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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와 함께 실제 생활처럼 소설 속의 시간도 천천히 지나간다. 봄의 벚꽃 구경, 여름밤의 반딧불이잡이, 가을의 단풍 구경, 후지 산, 가부키, 피아노, 인형, 프랑스어 교습, 무용 교습, 무용 공연, 백화점, 신혼여행, 해수욕, 온천, 기차, 연애, 맞선, 여객선 등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네 자매를 파노라마처럼 지나쳐 간다.
작가정보
(谷崎潤一郞)
1886년 도쿄 니혼바시에서 태어났다. 제일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제국 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퇴학당했다. 1910년 『신사조(新思潮)』를 재창간하여 ?문신?, ?기린?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고, 소설가 나가이 가후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1915년 열 살 어린 이시카와 치요코와 결혼했는데, 시인인 친구 사토 하루오가 그의 부인과 사랑에 빠지자 아내를 양도하겠다는 합의문을 써 「아사히신문」에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화 예술 운동에도 관심을 가진 그는 시나리오를 써 영화화하고 희곡 『오쿠니와 고헤이』를 발표한 뒤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24년 『치인의 사랑』을 신문에 연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검열로 중단되었다.
1942년 그는 세 번째 부인이자 그가 희구하던 여성인 마쓰코와 그 자매들을 모델로 『세설』을 쓰기 시작했다. 1943년 『중앙공론』 신년호와 4월호와 7월호에 연재되었던 『세설』은 7월호에도 실릴 예정이었으나 〈시국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표가 금지되었다가 전후에야 비로소 작품 전체가 발표됐고, 훗날 마이니치 출판문화상과 아사히 문화상을 받았다. 1949년에는 제8회 문화 훈장을 받았고 1941년 일본 예술원 회원, 1964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에 뽑혔다. 1958년 펄 벅에 의해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이래 매년 후보에 올랐으며 1965년에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간사이 문화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는 『세설』은 몰락한 오사카 상류 계층의 네 자매 이야기, 특히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전하는 풍속 소설이다. 극적인 사건보다는 사계의 흐름처럼 섬세하게 간사이 지방의 당시 풍습과 일상을 여성스러운 시각으로 보여 준다.
대표작으로는 『치인의 사랑』, 『만지』, 『슌킨쇼』, 『세설』, 『열쇠』, 『장님 이야기』, 『미친 노인의 일기』 등이 있고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연세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 연구원을 지냈으며, 2007년 현재 연세대에 출강하고 있다. 논문으로 「김승옥과 고백의 문학」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번역과 번역가들』, 『탐구 1』, 『윤리 21』, 『일본정신의 기원』, 『움베르토 에코를 둘러싼 번역 이야기』, 『형태의 탄생』, 『포스트콜로니얼』,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천천히 읽기를 권함』, 『트랜스크리틱』, 『은빛 송어』, 『사랑의 갈증』, 『비틀거리는 여인』 등이 있다.
목차
- 제1부
제2부
책 속으로
이야기는 유키코의 혼담을 축으로 봄의 꽃놀이, 여름의 반딧불이잡이, 무용 발표회 등 고상한 행사를 아로새기면서 진행된다. 혼담은 〈여성 문화〉의 세계다. 게다가 혼담에 일일이 비판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여자들이다. 여기서는 〈남성 문화〉의 논리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남성의 문화에서 보면 유키코라는 여자는 〈너무 낡은 인습에 얽매여 있어 매사에 소극적이고 일본 취미가 강한 여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남자의 눈으로 보면 그저 제멋대로 구는 것으로 비치겠지만 여성 문화에는 독특하게 굴절된 발상의 절차가 있어서 여성들은 〈그건 나도……〉에서 시작한다. 실로 세심하고 복잡한 사고 경로, 왔다 갔다 하면서 심리의 주름을 샅샅이 건져 올려 상대의 반응을 민감하게 잡아내면서 이쪽의 기분도 말해야 할 것은 말하고 숨겨야 할 것은 숨기는, 〈여차여차하니까 이렇게〉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거리가 굉장히 길다. 최단거리의 대각선을 돌파하는 남성 문화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아주 길고 구불구불 구부러진 여성 심리다. ……
나는 이 〈여성 문화〉를 처음으로 소설에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세설』이 더욱 재미있다. 헤이안 신궁의 꽃놀이도 반딧불이잡이도 여성들의 높은 안목으로 묘사되어 있다. 붉은 구름 같은 벚꽃을 올려다보며 한꺼번에 〈아아!〉 하는 감탄사를 토해 낸다.
- 『세설』(하) 743~744면
출판사 서평
일본의 근대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대표 풍속 소설 『세설』이 송태욱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일본의 근대 소설가 중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는 아마 다니자키 준이치로일 것이다. 그는 일본문화훈장을 받았고 일본에서는 드물게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이 되었으며, 죽지 않았다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받은 노벨 문학상도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세설』은 오사카의 몰락한 상류 계층의 네 자매 이야기, 특히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깊은 정과 상냥함을 드러내면서 기품을 지닌 간사이 여성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 호흡법과 말투 등 여성들의 문화를 소설이라는 구조 속에 처음으로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계절의 변화가 태평양전쟁 와중의 사회적인 사건이나 인간의 의지 이상으로 작품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관습과 제도에 길든 인간의 자아와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희일비하는 등장인물의 마음이 마치 남의 것이 아닌 양 느껴진다. 유키코가 하루빨리 결혼하기를 바라면서도 때 묻지 않은 〈영원한 여성〉으로 남아 주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예술은 통속적이면서 또한 고급 문학이어야 한다〉라고 했던 다니자키를 통해 여성과 여성 문화의 요염하면서도 커다란 매력을 맛볼 수 있다.
