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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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 수상
작가정보
저자 이석용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건축사이신 아버지 영향으로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관동대 건축공학과에서 학사를, 국민대 건축학과에서 석사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컨벤션센터와 뮤지엄에 관한 논문 몇 편이 있습니다. 그 후, 설계 사무실과 인테리어 사무실에서를 공간디자인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건축을 기반으로 하는 컴퓨터그래픽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경기대, 삼육대, 인천대, 한양대 등 몇몇 대학에서 CAD와 3D 디자인에 관해 강의를 했습니다. 관련 전공서 여러 권을 냈고, 여전히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뜬금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디지털 메모의 기술>이라는 책도 냈습니다. 건축제도 국정교과서 연구위원을 했었고, 국립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기본 연구에 연구원으로 참여했습니다. 2011년 가을, <파파라치>로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을 받았습니다. 주변에서 물었습니다. “전공 바꾸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뭐가 바뀌었나요? 초등학교 입학 전 아랫목에서 아버지께 한글을 배웠습니다. 다행히 몇 대 얻어맞지도 않고 한글을 깨우쳤다고 부모님께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지금 저는 그때 배운 한글을 살며시 뽐내고 있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한글로 된, 재미있는, 긴 글을 쓸 생각입니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동의하신다면, 칭찬해 주세요.
목차
- 제1장 독립 / 9
제2장 그러니 당신도 / 49
제3장 숨은그림찾기 / 109
제4장 지킬&하이드 / 179
제5장 레테(Lethe) / 241
제6장 코끼리 / 265
제7장 내가 개꿈을 꾼 것인지, 개가 내 꿈을 꾸는 것인지 / 311
제8장 그림자놀이 / 361
제9장 1분 23초 / 393
작가의 말 / 415
추천의 글 / 423
책 속으로
1)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의 시외버스 안 풍경을 바라보자. 운전기사의 뒷좌석에는 노부부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뒤로 점퍼 차림의 중년 신사분이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으로 아주머니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다. 출입문 언저리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맨 뒷자리 중앙에는 파란색 선수용 물안경을 쓴 청년이 조신하게 앉아 있었다. 가슴팍을 가로지르는 가방을 메고 있는 것과 목에 걸린 수첩을 보아서 우리의 길도가 틀림없었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자꾸 고개를 돌려 뒤를 보려 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힘으로 아이의 머리를 제자리로 돌려놔야만 했다. 여학생 하나가 손에 브이를 들고 셀카를 찍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물안경을 쓰고 앉아 있는 청년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쯤은 그 청년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학생의 휴대전화를 보니 스마트 폰도 아닌 터라 자신의 사진이 바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Social Networking Service)에는 오르지 않을 것 같아서 괜찮을 것 같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길도도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년 전 등굣길이었다고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창가에 앉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입안에 가두고는 볼이 볼록해지는 것을 즐기고 있었단다. 그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30분이면 갈 수 있는 지하철을 마다하고 한 시간을 소모하고 두 번을 갈아타야 하는 버스를 타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날따라 내리기 10분 전쯤부터는 바람이 잦아들더니 그냥 후덥지근한 더위만이 창가를 맴도는 것이 느껴지더란다. 그래서 약간의 조바심으로 버스 바깥으로 얼굴을 살짝 내미는 순간, 길에서 튕겨 오른 작은 돌 부스러기가 눈 옆을 스치면서 작은 상처를 내고 만 것이다. 버스를 내릴 때에도, 길을 걸을 때에도, 교문을 들어설 때에도 아무렇지 않던 길도가 제자리에 앉고 나서는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이마를 책상에 처박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것을 양호실에 데려다 준 것은 단짝 천둥이었다. 늘 자신에게 남은 것은 볼 수 있다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길도가 아니던가. 그래서 그 이후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늘 물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잠수용 해녀 물안경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사회성은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길도였다.
