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왜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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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4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 문학 그 자체에 이른 원로!
이 책은 ‘관계’와 ‘언어’에 대한 현길언의 오랜 관심을 바탕으로 내밀한 관계에서 관찰되는 애증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무리 원로인 작가라 할지라도 관계에 대한 소설은 쉽지 않기에 인간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 무엇이 올바른 관계인지를 탐구하는 작가의 고뇌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특히 김주연은 개인 사이의 문제는 물론이고,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사의 비극을 면밀하게 파헤쳐온 현길언의 문학을 “‘진실’로의 갈망”이라고 명명함으로써 익숙한 허구 속에 감춰져 있던 민낯과 마주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작품의 강점에 주목할 것을 권유한다.
작가정보
제주에서 출생하여 제주대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석사학위, 한양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교수를 거쳐 한양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다. 성경과 제주설화의 토양 위에서 소설을 쓰고 연구해온 저자는 인간의 주변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소설의 몫임을 확인하고, 여기에서 신앙·문학·생활이 만나는 자리를 추구해왔다. 1980년 『현대문학』에 단편 「성 무너지는 소리」가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으로 『용마의 꿈』 『우리들의 스승님』 『닳아지는 세월』 『무지개는 일곱색이어서 아름답다』 『껍질과 속살』 『배반의 끝』 『나의 집을 떠나며』 『유리 벽』 『누구나 그 섬에 갈 수 없을까』 『불과 재』 『뿔 달린 아이들』, 장편소설로 『여자의 강』 『회색도시』 『투명한 어둠』 『한라산』(전 3권) 『열정시대』 『숲의 왕국』 『꿈은 누가 꾸는가?!?섬의 여인, 김만덕』 『비정한 도시』 『묻어버린 그 전쟁』 등이 있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기독교문학상, 백남학술상, 김준성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 연구서로 『소설쓰기의 이론과 실제』 『문학과 사랑과 이데올로기?현진건 연구』 『한국 현대소설론』 등을 출간했고, 성경의 문학적 이해의 방법론을 탐색한 『문학과 성경』 『인류역사와 인간탐구의 대서사?어떤 작가의 창세기 읽기』 『솔로몬의 지혜』, 제주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제주문화론』 『제주설화와 주변부 사람들의 생존양식』 『섬의 반란, 1948년 4월 3일』 『정치권력과 역사왜곡』을 썼다.
작가의 말
1984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내 첫 소설집 『용마의 꿈』을 세상에 내보내주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인연으로 『언어 왜곡설』을 출간하게 되어서 감회가 깊다. 당시 출판사 사정이 어려웠을 때인데도, 나이 마흔에 소설을 쓰겠다고 나선 나에 대한 문지의 배려는 내 생애에 큰 금을 긋게 만들었다. 그래서 여든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 소설을 쓴다.
『언어 왜곡설』에서는 그동안 계속 관심을 가져온 ‘관계’와 ‘언어’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였다. 이 두 문제는 가족과 역사의 문제로 확대되지만, 생각할수록 현실에서는 지난한 일이기에 당혹스러울 뿐이다.
힘들여 썼다고 자부하는 작품도 시간의 무게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어리석은 작가의 생명줄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이 소설집을 만들어준 문학과지성사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19년 초가을
현길언
목차
- 애증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의 힘
미궁(迷宮)
별들은 어떻게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언어 왜곡설
광대의 언어
해설 왜곡과 위선, 언어는 진실한가? · 김주연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 식구들은 하나님이 도와주었다고 기뻐했다. 이틀이 지났다. 그런데 아버지는 갓난아기를 안은 한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 여자는 옆집에 살던 그 이모였다.
아버지가 그 여자를 데리고 들어온 것은 저녁 식사가 끝난 후였다. 식구들은 이웃집 처녀가 아기 엄마가 된 것을 측은하게 생각했다. 전쟁 통에 아기를 낳았구나.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는 귀엽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이모는 훌쩍거리기만 했다.
_「애증」
내가 아프면 어머니도 아팠다. 나도 그랬다. 어머니가 아프면 나도 아팠다. 어머니가 즐거우면 나도 즐거웠다. 그러면서 내가 자랐다. 그런데 자라면서 나는 어머니로부터 차차 분리되어 나왔다. 이제는 기억으로만 어머니가 내 안에 남아 있는데, 언젠가 그 기억도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어머니와 나와의 관계도 끝이 날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어머니는 땅 위의 일을 기억할 수 없는 처지니까, 어머니로서는 나를 완전히 떼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절차이고 기억일 뿐이다. 기억으로 그 관계가 유지되는 한 그것은 진정한 관계가 못 된다.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_「아버지와 아들」
“아니, 당신까지 유치해지게 만들 수 없었고, 그렇게 되는 것을 두려워할수록 점점 관계가 멀어지는 걸 느꼈는데……”
“저도 이제는 아주 유치해졌어요.”
아내는 그다음에 ‘우리는 이제 부끄러움을 공유할 수 있게 유치해졌어요’라고 말하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가 이상해 보인다. 그 남자와 헤어지려는 것인가? 남편의 부끄러움을 덜어줄 부끄러움을 일부러 만들려고, 그것은 더 큰 부담이다.
“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해도 된다고 말했지.”
