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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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한국경제 > 2020년 9월 1주 선정
작가정보
저자(글) 이정식
1931년 평안남도 출생. 1956년 UCLA를 졸업하고 1961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 Berkeley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콜로라도 대학교, 다트머스 대학교를 거쳐서 1963년부터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직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연세대학교 용재 석좌교수,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석좌교수를 지냈다. 현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명예교수이다.
1974년 우드로 윌슨 파운데이션 상, 1990년 제1회 위암학술상, 2012년 경암학술상, 2018년 인촌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The Politics of Korean Nationalism, Communism in Korea (로버트 스칼라피노와 공저), Japan and Korea: The Political Dimension, Syngman Rhee: The Prison Years of a Young Radical, Park Chung Hee: From Poverty to Power, 『구한말의 개혁ㆍ독립투사 서재필』, 『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 『여운형』, 『대한민국의 기원』,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후사』 등이 있다.
목차
- 프롤로그: 가지 않은 길
제1장 중일전쟁의 한복판에서: 한커우, 1939~1940년
한커우 이주와 아버지의 사업
한커우 메이지 심상소학교
제2장 평양에서 겪은 태평양전쟁, 1941~1943년
평양 가루개로 이사하다
명륜국민학교와 황국 신민화 정책
태평양전쟁과 나의 평양 학창시절
나의 ‘고향’, 나의 가문
제3장 만주의 국공내전과 14세 소년 가장, 1943~1948년
평양에서 만주로
소련군, 팔로군, 그리고 조선독립동맹
중국 국민당 치하의 의료원 조수 생활
랴오양 면화공장에서의 출세
제4장 공산 치하 평양의 쌀장수, 1948~1950년
만주를 떠나 평양으로
신양리 시장의 쌀장수
공산 치하의 평양 생활
한국전쟁의 발발
제5장 남한 피난생활, 1950년 12월~1953년
평양을 떠나 남한으로
중공군 개입과 국민방위군 사관학교 입대
나의 영어학교 ATIS(미군 번역-통역부대)
제6장 미국 유학과 공산주의 연구, 1954~1974년
내가 선택한 길: 1954년 미국 유학
UCLA의 낯선 봄
버클리와 스칼라피노 교수
한국 공산주의 연구
에필로그: 아이비리그의 새로운 길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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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교수는 해방 후의 한국 사회과학, 특히 정치학의 새로운 방향과 기준을 제시한 독보적 학자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전후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경쟁과 공산주의를 비롯한 이데올로기의 세례를 받은 남북한의 정치를 체계적으로 연계 분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한 업적이 가능했던 것은 이 교수의 타고난 지적 능력과 로버트 스칼라피노라는 대단한 선생님을 만나게 된 행운의 결과라고 여겨 왔지만, 그보다는 이 교수가 중국, 만주, 남북한으로 방랑하며 소년 가장으로 겪었던 경험이 튼튼한 기반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 온 그의 삶이 담긴 자서전이 출판된 것은 한국 학계에 큰 경사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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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개인의 자서전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다. 이정식 교수는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을 중국 대륙, 만주, 북한, 남한에서 겪은 파란만장한 체험을 감동적으로 이 자서전에 담았다. 중국의 장제스 군대와 마오쩌둥 군대, 소련군, 북한군, 한국군, 미군을 모두 목격했고, 국민방위군 사관학교의 고난, 그리고 미군 통역으로 중공군 포로 심문에 참여했던 귀한 체험을 담담히 회상했다. 전쟁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아이비리그에 속한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로 정착했으며 미국정치학회의 최고저작상인 우드로 윌슨 파운데이션 상을 받은 후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 연구에 수많은 업적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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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자의 길. 그 길이 청하는 인생의 과업은 남다른 것이다. 깊고 넓은 학문세계를 향한 각고의 노력과 인내, 열정과 집념. 그 길에서 오롯이 자신만의 기쁨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행운’ 혹은 ‘불운’이 뒤따라야 한다. 학자적 양심과 혜안은 자신이 몸소 체험한 행·불운의 삶의 역사를 인간의 역사, 미래의 광환光環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학자 이정식. 그분의 인생 여정은 바로 그 경지에 도전한 삶이다.
