스가 현실로 출현하듯이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그 찬란한 헌신과 사랑이 현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집을 내는 시점에 안타까운 것은 최근 나의 모든 것에 가장 중심인 어머니가 기력이 쇠해서 병원에 계신다는 것, 여전히 엄히 깨우쳐주시고 가르쳐주시지 않고 생각만 많이 하시고 말씀이 없으시다는 것, 그래서 많이 송구하고 아프다.
어머니 흉봤으니 큰일났다고 말씀드리면 일어나실까?
2013년 겨울날
은적사 아랫동네에서
기본정보
ISBN | 9788939222137 |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12월 13일 | ||
쪽수 | 144쪽 | ||
크기 |
148 * 209
* 20
mm
/ 260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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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권수 | 1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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