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핑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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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그린 핑거〉에는 어린 시절 언청이였지만 여러 차례의 성형수술 끝에 정상적인 외모를 갖게 된 써니가 등장한다. 과거를 숨긴 채 남부럽지 않은 결혼 생활을 하던 써니의 일상은 희주모녀로 인해 흔들리게 된다.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전망 좋은 집〉의 혜령은 거짓 임신을 꾸민 채 미혼모가 낳은 아이를 알아보러 다닌다.
작가는 두 이야기를 통해 비뚤어진 방법으로 결핍을 채우려 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자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결핍을 확인하고 어긋난 욕망을 채우려 한다. 5편의 연작「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은 우리 시대 남녀의 만남, 사랑, 이별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랑이라는 마법 같은 감정이 사라진 후의 남녀 관계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정보
목차
- 그린핑거
전망 좋은 집
블루오션 연애학 -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너무 고결한 당신 -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Heartbreaking Love -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초콜릿 -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모네의 정원으로 -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해설|소영현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1998년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이래, 현실감있는 소재로 동세대 삶의 단면을 감각적이고 날카롭게 포착하는 작품을 발표해온 김윤영의 세번째 소설집 『그린 핑거』가 출간되었다. 우리 시대 남녀의 만남, 사랑, 이별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연작과 발표 당시부터 호평을 받은 표제작 「그린 핑거」를 비롯해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소소한 일상의 국면을 극적으로 이끌어가는 경쾌한 서사의 힘을 느낄 수 있고 통속적인 장치와 소재를 통해 현실감을 극대화하고 욕망을 좇는 세태의 통속성을 비판적으로 그려낸 소설집이다. 내밀한 감정이나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던 여성의 자의식을 타인의 시선으로 규정된 결핍으로 해석하여 사회화ㆍ객관화시키는 김윤영의 소설들은 차세대 여성문학, 여성문학 이후 여성문학의 행보를 보여주는 주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규정된 결핍, 어긋난 욕망의 발현
표제작『그린 핑거』에서 어린시절 언청이였으나 여러 차례의 성형수술 끝에 정상적인 외모를 갖게 된 ‘써니’는 자신의 옛 모습을 숨긴 채 교포인 남편과 결혼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산다. 아이 대신 정원 가꾸기와 화초 키우기에 취미를 붙여 동네사람들에게 ‘그린 핑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솜씨가 좋은 써니는 자상한 남편과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희주모녀가 써니네 집에 잠시 다녀간 뒤로 써니 부부의 일상은 뿌리째 흔들린다. 희주를 유난히 예뻐하던 남편을 의심한 써니는 남편이 희주모녀를 그리워하고, 자신의 선천성 장애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편은 어디론가 떠나고 홀로 남은 써니는 남편을 기다리며, 정원을 가꾸며 지낸다.
『전망 좋은 집』에서는 남편과 헤어지고 홀로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주인공 혜령 앞에 대학시절 동창인 은호가 나타난다. 단골들과 은호 앞에서 임신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 혜령은 거짓 임신을 꾸민 채 초음파 사진이나 미혼모가 낳은 아이를 알아보러 다닌다. 혜령의 사연과 처지를 알게 된 은호는 혜령에게 노숙하는 여인이 낳은 아이를 남몰래 떠안겨준다. 은호의 뜻을 이해할 수 없던 혜령은 강하게 거부하지만 끝내 아이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와 마치 자신이 출산한 듯 가장한다. 그뒤 은호는 이사를 가고 혜령은 가게도 팔고 전망이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