책 속으로
나는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었던 경우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주어진 길을 무턱대고 걸었던 때가 더 많았다. 특히 열네 살부터 20대까지는 대부분의 시절이 그랬다. 만주에서 병원 도우미로 일하며 임질과 매독에 걸린 환자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시베리아의 찬바람을 견디면서 공장 마당의 말똥을 치우던 소년이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교수가 되었으니 내가 받은 축복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의 경험은 동아시아 역사와 남북한의 정치 관계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강의 시간에 졸고 있는 제자들을 잠에서 깨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7쪽
한커우에서 보낸 2년은 나에게 뜻하지 않은 소득을 주었다. 첫째는 나의 일본어 발음이 완전히 일본인의 그것과 똑같아진 것이다. 어릴 때여서 그랬을 것이다. 이것은 후에 나의 학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훗날 나는 일본의 정치와 외교 등을 가르치고 일본에 자주 드나들며 각종 회의에 참석할 때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본격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둘째는 내가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양쯔강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자주 오르내리고 건너다니던 강이므로 그 지역에 대한 배경지식은 연구하는 데 긴요한 자료가 되었다.
-41쪽
내가 입학한 해에 랴오양 상업학교는 전시체제라는 이유로 공업학교로 현판을 바꾸어 달았다. 입학 첫날 교정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나 선명히 기억난다. 학생들이 교정에서 집합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다른 반 애들은 이미 교실로 들어갔고 우리 반 학생 40명만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날은 날씨가 매우 좋아서 겨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봄날 같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데 그중에 키가 좀 큰 편인 한 아이가 땅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는 내게 와서 말을 건넸다. “야, 저 조선 새끼를 때려 주자!” 나는 당시 체구가 또래 학생들보다 좀 큰 편이어서 아마도 싸움판의 대장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야, 그런 짓 하지 마. 인마, 나도 조선인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상대는 정색하더니 “야, 인마. 그런 농담은 하는 거 아니야!”라고 큰소리를 질렀다.
-107쪽
나는 아버지의 실종으로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 만으로 열다섯 살이 되려면 넉 달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머니와 내가 우리 식구를 이끌어 나가야 했다. 각각 아홉 살과 다섯 살 난 남동생 둘, 두 살짜리 여동생 하나, 아버지가 사라진 후에 태어난 유복자 남동생까지 모두 여섯 식구의 가장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을 걸어야 했다. 길 너머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천 길 낭떠러지가 있다고 해도 당장 내 가족의 삶을 위해서라면 부지런히 걷고 또 걸어야 했다.
-145쪽
나는 박 의사의 조수이자 약제사였다. 무슨 병이든지 처방하는 약이 똑같아서 조제는 아주 쉬웠다. 약이 부족해서 한동안 와카모토라는 비타민제를 약 절구에 넣고 빻아서 약 대신 환자에게 주었다. 그 냄새가 독특해서 그것을 먹어 본 사람이라면 가루를 내어 놓아도 금세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와카모토 봉지를 들고 항의하러 온 사람은 없었다.
-155쪽
처음에 청소부로 취직한 때가 1946년 11월경이고 해고당한 때가 1948년 2월쯤이니 랴오양 면화공장에 다닌 기간은 1년 몇 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내 기억에는 꽤 긴 시간을 보낸 듯한 느낌으로 자리 잡았다. 어쨌든 랴오양 면화공장은 내게는 참으로 귀중한 인생학교였다. 우선 그곳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랴오양 면화공장이라는 ‘상업학교’에서 배운 주산법은 평양에 돌아와 장사꾼이 되어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이 되었다.
