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의 한양 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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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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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연구가 빚어낸 『겸재의 한양 진경』출간!
예술은 그 시대 문화를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그러므로 예술사(藝術史) 연구가 문화사(文化史) 연구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 가헌 최완수
작가정보
저자 최완수 (崔完秀)
진경시대 문화 연구의 대가이자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연구의 일인자이다. 1942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65~1966년 국립박물관을 거쳐, 1966년부터 지금까지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소장으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서울대 미대 회화과 및 대학원(1975년부터 1992년까지 17년 연속), 연세대(1976년부터 2015년까지 39년 연속)?이화여대?동국대?중앙대?용인대?국민대 및 대학원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추사집(秋史集)』(1976), 『김추사연구초(金秋史硏究艸)』(1976), 『그림과 글씨』(1978), 『불상연구(佛像硏究)』(1984), 『겸재(謙齋) 정선(鄭敾)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1993), 『명찰순례(名刹巡禮)』(전 3권, 1994), 『우리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전 2권, 1998), 『조선왕조 충의열전』(1998),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1999), 『겸재의 한양진경』(2004), 『한국불상의 원류를 찾아서』(전 3권, 2007), 『겸재(謙齋) 정선(鄭敾)』(전 3권, 2009), 『추사집(秋史集)』(2014), 『추사 명품(秋史 名品)』(2017)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간다라 불의고(佛衣攷)」, 「석가불정도설(釋迦佛幀圖說)」, 「겸재(謙齋) 정선(鄭敾)」, 「겸재진경산수화고(謙齋眞景山水畵考)」, 「추사실기(秋史實紀)」, 「추사서파고(秋史書派考)」, 「비파서고(碑派書考)」, 「한국서예사강(韓國書藝史綱)」, 「추사(秋史) 일파(一派)의 글씨와 그림」,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평전(評傳)」, 「우암(尤庵) 당시의 그림과 글씨」, 「고덕면지총사(古德面誌總史)」 등이 있다.
목차
- 머리말
초판 머리말
01. 인곡유거(仁谷幽居)
02. 독서여가(讀書餘暇)
03. 인곡정사(仁谷精舍)
04. 인왕제색(仁王霽色)
05. 옥동척강(玉洞陟崗)
06. 삼승정(三勝亭)
07. 삼승조망(三勝眺望)
08. 장안연우(長安烟雨)
09. 백악산(白岳山)
10. 독락정(獨樂亭)
11. 취미대(翠微臺)
12. 은암동록(隱岩東麓)
13. 대은암(大隱岩)
14. 은암회방연(隱巖回榜宴)
15. 북원기로회(北園耆老會)
16. 청송당(聽松堂)
17. 자하동(紫霞洞)
18. 창의문(彰義門)
19. 백운동(白雲洞)
20. 풍계유택(楓溪遺宅)
21. 청풍계(淸風溪)
22. 청휘각(晴暉閣)
23. 수성동(水聲洞)
24. 필운대(弼雲臺)
25. 필운상화(弼雲賞花)
26. 경복궁(景福宮)
27. 목멱산(木覓山)
28. 동소문(東小門)
29. 동문조도(東門祖道)
30. 서교전의(西郊餞儀)
31. 세검정(洗劒亭)
32. 녹운탄(綠雲灘)
33. 독백탄(獨栢灘)
34. 우천(牛川)
35. 석실서원(石室書院)
36. 삼주(三洲) 삼산각(三山閣)
37. 광진(廣津)
38. 송파진(松坡津)
39. 압구정(狎鷗亭)
40. 목멱조돈(木覓朝暾)
41. 양화환도(楊花喚渡)
42. 양화진(楊花津)
43. 선유봉(仙遊峯)
44. 이수정(二水亭)
45. 공암층탑(孔岩層塔)
46. 소요정(逍遙亭)
47. 양천현아(陽川縣衙)
48. 종해청조(宗海聽潮)
49. 소악후월(小岳候月)
50. 소악루(小岳樓)
51. 안현석봉(鞍峴夕烽)
52. 금성평사(錦城平沙)
53. 행호관어(杏湖觀漁)
54. 귀래정(歸來亭)
55. 낙건정(樂健亭)
56. 개화사(開花寺)
57. 사문탈사(寺門脫蓑)
