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diplomacy)라는 낱말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 즉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에 유럽 열강들의 대외적 교섭 과정과 이들의 제국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국제 사회 행위자들 사이의 교섭을 의미하는 뜻으로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의미를 내포하는 세계 '외교'사는 유럽 열강들이 유럽 밖의 지역으로 확장해나가는 과정을 서술하기 때문에 유럽 문명권과 그 밖의 문명권들간의 충돌에 관한 서술 체계이기도 하다. 그러한 기본 인식과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한반도에서 일어난 이번 충돌의 초기 현상을 분석하고 그런 현상들이 남긴 국제 정치의 영향을 심도 있게 탐구 하고 있다.

제1장에서는 16개의 명제들을 전재로 각 문명권 안의 행위자들의 외교 관계와 외교 문서 속에 숨어 있는 그들 세계관의 특징과 본질을 탐구하고 있으며, 제2장에서는 카톨릭교를 전파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행해진 1866년부터의 프랑스의 한반도 침략과 해적 행위에서 시작한 미국의 한반도 침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제3장과 제4장에서는 조선-일본의 불행한 근대 역사의 시작과 그 외교의 진행 과정, 즉 교린과 국제법 질서에 입각한 두 나라 세계관의 뚜렷한 충돌의 한일 관계사에 대하여 탐색하고 있으며, 제5장에서는 승려 이동인을 비롯한 개혁파의 사적인 외교 형태와 수신사 김홍집을 통한 조선의 새로운 외교 정책 등에 대하여 살피고 있다. 제6장에서는 조선과 일본의 교린 질서가 파괴되면서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 조선과 중국 등의 관계를 통해 변형된 사대 질서의 배경과 그 실례로서의 조약과 사례등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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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열강들의 기간 문서와 미간 문서들을 검색하는 일은 매우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왜 한말 외교사를 연구해야 하는가? 한말 외교사를 연구하는 근본 목적은 조선을 위시한 열강들의 외교 문서 속에 숨어 있는 세계관을 추출하고 그러한 세계관들이 21세기 한반도에서 한국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계관은 '정신구조' '초스타일' 또는 '대외 인식 태도'를 가리킨다.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오고 있는 '정신 구조'의 본질이 열강의 외교 문서들 속에서 내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외 인식 태도'는 짧게는 예와 공법의 충돌이 시작된 1860년대 이후 한반도에서 형성된 '세계관'에 입각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나는 '오지 사고 방식' 또는 '변경 사고 방식'이라고 부른다. 이들 '사고 방식'이 오늘날 우리의 내외 인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