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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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언어 감각과 새로운 상상력을 지닌 시인의 탄생
이해와 오해 사이를 건너는 알쏭달쏭의 힘, 권창섭 첫 시집
작가의 말
“이건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인데……”라는 말에
“창섭씨, 절 너무 믿지 마세요”라며 고개를 젓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난
그 사람에게 모든 걸 말하고 싶어졌다.
주저하는 사람이 아주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여기에 적힌 것들이 모두 내 이야기라면,
누구에게나 떠들고 다닌 이야기도 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다.
(…)
두서없이 쏟아지게 될 나의 이야기들 앞에
당신도 고개를 저어주길, 망설여주길, 머뭇거려주길.
당신의 주저하는 모습을 보면,
난 당신을 믿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또다시 무언가,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주저하는 당신이 아주 오래 살기를.
어쩌다 마주치게 된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낼 만큼 지내다 가셨으면 좋겠다.
2021년 7월
권창섭
목차
- 제1부ㆍ밖에서 안으로
뚜세 러브
구체적인 삶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
아이 미스 언더스탠딩
유희왕
39
완벽한 사랑
죄책감들
화곡(禾谷)
ISFP
설날
이월(移越)
광화문
제2부ㆍ안에서 안으로
펑
육도(六道)
브로콜리가 없던 화요일
월요일
나이키의 역사
버릇
축제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는데
폴란드는 뽈스까, 거꾸로 하면
검침
49재
더블링
만우절
세습
매생이 전복중
제3부ㆍ안에서 밖으로
사과 어폴로지
긴장들
강제집행
사월의 언어학
1반
계급
Why-FI
사이시옷
적자, 생존이라고
박사 학위 없는 시간강사의 글쓰기 수업
정의의 행정학
비교의 사회학
분류의 정치학
플라나리아
제4부ㆍ밖에서 밖으로
달 사람 일
213 Round
순환론
완벽한 사랑 2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유희왕 2
번잡들
잉여들
하여튼 여하튼
짜빠구리
스스로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때
순환론 2
조금은 민망할 수도 있어
게스트
해설|선우은실
시인의 말
추천사
-
이런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왜 시를 쓸까? 이런 궁금증도 가져본 적 있다. 사람들은 왜 시를 읽을까? 이제는 안다. 어떤 가려움, 어떤 알쏭달쏭은 시를 쓰거나 읽는 행위를 거쳐서야 잦아들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어떤 맛, 어떤 순환, 어떤 동그라미는 오직 시를 경유해서만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가령, 메로나의 귀퉁이를 혀로 마모시켜 에로나로 만들 때 녹아내리는 맛(「완벽한 사랑」)이랄지, 마라를 말하는 것만으로 혀가 얼얼해지는 자극의 순환(「순환론」)이랄지, 더 큰 케이크 앞에서 더 멀리 둘러앉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동그라미(「펑」) 같은 것들. 시를 통해서만 드러나고 감각할 수 있는 삶의 구체가 있다는 걸, 권창섭의 시집을 읽으며 느꼈다. 그리고 그것에 매료되었음을 고백한다.
책 속으로
도로 눈이 감겨 뚜세를 만나러 가면
어느새 뚜세도
하나 둘 셋도 사라지고
달이, 달이, 아직 조금은 남아
나는 말하지, “사랑해요!”
내 잠꼬대 속 ‘사랑해요!’를
‘살아야 해요!’로 들었다는 당신에게
-「뚜세 러브」 부분
고양이는 한국어 안에서만 고양이
Cat은 영어 안에서만 Cat
ねこ는 일본어 안에서만 ねこ
(…)
게스트는 게스트인 줄 모르고
호스트만 호스트인 줄 알던 게스트하우스
ねこ 게스트하우스 にほんご
Cat 게스트하우스 English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 부분
장단이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점이란 없으니, 점을 이으면 선이 되고, 면적이 존재하지 않는 완벽
한 선이란 없으니, 선을 쌓으면 면이 되고, 부피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면이란 없으니, 면을 불리면 공간이 되는데, (…)
완벽한 공간이란 없으니, 우린 이그러진 면도 많았고, 완벽한 면이란 없으니, 우린 잘못된 선을 긋기도 했고, 완벽한 선이란 없으니, 우린 서로를 미워했던 점도 많았는데,
-「완벽한 사랑」 부분
사람이 많이 줄었네
필요가 없잖아
필요하지 않으면 사라져도 되는 걸까
퇴화의 이유는 그것이 필요 없기 때문은 아니야
퇴화를 퇴행적 진화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해
나는 눈물이 사라지는 쪽으로 진화했다
뭍에 사는 동물들도 원래 다 물에서 살았대
우리도 다시 물속에 오래 있으면
물고기가 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가능할 것 같아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사람들이 많이 사라져서 한 말이었다
-「광화문」 부분
까스뽈, 가스불, 아무래도 가스불을 끄지 않고 나온 것 같아, 가스불, 그런 것만 같아, 뽈쓰까, 우째야쓰까,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계속 불붙어 있을 것만 같아, 가스불, 크루프니크가 졸아붙고 있을 것만 같아, 크라이시스, 냄비가 달아오르고 있을 것만 같아, 위기를 기회로, 기회를 회기로, 회기를 회귀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달려가야만 하는데, (…) 그렇지만 여기는 회기역, 아무리 1호선을 타고 달려도, 바르샤바에 다다를 순 없을걸, 회기가 기회가 된다면, 기회가 위기가 될 수도 있을걸, 졸아붙는 크루프니크를 해결할 수 있을걸, 불타는 바르샤바를 구할 수 있다, 육룡이 나르샤, 봐, 폴란드로 날아가잖아, 포기하지 마라, 불 끌 때까진 불 끈 게 아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애초에 그런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다면, 그런 일이 시작되지도 않았다면, 바르게 살 수 있었을까, 후회하지 않았을까,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었을까, 없었을까, 어땠을까, 폴란드는 뽈스까, 뽈스까를 거꾸로 읽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폴란드는 뽈스까, 거꾸로 하면」 부분