58. 척재제시(惕齋題詩)
59.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60. 설평기려(雪坪騎驢)
61. 빙천부신(氷遷負薪)
62. 동작진(銅雀津)
겸재(謙齋) 정선(鄭敾)
한양 진경의 현재 위치
용어 해설
찾아보기(지명, 인명)
책 속으로
인곡유거는 겸재(謙齋) 정선(鄭?, 1676?1759)이 살던 집의 이름이다. 지금은 아파트만 이름이 있고 단독주택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름이 없지만 겸재가 살던 진경시대에는 사대부의 집들이 모두 택호(宅號)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겸재도 자신이 52세부터 살기 시작하여 84세로 돌아갈 때까지 살았던 이곳 인왕산 골짜기의 자기 집 이름을 인곡유거 또는 인곡정사(仁谷精舍)라 불렀다. - 16쪽 〈인곡유거(仁谷幽居)〉
〈독서여가〉는 겸재가 50대 초반 북악산 아래 유란동(幽蘭洞)에서 생활하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낸 자화상(自畵像)이라고 생각된다. 인왕곡 인곡유거로 이사 가기 직전인 52세(1727)경에 기념으로 그려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랑채 지붕이 초가지붕이라서 인곡정사 사랑채의 기와지붕과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 이 그림에서 보면 인물화 역시 상승에 이른 것으로 오히려 관아재를 능가한다 할 수 있겠다. 바깥사랑채에서 독서의 여가에 잠시 더위를 식히며 한가롭게 시상(詩想)에 잠겨 화리(畵理)를 탐구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사생적인 필치로 그려냈다. - 26쪽 〈독서여가(讀書餘暇)〉
육상궁(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사당) 뒤편 북악산 줄기의 산등성이에서 인왕산 쪽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인데 그의 시계는 발아래 북악산 밑에 있는 사천의 집까지 포괄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 등성이 위에서 사천과 함께 노닐며 내려다보고 건너다보던 그 정경을 한 화폭에 다 담아 사천과의 평생 추억을 함축하려 했을 것이다. - 38쪽 〈인왕제색(仁王霽色)〉
세종로 네거리 부근에서 북악산을 바라보면 산이 마치 하얀 연꽃봉오리처럼 보인다. 그래서 원래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렀던 모양이나, 그 아래에 경복궁(景福宮)을 터 잡아 짓고 난 뒤로는 서울의 진산〔鎭山, 터를 눌러 보호〔鎭護〕하는 산이라는 의미이니 명당의 뒷산을 지칭〕으로 북주(北主, 북쪽의 주산)가 된다 하여 북악산(北岳山)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백색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금강산 줄기가 북한강 물줄기를 몰고 내려오다가 그 강 끝에 이르러 혼신의 힘을 기울여 정기를 죄다 분출한 것이 삼각산(三角山)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중 서쪽 봉우리인 만경대(萬景臺)의 남쪽 줄기가 뻗어 나와 마지막으로 용솟음쳐놓은 것이 백악산이다. - 64쪽 〈백악산(白岳山)〉
청송당(聽松堂)은 ‘솔바람 소리를 듣는 집’이란 뜻이다. 조선 중기에 큰 선비로 이름났던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의 독서당 이름이다. 지금 종로구 청운동 89 청운중학교 자리에 있었다. 겸재 시대까지도 청송당은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었던 듯 일자(一字)와 옥(瓦屋, 기와집)이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호젓하게 놓여 있다. 앞으로는 시냇물이 여울져 흐르다 동구(洞口)에서 다시 다른 물줄기와 합쳐지는데 그 뒷산은 북악산 자락이다. - 111쪽 〈청송당(聽松堂)〉
자하동(紫霞洞)은 지금 종로구 청운동 3, 4 및 15번지 일대의 창의문(彰義門) 아래 북악산 기슭을 일컫던 동네 이름이다. 한자로는 ‘붉은 노을 속에 잠긴 마을’이라는 환상적인 뜻이지만 사실 순우리말 ‘잣동’을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름의 흔적을 창의문의 속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 도성의 북소문(北小門)에 해당하는 창의문을 서울 사람들은 지금도 창의문이라 부르지 않고 ‘자하문’ 또는 ‘자문’이라 일컫고 있기 때문이다. - 119쪽 〈자하동(紫霞洞)〉