-본문 중 128~130page
2)
‘아,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전엔 고민이 있을 때면 당연히 지인들과 술자리를 통해 쌓여 있던 것들을 풀어냈었고, 또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만능열쇠가 독화살로 돌아오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다만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을 수밖에 없는 그런 독화살이었다. 산책로가 끝나고 큰 길과 만나는 곳에는 대낮처럼 불 밝혀진 술집들이 모여 있었다. 김 부장의 다리는 아무 명령 없이도 그곳에서 멈춰 섰다. 타고 온 말이라면 목이라도 베어야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당당히 들어가 평소처럼 한 잔을 걸치고 멀쩡히 돌아가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것이 아무런 고통 없이 이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갈 지혜 같기도 했다. 술 한 잔 제대로 못하면서 부서의 리더는 고사하고 어떻게 사회생활을 꾸려 나갈 것인가 생각하면 앞이 깜깜해졌다. 하지만 술집 앞에서 번번이 진아의 얼굴이 방패가 되어 튕겨져 나오고 말았다.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뒷걸음질로 그 자리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자신과의 싸움도 지치는가 보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갈 즈음이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래되고 먼지가 뿌연 그래서 가로등에도 을씨년스런 자동차 몇 대가 나란히 주차된 것이었다. 동질감과 다르지 않은 측은한 마음에 그 옆에서 담배 한 개비를 빼어 물었다. 가로등 불빛에 버려진 자동차의 상흔이 선명했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피식하고 자조가 새어 나왔다. 더 가깝게 다가서고 싶었지만 먼지가 묻어나오지 않을 정도로만 다가섰다. 이미 온 동네 가게 홍보는 제가 다 맡은 양 스티커로 도배가 되어 있었는데 이상한 홍보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먼지 수북한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쓴 것 같은 글씨.
<당신의 일상을 담아드리겠습니다. -파파라치>
-본문 중 199~200page
출판사 서평
KBS 한국방송공사와 함께한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 수상작
셀카가 미니홈피를 가득 메우고 계시나요?
친구들과 어깨동무 한 사진들이 식상하셨나요?
항상 브이를 날리는 야속한 친구와 절교를 생각해 보셨다고요?
머리를 멋지게 날리고 있는 연예인의 사진이 부러우셨다고요?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하지 마세요.
당신의 일상에서 흘려보내는 멋진 순간을
전문가의 뷰파인더에 담아드리겠습니다.
당신조차 낯설고, 치명적인 매력을 발견할 기회.
당신의 일상을 담아드리겠습니다.
-파파라치
이야기는 열아홉 살 길도의 독립으로 시작됩니다. 누구에게나 독립은 인생의 중대한 도전이며 숨 막히는 갈림길이라 여겨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길도에게는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길도가 농아(聾兒)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길도의 독립은 전혀 예기치 않은 일로 시작되게 됩니다. 누나의 출장으로 열 살 조카와 단둘이 살 수 있게 된 것이죠. 길도는 이번 기회가 우유배급소나 서점 일이 아닌, 예전부터 꿈꿔오던 일로 독립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란 것이 바로 파파라치인 것입니다. 길도가 생각하는 파파라치는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를 귀찮게 따라다니며 셔터를 눌러대는 그런 파파라치가 아닙니다. 자발적인 의뢰를 받아 일상 속의 자연스런 모습, 멈추고 싶은 모습을 전문가의 카메라에 담는 그런 파파라치입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의뢰를 맡아 일을 시작하면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길도의 특별한 능력, 피사체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능력 때문에 길도의 의뢰는 매번 복잡하게 얽히고 마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진기술이 없다거나 렌즈가 바디에 박혀 있는 납작한 ‘똑딱이’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것은 아주 소소한 문제일 정도입니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길도의 기대와는 다르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의뢰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었다면 평범한 의뢰자들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길도에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중 문제였습니다. 그런 길도에게 첫 번째 의뢰가 들어오고 본격적으로 길도의 파파라치 일은 시작되는데…….
당신의 일상을 파파라치해 드립니다!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 수상작
<파파라치>는 도서출판 청어람, KBS 한국방송공사, 한국영화감독조합(DGK), 추리작가협회와 함께 진행된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 수상작이다. <파파라치>는 “당신의 일상을 파파라치해 드립니다” 라는 독특한 콘셉트와 함께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 길도의 차가운 세상으로부터의 자립과 들을 수 없기에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으로 바라본 의뢰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화두로 삼은 소설이다. 옴니버스 형태의 독립된 이야기가 진행되며 눈으로만 세상과 소통하는 열아홉 살 소년 길도의 카메라를 통해 인간의 모습이 새롭게 해석되어지는 구조가 신선하며 삭막한 세상 ‘착한 주인공’이 보여주는 ‘착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 이면의 모습을 비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편견을 허물며 독자들에게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주고 있다.