『세설』은 열린책들이 2006년 초에 처음 선보인 뒤 꾸준히 펴내고 있는 〈미스터 노 세계문학〉 시리즈의 한 권이다. 〈미스터 노 세계문학〉은 상세한 해설과 작가 연보로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 한편, 가볍고 실용적인 사이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현대적 감각을 살린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시리즈이다. 앞으로도 열린책들은 세계 문학사의 걸작들을 미스터 노 시리즈를 통해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보다 먼저 후보에 올랐으나 그가 사망함으로써 상이 가와바타에게 돌아갔다는 사이덴스티커(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사람)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당시 전 세계 지식인의 스타였던 사르트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만사 제쳐 놓고 교토 근교의 다니자키 묘에 참배했다고 하니 세계 문학사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니자키야말로 서구인의 눈에 가장 일본적인 작가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작가 생활을 하는 55년 동안 그는 자신만의 감각적인 취향에 충실한 작가였다. 이상 성욕과 악마주의적 경향이 짙은 그의 소설이 일본 독자에게 수용되고 또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일본 문화에 그런 토양이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니자키는 평생 동일한 주제를 소설화했고, 그의 소설은 그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여성 숭배, 페티시즘, 마조히즘 등의 변태 성욕, 악마주의, 예술지상주의, 탐미주의 등이 그것이다. 특히 미쓰코의 발을 빠는 소년 〈나〉의 풋 페티시즘을 다룬 「소년」(1911)에서 「악마」(1912), 「열풍에 날리며」(1913), 「조타로」(1914), 「후미코의 발」(1919), 「아베마리아」(1923)를 거쳐 네 발로 기면서 며느리의 발을 빠는 노인이 등장하는 『미친 노인의 일기』에 이르기까지 그런 경향은 일관되게 지속된다. 한마디로 50년 넘게 작가 활동을 하는 내내 그는 여자의 발을 빨고 거기에서 오는 희열을 소설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다니자키의 작품은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간사이로 이주한 것을 계기로 서양 숭배에서 동양으로 회귀했다고 평가된다. 『치인의 사랑』의 서양 숭배에서 『여뀌 먹는 벌레』를 전환점으로 하여 동양, 즉 일본의 전통으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으로 회귀한 그가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고 나서 처음으로 쓴 작품이 『세설』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설』은 그가 간사이로 이주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었던 작품인 셈이다. 다니자키는 『세설』로 아사히 문화상,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받았으며 일본의 국민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세설』은 다니자키의 소설 가운데 예외적인 작품으로, 그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42년 처음 쓰기 시작했다. 그의 회고대로 『세설』은 1943년 『중앙공론(中央公論)』 신년호와 4월호에 실렸고 7월호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시국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표가 금지되었다가 전후에야 비로소 작품 전체가 발표되었다.
『세설』은 다니자키의 세 번째 부인이자 그가 희구하던 여성인 마쓰코와 그 자매들을 모델로 한 이야기다. 간사이 문화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는 가운데 몰락한 오사카 상류 계층의 네 자매 이야기, 특히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전하는 풍속 소설이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실제 생활처럼 소설 속의 시간도 천천히 지나간다. 봄의 벚꽃 구경, 여름밤의 반딧불이잡이, 가을의 단풍 구경, 후지 산, 가부키, 피아노, 인형, 프랑스어 교습, 무용 교습, 무용 공연, 각기병, 장티푸스, 주사, 약, 만주, 홍수, 기모노, 사진기, 전화, 도쿄 말과 간사이(오사카) 사투리, 미용실, 파마, 호텔, 병원, 학교, 셋집, 독일인, 백계 러시아인, 갖가지 일본 음식들, 피아노, 커피, 제과점, 백화점, 신혼여행, 해수욕, 온천, 기차, 연애, 맞선, 여객선 등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쓰루코, 사치코, 유키코, 다에코의 주위를 파노라마처럼 지나쳐 간다. 그런 세세한 풍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부끄러워서 걸려 온 전화조차 받지 못하는 유키코가 여동생 다에코에게 설교를 해대는 당찬 모습, 그리고 맞선을 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진행시켜 나가는 유키코의 의뭉스러운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한 다니자키는 〈나는 여자를 나보다 높은 존재로 우러러본다. 우러러볼 만한 존재가 아니면 여자로 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런 그의 여성관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이 작품 『세설』이기도 하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로 국내에 잘 알려진 다나베 세이코가 쓴 해설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32907819 | ||
---|---|---|---|
발행(출시)일자 | 2007년 12월 20일 | ||
쪽수 | 387쪽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MR KNOW 세계문학
|
||
원서명/저자명 | 細雪/谷崎潤一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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