-183쪽
만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나날과 귀국의 환희까지 우리 가족에게는 그간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만주에서도 공산당과 국민당의 투쟁을 뼈저리게 보았지만, 우리는 제3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평양에 도착한 그날부터 나는 고국의 정치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뼈저리게 느꼈다. 평양에서 피복 공장을 경영하던 고모부는 해방되자마자 공장을 몰수당하고 남한으로 내려갔고, 외갓집도 모두 월남했다고 한다. 숙청이란 말은 만주에서도 흔히 들었지만, ‘38선’과 ‘월남’이라는 말은 그날 처음 들었다.
-202쪽
내 직속 팀장인 클레이턴 대위에게 ATIS를 그만두어야겠다고 했더니 그는 몹시 의아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조건이 좋은 일이 생겨 다른 곳에 취직하려 한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어 얼떨결에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왜 미국에 가서 공부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까지 미국 유학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미국에 유학 가고 싶지만….” 하면서 머뭇거렸더니 그는 자기가 곧 제대하는데 디트로이트에 돌아가면 웨인 주립대학에 연락해서 입학서류를 보내 주겠다고 했다.
-298쪽
그러던 중 버클리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가 내게 만나자고 한 것이다. 그는 UCLA에서 대학출판부 회의가 있어 로스앤젤레스에 가게 되었는데 시간이 된다면 자신과 점심을 함께하자고 했다. 스칼라피노 교수의 첫인상은 온화했다. 간간이 입가에 띠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편안함을 주었다. 그는 30대의 조교수로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육군성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일본어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내게 자신이 지금 동양 각국의 공산주의사를 연구하려는데 자신의 연구조교로 일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338쪽
출판사 서평
“이 책은 개인의 자서전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다.”
일제 치하 조선에서 태어나 중국 만주로, 평양으로, 부산으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국공내전, 한국전쟁 등 20세기를 뒤흔든 전쟁들에 휩쓸리며
생존을 위해 유랑한 어린 시절부터 미국으로 건너가 학자의 길에 들어선 청년기까지,
한국 현대 정치학계의 거목 이정식 교수가 생생하게 써내려간 인생의 격동기
냉전 시대였던 1970년대 초,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와 이정식이 함께 쓴 Communism in Korea는 국내외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The Movement〉와 〈The Society〉의 두 권, 총 1,532쪽의 방대한 이 책은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큰 흐름과 북한 사회를 탐구한 독보적인 연구서로 인정받아 왔다. 이 책으로 1974년 우드로 윌슨 파운데이션 상을 공동 수상한 이정식 교수는 이후 한국 현대 정치, 특히 해방 전후 한국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연구로 한국 정치학계에 새로운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1990년 위암학술상, 2012년 경암학술상, 2018년 인촌상 등 권위 있는 학술상들을 수상한 바 있다.
미국에 유학한 이후 정치학 연구에 인생을 바친 저자가 이번에는 학술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쓴 자서전을 펴냈다.
1931년생인 저자는 이 책에서 가족과 함께 중국 한커우로 이주한 1939년부터 스칼라피노 교수와 함께 우드로 윌슨 파운데이션 상을 받은 1974년까지의 시기를 서술한다. 이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격동기이자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을 맞닥뜨린 시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었던 경우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주어진 길을 무턱대고 걸었던 때가 더 많았다고 말한다. 특히 이 자서전에서 서술한 시기가 그러했다. 비록 시대가 흉흉했지만 부모 슬하에서 보호받으며 자라던 소년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행방불명으로 만 열네 살에 가장이 되었다. 생계를 위해 중국과 한국에서 갖은 일을 하던 소년은 20대 초에 우연한 기회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우여곡절 끝에 학위를 따 아이비리그 대학에 자리를 잡고, 정치학자로서 우뚝 섰다.
저자는 자신이 주어진 길을 무턱대고 걸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하지만, 격동의 풍랑 속에서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와중에도 잃지 않은 자기 삶에 대한 의지와 재능으로 헤쳐나간 길이었다.
기본정보
ISBN | 9788933707739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8월 25일 |
쪽수 | 384쪽 |
크기 |
153 * 225
* 23
mm
/ 575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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