전복죽입니다, It is abalone rice porridge, 따스한 마음과 마음이 뭉쳐,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게 하는, 이 전복죽입니다, This is abalone rice porridge,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다른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야말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여야만 해, 나여야만 해, 그래야만, 생이 전복죽입니다, Life is abalone rice porridge, 목을 매고 떠난 사람과, 목이 메어 남은 사람이, 뒤엉켜서 울고 있는, 먼저 떠난 사람과, 따라 못 떠나는 사람이, 따로 놓여 웃고 있는, 매생이 전복죽입니다, It is seaweed fulvescens abalone rice porridge, 이전 생에도,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혹은 그, 그다음 생에도 너는 죽는다, 나는 죽는다, 껍데기가 하나뿐이라, 출구는 없어도 입구는 있는,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없는, 매생이 전복죽입니다, Every life is abalone rice porridge, (…) 이번 생에 엉킨 것이, 다음 생에도 엉킬 거예요,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Every life has been ruined, Every life was ruined, Every life is ruined, Every life will be ruined, 이건 그저, 그저, 매생이 전복중입니다,
-「매생이 전복중」 부분
출판사 서평
농담 같은 삶의 장면 속에서 우연한 웃음이 터질 때
비로소 감각하게 되는 ‘허방의 힘’
권창섭의 시는 발상부터가 기발한 만큼 독특하고 새롭다. 거기에 더하여 언어를 부리는 솜씨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저 입술을 잎술이라 적고 싶을 뿐”(「하여튼 여하튼」)이라는 시인은 일상의 언어를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여 구체적인 삶의 이모저모를 펼쳐 보인다. 마치 “단어를 생각하지 않고, 단어를 생각하지 않는 일” “단어를 생각하지 않고, 단어를 생각하는 일” “단어를 생각하고, 단어를 생각하는 일”처럼 “새로운 놀이”(「유희왕」)를 즐기는 듯하다. 무엇보다 “위기를 기회로, 기회를 회기로, 회기를 회귀로”(「폴란드는 뽈스까, 거꾸로 하면」), “어폴로지는 애플, 애플은 사과”(「사과 어폴로지」) 등에서 보듯 언어의 구조적인 연결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홀로 싱글거릴 수는 없습니다”(「39」), “어폴로지는 애플, 애플은 사과”(「사과 어폴로지」)와 같이 우리말과 외국어의 절묘한 혼용, 또는 아예 영어나 일본어로 표기하는(「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 「매생이 전복중」 「Why-FI」 「박사 학위 없는 시간강사의 글쓰기 수업」) 방식도 이질적인 감각에서 비롯되는 시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시인이 펼치는 언어의 배열과 나열, 조합과 변용은 단순한 유희나 가벼운 말장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필요와 피로와/쓸모와 몹쓸을/돌고 도는 일”(「유희왕」)처럼 탁월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말재주를 통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밀고 나아간다. 「유희왕」 「버릇」 「사과 어폴로지」 「순환론」 등 여러 시편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성찰의 힘을 문학평론가 선우은실은 해설에서 ‘허방의 힘’이라고 명명한다. 삶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작은 웃음이 나는 순간을 시인은 예리한 감각으로 포착하여 그것을 생활의 무게와 연결시킨다. 아름답게 말하는 것에만 가치를 두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발음된 적도 없”이 “그저 있는 것이/나의 일”(「사이시옷」)인 듯 ‘지금 여기’, “민주주의에서 비릿한 다수결의 맛”이 나고 “다수결에서 비릿한 공산품의 맛”(「정의의 행정학」)이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앞뒤를 자꾸 거스르는 시간”(「폴란드는 뽈스까, 거꾸로 하면」)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생활’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에 뿌리를 내린 시인의 시선은 좀더 세밀한 사회 현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향한다. 삶에 대한 경외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지속으로서 ‘생존’이라는 현실 인식을 상징과 은유의 언어로 촘촘히 작품화하는 시인은 세월호(「사월의 언어학」), 성소수자(「1반」), 젠트리피케이션(「긴장들」 「강제집행」) 등 사회적 사건에도 예민한 시선을 보낸다. 실제로 낭독회라는 형식을 통해 건물주의 횡포에 맞선 세입자들의 투쟁에 동참하는 등 고통받는 삶의 현장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온 시인은 “어긋난 문장으로 오늘을 묘사”(「사월의 언어학」)하고 기록하면서 “법이라는 최후의 보루”(「긴장들」)마저 믿을 수 없는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한 사회 현실의 이면을 낱낱이 파헤쳐나간다.