세종대왕의 제3왕자로 시?문?서?화?금?기(詩文書畵琴棋) 육절(六絶)로 일컬어지던 풍류왕자 안평대군(安平大君) 용(瑢, 1418?1453)의 대군궁이 있었던 옛터라 하니 그 높은 안목으로 잡은 집터라면 가히 도성 안에서 제일 명당으로 일컬어질 만한 곳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세조의 왕위 찬탈 과정에 안평대군이 피살되자 그 중부(仲父)인 효령대군(孝寧大君) 보(補, 1396?1486)가 탐내어 차지했던 모양이다. 지금 옥인동 어느 곳일 듯한데 인가가 들어차고 암석이 파괴됐으며 시내가 복개된 상태라서 정확하게 어느 곳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 그림으로 보면 둥근 바위벼랑이 내려와 우뚝 멈춘 아래에 널찍한 평지가 있고 그 앞뒤로는 수직의 바위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평지 아래로는 계곡물이 힘차게 흐른다. - 161쪽 〈수성동(水聲洞)〉
선조 25년 임진(壬辰, 1592) 4월 30일 밤 왜란을 피해 조정이 피란길에 오르자 난민들이 그 밤으로 불을 질러 경복궁이 모두 타버린 이후에도 이 경회루 석주들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난 후에 경복궁은 복원되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됐기에 겸재 당시에도 폐허로 남아 송림(松林)만 우거졌던가 보다. 왜란이 난 지 100년 가까운 시기에 겸재가 태어났으니 이미 150년 된 소나무라면 이만한 크기의 노송림을 이루기에 족할 것이다. 그림에서 경회루 뒤편 너른 궁궐터에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표현되었으니 말이다.
- 179쪽 〈경복궁(景福宮)〉
현재 워커힐 호텔과 워커힐 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는 광진구 광장동 아차산 일대를 그렸다. 이곳에 한강을 건너는 가장 큰 나루 중의 하나인 광나루가 있었다. 광나루가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의정부?동두천?포천 쪽에서 내려와 한강을 건너 광주?여주?충주?원주 쪽으로 가려면 이 나루를 건너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니 우리 역사가 시작될 무렵 이 나루도 함께 생겨났을 듯하다. 더구나 이 나루 건너가 백제의 옛 도읍지인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임에랴!
- 233쪽 〈광진(廣津)〉
현재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순교 성지 부근 절두산 일대의 옛 모습이다. 지금은 절두산(切頭山)이라 부르지만 그 시절에는 잠두봉(蠶頭峯) 혹은 용두봉(龍頭峯)이라 했다. 강가에 절벽을 이루며 솟구쳐 나온 산봉우리가 누에머리나 용머리 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절두는 머리를 자른다는 뜻이다. 고종 3년(1866) 병인 1월에 대원군이 천주교도들을 이곳에서 가혹하게 처형하면서 절두산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래서 지금 이 일대가 천주교 성지로 변모돼 있지만 본래는 양화나루가 들어서 있어 서울과 양천 사이 물길을 이어주던 곳이다. - 259쪽 〈양화진(楊花津)〉
종해헌(宗海軒)은 양천현(陽川縣, 지금의 강서구와 양천구) 관아의 동헌(東軒, 지방 수령의 집무소) 이름이다. 그러니 ‘종해헌에서 조수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의 〈종해청조(宗海聽潮)〉라는 그림 제목은 양천현의 현령이 동헌인 종해헌에 앉아서 조수 밀리는 소리를 즐기고 있다는 내용이다. 양천현 관아가 현재 양천향교의 동남쪽 가양동 239 일대인 성산(궁산, 파산) 남쪽 기슭 한강 가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289쪽 〈종해청조(宗海聽潮)〉
겸재가 양천현령으로 부임해 가는 것은 영조 16년(1740) 경신년 12월 11일이다. 제수 되는 것은 초가을(음력 7월)쯤이 아니었나 한다. 이때 겸재는 단금(斷金)의 벗인 사천(?川) 이병연(李秉淵)과 단둘이서만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즉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 보자’는 맹약을 굳게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부임해 가자마자 겸재는 양수리 일대로부터 양천현 일대에 이르는 한강 주변의 명구승지(名區勝地)를 화폭에 담아 부지런히 사천에게 보냈고 사천도 이에 화답하는 시를 빠짐없이 지어 보냈던 것이다.
