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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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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나는 시선을 더러운 방바닥에 고정한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수안이 행복하지 않은데 나 혼자 행복해진다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수안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얻는 행복의 평균이 있다면 나도 그 정도이길 바랐다. 혼자서 더 행복한 건 어쩐지 불안하고, 남의 행복에서 덜어온 듯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양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 느꼈던 날들이 있었다. 누구 하나가 많이 행복하면 다른 하나가 그만큼 불행할지도 모른다고. 타인의 행복이 커진다고 해서 내 행복이 줄어들진 않는다는 진실을 깨닫기까지는 세월이 많이 걸렸다.
(본문 중에서)
잠결에 초인종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그가 또 다시 다가와 내가 쳐놓은 경계를 넘지는 않을까 하고. 허락 없이 경계를 넘으려 할 때 화를 내면 사람들은 대부분 거기서 멈추었다. 살아가면서 몇 번 서로에게 상처를 받다보면 그렇게 훈련이 되곤 했다. 거리를 지키고 선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산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사람일 것만 같았다. 그런 점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지도 몰랐다.
(본문 중에서)
“비닐을 다시 쳐야겠어요.”
“괜찮아.”
나는 숟가락질을 멈추었다.
“어디로 가려는 건 아니죠?”
그는 내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아차리고 소리 없이 웃었다.
“한번씩 넌 내 속에 들어왔다 나가는 애 같다.”
“안 갔으면 좋겠는데.”
“갈 데가 있어. 다시 오겠다고 거기 식구들하고 약속했거든.”
“거기가 어딘데요?”
“아마도… 동쪽. 그리고 그보다 더 동쪽인 곳.”
삼촌은 농담처럼 웃었어도 나는 웃음이 안 나왔다. 목이 메어왔지만 꾹 참았다.
“주소가 있어요?”
“응. 내가 먼저 편지 보내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잡을 수 없다. 그는 우리보다 먼 곳에 있는 다른 누군가들을 원하니까. 그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서럽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미워지려 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서평
“세월이 흘러도 만약 네가 아무데도 안 갔다면
너는 아직도 그곳에 있는 거겠지, 그렇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의 이도우,
신작 장편소설로 그가 돌아왔다.
2000년대 중반 발행된 후 특별한 광고와 홍보 없이도 그저 책의 힘만으로 입소문이 퍼지며 ‘친구와 연인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소설’로 자리매김한, 지금까지 롱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는 소설이 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작가의 경험을 통해 생생함이 더해진 라디오 구성작가와 PD라는 직업의 생동감, 현장감이 느껴지는 여의도, 광화문 등 서울이라는 배경과 더불어 한번쯤 사랑에 실패해본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사랑을 시작하는 용기를 따스한 시선과 달콤한 스토리에 녹여낸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독자들은 그다지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이도우’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감과 갈증을 느껴왔다.
2012년, 오랜 숙성의 시간 끝에 이도우의 새로운 장편소설이 발표된다.
인생 첫 감명과 기쁨을 주었던 책, 그리고 추억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손에 잡힐 듯 그려내다
<잠옷을 입으렴>을 읽어나가면 이 작품의 3가지 개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인물, 이 작품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고둘녕의 1인칭 시점 소설이다.
그녀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음미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그녀를,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나가며, 둘녕의 눈에 비친 등장인물 모두의 가슴 속 가장 여린 부분을 살짝 엿보여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전부가 마치 유리세공처럼 섬세하게 느껴질 정도.
두 번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품.
이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 가장 소중한 추억의 촉매는 다름 아닌 책이다. 그리 많은 책을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으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던 클로버문고, 계몽사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ABE, 지금과는 달랐던 한글표기법, 책속에 담겨 있던 삽화…
이 작품 속에서 책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소녀의 유대이자, 추억이자, 성장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수탉풍향계, 둘녕의 섬세하고 마술 같은 손길에서 만들어지는 옷감 작품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작품 속의 배경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는 이도우 작가의 신작답게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은 이야기를 아름답게 채색한다. 이제는 추억으로 변해버렸지만 새로운 터전을 향한 첫 걸음이 되어주던 통일호 열차. 들판에 수없이 피어나지만 네 잎을 찾기는 어려웠던 클로버, 유리로 된 우유병…
<잠옷을 입으렴>은 달착지근한 로맨스는 아니겠지만 저자 이도우의 필체에서 탄생한 따스하면서도 쓸쓸한, 그렇지만 이도우라는 작가이기에 그려낸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다.
줄거리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참을 줄도 알았고 내색하지 않는 법도 배웠지만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건 역시 힘들기도 했습니다. 슈티펠만의 아이들처럼 즐겁게 꿈꾸며 기다리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숲에서 선물을 안겨주는 순례자를 만난다면 모를까, 그 시절 우리에게 그런 순례자가 되어 줄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수안과 내가 사는 세상은 그런대로 따뜻했습니다. 외할머니의 부엌엔 맛있는 음식이 있었고, 모두가 잠든 뒤에도 처마에 매달린 백열등은 꺼지지 않아 우리 방은 밤새 달빛보다 더 노란 빛으로 차 있었습니다. 나는 새삼 수안과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들어줄 사람이 삼촌 말고도 또 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가파른 계단을 내려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에, 둘녕은 새로운 터전이 될 외할머니 댁을 향해 통일호 열차를 타야했다. 외할머니 댁에 둘녕을 데려다주고 힘겹게 뒤돌아선 아빠의 모습이 멀어진 후, 둘녕이 자리를 잡은 외할머니 댁은 아주 따스한 곳만은 아니었다.
외할머니, 사무원인 둘째 이모, 선생님인 첫째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동갑내기 사촌 수안.
처음 얼굴을 마주했을 때는 말 한마디 나눌 수 없었던 수안은 소소한 사건을 계기로 둘녕에게 갑자기 마음을 열고, 이내 둘녕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 친구 이상의 특별한 존재로 받아들인다. 둘녕의 아빠가, 수안의 부모님이 사준 책들, 그리고 동네 만화가게에서 읽을 수 있었던 만화와 로맨틱한 소설들은 두 소녀의 마음속에 리본을 달고 꽃을 피우며,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하게 해준다.
하지만 수안과 둘녕의 성장 속도는 조금 달랐고 서로 어떤 단어를 생각하고 있는지 말없이도 알 수 있었던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를 알 수 없게 되어 가는데.
기본정보
ISBN | 9788925541884 |
---|---|
발행(출시)일자 | 2012년 02월 27일 |
쪽수 | 464쪽 |
크기 |
128 * 188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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