『그린 핑거』의 써니와 『전망 좋은 집』의 혜령은 모두 행복한 결혼생활과 아이를 향한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 여주인공들로 집착이 지나친 나머지 비뚤어진 방법으로나마 결핍을 채우려 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설령 선천성 기형을 가진 써니일지라도, 스스로의 자각에 의해 결핍을 느끼고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결핍을 확인하게 된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꿈에 나타나 써니를 괴롭히며 놀리는 동네 꼬마녀석들, 모든 것이 정상이 되었다고 믿고 도미했으나 희주엄마에 의해 확인되는 기형의 흔적, 당사자가 언급하지 않아도 불어나는 몸을 보고 임신을 확신하며 화제를 삼는 혜령의 단골손님은 바로 그녀들의 결핍을 규정짓는 타인의 시선이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소영현은 김윤영 소설에서 여성문학의 새로운 행보를 탐색한다. 내밀한 감정의 토로나 사적인 영역의 확장에 머물던 전대 여성문학에서 벗어나 여성인물의 감정을 사회화하고 객관화하는 김윤영의 소설들은 타인의 시선을 정면으로 문제삼아 “개개인의 욕망의 향배를 넘어 사회적으로 구조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교환구조를 투시하면서, 그렇게 ‘여성문학 이후의 여성문학’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경쾌한 이야기 속에 담아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마법 같은 감정이 사라진 연애와 결혼
이번 소설집에 실린 5편의 연작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은 연애에 관한, 연애를 위한 실전사례 분석이자 문화생태학적 보고서이다. 사랑이라는 마법 같은 감정이 지나고 난 뒤의 연애관계와 남녀관계의 통속적이고 현실적인 면면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이 연작들에서 인물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있으며 엇갈린 만남을 갖는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낭만적이거나 애틋한 감정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교환구조의 지배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작의 첫번째 『블루오션 연애학』의 잘나가는 펀드매니저 지은은 결혼과 연애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증시와 별다르지 않고, 누구를 만나더라도 이후의 전망에 발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고 믿으며 ‘블루오션 전략’을 따르고자 한다. 지은은 요란하기만 하고 실속 없는 결혼식 피로연을 피해 찾은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난 이진호에게 끌린다. 이진호는 인터넷 대행써비스 싸이트를 운영하면서 그럴 듯한 외모에 흔치 않은 고급 브랜드의 제품을 걸치고 외제 자동차를 끌고 다니는 남자이다. 나름대로 치밀한 전략과 전망으로 한 단계씩 연애 과정을 거치는 지은에게 진호는 산호초가 많은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그들 앞에 나타난 진호의 친구 P는 진호의 과거와 현재의 사업에 대해 폭로한다.
블루오션 전략은 어쩌면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얘기였다. 그는 경쟁상대 없이 나를 독자적 상품으로 차지한 셈이다. (…) 남자를 바꾸는 건 오일교환과도 같다. 독자적 상품으로 키워볼 만한 상대인지 그 여부가 윤리적 결함을 좌우할 수 있다. 내 경쟁우위가 지속되는 한, 즉 내 상품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선 난 아직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연애의 경제학은 신봉한다. 아주 철저히.
나는 행복을 꿈꾸지 않는다. 그래서 실패도 하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블루오션 연애학』)
진호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연애의 경제학’을 믿는 지은은 그를 뿌리치지 못한다. 김윤영의 주인공들에게 연애와 결혼이란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얻는 경제활동에 다름아니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함께하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연애감정을 삼켜버린 뒤, 연애와 결혼은 자본주의적 교환논리에 충실한 제도로 전락한 것이다.
김윤영의 소설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가속화되는 소비와 문화의 결합구조를 보여주고, 그것들이 결국 우리의 현실에서 배재된 것들, 불연속적인 지점들을 통해 다른 의미를 마련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김윤영의 소설에서 결국 연애와 결혼은 당사자인 남녀를 보다 큰 상징적 조직 내의 행위자로 만들면서 집안과 친족을 넘어선 사회 전체의 교환구조를 보여줄 수 있는 거멀못이 된다. 나아가 김윤영의 소설은 철저한 경제인을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인간으로서의 신뢰가 형성되기란 얼마나 지난한가를, 그런 신뢰를 나누기에는 이 사회가 얼마나 척박한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현대사회의 인간존재론을 말한다. 인간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영현 해설 〈21세기형 교환구조에 관한 문화생태학적 보고서〉)
이렇게 자본주의적인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들을 그려내기 위해 김윤영은 통속적이고 물신화된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펀드매니저 A의 동료와 데이트하면서 누군가의 선배와 양다리를 걸치고 광고회사 AE인 B의 애인을 뺏어 작은 분란을 일으킨 후, 결국 온라인콘텐츠 개발자인 C의 동업자와 식을 치르는’(『블루오션 연애학』) 요즈음의 세태를 끌어들이면서, ‘스와치의 백배 이상을 호가하는 명품’ 그랜드에 혹하고, 잘 빠진 재규어, 랄프로렌 셔츠, 블랑팡이나 칼라트라바 손목시계, 클럽메드로의 휴가 등, “문학적 코드와는 거리가 먼 통속적 코드들”을 활용해 “당대성이라는 큰힘”(하성란, 뒤표지 글)을 획득하게 된다.