길도가 가지고 있는 이 특별한 능력은 소리가 없는 고요한 세상에서 길러진 능력입니다. 이면(裏面)을 보는 힘. 누군가는 통찰(洞察)이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텅 빈 여백을 통해서 당연히 있어야 할 뭔가를 절실히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니 길도의 포커스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들의 이면을, 본질을 고스란히 들키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의뢰자들도 사실은 그 이면에서 누군가에게 계속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길도는 그들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구조요청을 뿌리칠 수 없는 마음 착한 열아홉입니다. 길도는 자신만의 방법, 사진을 통해 도움의 손길을 건넵니다. 하지만 피상적인 도움이 아니라 본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때론 본인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사실(도움이 필요하다는)을 알려주기도 하고, 때론 의뢰자 스스로의 용기를 북돋울 수 있는 그런 메시지를 건네기도 합니다.
‘조용한’ 세상에서 ‘시끄러운’ 세상을 파파라치하다!
청각장애인 열아홉 살 길도의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열아홉 살 길도가 사회에 나와 바라본 세상은 청각장애인 길도에게조차 너무나도 복잡하고 시끄럽기만 한 세상이다. 그런 길도는 일반 사람들이 바라볼 수 없는 또 다른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의뢰인의 일상을 파파라치한다.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를 꾸며 돈 많고 젊은 남자에게 어필하고 싶은 회사원 나애리, 자살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젊은 아주머니 오희나, 끊어진 기억을 되찾고 싶어하는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IT 회사 부장,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세계, 그 중간에서 길을 잃고 일탈하는 만화가 장석주 등 길도의 시선으로 바라본 의뢰인들은 길도가 가진 외적인 장애보다 더 아픈 내면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화된 자살 문제,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에서 오는 사회적·문화적 혼란,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질환 등의 문제를 아홉 가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다루며 외적 장애보다 내적 장애의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한다. 청각장애인 길도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의 모습은 오히려 내적 장애를 겪는 우리들의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바라봄으로써 장애에 대한 편견과 사고를 환기시키고, 오히려 그 아픔을 달래주며 치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파파라치>는 이면에 관한 이야기와 장애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하나로 합쳐 ‘이면의 장애, 내적인 장애’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 주제를 ‘파파라치를 의뢰하고 그에 대해 치유하는’ 단순한 구도에 넣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티헌터>에서 주인공은 해결사로서 ‘총을 가지고 의뢰를 해결(죽이지 않고)’하고 있습니다만, 길도 역시 ‘사진을 가지고 의뢰를 해결(의뢰자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던 문제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의 방법이 똑 떨어지는 정확한 답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문제의 해결책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그 문제 본질에 대해 알려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추천사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소외된 계층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판타지’의 극적 쾌감을 만만치 않게 느끼게 해준다. 옴니버스 형식의 전체를 관통하는 뚜렷한 스토리 축을 세우면서 여러 이야기 조각을 하나로 엮어가는 구성은 뜻밖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덕규 소설가, 단국대 교수
<파파라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 있는 소설인데 소재가 매우 새로웠고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인간을 들여다보는 구조에 감동이 있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이수광 소설가. <무사 백동수>, <계백>, <인수대비> 외 다수
<파파라치>의 경우 객관 시선인 카메라를 통해 인간의 모습이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틀이 재미있었고, 벙어리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와 의도가 좋았다. 파파라치를 의뢰한다는 설정과 주인공 인물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그린다면 충분히 발전 가능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정해룡 KBS 드라마 PD. <며느리 전성시대>, <투명인간 최장수> 연출
거울 뒤에 난로를 피우고 웅크리고 앉아 세상을 훔쳐보는 파파라치 이석용 작가, 그러나 그에게 감시당하는 우리는 따스함과 위로의 시선을 느낀다.
-민병국 영화감독. <사랑이 무서워> 기획, 제작
기본정보
ISBN | 9788925127781 |
---|---|
발행(출시)일자 | 2012년 02월 29일 |
쪽수 | 424쪽 |
크기 |
145 * 210
* 30
mm
/ 678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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