- 352쪽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출판사 서평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로 남긴 서울의 아름다운 옛 모습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자연과 문화, 거기서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조선성리학 이념이 주도하던 조선 후기 진경시대는 우리 문화가 세계 제일이라는 자존 의식이 가장 강렬했던 시대였다. 이 시대를 주도한 이들은 그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양 서울의 아름다운 경치를 시와 그림으로 당당하게 사생해내었는데 그 세대를 대표하는 이가 바로 겸재(謙齋) 정선(鄭敾)이다.
겸재는 자신이 나고 자라 평생 살던 터전인 북악산과 인왕산 아래 장동(壯洞) 일대를 중심으로 한양 서울 곳곳을 문화 유적과 함께 진경으로 사생해 남겨놓았다. 뿐만 아니라 서울을 3면으로 둘러싸면서 산과 시내를 만나 절경을 이룬 한강과 그 주변의 명승지 곳곳을 배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진경산수화〔우리 국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전제 아래 토산(土山)과 암산(岩山)이 적당히 어우러진 우리 국토의 아름다운 산천을 소재로 음양 조화(陰陽調和)와 음양 대비(陰陽對比)의 『주역(周易)』 원리에 따라 화면을 구성하는 독특한 고유 화법(?法)〕로 표현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겸재 시대 서울의 옛 모습, 한양 진경을 눈으로 보고 생생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겸재의 한양 진경을 감상하며 옛 서울을 여행할 수 있게 한 화집이다. 그와 그의 시대가 남긴 우리 고유문화 절정기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거기에 얽힌 우리의 역사, 지리, 인물, 시문(詩文), 서화(書?), 종교, 이념 등을 서로 엮어 다채롭고 깊이 있게 해설하고 있어 그림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책이다.
풍수지리상으로 명당 중의 명당인 서울의 어제와 오늘
서울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明堂)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천하제일 명당이라고 불린다. 삼각산(북한산)이 조산(祖山)이 되고 백악산(북악산)이 현무(玄武)가 되며 낙산이 청룡(靑龍), 인왕산이 백호(白虎), 남산이 주작(朱雀)이 되어 거대한 비단주머니꼴을 하고 있다. 그 위에 동쪽의 안암산, 서쪽의 안산, 남쪽의 관악산이 한 겹 더 둘러싸서 겹주머니 형태를 보이고 있으니 천연의 요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길을 보면 한반도 안에서 제일 큰 강인 한강이 동북쪽에서 흘러와 서울 남쪽을 휘감아 돌며 서북쪽으로 흘러가 바다에 이른다. 천연의 해자(垓字)가 동?남?서 3면을 에워싼 형국이다.
이런 지리적 요건을 갖추기도 쉽지 않은데, 삼각산으로부터 내려온 산맥 전체가 백색 화강암으로 이루어져서 백악산, 인왕산, 낙산이 모두 한 덩이 거대한 흰빛 바위인 듯 솟구쳐 올라 있다. 그러니 그 사이사이에 펼쳐진 계곡은 기암절벽과 맑고 깨끗한 물, 그리고 솔숲 등 수목과 어우러지면서 그 아름다움은 절정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산줄기와 시냇물들이 3면을 휘감아나가는 한강과 마주치면서 갖가지 낭떠러지와 산등성이, 모래벌판, 모래섬 등을 만들어냈으니 한양 서울의 강산풍광 역시 천하제일이었다. 조선 태조 3년(1394)에 한양 천도가 결정된 이후 조선왕조 500년 동안, 또 조선왕조 멸망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양이 서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사이 이 서울에서는 조선 전기 외래문화와 후기 고유문화의 초창과 절정, 쇠퇴를 차례로 겪었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식민 문화에 압도당하는 고통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은 조선성리학 이념이 주도하던 조선 후기 진경시대를 이끈 세대의 대표 주자인 겸재 정선이 남긴 한양 진경 그림을 62개 항목(72폭)으로 나누어 싣고 그 그림이 그려지기까지의 내력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는 직접 그 옛 그림의 장소를 찾아 상전벽해의 현장을 돌아보고 옛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교차해본다. 한 폭의 그림에는 그곳의 풍광만이 아니라 그것을 그림으로 담은 겸재의 마음, 그 그림을 기다리는 친구의 마음, 그리고 그곳을 스쳐가고 머물며 살아가던 옛 사람들의 자취가 가득하다. 특히 겸재가 양천현령으로 부임해 가며 친구인 사천(?川) 이병연(李秉淵)과 단둘이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즉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 보자’는 맹약을 하게 되는데 그 약속 장면을 그림에 담기도 했다. 그 약속에 따라 겸재는 양수리 일대부터 양천현(지금의 양천구 등) 일대에 이르는 한강 주변의 명구승지(名區勝地)도 화폭에 담아 부지런히 사천에게 보냈고 사천도 이에 화답하는 시를 빠짐없이 지어 보냈다. 그 그림과 시도 이 책에 실려 있다.