한편 수차례에 걸쳐 장기기증을 하면서 타인에 대한 봉사를 실천하며 사는『너무 고결한 당신』의 우인, 아이 때문에 남편을 잃고 싶지는 않아 다이옥신 중독을 택한 『Heartbreaking Love』의 우영은 『블루오션 연애학』의 지은이나, 『초콜릿』의 진호와는 구별된다. 이성애적인 사랑을 뛰어넘어 인류애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우인이나, 남편을 위해 자신의 몸을 상하면서까지 진정한 사랑을 지키려고 한 우영은 김윤영의 세속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인물들과 달리 여전히 낭만적인 사랑과 연애, 결혼에 대한 이상을 꿈꾼다. 이 정반대의 두 인물군은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연작 안에서 서로 충돌하다가, 연작의 마지막 편 『모네의 정원으로』에 이르러서는 지은과 우인의 인연으로 끝을 맺는다. 진호와 헤어진 지은은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드나들던 병실에서 사촌누나인 우영을 만나러 온 우인을 만나게 된다. 그림을 보는 비슷한 취향을 계기로 말문을 튼 두 사람은 우인이 병원을 떠나면서 기약없는 만남을 약속한다. 몇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뒤, 증권회사에서 구조조정에 희생된 지은과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오도가도 못한 신세였던 우인은 모네의 전시회에서 우연히 조우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또다른 인연에 가슴 뿌듯해한다. 전편에서 불편한 정도로 현실적이었던 지은 같은 자본주의적 인물과 요즘 같은 시대에 과연 있을까 싶은 우인 같은 비현실적인 인물이 그렇게 교차하고 인연이 되는 지점에서 연작은 끝을 맺는다.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주의적이고 인류애적인 사랑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다른 연애와 사랑에 대한 암시에 다름아니다.
■ 추천사
김윤영의 소설들은 독특하다. ‘블랑팡’이나 ‘칼라트라바’ 같은 브랜드에서 학벌, 직장, 외모 등등 인간의 본질을 대신하는 브랜드까지 문학적 코드와는 거리가 먼 통속적 코드들이 넘쳐나지만 묘하게도 이 통속성은 어느 순간 당대성이라는 큰힘을 획득하게 된다. 남자를 바꾸는 게 오일 교환만큼이나 쉽고 연애 또한 경제학이라 생각하는 연인들의 물신화된 사회와 사랑을 읽어내려면 역시 물신화의 코드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소설들은 물수제비처럼 가볍게 수면 위를 날아가지만 아주 먼 곳까지 여러 겹의 파장을 일으키며 오랫동안 흔들린다. 자칫 달콤한 연애와 감미로운 사랑의 속삭임을 기대했다간 허를 찔리고 말 것이다. 사랑의 시작과 동시에 이미 파국으로 치닫는 이 일곱 편의 사랑이야기는 기괴하고 모호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로 끓인 “뻘건 살과 도드라진 뼈”의 국처럼 비리고 역겹기만 하다.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의 맛이다.
김윤영의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근엄하여 조금은 경직되어 보이기까지 하던 이 문학의 중심을 향해 감히 누가 ‘루이뷔똥’이라는 속물성을 던질 수 있었겠는가. 그가 던진 작고 단단한 조약돌의 힘은 아직까지도 유효하고 그의 소설은 우리에게 익숙한 문학이 아직 발딛지 않은 블루오션의 영역에 있다.
-하성란(소설가)
기본정보
ISBN | 9788936437060 |
---|---|
발행(출시)일자 | 2008년 08월 30일 |
쪽수 | 271쪽 |
크기 |
145 * 210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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