_「미궁(迷宮)」
인걸은 벌써부터 두 사람을 알고 있었다. 이미 유학을 떠날 때부터 일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결혼인데 1년도 채 못 되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손 교수 입장도 자기 딴에는 남녀 사랑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으나, 생각과 생활은 거리가 너무 있었다. 임 여사는 다행히 공부를 잘 마쳤고, 돌아와서도 열심히 일했다. 손 교수 부부는 몇 달 전 방송국 쇼프로에 출연해 사실과 거리가 먼 허풍을 떨었다. 그것은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우선 세상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계로 맺어진 부부의 성공 사례로 내보임으로써 스스로가 그러한 규제에 스스로 묶여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따로따로 살면서 하나로 연합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피차 서로 인격과 일과 마음을 존중해주고, 또는 상대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연합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_「별들은 어떻게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출판사 서평
계약과 관습으로 지탱되는 관계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순간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이 떠올랐다. 윤리란 무엇인가? 자식은 자랄수록 부모로부터 점점 떨어져 나가기를 원하고 있는데, 세상은 그것이 두려워 도덕과 제도로서 그 허물어지는 관계를 유지시키려는 것인가? 그러한 윤리와 도덕은 사회 통합의 근원이 되기 때문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과 부모의 관계를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한다. 모른 척함으로써 일종의 음험한 결탁을 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pp. 97~98)
남편만을 사랑했다는 것은 남편밖에 관계 맺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 좋은 즐길 거리가 있다면, 돈 버는 일이나, 일에 미치도록 몰두했다면? 내 사랑도 일상적인 것에 불과했을까? [……] 사랑은 일종의 감성이고, 결혼은 그것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관습이 아니었을까? (「별들은 어떻게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pp. 202~03)
수많은 대화와 만남이 있었는데도 우리는 종종 서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그 관계가 부부, 부모 자식, 연인으로 묶여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현길언은 이번 소설집에서 친밀한 관계 속 겹겹이 쌓인 오해와 그 오해에서 비롯된 관계의 모래성을 드러내는 데 힘을 쏟는다.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6·25전쟁 중 자신의 제자와 사랑에 빠진 아버지를 아들과 그 가족들은 이해하기 어렵고(「애증」), 딸뻘의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어머니와 이혼을 결심한 아버지를 아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아버지와 아들」). 부부간에도 다르지 않다. 온전히 한 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후에야 ‘임 여사’는 고민에 빠진다. 우리 사이에 결혼이라는 계약 관계가 없었다면, “남편만을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했을지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전에는 분명 이들 사이의 관계가 더없이 온전하고 완벽했다는 데에 있다. 겉으로 보기에 충실하기 그지없던 관계가 어떻게 이렇게 쉽게 깨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파고들며 현길언은 그간 관계를 지탱했던 제도과 관습에 주목한다. 우리의 마음은 분명 오래전부터 서로 멀어지기를 소망했으나, 그것이 두려웠던 탓에 “도덕과 제도로서 그 허물어지는 관계를 유지”시키려 했던 것이 아니냐,라고 질문한 것이다. “일종의 음험한 결탁”이라고도 표현된 현길언의 질문은 그간 작가가 견지해오던 사회 공동체 안의 허위와 거짓을 폭로하려는 주제 의식과도 맞물려 있다. 이는 곧바로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왜곡되기 쉬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실한 소통을 꿈꾸다
“방송국이 그것을 조작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고 싶으니까, 조작했다는 사실은 문제가 안 됩니다. 진실이 문제가 아니라, 그 보도 내용이 마음에 드느냐가 문제지요. 믿고 싶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만, 믿고 싶지 않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어요.”
나는 딸의 말에 긴장했다, 조작된 거짓도 내가 좋아하면 진실이 된다. 그것이 우리 사회 풍토라면, 두려웠다. (「언어 왜곡설」, p. 265)
만약 그 뇌에 잠자는 언어를 찾아내는 기구가 발명된다면 언어는 투명해지고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나는 빈 잔에 와인을 채웠다. 자, 세명휴먼사이언스의 회복을 위하여. (「이야기의 힘」, p. 112)
결국은 인간의 언어가 문제다. 우리 밖으로 발화되는 순간, 자신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사회가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핵심인 것이다. 제도와 관습 역시 언어로 씌어지고 전해졌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현길언의 관심이 언어에 머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언어라는 것은 왜곡되기 너무나 쉬운 성질을 지녔다. “진실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드느냐”에 따라 언어의 내용이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광대의 언어」에서 대중을 상대로 설법을 전하는 무연 스님과 벽으로 쌓인 암자에서 홀로 수행하는 현운 스님의 모습을 대조함으로써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대중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골라 하는 무연 스님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스스로를 ‘언어의 광대’라고 칭함으로써 작가는 언어의 한 속성을 비판한다.
하지만 작가라는 본분에 맞게 현길언은 단순히 언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언어가 가진 힘을 이끌어내는 데까지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이야기의 힘」에서 아들은 식물인간 상태의 아버지를 돌보며 아버지의 “뇌에 잠자는 언어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 아버지가 이끌었던 ‘세명휴먼사이언스’사에서 실제로 잠든 뇌 속 언어를 끌어내는 기술을 완성시킴으로써, 현길언은 육체를 넘어선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기본정보
ISBN | 9788932035819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10월 14일 |
쪽수 | 342쪽 |
크기 |
136 * 211
* 21
mm
/ 410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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