책의 말미에는 옛 그림의 장소를 지도에 표시해 실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책을 들고 옛 그림의 장소를 찾아가 겸재가 느꼈을 법한 감회에 젖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겸재 정선(1676~1759)은 1676년(숙종 2) 1월 3일 한양 북부(北部) 순화방(順化坊) 창의리(彰義里) 유란동(幽蘭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 겸초(兼艸), 난곡(蘭谷)이다. 아버지 정시익(鄭時翊), 어머니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2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나서 1689년(숙종 15년) 14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후손인 김창집(金昌集, 1648?1722) 형제들이 나서 자라던 집인 악록유거와 이웃해 있던 겸재는 어려서부터 김창집의 아우들인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문하에 드나들며 성리학과 시문서화(詩文書畵) 수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또한 그들의 후원으로 진경산수화풍을 대성해낼 수 있었다.
농암과 삼연은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학통을 이은 조선성리학의 거장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겸재의 스승인 삼연은 진경시(眞景詩, 우리 국토의 자연 경관을 소재로 하여 그 아름다움을 사생한 시)의 시종(詩宗, 시단의 우두머리)으로 당시 진경문화를 이끄는 중심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가재는 화리(畵理, 그림의 이치)에 정통한 사대부 화가였으니 이들의 훈도는 그림 재주를 천품으로 타고난 겸재로 하여금 족히 진경산수화풍을 창안해내고 그를 대성할 수 있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겸재가 진경산수화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조선성리학을 익혀 그 근본인 『주역(周易)』에까지 정통하게 되는 것은 삼연의 가르침 때문이었고, 화법(畵法)과 화론(畵論)에 정통할 수 있었던 것은 노가재의 가르침을 받은 결과였다. 이에 겸재는 『주역』의 음양(陰陽) 원리에 입각하여 이 원리로 화면을 구성해내는 새로운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해냈던 것이다. 이는 조선성리학파들이 출현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으나 그간 나오지 못했던 이상적인 신(新)화풍이었다. 그래서 겸재는 삼연에게 진경시의 의발(衣鉢)을 전수받은 동문(同門) 지기(知己)인 사천(?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과 시(詩)?화(畵) 쌍벽(雙璧)을 이루며 당시 진경문화를 주도했다.
1716년(숙종 42년, 41세)에 관상감의 천문학겸교수(天文學兼敎授, 종6품)로 특채되어(『주역』에 정통한 까닭) 조지서(造紙署) 별제(別提, 종6품), 하양현감(河陽縣監, 종6품)을 거쳐 1729년(영조 5년, 54세)에 한성부(漢城府) 주부(主簿)가 되었고, 이후 청하현감(淸河縣監), 양천현령(陽川縣令) 등을 역임하였으며 1754년(영조 30년, 79세)에 사도시(司?寺) 첨정(僉正, 종4품)을 거쳐 1756년(영조 32년, 81세)에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종2품)에 제수되었다. 1759년(영조 35년) 3월 24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기본정보
ISBN | 9788932319407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9월 15일 |
쪽수 | 400쪽 |
크기 |
196 * 233
* 36
mm
/ 1312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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