권창섭의 시는 가히 파격이라 할 만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문장을 읽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인이 펼쳐놓는 새로운 언어 규칙을 따라가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을 색다른 시각에서 ‘다시’ 바라볼 따름이다.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문학의 아우라를 믿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문학을 퍼포먼스나 놀이의 도구나 대상으로 삼아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것을 실행하듯 “마치 팝아트 작품들처럼/튀어나오는 삶의 구체성”에 바탕을 두고 “앞으로 기대되는 삶”(「구체적인 삶」)과 인간의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문학의 가치를 생각하며 새로운 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이 젊은 시인의 발걸음이 사뭇 믿음직스럽고 경쾌하다. “원래, 원래라는 것은 없다”(「짜빠구리」)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내놓은 시인의 첫 시집이 걸어갈 길이 자못 기대된다.
권창섭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 (질의: 편집자)
-첫번째 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처음 방문해본 여행지인데, 자주 방문해본 기분이 드는 게스트하우스, 그곳에서 계획보다 오래 묵고 있는 기분이에요. 물론 실제로 그렇게 해본 적은 없습니다만.(웃음) 한동안 더 머물러 보려고요.
-시를 쓰는 일 외에도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여러 콘텐츠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신 것으로 압니다. 평소의 일상 그리고 시를 쓰는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특별히 시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는 편은 아니에요. 집 밖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은 후, 집으로 돌아오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고, 그런 것들이 차후에 시라는 형태로 표면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집 안에 주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요즘은 키보드 위에서 손이 머뭇거려지기만 하네요. 얼른 예전처럼 집 밖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이런저런 사람들은 만나고 싶습니다.
-독특한 제목과 더불어 각 시편들이 담고 있는 감각적인 언어가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첫 시집을 엮으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나 특징은 무엇인가요?
독립적인 창작물로서의 시와, 시집의 구성요소로서의 시는 정말 다른 층위의 존재인 것 같더라고요. 산발적으로 쓰인 시들을 묶고 수정과 퇴고를 거치면서 각각의 시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수했던 저만의 원칙은, 각각의 시를 쓸 때 가졌던 각각의 말맛이 퇴색되도록 수정하진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를 쓰기 전에 계속 입안에서, 머릿속에서 단어와 문장을 생각하며 굴리고 굴리다가, 쓰는 과정에서 다시 또 굴리면서 쓰는 편이라 처음 획득한 어감과 리듬감을 버리긴 아쉬웠습니다. 다른 시들과 어우러지도록 다듬되, 각각의 시들이 가진 원래 개성도 지키려 애써보았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이번 시집에서 특별히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와 이유를 부탁드립니다.
시집 원고를 묶기 직전에 쓴 「폴란드는 뽈스까, 거꾸로 하면」과 「매생이 전복중」이 먼저 생각나네요. 두편 다 머릿속과 입속에서 오랫동안 굴리고 불리다가, 마치 폭발한 듯 한번에 뿜어져 나온 시인데요. 가장 최근에 쓴 시이기도 하고, 두편 모두 쓰면서 가슴이 무척 아팠던 시라 그런지, 지금으로선 제일 마음에 밟히네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제 곧 개학이에요.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학생들을 만나러 가야죠.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십대로서 남은 5개월의 시간을 좀더 응원해줄 예정입니다. 그외에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고양이와 함께 집에서 뒹굴며,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오해만 거듭되는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가겠죠.
기본정보
ISBN | 9788936424602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7월 25일 | ||
쪽수 | 172쪽 | ||
크기 |
127 * 201
* 14
mm
/ 213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창비시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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